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88)
제 188화
188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3명의 그림자가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광기가 섞인 미소를 짓고 있던 한 명이 정색하며 말했다.
“죽음의 기사가 소멸되었어.”
“기사 5명을 합쳐서 만든 상품의 죽음의 기사가?”
“누구한테?”
정색한 그림자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제물은?”
“쯧.”
작게 혀를 찬 그림자가 ‘어쩔 수 없지만 포기해야지.’라고 말했다.
“이미 제물은 충분히 바쳤으니까.”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고?”
“남은 건 신물을 매개체 삼아 베헤못을 소환시키는 것뿐이야.”
검은 로브 사이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충격이 컸겠죠.”
제론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많은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 그 전에 무엇을 했겠는가. 침략과 약탈, 살인을 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전부 봤을 것이다.
충격이 적지 않을 수가 없다.
잠시 후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잠든다. 서로를 보듬는다거나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 프로그램으로 입력된 것처럼 기계적인 움직임에 가까웠다.
로건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어린아이들을 바라봤다.
“우선 상처부터 치료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손톱이 빠지거나 피부가 벗겨져서 상처가 곪아 있었다.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했는지 온몸에 퍼런 멍이 잔뜩 있었다. 당장 죽을 만큼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 녀석들도 생길 것이다.
“포션은 얼마나 남았죠?”
“20병 정도 있습니다. 상처가 호전될 정도로 치료가 가능합니다만…… 신전이 많이 더러워서 금방 악화될 겁니다.”
“정화하는 걸로는 힘든가요?”
“네. 언데드가 침범한 것을 떠나 땅이 죽음의 기운으로 오염돼서 신전에 깃든 신의 힘이 서서히 약해질 겁니다. 주기적으로 정화를 해줘야 합니다. 저 혼자서는 역부족입니다.”
“그것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야. 저 애들을 데리고 움직일 여력이 없어. 죽음의 기운에 노출되면 금방 시름시름 앓을 거야. 무엇보다도 식량이 거의 다 떨어졌고.”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아.”
제론이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쟌느가 의아한 듯 물었다.
“방법이 있다고?”
“우리가 정화한 경로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만약 노예 상인이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저 666명의 어린아이들을 다시 지옥으로 밀어 넣는 거나 다름없어.”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은밀하게 존재했다.
물론 법률적으로 노예가 된 자들도 있긴 했다.
국가내란죄나 반란처럼 큰 죄를 짓거나 다른 특별한 이유로 노예의 낙인이 찍힌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아니라면 전부 불법으로 노예가 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만약 사제들이라면?”
“사제들이라면…… 하아. 그래, 조금은 믿을 만하지.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언제 올지 모르잖아. 그때까지 아이들을 먹일 식량도 포션도 없어.”
“내가 데리고 올게.”
제론이 담담하게 말하자 쟌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데리고 온다고?”
“혼자 움직이면 금방 다녀와. 겸사겸사 식량도 좀 구해올게.”
“…….”
“몇 시간이면 충분해.”
전력으로 신법을 펼치면 몇 시간 안에 영지를 몇 개 왕복하는 것도 가능했다. 제론이 그런 말까지 세세하게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쟌느는 눈치껏 그 정도는 알아차렸다.
“알겠어.”
“조금만 버…… 어? 순순히 허락해주네.”
“나도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쟌느가 투덜대듯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 속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제론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을 본 쟌느의 뺨이 발그레 물들었다.
“제가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있겠습니다.”
“사제님을 독촉해서 정화작업도 하고 있을게요.”
로건과 에르딘이 차례대로 말했다.
메이엔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로건이 식은땀을 살짝 흘렸다.
“그…… 독촉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신의 사도께서 떠나시면 바로 시작하려고 했으니까요.”
“바로 시작하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론은 맡기겠다고 말하며 지도를 챙겨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로부터 2시간 뒤 태양의 교단 사제 한 명을 등에 업고 돌아왔다.
“우웨에에엑!”
사제는 제론의 등에서 내리자마자 오바이트부터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일행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정말 했네.”
“그러게요. 진짜 데려오셨네요.”
“역시 신의 사도십니다!”
“그런데 저 사제님 괜찮으신 걸까요?”
* * *
태양의 교단 사제는 아직도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다스리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
“믿지 못하겠지만, 믿겠습니다.”
“그…… 우욱!”
사제가 말을 하려고 입을 오므린 순간 다시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워졌다. 토악질을 할 것 같아 얼른 손바닥으로 막았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사제는 속이 진정된 뒤 말했다.
“그런데 그자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만.”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메이엔이 나섰다.
사제가 그녀에게 정체를 묻자 마법사라고 밝혔다. 로건의 경우가 특이한 거지 마녀라고 하면 나쁜 쪽으로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래서 마법사라고 한 것이다.
“……죽음의 기사는 평범한 언데드가 아니에요. 생전에 강한 힘을 가진 존재를 죽지 못하게 만들어서 생전의 힘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상위의 네크로맨시 마법이죠. 죽음의 기사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오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 안에 있는 아이들이 제물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이 있을 거예요.”
“그, 그 말이 진짜입니까?”
“게드린 백작성에도 비슷한 흔적이 남아 있었어요. 이런 상황이 돼서 알아차린 거지만…… 확실해요.”
