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87)
제 187화
187화
현대의 한 종교의 경전인 묵시록에는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의 적 ‘첫 번째 짐승’의 이름을 가리키는 숫자가 있다.
바로 ‘666’.
공교롭게도 이쪽 세상에도 존재하는 숫자였다.
물론 의미는 조금 달랐다.
구세주의 적이 아닌 실존하는 악마를 상징하는 숫자로 말이다.
“오…… 신이시여!”
로건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신을 찾았다. 태양의 교단 소속인 그는 어린아이가 666명이 살아 있는 이유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 아이들은 제물입니다!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제물이요!”
“악마요? 갑자기 웬 악마 소환인가요?”
때마침 메이엔이 나타났다.
어린아이들에 대해서 들은 것이 없던 그녀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대충 상황을 설명하자 메이엔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제론이 그녀에게 묻는다.
“아스트랄의 존재는 미들어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해요.”
“그럼 악마를 소환해도…….”
“이번에는 경우가 달라요. 예전에 말한 적 있죠? 매개체를 통해서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요. 666명의 어린아이는 악마를 아스트랄에서 미들어스로 소환할 제물이자 매개체예요. 물론 악마의 본신이 소환되지는 않아요. 악마의 힘은 신에 필적해요. 고작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표현이 그렇지만 666명의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친다고 본신을 소환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제론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악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추측조차 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미들어스의 존재가 아닌 아스트랄의 존재라는 것이다.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존재이자 신화를 살아간 존재.
언젠간 만나서 싸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르다.
‘적어도 우화등선을 할 때만큼 힘을 회복해야 해.’
서대륙에서 흡수한 잔존마나를 전부 내공으로 소화시켜서 순수한 내공의 양만 따지면 그때보다 더 많다. 하지만 일정한 경지를 넘어선 순간부터는 내공의 양은 승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악마라는 신화적인 존재와 싸울 때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공의 양은 충분하지만 육체가 깨달음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다. 유민현의 몸이었다면 우화등선을 앞뒀을 때보다 더욱 강해졌겠지만 제로니아 페리안의 몸으로는 아직 멀었다.
‘그릇이 달라져서 그래.’
유민현과 제론의 혼은 같지만 신체 조건이 달랐다. 커져 버린 키, 길어진 팔과 다리, 주먹을 쥐는 악력……. 모든 것이 달라져서 적응이 필요했다. 20살이 되면 과거의 무위를 100프로 회복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직 90프로밖에 회복하지 못했다.
80프로를 넘긴 순간부터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각 경지마다 적응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힘을 예측할 수 없는 적을 맞닥트린다는 건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다.
“……그 악마라는 녀석, 얼마나 강해요?”
“몰라요.”
메이엔이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베헤못Behemoth. 666마리 마수들의 왕 혹은 주인이라고 불려요.”
“666마리 마수들의 왕 베헤못…….”
제론이 조용히 곱씹었다. 신화 속에서 살아간 존재이다. 분명히 지금까지 만났던 적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할 것이다. 힘을 회복할 시간은 없다. 하지만 피할 생각도 없었다.
‘현명한 건 북대륙이 어떻게 되든 신경을 끊고 물러나는 거겠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재밌겠어.”
제론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막지 못했다. 100프로의 힘이 아닌 것은 아쉽지만 90프로의 힘으로도 충분하다. 그래도 싸워서 진다면 100프로여도 마찬가지다.
“세상일이 언제부터 뜻대로 돌아갔다고?”
제론이 키득거리며 중얼거리자 에르딘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마치 미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곧 다른 일행에게 슬금슬금 다가간 에르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미쳐버리신 거 같은데요?”
“언제는 안 저랬어?”
쟌느가 어깨를 으쓱했다.
쿨한 반응에 머쓱해진 에르딘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메이엔이나 로건 역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제론의 저런 반응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이상한 건가?’
에르딘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지만 역시나 제론이 미친 게 맞았다.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신화 속의 존재와 만날 수도 있고, 싸우게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재밌겠다며 히죽 웃는 건 미친놈밖에 없다.
‘아니지. 5명 중에서 나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미친 건가?’
5명 중 4명이 제론의 반응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무려 80프로다.
“……환장하겠네.”
에르딘은 자신의 정체성에 의심이 생기려는 순간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4명이 정상이든 비정상이든 중요한 건 자신이 소수의 1명이라는 사실이다. 다 버리고 혼자서 떠날 것도 아니니까 잠자코 따르든지 지랄하면서 따라가든지 둘 중 하나만 하면 된다.
에르딘이 제론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제론 님.”
“왜?”
“그 베헤못이라는 악마 꼭 이기세요.”
제론이 에르딘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곧 주먹을 들어 사정없이 딱밤을 내려쳤다.
“으악-!”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르딘이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그런 에르딘을 내려다보며 제론이 히죽 웃고 말했다.
“그럼 내가 질 거 같냐?”
* * *
666명의 어린아이들이 있는 곳은 신전이었다.
신전은 컸다.
또한 사기의 안개가 감히 범접하지 못했다.
이에 대하여 로건이 말한 적 있었다.
“신전은 신의 힘이 닿는 곳입니다. 죽음의 기운을 비롯해 사특한 모든 것이 함부로 넘나들지 못하는 곳이지요.”
라고 말이다.
