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84)
제 184화
184화
섬뜩한 비명 소리가 마을 전체로 퍼졌다. 다른 일행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가던 어비스의 존재들이 에르딘을 향해 경로를 바꿨다.
“어, 어어?”
촉수가 사방에서 덮쳐오는 기괴한 광경에 당황한 에르딘이 주춤거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자리에는 녀석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쟌느가 뒤로 비키라고 외치며 어비스의 존재에게 오러가 담긴 단검을 뿌렸다. 촉수들이 잘려나가며 몇 개의 단검은 정확하게 이마를 관통했다.
-키엑!
어비스의 존재들이 비명을 지르며 힘없이 쓰러져 꿈틀거렸다.
다음으로 메이엔이 지팡이를 꺼내 마녀의 비술을 펼쳤고, 땅에서 반투명한 밧줄이 솟아나 어비스의 존재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었다. 밧줄은 발목을 타고 올라가 두 팔까지 완벽하게 구속했다.
“신성한 방호!”
로건은 일행들에게 신성 마법을 걸어주고 빠르게 물러났다.
제론은 그 모습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방금 그 소리는 신호인 건가?’
동물들이 아주 한정적인 신호에 불과하지만 분명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니까 어떤 종류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으로 말이다.
그것을 인간의 언어에 비유해서 동물 언어라고 일컫는다.
방금 한 어비스의 존재가 비명을 지르자 다른 어비스의 존재들이 반응하고 에르딘을 향해 덤벼들었다. 녀석을 위험한 존재라고 인식하고 먼저 해치우려는 행동이었다.
‘녀석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언어체계와 지능이 있다는 거지.’
또한 공격력과 속도는 빠른 것 같지만 방어력이 낮았다.
오러나 마나를 이용해서 공격하라고 한 것은 물리 방어력은 높다는 뜻이리라.
-키악!
이번에는 비명 소리가 가늘고 짧았다.
일행에게 당한 녀석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제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에르딘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창을 고쳐 쥐며 묻는다.
“이것들 뭔가 이상한데요?”
-쿠워어어!
그러나 에르딘의 질문에 대답을 한 것은 마을 안쪽에서 육중한 몸뚱이를 이끌고 나타난 거대한 어비스의 존재였다.
가히 오우거 성체만큼이나 큰 녀석이었다. 하지만 키와 덩치는 겉모습에 비하면 애교 수준밖에 안 됐다. 촉수가 갑옷처럼 몸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고 눈이 있어야 할 곳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난 커다란 입이 박혀 있었다.
또한 본래라면 입이 있어야 할 자리가 봉제 되어 딱 달라붙어 있으니, 그야말로 몬스터Monster-괴물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한 그런 녀석이었다.
쿵-!
“…….”
녀석이 달려오는 모습에 에르딘이 말문을 잃고 놈을 쳐다봤다. 다른 일행들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웬만한 일로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제론조차 작게 신음을 흘릴 정도이니 얼마나 끔찍한 외견인지는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 나는 저런 거랑 싸우고 싶지 않아.”
쟌느가 베개 밑에서 바퀴벌레가 튀어나온 것처럼 낯빛을 새하얗게 물들인 채 뒤로 물러났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메이엔 역시 비슷한 표정으로 슬쩍 뒷걸음질 쳤다.
에르딘이 힘겹게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섰다.
“제, 제가…….”
“너는 아직 무리야.”
제론이 에르딘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휴.”
녀석이 내심 안도했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러난다.
“다른 녀석들을 상대하고 있어.”
“알겠어요.”
일행들이 각자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제론은 육중한 몸으로 달려오는 괴물을 향해 검을 뽑아서 겨눴다.
내심 기대했다.
괴물은 어비스의 존재라는 것을 제외하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다.
그런 괴물에게서 마나나 오러와는 전혀 다른 힘이 느껴졌다. 마수인처럼 마기의 찌꺼기 따위가 아니었다. 덩치에 비해 그 힘이 대단치는 않았지만 에르딘이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비스의 힘은 마나나 오러보다는 초상능력超常能力에 가까운 힘인가?’
