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82)
제 182화
182화
“아, 젠장!”
제론을 노려보던 에르딘이 문득 어딘가를 바라보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다. 뒤따라 시선을 옮긴 쟌느 역시 작게 입을 오물거린다. 입 모양으로 유추하건대 ‘씨X! 거X 같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징그럽게 몰려오네.”
언데드의 파도를 헤치고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다시 움직여야 했다. 숨을 고를 시간에 빨리 움직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지만 괜히 억울했다.
“그러게 왜 역병을 우리가 해결하자고 그랬어.”
“저만 그랬어요?!”
제론이 혀를 차며 말하자 에르딘이 억울했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쳤다.
그런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본 메이엔이 말했다.
“지금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는 아닌 것 같아요.”
언데드의 파도가 10m 앞까지 닥쳐왔다.
놈들의 걸음걸이로는 15초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일행들은 숨조차 돌리지 못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얼마 이동하지 못한 채 사방이 언데드로 이루어진 장벽에 가로막혔다.
‘이상한데.’
제론이 턱을 쓰다듬었다. 나무 위에서 주변을 살펴볼 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언데드가 이동속도가 엄청 빠른 놈들도 아니라서 먼저 앞서 나가 길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옆은 그렇다고 쳐도 앞에서도 나타난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정말 징그럽네요.”
제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에르딘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창을 움켜쥐었다.
“메르몽. 너만 믿는다.”
“메르몽? 그게 뭐야?”
“제 창의 이름이에요.”
쟌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묻자 에르딘이 대답한다.
“도와준다고 한 말 취소할게.”
“메르몽이라는 이름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요.”
“……어떤 전설인데?”
슬픈 표정으로 에르딘이 말하자 쟌느의 귀가 쫑긋했다.
“슬픈 전설이요.”
“그러니까 그게 어떤 전설인데?”
“그냥 슬픈 전설이 있어요. 그렇게만 아시면 돼요.”
“와……! 제론의 심정이 이해가 되네.”
쟌느가 기가 찬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검을 뽑았다. 검신의 길이가 50cm, 손잡이까지 더하면 대략 70cm 되는 검이었다.
단검이라고 하기에는 길고, 쇼트 소드라고 하기에는 짧았지만 검을 역수逆手로 쥐고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다.
일행들이 전투태세를 취하자 제론이 말했다.
“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
“그야 포위가 되었으니까요.”
에르딘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언데드는 일일이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지 않는 이상 잘 죽지도 않는다. 하지만 포위가 되었으니 돌파해야 한다.
“얼마나 더 깊숙하게 들어가야 할지 모르는데 벌써부터 힘을 빼면 안 되지. 안전한 장소부터 확보하고 그 뒤에 생각하자고.”
“하지만 포위당한 건 어떡하고요?”
“흠. 사제님을 잠깐 업고 있어 봐.”
에르딘이 창을 분리해서 양 허리에 결속시키고 로건을 업자 제론은 손가락을 슥 그었다. 언데드가 반으로 갈라지며 후두둑- 쓰러졌다.
제론이 저 사이로 가라고 손짓하자 일행들이 냅다 달렸다.
쟌느가 달려가며 감탄사를 토했다.
“오러 쓰레드Aura Thread! 아까 누더기 골렘도 그걸로 해치웠던 거야?”
“어. 굳이 불필요한 힘을 소모할 필요는 없으니까.”
“오러 쓰레드가 오러 블레이드보다 오러의 소모가 더 많지 않아?”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긴 한데……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지금 사용하는 건 오러 소드를 오러 쓰레드처럼 만든 거야.”
쟌느가 말하는 오러 쓰레드는 강사罡絲였다. 오러 블레이드-강기를 실처럼 가늘고 길게 뽑아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강사를 썼다면 오러-내공의 소모가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론이 사용한 오러 쓰레드는 검사劍絲였다.
오러 소드-검기를 실처럼 가늘고 길게 뽑았다는 말이다.
검기와 검강을 만들 때 소모되는 정신력과 내공의 양이 차이가 있는 것처럼 오러 쓰레드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는 건데?”
“그건…… 일단 이런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자.”
TMI의 본능이 튀어나오기 직전 제론은 제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 * *
1시간 뒤.
“흐어!”
에르딘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달리는 내내 로건을 업고 뛰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몇 시간을 내리 달려도 멀쩡했겠지만 지금은 언데드의 공격을 피하기까지 해야 해서 엄청나게 힘들었다.
로건이 옆에서 미안해하며 에르딘에게 신성 마법을 걸어준다.
욱신거리던 몸이 편안해지고 나른해진다. 멍했던 머릿속도 꽤나 맑아진다. 이대로 푹 쉬고 싶었지만 운기조식을 했다. 단전이 텅 비어버려서 얼른 채워야 했다.
“이쯤이면 괜찮겠어.”
제론이 주변을 둘러보고 와서 말한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경계를 서고 있던 쟌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검을 집어넣었다.
“메이엔 선배는?”
“잠깐 뭐를 확인하고 온대.”
“흠?”
제론 일행이 자리를 잡은 곳은 낮은 산의 중턱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곳이라서 그런지 언데드도 없었다. 그런데 무엇을 확인한다는 걸까.
‘돌아오면 물어봐야지.’
제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크게 저었다.
보랏빛 안개…… 아니, 사기死氣로 이루어진 안개가 흩어진다.
곧 다시 모여들려고 했지만 제론이 기의 장막을 펼쳐서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식사를 차릴 때까지도 메이엔은 돌아오지 않았다.
운기조식을 마친 에르딘이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묻는다.
“저 안개의 정체가 뭘까요?”
“사기死氣로 이루어진 안개야.”
“죽음의 기운으로 이루어졌다고요?”
