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81)
제 181화
181화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예상하지 못했어.”
제론과 그의 일행은 게드린 백작령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교단의 신전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기도 전에 신전의 사제들이 먼저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니 당혹스러우면서, 동시에 우스웠다.
마지막의 우습다는 말은 사제들의 행동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스스로가 사람에 대해 얼마나 얄팍한 믿음을 갖고 있는지 깨달았다.
제론은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방 맞은 기분이야.”
“사실 저도 예상하지 못하긴 했어요. 우리야 ‘진짜’ 역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까이 가는 것조차 무서워하니까요.”
에르딘이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일행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로건은 곧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모았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예상외의 사태에 신전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렸다.
바로 게드린 백작령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 백작령 근방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면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땅이었다. 밤이 되면 보랏빛 안개가 뒤덮는다고 들었다. 낮에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백작령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저 멀리 병사들이 나타났다.
쟌느가 먼저 발견하고 말했다.
“왕국군이야.”
병사들의 정체는 백작령으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근방을 순찰하는 왕국군이었다.
제론 일행이 몸을 숨겼다.
왕국군은 제론 일행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금방 사라졌다.
그로부터 30분 뒤 또 다른 왕국군이 나타났다.
경계가 제법 삼엄했다.
그러나 게드린 백작령은 왕국군의 숫자가 수천만에 달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접근을 막지 못할 정도로 크고 넓었다.
인구가 수백만에 이르는 소국이 아닌 이상 애초에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또한 밤이 되면 달빛을 제외하고는 불빛 한 점 비추지 않으니, 오러 연공법을 익힌 사람이 아니라면 육안으로 사물의 형태만 겨우 구분하는 것이 한계였다.
제론 일행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해가 저물자 보랏빛 안개가 백작령을 뒤덮었다.
왕국군의 순찰 범위가 백작령에서 조금 더 멀어졌다.
보랏빛 안개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특별히 느껴지는 건 없어요.”
“저도요.”
에르딘과 메이엔이 먼저 말했다. 아직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도 크게 느껴지는 게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으음. 뭔가 조금 꺼림칙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유일하게 로건이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꺼림칙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건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제론은 보랏빛 안개의 정체를 대충이나마 짐작했다.
‘사기로 이루어진 안개야.’
요사스럽고 나쁜 기운인 사기邪氣가 아니다.
죽음의 기운을 뜻하는 사기死氣였다.
제론이 사기를 느낄 수 있던 것은 무림의 한 마인 때문이었다.
‘시골귀마屍骨鬼魔!’
죽은 지 며칠 안 된 시체에서 사기死氣를 뽑아 내공처럼 사용하던 녀석이었다.
또한 사기邪氣와 사기死氣를 동시에 사용하던, 마인 중에서도 무척이나 특이하고 사특한 마공을 사용하던 놈이다.
시골귀마와 큰 인연은 없었지만 바로 위에 말한 것처럼 무척이나 특이해서 잠깐이지만 관심 있게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사기死氣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요약하자면, 사기死氣-죽음의 기운은 제론처럼 직접적으로 기운을 느껴본 적이 있거나 많은 사람의 죽음을 옆에서 목격하지 않는 이상 느끼기 힘든 기운이었다.
그나마 로건이 거부감을 느낀 이유가 신성력 때문이었다.
신성력은 생명력, 즉 생기에 가깝다.
생기는 사기와 반대되는 기운이기에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행의 수준이라면 큰 영향을 안 미치겠어.’
제론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하지만 사기를 오랜 시간 몸에 노출해서 좋을 건 없었다. 사기는 말 그대로 죽음의 기운이었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나오는 게 좋다.
백작령으로 접근하던 도중 에르딘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제론 님. 저기 이상한 게 있어요.”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자.
-현재 이 지역에는 역병이 돌고 있으니 절대로 들어가지 마시오.
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 나무 팻말이었다.
나무 팻말은 한 개만 박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선을 멀리 옮기자 땅에 박혀서 고정된 팻말이 곳곳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왕국군의 순찰만으로는 사람의 접근을 막는 것에 한계가 명백하니 아예 역병이 돈다는 경고문을 적어서 팻말로 박아놓은 것이다.
“뒷수습까지는 몰라도 선 조치는 잘해놨네.”
마냥 방관하기만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리라.
제론 일행은 왕국군이 오기 전에 움직였다.
보랏빛 안개 속으로 몸을 담근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살아 있는 사람의 것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기척이었다.
“제론. 무언가가 와요.”
메이엔이 빗자루를 꺼내며 말했다.
곧 이상한 기척-검은 그림자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사람이었다.
그러나 저것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신체 곳곳이 썩기 시작하고 얼굴의 거죽이 반쯤 갈라지고 뜯겨져 나갔다. 시체에 가까웠다.
“죽었으나 안식을 얻지 못하고 걸어 다니는 자들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언데드Undead라는 말이죠?”
로건이 외치자 에르딘이 묻는다. 하지만 대답이 필요치 않은 질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판단이 가능한 외견이었기 때문이다.
‘좀비Zombie냐? 아니면 구울Ghoul이냐?’
제론은 천천히 언데드를 훑어봤다.
동태 같은 눈깔로 이쪽을 쳐다보며 다가온다.
좀비라면 훈련받지 않은 성인남녀도 무기만 있다면 쉽게 상대가 가능하지만 구울은 평범한 인간의 신체 능력을 상회한다. 그런데 저 언데드는 좀비치고는 걸음걸이가 빨랐고 구울이라고 하기에는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느렸다.
“지금 상황에서 딱히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제론이 손을 까닥이자 일행은 제각기 무기를 꺼내 들었다.
