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0)
제20화
20화
세상은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관심도 없었다.
지금의 제론에게는 저딴 말보다 중요한 게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탄산음료가 없어. 탄산음료가! 치킨을 먹는데 탄산이 없다는 게 말이 돼? 나의 현대 생활 27년이 부정당하고 있는 기분이야!”
제론은 머리를 움켜쥐고 괴롭게 울부짖었다.
치킨은 어찌어찌 만들었다.
현대에서 먹는 것과 100퍼센트 똑같다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대체가 가능한 향신료가 있어서 비슷하게 따라 만드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탄산음료는 아니었다.
왜냐고?
탄산음료를 만들기 위한 이산화탄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 떠도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음료에 주입해야 하는 분리된 이산화탄소를 말하는 것이다.
“까드득!”
무림에서도 30년 동안 탄산음료를 강제로 끊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내가 직접 만들어서 먹을 테다!”
서고에서 연금술에 관련된 책을 본 기억이 있다.
연금술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강X의 연금술사’다.
죽은 엄마를 살리기 위해 형제가 금단에 손을 대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세상에는 공짜라는 게 없구나!’라는 교훈이 담긴 내용의 만화였다.
하지만 지금 제론이 떠올린 것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유럽까지 전해진 원시적 화학기술이었다.
구리나 납, 주석 등의 비금속을 금으로 바꾸며, 더 나아가 불로불사의 영약을 만들려고 했든 그 연금술 말이다!
“없어! 그런 방법 따위 적혀 있지도 않아!”
제론은 서고에서 연금술과 관련된 모든 책을 쭉 읽어보고 절규했다. 이쪽 세상은 연금술이라는 것도 조악했다. 마법으로 뭐든 척척 해내니까 연금술이 발전할 가능성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면 마법을 배워야 하는 건가?”
남작령에 머무르는 마법사가 몇 명 있다고 안다.
그들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결단이 내려지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마법사를 찾아가 마법을 배운다!
제론은 아침 해가 떠오르자 유모와 함께 저택을 나섰다.
아니, 나서려고 했었다.
“안 돼.”
“그게에에.”
아빠가 제론을 막아선 것이다.
제론이 애교를 부리려고 했지만 아빠는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곧 손님이 올 터이니 방으로 돌아가거라.”
평소였다면 억지라도 부렸을 제론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고개를 끄덕이고 순순히 방으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지?”
뭔가 냄새가 난다.
그것도 무림에서 많이 맡아본 무척이나 질척이고 불쾌한 냄새가!
* * *
쥬페토는 제론을 내보내고 굳어진 얼굴 근육을 손으로 만져서 억지로 폈다.
평소였다면 병사 몇 명을 붙여서 함께 내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곧 손님이 저택을 방문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반갑지 않은 손님이.”
쥬페토가 중얼거렸다.
페리안 남작령은 오래도록 평화로웠다.
오른 왕국의 남서쪽 변방에 위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역대 페리안 남작들 모두 욕심이 많지 않았고, 조용하게 살아가기를 바랐기에 쥬페토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비슷한 삶을 살아왔다.
유일무이하게 욕심을 부려본 적이 있다면 아내 아이리의 마음을 훔칠 때였다.
그로 인해 적을 만들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붉은 달’ 시프 길드가 제론을 납치하려고 시도했다.
아비 된 자로서 아들을 납치하려고 했던 그들을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역대 페리안 남작들이 욕심이 많지 않아 조용히 살아갔으나 적의 공격에 가만히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철저한 응징을 가했다.
다시는 페리안 남작령을 노리지 못하도록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았다.
쥬페토 역시 그들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이었다.
지난 2년 동안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오른 왕국의 변방에 존재하는 모든 ‘붉은 달’ 시프 길드를 찾아내서 발견하는 즉시 처리했다.
동시에 그들의 배후를 찾아내려고 했다.
정체불명의 자금출처!
‘붉은 달’ 시프 길드의 오른 왕국 변방지부 따위가 값어치 높은 아티팩트를 살 수 있던 것으로 보아 뒤에서 그들을 조종한 배후가 있는 게 분명했다.
끝내 찾지 못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모든 흔적이 끊겨 사라졌다.
두 가지가 짐작되었다.
같은 귀족 혹은 철두철미한 자.
쥬페토는 어느 쪽이든 더는 쫓지 못할 것을 알아차렸다.
이윽고 그 열기가 식어갈 무렵 평화로운 페리안 남작령의 하늘로 먹구름이 드리웠다.
