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86)
제 186화
186화
적발의 사내가 인사를 받지 않고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야만족 남자가 들고 있는 고기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드시겠소?”
야만족 남자는 히죽 웃더니 적발의 사내에게 고기를 내밀었다.
적발의 사내가 눈가를 꿈틀거리며 말했다.
“치워.”
“난 또 먹고 싶다는 건 줄 알았지. 그런데 머리카락 색깔은 왜 그렇소? 저번에는 황금빛으로 반짝반짝이더니 이번에는 뭐 핏물로 감기라도 하셨소?”
“…….”
적발의 사내가 침묵으로 대답하자 야만족 남자는 재미없다는 듯 작게 혀를 찼다. 이내 그가 자신의 말을 불쾌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눈치를 살폈다.
야만족이 설산의 방어진을 성공적으로 뚫은 건 적발의 사내가 건네준 기괴한 힘과 도움 덕분이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설산의 방어진을 뚫기는커녕 야만의 땅을 일통하지도 못했을 테고 부족의 힘을 규합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처음부터 적발의 사내가 준 기괴한 힘과 도움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히 항거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을 압도적인 힘을 목도하고 맞닥뜨린 순간 마음이 변했다.
‘다른 부족장도 아닌 나를 찾아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야만족 남자는 부하들을 불러 주변을 정리했다.
내심 적발의 사내가 이번에는 어떤 것을 줄지 기대했다.
“…….”
잠시 후 야만족 남자는 말문을 잃고 말았다. 적발의 사내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잊을 정도로 엄청난 요구 조건을 듣고 말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똑바로 들은 게 맞소?”
“…….”
적발의 사내가 침묵했다.
야만족 남자는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호른 왕국의 수도를 공격하라고?’
타호른 왕국은 북대륙의 최북단에 위치한 나라였다.
북대륙과 야만의 땅을 가로 짓는 설산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서 북대륙 공식 협정에 의거하여 야만족의 침략을 대비해 각국에서 차출한 병력이 항시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야만족 남자는 타호른 왕국만큼은 최대한 피해서 움직이려고 했다. 그런데 적발의 사내는 타호른 왕국의 수도를 공격하라고 요구해왔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불가능한……!”
“뱀의 굴Snake’s burrow을 연결시켜 주지.”
야만족 남자가 거절하려는 순간 적발의 사내가 말했다.
뱀의 굴을 쉽게 설명하자면 텔레포트 게이트였다.
말인즉슨, 타호른 왕국의 수도를 공격한다면 야만의 땅과 북대륙을 넘어올 수 있는 공간이동 장치를 만들어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야만족 남자가 짧게 침묵을 한 뒤 물었다.
“저번에는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으셨소?”
“내가 아무 계획도 없이 그대들을 저주받은 땅에서 넘어오게 한 것 같나?”
“설산에서 마술魔術을 사용하라고 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군.”
야만족 남자는 중얼거리곤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제론 일행이 게드린 백작령에서 가짜 역병의 매개체를 제거하며 움직이는 사이 쿰베 왕국에서는 마법사 길드에 의뢰를 하여 역병의 ‘진짜’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마법사 길드는 진상을 파악하도록 흑마법과 악마술의 전문가를 파견하였고, 역병이 퍼진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결과물을 갖고 돌아왔다.
“흑마법사의…… 아니, 악마술사의 소행이 확실하다는 말씀이오?”
“예. 익히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언데드를 부리는 네크로맨시는 흑마법과 악마술의 중간경계에 위치해 있습니다.”
“흑마법인지 악마술인지 어떻게 구분 짓소?”
“흑마법 혹은 악마술을 사용할 때 쓰이는 마나의 종류입니다. 흑마법은 흑색의 마나를 사용합니다. 먼 옛날 존재했던 흑색 마탑의 마법사들도 흑색의 마나를 사용했지요. 하지만 악마술은 흑색의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과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 그러니까 악마의 힘을 빌려와서 그들을 대신하여 지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악마라면…… 혹시 언데드킹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이오?”
“아닙니다. 언데드킹도 악마의 힘을 빌려와 죽은 자의 왕으로 군림한 자입니다. 그 역시 악마의 하수인에 불과하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 왕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혹시……?”
“우려하시는 바는 알겠습니다만 언데드킹의 라이프 베슬은 확실하게 파괴가 되었습니다. 그러하니 그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진정하시지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무튼, 이 사태를 수습할 방법이 있소?”
“물론입니다. 우선 역병을 불러오는 안개라고 불리는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매개체가 되는 물질을 찾아서 제거하고 땅을 정화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신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악마술사에 대한 소재를 파악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땅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보다는 황폐화 시키는 게 더욱 쉬운 법이니까요.”
어느 한쪽도 2순위로 미루면 안 된다며 마법사가 덧붙였다.
왕국에서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지원을 아끼지 않겠소.”
* * *
제론은 손바닥으로 땅을 쓸었다.
“…….”
위에 깔린 흙이 걷어지고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나타났다.
대부분 일정한 보폭과 똑같은 깊이였지만 일부는 마구잡이로 밟고 지나간 것처럼 보폭과 깊이가 제각기 틀렸다.
제론이 찾던 발자국이 그 ‘일부’였다. 언데드에게 짓밟혀 손상된 발자국도 있었지만 제법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흑마법사가 이곳을 지나쳐간 지 오랜 시간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도시나 마을도 아니고 사방이 확 트인 장소에서 서성거릴 만한 이유는 많지 않아.’