먼저 에르딘의 창이 움직였다.
투둑-!
가장 앞에서 다가오던 언데드의 목을 창으로 꿰뚫었다. 보라색으로 물든 핏물이 땅을 적셨다. 녀석은 하나로는 부족했는지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사방으로 창을 휘둘렀다. 10여 개체의 언데드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하지만 언데드가 괜히 언데드Undead겠는가?
이미 죽은 자의 목에 구멍을 만든다고 해도 두 번 죽지는 않는다.
언데드는 목에 구멍이 생긴 채로 일어나 달려들었다.
“이것들 뭐야?”
“목을 완전히 분리시켜요!”
쟌느가 언데드의 멱을 따며 외쳤다. 에르딘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창을 회전시키며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켰다.
그러자 언데드가 꿈틀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언데드를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신성력이 깃든 무기로 처리하거나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는 것! 간혹 후자의 경우가 통하지 않는 녀석들이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말해줄게요!”
“아…… 고마워요.”
“너희들 지금 대화를 나눌 여유가 있나 본데…….”
제론이 손가락을 슥- 옆으로 긋자 수십 마리의 언데드가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다.
보랏빛 안개도 함께 흩어졌지만 금세 채워졌다.
에르딘과 쟌느가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쳐다본다. 하지만 곧 쓰러진 녀석들 뒤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언데드가 밀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헛숨을 들이켰다.
“……게드린 백작령에서 이 ‘가짜’ 역병이 시작된 것을 잊지 마. 백작령의 영지민이 전부 언데드가 됐다고 생각하면 아마 수십만…… 아니, 어쩌면 수백만에 이르는 언데드가 우리를 노리고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굳이 그런 말은 덧붙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에르딘이 악에 받쳐 외치며 창을 휘둘렀다. 대부분이 좀비도 구울도 아닌 중간쯤의 어정쩡한 속도를 지닌 언데드라서 창을 막거나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숫자만 해도 수백은 족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벌써부터 기가 질릴 정도였다.
“일일이 상대하지 말고 빠르게 이동할 거니까 잘 따라와.”
“억-!”
제론이 사제-로건을 어깨에 들쳐 멨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지 않아서 로건이 당혹의 비명을 내질렀지만 이내 곧 잠잠해졌다.
“제론 님, 어디로 가실 거예요?”
“어.”
제론은 대답하며 빠르게 신법을 펼쳤다. 뒤에서 ‘야, 이 나쁜 새X야!’라고 소리치는 에르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환청이라고 생각하며 언데드의 파도를 가르며 달려갔다.
“시, 신의 사도시여?”
“네, 사제님.”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글쎄요. 어디론가 가다 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요?”
정말이지 대책이 없는 대답…… 아니, 질문이었다.
로건은 에르딘이 왜 ‘야, 이 나쁜 X끼야!’라고 소리쳤는지 알 것 같았다.
신의 사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사람을 모시고 산다면 절벽에서 밀지 않고는 못 배기지.’
오늘도 연전연승하는 에르딘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언데드를 상대하지 않고 돌파하는 건 최선의 선택이었다.
‘언데드의 숫자가 너무 많아.’
그간 봐온 일행의 능력으로 봐서 제론과 메이엔을 제외하면 언데드를 상대하다가는 전부 힘이 빠져서 당할지도 모르기에 이 안개를 빠져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사제님.”
“예, 신의 사도시여.”
“팔 좀 위로 들어봐요.”
“네.”
로건은 담담하게 말하며 팔을 들었다. 팔 아래로 무언가가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지나간다. 힐끔 눈동자를 돌리자 머리와 몸이 분리된 언데드가 보였다. 언데드의 공격 방향을 예측하고 피하라고 말해준 것이다.
‘역시 신의 사ㄷ…….’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로건의 눈에 지금까지 맞닥뜨린 언데드와는 다르게 생긴 녀석이 보인 것이다.
시체를 덕지덕지 기워 붙인 크고 뚱뚱한 언데드였다.
“저건 뭐지?”
제론이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린다. 로건은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언데드의 종류를 자세히 알지 못해서 침묵했다.
로건을 대신해서 힘겹게 뒤따라오던 쟌느가 외쳤다.
“누더기 골렘이야!”
“누더기 골렘? 아하. 시체를 헝겊처럼 기운 것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르는 거구나.”
제론은 여전히 흥미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손가락을 슥- 슥- 움직였다. 그러자 누더기 골렘이 여러 조각으로 찢어졌다. 어깨에 들쳐 메져 있는 로건이 감탄했다.
“신의 사도시여.”
“잠시만요.”
제론은 로건이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여러 조각으로 찢어지며 땅으로 떨어지는 누더기 골렘을 뛰어넘어 나무 위로 원숭이처럼 올라탔다.
곧 그를 나뭇가지 위에 내려놓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흐음. 언데드가 더 있지는 않네.”
꼭대기에서 주변을 살펴봤다.
보랏빛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두 눈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안개를 흐트러트리자 대충 감식이 가능했다.
몰려든 수백 마리의 언데드들을 제외하고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자 에르딘과 쟌느가 숨을 헐떡이며 막 도착한다.
반면 메이엔은 우아하게 티 타임을 즐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게 사역마를 타고 와서 로건의 옆에 앉아 있었다.
“많이 힘들어?”
“헥! 헥! 지금 숨넘어갈 거 안 보이세요?!”
“그럼 포기해.”
“언젠간 절벽에서 밀어버리거나 창으로 찔러 버릴 거야!”
“나도 도와줄게.”
에르딘과 쟌느의 협정이 극적으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