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93)
제 193화
193화
제론은 잠시 눈을 감았다. 수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불길하고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방향으로 짐작하건대 수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생각보다 빨리 시작됐어.’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다.
혀를 길게 뺀 채 달려가는 마수를 다시 한번 재촉했다.
‘늦지 않게 도착했으면 좋겠군.’
* * *
“크윽.”
에르딘은 인상을 찌푸렸다.
단전이 전격계 마법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 울렸다. 껍질이 벗겨진 손바닥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정도로 필사적으로 싸운 기억이 없다. 서대륙의 던전 안에서 오러 마스터 바후르와 목숨을 걸고 싸웠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 죽겠다.”
투정이나 엄살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에르딘이 창을 지팡이 삼아 일어서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옆에 있던 병사가 재빨리 에르딘을 부축했다.
“경! 괜찮으십니까?!”
병사가 부른 ‘경’의 호칭은 에르딘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름도 정체도 몰랐지만 앞서 말했듯이 정체를 감추고 있는 기사 혹은 대륙을 떠돌아다니는 자유 기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에르딘은 호흡을 재차 고르며 말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긴 했지만 곧 괜찮아졌다. 아직 버틸 만했다. 바닥났던 내공이 조금씩, 정말로 아주 조금씩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동공動功-움직이면서 내공을 쌓는 수련법-을 하고 있는 중이 아니었다. 단전이 의지를 지닌 것처럼 주변의 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가 조화를 이루며 생긴 현상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해서 에르딘의 심心·기氣·체體가 균형을 이루어 더욱 높은 경지로 올라섰다는 말이다.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높은 곳으로 한 발자국 더 내디뎠단 말인가!
제론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기가 차서 헛웃음을 들이켰으리라. 하지만 에르딘은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론 님이 오시려면 멀었어. 그때까지는 버텨야 해.’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상태였다.
게다가 사방에서 언데드의 파도가 밀려오는 상황이니만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동문東門-동쪽 성문-으로 가는 길을 뚫겠습니다!”
수도 경비대가 시민들이 보호하며 언데드와 맞서 싸웠다. 동문은 다른 성문보다 피해가 적은 곳이었다. 이대로 성안에 갇혀서 언데드와 싸우는 것보다 탈출하는 게 피해가 적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에르딘과 다른 일행들이 넘어온 성문에서는 언데드가 성문 밖의 사람들을 안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다른 성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마구잡이로 공격해서 언데드의 숫자를 늘리는 게 아니라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집단사냥을 하는 것처럼 천천히 숨통을 옥좼다.
성문 밖의 사람들은 언데드를 피해 성문 안으로 들어왔고, 이내 성 내부에도 언데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뒤돌아서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미 성문은 죽었으나 안식을 얻지 못하고 걸어 다니는 존재들로 막혀 있었다.
사면초가의 상황!
절망스럽기까지 했던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용병 길드와 마법사 길드가 있던 동문이었다. 언데드가 출몰하자 용병들과 마법사들은 바로 반격에 나서기 위해 힘을 합쳤다. 그 뒤를 모험가 길드가 지원했다.
또한 도심에도 유명한 모험가나 용병, 마법사가 호텔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그들은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과 맞서 싸웠다. 진짜 날벼락이었다면 감전돼서 죽었겠지만 좀비는 사실 상대법만 안다면 평범한 성인도 어렵지 않게 싸워 이길 정도로 약했다.
물론 그 상대법을 평범한 사람들이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오러를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전투…… 그러니까 깡패들의 주먹질이 아닌 죽거나 죽이는 그런 싸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무기만 있다면 좀비 몇 마리는 우습게 처리가 가능했다.
‘그것 역시 언데드가 파도처럼 밀려오면 오래 가지 못하지.’
혼자서 몸을 빼낼 발재간이 없다면 결국 협력을 해야 한다.
에르딘은 창을 움직여 좀비의 머리에 구멍을 뚫었다.
포션을 꺼내 손바닥에 뿌렸다.
치이익-!
상처가 아무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아파 왔다.
“크윽.”
손바닥의 껍질만 까인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뼈가 욱신거리며 아팠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포션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게다가 저 마법진 때문인지는 몰라도 몸이 무거워.’
검붉은 빛의 사악한 마법진이 핏줄기를 빨아들이며 조금씩 크기를 부풀린다. 불현듯 왕궁으로 향한 일행들이 생각났다.
설마 휘말린 건 아닐까 걱정됐다. 불안을 애써 억누르며 창을 고쳐 쥐었다.
동문으로 향하며 에르딘을 중심으로 모여든 기사와 병사들의 숫자가 점차 불어났다. 덩달아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도 늘어갔다.
“어?”
에르딘이 창을 고쳐 쥐다가 저 멀리서 날아오는 사역마를 발견했다. 일행들이 전부 보였다. 활짝 웃고 손을 흔들며 외쳤다.
“이쪽이에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사역마가 선회를 하며 땅으로 내려온다.
메이엔이 사역마에서 내리며 창백한 낯빛으로 말했다.
“잘못하면 죽을 뻔했어요.”
“일단 여기부터 빠져나가고 이야기하죠.”
쟌느가 분노를 태우며 단검을 휘둘렀다.