제론은 일행을 불렀다.
마구잡이로 난 발자국은 그 장소를 맴돌았다는 사실을 뜻한다. 근처에 매개체를 심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 사실을 전달하자 일행들이 주변으로 퍼져 매개체를 찾아다녔다.
일행들이 매개체를 찾아내서 제거하는 동안 로건은 땅을 정화할 준비를 마쳤다. 곧 땅을 정화하고 탈진한 로건이 회복하자 다시 움직였다.
흑마법사가 움직이는 방향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부’의 발자국은 매개체를 심은 장소를 벗어나자 한 방향으로 이동했다.
쟌느가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수도가 목적인 건가?”
현재 제론 일행은 흑마법사들의 흔적을 쫓아서 게드린 백작령을 벗어나 인접한 후미드 자작령에 진입한 상황이었다.
후미드 자작령은 게드린 백작령에서 왕국의 수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영지들 중 한 곳이다.
앞서 놈들이 쿰베 왕국의 수도를 노리고 있다고 예측한 적이 있었다. 수도로 향했다면 후미드 자작령을 지나쳐가는 것이 당연했다.
반나절 뒤 후미드 자작령의 영주성이 있는 도시에 도착했다.
도시의 성문은 공성 무기에 공격받은 것처럼 파괴되어 있었다. 또한 성벽 곳곳이 무너져 내렸고 불에 그슬린 자국도 남아 있었다.
게드린 백작령을 지나치면서는 보지 못한 흔적이었다.
‘백작성은 멀쩡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게드린 백작성에는 전투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거의’라고 표현한 것도 복도와 벽에 칠해진 핏물 때문이었다.
그것 외에는 어떠한 파손의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
백작성 안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언데드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밤이 되어도 그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연유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반면 지금 눈앞의 성문과 성벽은 이곳에서 엄청난 전투가 있었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메이엔이 성벽으로 가서 그을림을 유심히 살펴보고 말했다.
“그을림이 소용돌이처럼 남은 것으로 봐서는 6서클 마법인 플레임 스톰Flame storm이에요.”
플레임 스톰은 화염 폭풍을 일으켜 지정된 구역을 초토화시키는 6서클의 화염 계열 마법이다. 그 위력은 7서클 마법과 비교될 정도로 6서클 마법 중에서 최상위였고, 평범한 6서클 마도사는 플레임 스톰을 한차례 캐스팅하는 것만으로도 탈진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마나를 소모한다.
“적들 중에 최소 6서클의 마도사가 있다는 것이로군요.”
“마정석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어요.”
“마정석을요?”
“4서클의 마도사도 최상급 마정석을 한 개나 두 개 정도 사용한다면 6서클 마법을 펼칠 수 있어요.”
게드린 백작성에는 재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백작쯤 되는 귀족이라면 마정석 몇 개 정도는 현물로 갖고 있었을 테니 그것을 이용해서 플레임 스톰을 펼쳤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성문을 부순 건 뭘까요?”
“성문을 통째로 부순 걸 보면 공성 무기 같긴 한데…… 아마도 아니겠죠.”
공성 무기를 끌고 다닌 자국이 없다. 다른 방법으로 성문을 부순 것이다. 마법이 가장 유력했지만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곳을 지나간 지 하루도 안 됐어.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자고.”
부서진 성문을 통해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메이엔이 사역마를 소환해서 주위를 확인하는 사이, 다른 일행은 성문을 부수고 도시로 들어간 흑마법사의 흔적을 따라가며 주변을 살펴봤다.
도시 안의 건물들도 성문이나 성벽처럼 멀쩡하지 않았다.
치열한 전투로 인해 절반 이상이 부서지거나 폭삭 무너졌다.
가장 멀쩡한 건물도 지붕과 상층이 헐벗은 산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작게 혀를 찬 제론이 혹시나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감을 퍼트린 순간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응?”
“왜 그래요?”
근처에서 걷던 에르딘이 제론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묻는다.
제론이 잘못 느낀 건 아닐까 정신을 집중하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있어. ……아무래도 어린아이들 같은데?”
“생존자가 있다고?”
“오! 신이시여.”
일행들은 얼른 그곳으로 가보자고 말했다.
제론은 앞장서며 생존자가, 그것도 어린아이들이라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모든 도시와 마을에는 생존자가 없었다.
어린아이도 물론이었다.
‘잠깐.’
제론의 생각이 거기서 멈췄다.
사기死氣로 이루어진 안개 속에서 죽으면 전부 언데드가 된다.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소문이 사실이라면 확실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본 언데드 중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없었다.
사기의 안개가 어린아이만 피해 가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런데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지?’
이상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이상했다.
“혹시 어린아이 언데드 본 적 있는 사람?”
“……저는 없어요.”
“나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행들도 제론의 질문을 듣고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인 건 확실하죠?”
“어. 확실해. 혹시 몰라서 몇 번 확인해봤어.”
언데드에게는 생기, 그러니까 생명력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죽는 순간 몸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존자들-어린아이들에게서는 생명력이 느껴졌다.
“숫자도 꽤 많아.”
“몇 명인데?”
쟌느가 표정을 굳힌 채 묻는다.
제론이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대답한다.
“666명.”
“……!”
지독하게 불길한 숫자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