에르딘이 살짝 낯빛을 하얗게 물들인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반면 쟌느는 신기해하기만 한다.
“마나의 한 종류라고 생각해도 되려나?”
“아마도.”
제론도 정확하게 맞는다고 말하기는 힘들었지만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때 로건이 말했다.
“흑마법 중에서는 네크로맨시Necromancy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죽은 자를 부리는 흑마법인데…… 그런 이들을 일컬어 네크로맨서Necromancer라고 부릅니다.”
“네크로맨서라면 들어본 적 있어요. 과거 흑색 마탑의 한 종파였던 걸로 기억해요.”
“맞습니다. 흑색 마탑이 사라진 뒤로 명맥이 끊긴 흑마법이죠.”
네크로맨시는 흑색 마탑의 주력 마법 중에서도 물질변환에 극으로 치우친 흑마법이었다.
물질변환이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고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동을 금으로 바꾸는 것처럼 고차원적인 마법이 아니라 사람의 피부를 돌처럼 단단하고 질기게 만드는 단련이나 강화의 개념에 가까웠다.
보기 좋게 포장해서 물질변환이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기에 물질변환을 적용하는 대상은 언데드-죽었으나 안식을 얻지 못하고 걸어 다니는 자들로 한정되었다.
“네크로맨서는 언데드를 주력으로 다루기에 흑마나…… 그중에서도 가장 죽음과 가까운 마나로 서클을 이루게 됩니다. 저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지만 저 보랏빛 안개가 죽음의 기운이라면…… 왜 거부감이 드는지 알 것 같군요.”
“그런데 게드린 백작령 전체가 저 안개로 뒤덮인다고 하지 않았어요?”
로건의 말이 끝나자 에르딘이 묻는다.
들려오는 소문에는 그랬다.
네크로맨서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작령 전체가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일 정도라면 가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어쩌면…….”
“혼자의 힘은 아닐 거야.”
제론이 에르딘의 말을 끊었다. 뒷말이 대충 예상은 된다.
대륙 최강이라거나 신에 필적하는 힘 어쩌고라고 말하려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힘이 있다면 숨어 지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대륙을 지배했거나 흑색 마탑을 전신 삼아 새로운 세력을 형성했을 것이다.
‘최근에 이런 힘을 갖게 됐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하는 짓이 너무 격이 떨어져.’
쿰베 왕국의 왕실을 점령했다면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쟌느.”
“응?”
“아티팩트 중에서 사용자의 마나를 증폭시켜주는 게 있어?”
“있지. 그런데 서클을 올려주지는 않아. 마나의 총량만 늘려줘. 3서클 마법사가 3서클의 마법을 보다 강하게 캐스팅하는 건 가능하지만 4서클의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해.”
쟌느가 짤막하게 설명했다.
제론이 잠시 생각하고 다시 질문했다.
“만약 신화시대의 아티팩트를 갖고 있다면?”
“그건…… 나도 뭐라고 장담을 못 하겠어.”
“신화시대에는 여러 종족이 어우러져 살아갔다고 했어. 당연하지만 신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나 무기가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 것을 네크로맨서가 갖고 있다면 이런 현상을 벌여도 납득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일리가 있어.”
“여기서 변수로 작용할 만한 건 한 가지야.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 아티팩트나 무기를 얼마나 잘 다루냐는 거지.”
“그 말은…… 이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야?”
“맞아. 아까 만났던 언데드는 좀비보다는 빨랐고, 구울보다는 느렸어. 오래전 기록이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저 많은 언데드를 전부 강화시키지는 못했을 거야.”
“이 안개에 언데드를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것도 가능성이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특별한 힘이 느껴지지는 않아. 혹시 모르니까 일단 염두에 둘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메이엔이 언데드를 한 마리 잡아서 돌아왔다. 사지가 부러진 채 밧줄로 묶여 있었는데 무슨 수를 써뒀는지 발버둥 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건 왜 잡아 오신 거예요?”
“언니가 무슨 짓을 한 건 아닐까 확인해보려고요.”
메이엔이 언데드를 내려놓고 주변에 주술진을 설치했다.
“당분간 주변으로 아무것도 다가오지 못할 거예요.”
“고마워요.”
제론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후에 조금 전까지 나눴던 대화를 메이엔에게 요약해서 전달했다.
메이엔은 듣고 잠깐 생각을 하더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화시대의 아티팩트나 신의 힘이 담긴 무기는, 그 힘이 강력할수록 많은 페널티가 따라요. 신의 힘이 담긴 무기의 경우에는 계약-커넥션을 통해서 사용이 가능하다거나 억지로 그 힘을 끌어내다가는 힘이 폭주해서 몸이 터져 죽는 등 말이죠. 평범한 존재가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제약이 있어요.”
“흑마법사가 역병이나 네크로맨시 계열의 힘이 담긴 것을 사용한다면요?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힘의 파장이 맞아서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식으로요.”
“그런 거라면 제약이 어느 정도 완화돼요. 아스트랄과 미들 어스가 나누어졌다고 하지만 직접적인 간섭이 불가능할 뿐 매개체를 통해서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아마…… 이런 짓이 가능하다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예상되네요.”
“신화적인 존재가 매개체를 통해 간접적인 영향은 끼칠 수 있다고요?”
“네. 대표적으로 아이오닉 교국에 성자와 성녀의 존재가 있잖아요.”
듣고 보니 그랬다.
성자와 성녀는 신의 뜻을 대리하는 화신-아바타Avatar였다.
‘말인즉슨 만약 이런 짓을 저지른 네크로맨서가 신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나 무기를 갖고 있고 힘의 파장이 맞는다면…….’
신화시대의 존재와 간접대면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제론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