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90)
제 190화
190화
“뭐?”
메이란이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라는 표정으로 제론을 쳐다봤다. 일방적인 거래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론이라는 놈은 겪어본 경험으로 말해서 웬만한 미친놈도 코웃음 치며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 정도로 배짱이 두둑하다 못해 간이 배 밖으로 나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귀가 먹었냐? 10년 동안 오른 왕국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게 내 조건이야.”
“무슨 헛소리를……!”
“싫으면 말고. 나야 아쉬울 게 없으니까.”
제론은 히죽 웃으며 칼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살기를 느낀 메이란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며 말했다.
“좋아. 그 조건 받아들이겠어.”
“말로만?”
“원하는 바를 말해.”
“영혼에 걸고 맹세해. ‘악몽의 집행자’ 및 그와 관련된 모든 자들은 지금부터 10년 동안 오른 왕국에 그 어떠한 피해도 끼치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너……!”
마법사에게 ‘마나의 맹세’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서클에 걸고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약속이었다.
그것을 어긴다면 마나홀의 서클이 전부 끊어지며 마법사로서의 힘을 잃어 영원히 마나를 다루지 못하게 된다.
‘마나의 맹세’처럼 마녀에게도 ‘영혼의 맹세’라는 것이 있는데, 사실 이름만 다르지 내용은 비슷했다.
그 대상이 마나가 아닌 영혼의 소멸이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린다.”
“아, 그래서 맹세를 하지 않겠다고?”
까드득-!
이가 부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세게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제론은 칼집에 손을 올린 채 히죽 웃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얼핏 스쳐 지나간 생각이 맞는다면 쿰베 왕국의 사건은 정말로 저 조직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좋아. 맹세를 하겠어.”
메이란은 분노로 들끓는 마음을 다스린 뒤 제론의 조건대로 영혼에 걸고 맹세했다.
10년 동안 오른 왕국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점이 살짝 속 쓰렸지만 아타시아도 처리한다고 생각하면 손해는 아니었다.
“……를 내 영혼에 걸고 맹세한다.”
우웅-!
메이란이 맹세를 마치자 그녀의 몸 주위로 마나가 일렁였다.
맹세가 제대로 적용되었기에 생겨난 현상이었다.
“‘영혼의 맹세’는 메이엔이 알려준 건가?”
“좋은 정보는 뭐냐?”
끝까지 메이란의 속을 뒤집어놓는 제론이었다.
“……아이오닉 교국이 움직였어.”
“그게 끝?”
제론이 아니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메이란이 한숨을 푹 내쉬고 뒤이어 말했다.
“좋은 정보는 나중에 말해줄게. 우선 들어.”
“말해.”
“교국의 목적은 네크로맨서가 소지하고 있는 악신의 유물을 회수하는 것이야.”
“네가 말한 ‘우리’ 중 한 명이 악신의 유물을 빼돌렸나 보네.”
“맞아. 독단적으로 교국의 봉인지에서 악신의 유물을 빼돌려서 흑마법사들에게 준 것으로도 모자라 마음껏 날뛰도록 부추겼지. 원칙대로라면 흑마법사들을 ‘우리’가 제거했겠지만…… 너무 많은 세력의 이목이 쏠려서 나서지 못하게 되었어.”
“그래서 나를 이용하려고 온 거고?”
“맞아.”
“좋아. 의뢰 내용은 접수했어. 그럼 의뢰비는?”
“좋은 정…….”
“놉. 그걸로는 부족해.”
메이란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제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씨’라고 입 모양을 만들었다.
‘욕만 하면 다행이지.’
아쉬운 입장만 아니었다면 자신의 사지를 잡아 뜯어버린 뒤 들판에 버려서 몬스터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깔깔거리고 웃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제론은 속으로 낄낄 웃고선 말했다.
“일단 그 좋다는 정보부터 들어볼까?”
* * *
한편 제론의 일행들은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쿰베 왕국의 수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론의 일행들뿐만이 아니었다. 수도의 성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수도를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전부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성벽 위에서 보초를 서던 경비대에게 물어보니 당분간은 출입을 받지 않는다나. 역병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폐쇄적이었다.
결국 일행들은 성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천막을 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새벽이 되자 에르딘이 누워 있다가 말한다.
“성벽을 타고 넘어가는 건 어때요?”
“아마 반란분자로 찍혀서 공격받지 않을까?”
“땅을 파고 넘어가는 건요?”
“땅을 파던 도중 들켜서 공격받지 않을까?”
“……역시 그렇죠? 저도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에르딘이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안 쟌느가 피식 웃으며 옆으로 몸을 돌렸다.
천막 사이로 멀리 있는 수도의 성문이 보였다. 밝게 타오르는 횃불 사이로 검은 그림자-경비병이 성벽 위를 돌아다닌다.
‘성문이 폐쇄된 지 3일째라고 했던가?’
아직은 괜찮다.
전쟁이 벌어지고 수도가 포위되었을 때를 대비해 국고에 쌓아둔 식량도 충분할 테니까. 하지만 계속 성문을 닫고 지낼 수 없다. 국고는 무한하지 않다. 쌓아둔 식량이 바닥난 순간 엄청난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무슨 생각으로 수도의 성문을 폐쇄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론이 오려면 최소 하루는 더 있어야 해.’