사람은 몸속에 기를 갖고 태어난다.
그것을 보편적으로 살아나가려고 하는 힘-생명력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에너지Energy나 원기元氣라고 일컫기도 한다.
어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미들어스에서 흘러 들어간 정신 에너지로 어비스의 존재가 구현되었다면 놈들은 그 힘을 갖고 있으며 다루고 있을 것이다.
제론은 거대한 어비스의 존재-괴물에게서 흘러나오는 힘의 파장을 감지했다. 잔잔한 바다처럼 물결이 인다. 육중한 몸뚱이가 10m 안으로 들어오자 잔잔했던 바다에 거친 파도가 생겨난다.
눈에 달린 입이 크게 벌어지며 고함을 토해낸다.
-쿠워어어어어어!
놈의 고함에는 오우거의 피어처럼 힘이 깃들어 있었다.
피부가 찌르르- 울렸다.
제론은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무식하게 큰 강기 덩어리가 검 끝에 맺히고 날아간다. 날아가며 그물처럼 넓게 퍼지더니 놈의 거대한 몸뚱이를 그대로 집어삼킨다. 곧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으로 흩어진 일행이 몸을 주춤거렸을 정도로 땅이 크게 흔들렸다.
괴물은 거대한 폭발 속에서도 멀쩡했다. 먼지구름 속에서 커다란 몸뚱이를 날렵한 표범처럼 움직여 제론에게 몸통박치기를 날렸다.
“촉수는 안 쓰는 건가?”
제론이 의아한 듯 중얼거리며 검을 원으로 돌렸다. 검막이 형성되었다.
괴물이 검막에 부딪쳤다.
쿵-!
검막을 통해 육중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그것을 흘려버린 순간 괴물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촉수가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바짝 서더니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져 와 제론을 공격했다.
검으로 모조리 베어내려는 순간 놈이 포효를 터트렸다.
-쿠오오오-!
포효에 담긴 힘은 아까보다 컸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제론의 몸이 움찔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덕분에 촉수에 대한 반응이 조금 늦어졌다.
제론은 의식을 가속화시켰다.
정확하게 53개의 촉수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다가온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도 있었다. 굼벵이가 기어오는 것처럼 느렸다. 의식의 가속화로 1초가 수십 조각으로 나누어진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궁수가 쏜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강하게 가자.’
53개의 촉수를 전부 포착하고 의식의 가속화를 풀었다.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빨라진 순간 제론의 검이 섬전처럼 번뜩였다. 모든 촉수를 베어내자 가루가 되며 사라진다.
괴물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다.
-크아아-!
제론은 진각을 밟고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가 괴물의 몸을 사정없이 베어냈다. 괴물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촉수처럼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각난 살점이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재생되었다.
‘재생력은 마수인 이상.’
다시 한번 괴물의 몸을 베어내며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잿빛의 불꽃이 괴물을 뒤덮는다. 이번에는 재생하지 못하고 천천히 불타오른다. 괴물이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을 지른다.
‘검강과 삼매진화의 차이 때문인가?’
검강이 무엇이든 베어내는 명검이라면 삼매진화는 태우지 못하는 것이 없는 순수한 불의 정화였다.
삼매진화의 절단력은 검강에 미치지 못하지만 세포까지 불태워버린다. 재생력이 뛰어난 존재와 싸울 때는 삼매진화만큼 효과적인 공격이 없는 것이다.
“제론 님!”
뒤에서 에르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살짝 돌려서 바라보자 괴물의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에 다른 어비스의 존재들이 이쪽으로 방향을 꺾어 달려오고 있었다.
흡사 생존자를 발견하고 잡아먹기 위해 덤벼드는 좀비 떼 같았다.