* * *
네크로맨서의 공격으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지만 생각보다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언데드의 공격이 외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수도의 도심부터 언데드가 창궐했다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피해가 생겼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일찍 동문을 통해 탈출한 용병이 상처를 소독하며 중얼거렸다. 잠을 자다가 엄청난 굉음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창문 밖을 바라보니 왕궁이 폭삭 무너져 있었다. 불길하게 보이는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에 나타났고 피를 쭉쭉 빨아들이기까지 했다.
언데드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들과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데 성문에서 언데드가 밀려 들어오고 있다는 말에 동료를 모아 단숨에 돌파했다.
언데드라고 해봐야 고작 좀비에 불과했다. 몸 곳곳에 작은 상처가 생기긴 했지만 활짝 열린 성문으로 빠져나가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봐!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좀 도와!”
“젠장! 좀비한테 긁힌 상처는 좀 치료하자고! 갑자기 옆에 있던 동료가 좀비로 변해서 목을 물어 뜯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평소 용병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지론대로라면 시민들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탈출하던 도중 좀비가 된 아들을 발견한 여관주인의 표정을 본 탓인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이 묵고 있던 여관은 수도에 올 때마다 자주 애용하던 곳이었다. 나름의 친분까지 있었다.
“시X! 돈도 안 되는 일을!”
용병은 좀비의 독으로 썩어가는 살점을 도려내고 포션을 뿌렸다. 눈에서 핏줄이 설 정도로 엄청나게 아팠지만 이대로 좀비가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지막으로 붕대를 두르고 묶었다. 동문으로 지원을 가려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콰앙-!
성벽이 살짝 깨질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우와아악!”
성벽의 돌조각이 날아왔다. 용병들이 몸을 날려 피했다.
마법사들은 방금 전의 폭발이 마법으로 인한 것을 알아차렸다.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어떤 마법사가 좀비 떼를 쓸어버리려고 마법을 펼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뒤를 이어 검은 밧줄 같은 것이 땅속에서 솟아나 좀비들을 모조리 묶어버렸다.
마법사가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이건 마법이 아닌데?”
비슷한 효과로 1서클 마법 바인드Bind가 있지만 밧줄 같은 것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굳이 끼워 맞추자면 드루이드의 자연술이 있지만 밧줄이 아니라 나무뿌리였어야 한다.
동시에 밧줄에 묶인 좀비들의 머리가 빛줄기가 번쩍이며 떨어졌다. 창을 든 청년과 두 자루의 단검을 쥔 여인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신성한 빛이 퍼지며 사제가 나타났고, 빗자루를 든 여인이 손짓하자 아직 머리가 멀쩡한 좀비들이 땅속으로 파묻혔다.
제론의 일행들이 가장 선두에서 길을 연 것이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뒤따라 나오며 수도의 시민들을 바깥으로 탈출시켰다.
“어서 빠져나가십시오!”
“후미에서 좀비 떼 출현!”
“막아! 무조건 막아!”
용병들과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벙쪘다.
“멍 때릴 시간이 어디 있어?!”
“도, 돕겠습니다!”
“성벽 위에서 떨어지는 놈들이 있어! 조심해!”
성문 밖에서 진을 치고 있던 용병들이 달려가며 외쳤다. 성벽 위에서 허우적거리며 떨어진 좀비를 발로 찼다. 마법사들이 뒤에서 마법으로 보조했다.
“아직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빠르게 정비를 하고……?”
기사들이 다급하게 구조대를 조직하려는 순간 저 멀리서 몰려오는 불빛을 발견했다. 횃불 따위가 아니었다. 신의 불꽃-성화聖火였다.
성화 속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아이오닉 교국이다!”
“교국의 신병神兵이 도착했다!”
성화의 정체를 알아본 사람들이 사방에서 소리쳐 알렸다.
“쟤들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그게 지금 중요하냐?! 수도를 탈환할 준비해!”
* * *
“아이오닉 교국?”
에르딘이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메이란에게 정보를 들은 제론과 달리 일행은 아이오닉 교국의 출현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쟌느의 전서응으로 편지를 보내긴 했지만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
의심보다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다. 수도를 탈출하지 못한 시민들이 많았다. 아이오닉 교국보다 언데드를 퇴치하는데 최적인 곳은 없다. 그들을 구할 절호의 기회였다.
성화를 응시하던 로건이 말했다.
“……추기경의 깃발이 있습니다!”
“맙소사!”
에르딘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추기경은 교황과 성녀 바로 아래의 최고위 프리스트였다.
쿰베 왕국의 사건이 작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기경이 올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태양의 교단의 사제인 로건조차 생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게다가 더 썬The Sun 성기사단의 깃발도……!”
“더 썬이면 제1 성기사단 아니에요?”
“맞습니다!”
간략하게 말해서 교국의 최정예 병력이 온 것이다.
에르딘은 어찌 되었건 좋다고 생각하며 히죽 웃었다.
“수도를 탈환하죠.”
* * *
아타시아는 신성력으로 좀비를 제거하며 왕궁으로 향했다.
머리 위에 높이 떠 있는 마법진이 보였다.
“……불쾌해.”
저 마법진이 악마 베헤못을 미들어스로 불러들이는 소환진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그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하다며 말한 것은 신의 힘을 갖고 있는 본능 때문이었다.
신과 악마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였다. 또한 그것이 아니더라도 악마가 지닌 불길하고 사악한 기운은 살아 있는 생명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물론 악마술사처럼 악마를 섬기는 이들은 예외였다.
그들은 악마의 종이었으니까.
“킬킬. 이거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오셨군요.”
악마술사가 손짓하자 왕궁 주변에 있던 언데드들이 물러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