제론은 신전으로 들어가며 문득 생각난 것을 질문했다.
“사특한 모든 것이 함부로 넘나들지 못한다면…… 악마-베헤못도 신전에는 못 들어가나요?”
“들어옵니다. 신전은 신의 힘이 닿는 곳일 뿐이지 신께서 계신 곳이 아니니까요. 으음. 뭐라고 해야 잘 이해하실지……. 아! 쉽게 방파제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방파제가 있으면 웬만한 파도는 전부 막지만 방파제로 막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막지 못하는 것처럼 신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이해가 잘되는 비유였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로건이 쑥스러웠는지 양 뺨을 살짝 붉혔다. 하지만 제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플래그를 세운 기분이 들었다. 신전에 악마는 못 되더라도 사특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괜한 걸 물었나.’
괜히 찝찝한 기분을 뒤로 한 채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어린아이들의 기척들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지하에 있어요.”
“신전의 지하라면…… 아마 이쪽에 지하 계단이 있을 겁니다.”
로건이 신전 내부를 둘러보고 길을 안내했다.
신전의 구조는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특별히 어떠한 장소나 장치를 만들지 않았다면 웬만해서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666명의 어린아이들이 지내기에는 큰 장소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은 로건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일행도, 그러니까 제론 역시 안색이 조금씩 굳어져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지하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만들어진 지 오래된 문은 아니었다. 또한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었다. 성체가 된 오우거조차 밑으로 내려다볼 만큼 거대한 쇳덩어리의 언데드였다.
‘내가 괜한 플래그를 세웠네.’
제론은 역시 쓸데없는 질문은 생략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갑옷?”
에르딘이 거대한 쇳덩어리의 언데드를 보며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언데드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거대한 쇳덩어리의 정체가 바로 갑옷이었던 것이다.
제론 일행을 발견한 언데드가 스산한 입김을 흘리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쿵-! 쿵-!
거대한 쇳덩어리로 보이는 갑옷을 입은 탓인지, 아니면 그냥 몸뚱이가 거대해서 무거운 건지 걸어올 때마다 땅이 울린다.
“죽음의 기사Death Knight예요.”
“100프로 순혈의 인간이라면 저런 몸 크기가 아닐 테니까…… 흑마법사-네크로맨서가 무슨 방법을 사용해서 저런 거구로 만든 거겠죠?”
제론이 묻자 메이엔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크로맨서의 장기인 네크로맨시와 흑마법사의 특기 중 하나인 물질변환을 이용한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죽음의 기사가 성인 남자 크기의 철퇴를 들었다.
과연 거대한 몸뚱이만큼 무기도 컸다.
삐죽삐죽 솟아난 뭉툭한 쇠 송곳은 손목만큼 두꺼웠다.
잘못 찍히기라도 하면 야구공 크기의 구멍이 생길 것 같았다.
죽음의 기사가 철퇴를 들자 칠흑 같은 기운이 뚜렷하게 맺혔다.
에르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와. 오러 블레이드도 쓰네요?”
“오러 메이스Mace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오러 블레이드나 오러 메이스나…… 아무튼 저는 안 될 거 같아요.”
“넌 상대를 가리면서 언제 강해질래?”
“무리하지 말라고 했던 건 제론 님 아니었어요?”
제론이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치사하게 팩트로 공격할 줄은 몰랐다.
“저놈이랑 베헤못이라는 악마랑 비교하면 얼마나 될까요?”
“한…….”
“한?”
“1프로에서 10프로 사이는 되지 않을까요? 언데드가 악마에게 아무런 공격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0프로지만 순수하게 전력만 비교하자면 그럴 거라고 예상해요.”
“1프로에서 10프로 사이라…… 만약 베헤못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면요? 제 말은 그러니까…… 100프로의 힘으로 소환된다는 가정으로요.”
“한없이 0프로에 가까워요.”
메이엔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사이 죽음의 기사가 육중한 몸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죽음의 기사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하가 통째로 흔들렸다.
제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았다.
이윽고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
그 순간 소리가 멎었다. 죽음의 기사가 반으로 갈라졌다. 20m가 넘는 거리였다.
제론은 뽑았던 검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반으로 갈라진 죽음의 기사가 잠시 몸을 꿈틀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
제론의 일행들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이 정도면 1프로는 되겠죠?”
“어…… 어…….”
메이엔이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었다.
* * *
철문을 열자 666명의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뼈가 앙상했다. 하지만 영양실조보다 더욱 위험해 보이는 건 몸의 상처였다.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다친 걸로 보였다. 또한 오랜 시간 방치되며 대소변을 치우지 못해 욕창이 생겼다. 이대로 놔두면 밖으로 데려가도 얼마 지나지 못해 죽을 것처럼 보였다.
제론은 일행들에게 어린아이들의 케어를 맡기고 밖으로 나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최대한 구하려 했다. 대부분이 상해 있었다.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것도 죽음의 기운에 오염되어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아공간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만들어야 했다.
굶주린 시간이 길어서 수프로 만들었다. 앞으로가 문제였지만 666명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려면 뭐라도 먹여야 했다.
수프를 떠주자 허겁지겁 먹는다. 그런데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수프를 다 먹고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제론 일행을 바라본다. 누구인지 궁금해하지도 않는 눈빛이다.
“…….”
“실어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로건이 착잡하게 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