녀석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손짓해주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강이 원형으로 물결을 치며 퍼졌다. 달려오던 어비스의 존재들이 모조리 허리가 잘려나갔다.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던 일행들의 표정에 허탈감이 자리 잡았다.
“밸런스가 안 맞아.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에르딘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론은 신경을 끊고 괴물을 바라봤다.
녀석이 공포라는 감정을 느낀 것인지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도망치는 건가?”
제론이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한 순간 녀석은 완전히 뒤돌아서서 달려갔다. 진짜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얼탱이가 사라졌지만 놓칠 생각은 없었다.
쫓아가서 검강으로 베고 삼매진화로 태웠다. 녀석의 몸이 타들어 가며 비쩍 마른 마을 사람의 시체가 나타났다.
그사이 일행들이 어비스의 존재들을 해치웠다. 제론이 절반 이상을 검강으로 베어낸 덕분에 비슷한 타이밍에 전투가 끝난 것이다.
“선배. 어비스의 존재도 공포를 느끼는 건가요?”
“물론이죠. 어비스의 존재는 감정으로 인해 생겨난 정신 에너지가 증폭되어 흘러 들어가서 형상을 갖게 된 것이니까요. 그 감정 중에는 공포 역시 포함돼요.”
물론 어비스의 존재가 공포를 느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요.
메이엔은 뒷말을 삼켰다.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비스의 존재마저 공포를 느낄 정도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제론이 얼마나 강한지 추측조차 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모아 화장했다. 사제가 장례식을 거행했다.
그 이후 밤마다 죽음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안개를 생성해내는 매개체를 찾았다.
첫 희생자의 집에 있는 작은 돌조각이었다.
돌조각 자체는 특별하지 않았지만 매개체가 되며 죽음의 기운을 짙게 품고 있었다. 그것을 부수자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해골의 형상을 이루더니 제론을 바라보며 턱뼈를 딱딱 움직이고 흩어졌다.
“이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해골인데?”
제론이 턱을 쓰다듬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서대륙에서 흑마법사-데카론을 해치우자 나타난 현상과 동일했다.
“그는 고대의 군주-해골 군주예요. 악신 네크롬의 화신이자 고대부터 존재해온 누구보다 높고, 누구보다 낮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위대하고 천박한 존재죠.”
“어, 네로랑 똑같이 말하네요. 그런데 악신 네크롬의 화신이라는 말은 안 한 것 같아요.”
제론이 어깨 위의 네로를 쳐다보자 녀석이 뭘 노려보냐는 표정을 짓는다.
‘이 녀석 진짜 쓸모없네.’
슬슬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있는 처지였다. 제론은 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고 메이엔한테 질문했다.
“그런데 방금 해골이 뭐라고 한 거예요?”
“죽여 버리겠다고 했어요. 아, 앞에 온갖 지저분한 욕설이 붙어 있긴 했지만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생략했어요.”
“좋아요.”
“우리가 아직 그 정도로 깊은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
“……?”
제론은 잠깐 쟌느와 대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착각했다.
메이엔은 곧 자신이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에르딘이 키득 웃으며 말했다.
“메이엔 선배가 생각보다 많이 허당이시네요.”
“너보단 덜 해.”
“#@$#$#@%!”
제론은 해석되지 않는 욕설을 내뱉는 에르딘을 무시하며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
몇 시간 뒤 밤이 찾아왔다.
마을이 죽음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안개로 뒤덮이지 않았다.
매개체인 돌조각 때문에 보랏빛 안개가 생긴 것이 확실해졌다. 하지만 마을을 중심으로 몇 킬로미터 반경만 생겨나지 않았을 뿐 먼 곳에는 여전히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또한 땅속으로 들어갔던 언데드가 밤이 되자 활발하게 움직였다.
제론 일행은 언데드가 된 마을 사람들의 넋을 기렸다.
* * *
“흐흥. 잘 도망치고 있네.”
메이란이 하늘 위에서 아타시아를 내려다보며 키득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