제론이 이동하는 속도를 고려해도 후미드 자작령과 수도의 거리를 계산하면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 하루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겠냐며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잠을 자는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움직였는데 네크로맨서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네크로맨서들은 걸어서 움직였다. 발자국의 보폭은 넓지 않았고 깊이도 깊지 않았다.
느긋하게 걸어갔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는 건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사실 때문에 쟌느는 살짝 조바심이 났다.
한숨을 내쉰 바로 그때 횃불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쟌느가 저도 모르게 의문성을 토해냈다.
“……어? 저게 뭐야?”
“으허헛!”
눈이 반쯤 뒤집힌 채 잠에 들기 직전이었던 에르딘이 화들짝 놀라며 깼다. 쟌느의 ‘저게 뭐야?’라는 목소리에 정신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헙헙. 무슨 일이에요?”
에르딘이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내고 물었다. 그때까지도 쟌느는 횃불 사이로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쟌느 님?”
“……저거 보여?”
쟌느가 검은 그림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묻는다. 에르딘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서 성벽 위로 눈동자를 옮겼다.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횃불 사이로 느릿하지만 정체 없이 움직이는 ‘그것’이 말이다.
“경비……병은 아니네요.”
보초를 서는 경비병이라면 갑옷이 횃불의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려야 한다. 하지만 불빛은 어둠에 잡아먹히는 것처럼 흡수되었다. 빛을 흡수하는 옷이라도 입은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런 불필요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러와 내공을 갖고 있는 두 사람에게는 검은 그림자가 경비병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검은색 로브 맞지?”
“제 눈에도 그렇게 보여요.”
“다른 사람들은?”
“이미 깨어 있어요.”
쟌느가 확인 차 묻자 메이엔이 잔잔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크흐흠. 저도 깨어 있습니다.”
로건이 살짝 잠긴 목소리였지만 정신은 똑바로 차린 듯했다.
쟌느가 목소리를 낮추고 질문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쫓은 흔적으로는 분명히 하루 차이의 거리였어. 그렇다면 놈들은 아직 수도에 도착하지 않았어야 하는 게 정상이야.”
제론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메이엔의 비술로 수도에 도착한 상태였다. 며칠 걸릴 거리를 단숨에 좁힌 것이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하루 차이의 거리에 있던 네크로맨서가 아직 수도에 도착하지 않았어야 맞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만약에 저 검은색 로브가 네크로맨서라면 어떻게 된 일일까?”
“처음부터 2개의 무리로 나누어져 움직였다는 뜻이죠.”
에르딘이 대답했다.
“정확해.”
쟌느가 손가락을 튕기며 히죽 웃었다.
* * *
제론은 메이란이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좋은 정보는 정말로 ‘좋은’ 정보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쓸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정보를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릴 수도 없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닥쳐올 재앙을 알려준 것이었으니까.
“……그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그쪽이 더 걱정인데?”
‘그쪽’은 일행이 간 수도를 의미했다. 메이란에게 들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네크로맨서는 여러 명이고 2개의 무리로 나누어져 움직였다고 말이다.
제론도 네크로맨서들이 무리를 나눠서 움직였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살짝 간과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나쁘게 표현하자면 얕봤다. 방심에 가까웠다.
“놈들도 마법사지.”
힘에 심취한 게 아니라면 그 잘나고 똑똑한 머리를 굴릴 줄 안다는 것이다. 지도를 펼쳐서 지금 위치와 수도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다. 전력을 다해서 신법을 펼친다면 19시간 내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전력을 다했을 때의 경우였다.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는 내공의 양이 전부 바닥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컨디션이 난조가 될 것이다. 그런 상태로 악마-베헤못을 상대한다는 건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19시간 내에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소환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 못 하기도 하지.”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고민은 짧았다.
“……믿는다.”
* * *
전前 제2 성녀이자 추기경이었던 아타시아는 새벽이슬이 맺힐 무렵 쿰베 왕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 시각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하다는 범주를 벗어난 존재였다. 아직도 태양과 인간의 신 ‘솔라’와도 커넥션이 이어져 있었다.
사실 신의 힘이 왜 아직까지도 몸속에 흐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직에 몸을 담았을 때도 의문투성이였다. 분명 교단의 경전과는 반하는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이유는 나도 모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또한 상관없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빌어먹을 말이지만 태양과 인간의 신 ‘솔라’는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 힘을 거둬가지 않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곧 축제가 시작될 거예요.”
저 높은 곳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위대하고 빌어먹을 신에게 말했다.
* * *
에르딘은 창을 단단하게 묶었다. 성벽을 타고 올라갈 예정이었다. 혹시나 풀려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다시 내려갔다 와야 한다.
“아. 살 떨리네.”
살다 살다 수도의 성벽을 넘을 줄은 몰랐다. 이런 신박한 경험은 난생처음이다. 그리고 이번의 경험이 마지막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뭐 하고 있어?”
“성벽을 타고 올라갈…….”
“제 사역마를 타고 올라가면 돼요.”
“아…… 네…….”
에르딘은 힘겹게 다진 각오가 허망하게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성벽을 타고 넘어가는 건 무식한 방법이긴 했다.
‘그나저나 그놈이 안 보이는데?’
1분 전까지만 해도 성벽 위에는 검은 그림자-네크로맨서로 추측하고 있다-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에르딘은 지독하게 불길했다.
“아…… 조졌다.”
“무슨……?”
쟌느는 질문을 마치기도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콰앙-!
성벽 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이 터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