사제가 입을 다물었다. 솔직한 생각으로는 믿기 힘들었다.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제물이라는 것도 그렇고 수도를 공격하려는 것 같다는 말도 그랬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짙은 불안감이 꿈틀거렸다.
역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언데드로 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안 뒤로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한 불안감이었다.
“후우. 믿겠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다른 건 몰라도 식량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이틀 치 정도는요. 아. 물은 괜찮습니다. 정화를 하면 되니까요.”
“고기도 괜찮나요?”
“물론이죠.”
사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론은 도축된 고기를 아공간 주머니에서 빼서 쌓았다.
사제를 데리러 가며 사냥한 죽음의 기운에 오염되지 않은 짐승이었다.
그런데 고기의 양이 제법 많았다.
“어, 엄청 많군요.”
“혹시 몰라서 넉넉하게 구해놨어요.”
제론의 키보다 더욱 높게 쌓였다. 666명의 어린아이들이 적당량씩 먹는다면 이틀 동안 버틸 양으로 충분해 보였다.
언제 또 식량을 구할 수 있을지 몰라서 일행들이 먹을 것은 따로 도축해둔 상태였다.
“혹시 모르니까 포션도 몇 병 놓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6병씩이나요?”
“저희가 최대한 자세히 살펴보긴 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한 것이죠.”
“아아…… 참으로 마음씨가 훌륭하신 분이셨군요. 제가 반드시 이 아이들을 책임지고 지키겠습니다.”
제론을 바라보는 사제의 눈빛이 변했다. 막 도착해서 토악질을 할 때까지만 해도 천하에 다시없을 원수를 눈앞에 둔 것처럼 바라보더니 지금은 감동 받아서 눈물을 뚝뚝 흘릴 지경이다.
“신의 ㅅ…… 크흠. 제론 님께서는 아주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고 보니 같은 교단의 사제님이 계신데 통성명도 나누지 않았군요.”
사제가 훈훈한 표정으로 로건과 대화를 나눴다. 이윽고 잠시 후 제론 일행은 한 번 더 사제에게 부탁한다며 말하고 후미드 자작성을 떠났다.
네크로맨서의 흔적을 따라가던 도중 문득 머릿속으로 의문이 떠오른 에르딘이 묻는다.
“그런데 그 사제님은 그렇다 쳐도 고기는 어떻게 한 거예요?”
어디서 사냥했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도축은 언제 했냐는 뜻이다.
“달리면서 했어.”
“아…… 그러시구나.”
에르딘은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대답이 돌아올 게 뻔했는데 말이다. 며칠 뒤 후미드 자작령을 벗어난 순간부터는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밤이 찾아와도 언데드가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왕국의 수도까지도 어느새 5일의 거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네크로맨서의 흔적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본 제론이 말했다.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어.”
이동속도를 점차 높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론 일행과 네크로맨서의 거리가 그대로였다. 여전히 하루 차이라는 뜻이다.
“죽음의 기사가 소멸한 것을 알고 이동속도를 높인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해요.”
제론은 메이엔의 말을 부정했다. 메이엔이 소환한 사역마는 꽤나 빨랐다. 말을 타고 움직이는 것에 비해 2배 이상의 속도였다. 잠을 쪼개면서 이동하고 있기까지 해서 따라잡지 못하면 이상한 것이다.
“……666마리의 마수들 중 1마리를 소환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무슨 뜻이죠?”
“베헤못이 종으로 부리는 666마리의 마수들에게는 제각기 특별한 힘이 있어요. 그중에서 1마리가 빛처럼 빠르게 달리는 다리를 갖고 있어요. 게드린 백작성에서 바친 제물로 그 마수를 소환했고 죽음의 기사가 소멸한 사실을 알고 이동속도를 높였다면 지금 상황이 이해가 돼요.”
“산 넘어 산이라는 거군요.”
제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크로맨서는 역병처럼 언데드를 일으키고 수도를 공격하려고 한다.
그 정도만 해도 네크로맨서 몇 명이서 일으킬 만한 소동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런데 신화 속의 악마-베헤못을 소환하려고 한다.
그 악마가 종으로 부리는 마수까지 소환했을지도 모른다.
‘끌려다니는 기분도 들고.’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든 생각이었다. 베헤못이 소환되는 모습을 구경할 청중을 불러들이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메이엔 선배.”
“네.”
“혹시 텔레포트 같은 거 가능해요?”
“가능해요. 하지만 후배님을 이동시키는 건 불가능해요.”
제론은 어떻게 흘러가는 레퍼토리인지 알 것 같았다.
“제 운명이 이 세상에만 얽매여 있는 게 아니라서 그런 거죠?”
“맞아요. 미안해요.”
“미안할 건 아니고…… 그럼 부탁할게요.”
“우리끼리 먼저 가라고?”
쟌느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론을 내버려 두고 먼저 간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녀의 뒤에서 에르딘이 말도 안 된다며 죽어도 같이 죽자고 발을 쿵- 쿵- 구른다.
제론이 녀석에게 다가가 머리통을 쥐어박자 조용해졌다.
“신의 사도께서는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열심히 뛰어서 가야죠.”
담담하게 말하고 생각했다.
‘나만 고생하면 되는걸.’
어쩌겠는가.
운명이 그렇다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