‘베론드 남작.’
왕실은 일 년에 한 번 왕국의 모든 영주들을 불러 모아 연회를 연다.
쥬페토는 연회에서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평가했다.
야망이 크고 욕심도 많은 자!
베론드 남작령이 페리안 남작령과 인접해 있었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관심을 끊었다. 야망과 욕심의 크기에 비해 무능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론의 납치 사건 시도 이후 그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봤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자가 베론드 남작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맞다면…….’
똑똑.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쥬페토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남작님.”
“그가 도착했나 보군.”
집사장의 목소리에 쥬페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지 않은 손님의 정체.
페리안 남작령과 인접한 베론드 남작령의 총관이었다.
“베론드 남작가의 총관 페드로라고 합니다. 페리안 남작님의 존안을…….”
“쥬페토 페리안이다.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쥬페토가 페드로의 말을 자르며 자리에 앉았다.
적이 될 자와 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페드로는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왕실의 인장이 찍힌 두루마기를 꺼내서 내밀었다.
쥬페토가 두루마기를 받아서 풀고 읽었다.
두 영지 전쟁-영지전을 윤허한다는 내용이었다.
‘전쟁이라.’
영지전을 벌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짧게 일축하자면 이것이었다.
빼앗아 갖는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갖게 되고, 패자는 모든 것을 빼앗긴다.
물론 최악의 경우였다.
일반적으로 영지전은 승패가 확실하게 갈라질 때쯤 패자가 승자에게 영토와 재산을 일부 양도하며 마무리 짓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 약탈하려고 한다면 관례를 무시하고 완벽하게 짓밟는다.
승자는 패자와 그의 가족을 죽이지 않고 복속시킨다.
영토를 다스리던 영주에서 보잘것없는 귀족으로 전락한다.
쥬페토는 보잘것없는 귀족으로 전락하는 사실이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역대 페리안 남작들처럼 욕심이 없었고, 조용히 살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적의 공격에 가만히 얻어맞을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베론드 남작은 제론을 납치하려는 범인으로 의심되는 자였다.
“먼저 일어나지.”
“예, 예? 페리안 남……!”
쥬페토는 두루마기를 챙겨서 접대실을 나갔다.
총관이 당황하며 뒤에서 뭐라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으면 감정이 조절될 것 같지 않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처럼 분노가 가슴 속을 가득 채웠다.
다만 한 가지 드는 걱정은.
‘부인께서 걱정하시겠군.’
쥬페토는 뜨겁게 달아오른 눈 주변을 문지르며 집무실로 돌아갔다.
창문 너머로 총관 페드로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가 마차를 타고 영주 저택을 벗어나자 가족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전쟁이요?”
아이리가 사슴 같은 눈망울로 묻는다.
그녀의 곁에서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입을 떠억 벌리고 서 있는 가른과 헤샤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3명의 눈빛에 깃든 걱정이 느껴졌다.
그런데 막내아들 제론만이 유일하게 반응이 남달랐다.
“영지전인가요?”
“그래, 맞…다.”
쥬페토는 막내아들의 질문에 대답하다가 녀석의 천진난만해 보이는 표정 아래 차갑고 고요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분노였다.
자신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 같은 뜨거운 분노가 아니라 눈의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차갑고 고요한 분노 말이다.
쥬페토는 그 사실을 알자 전율이 일어나 전신을 스치며 지나갔다.
‘너의 피는 누구보다도 페리안 남작가의 것에 가깝구나.’
막내아들의 차가운 분노에서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지려고 했지만 억지로 붙잡았다.
전쟁이라는 말에 걱정하는 아이리와 가른, 헤샤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어떻게 걱정이 되지 않겠어요?”
아이리가 입술을 깨문다.
그러나 쥬페토는 정말로 진심이었다.
몬스터 토벌만 하며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아왔던 그때의 페리안 남작이라면 모를까, 막내아들에게 이상한 문자와 지식-무공이라는 것을 배우며 그는 익스퍼트 중급의 벽을 뚫고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로 올라설 수 있었다.
“오늘 이후로 오른 왕국의 모두에게 알려주겠소.”
쥬페토는 아이리와 두 사람의 자식들을 끌어안으며 맹세했다.
“페리안 남작가는 결코 약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 * *
“앞으로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는 가른, 네가 대리 영주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리 영주란 그 자리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쥬페토는 풀 플레이트Full plate를 입으며 가른에게 막중한 임무를 부여했다. 아직 13살의 장남에게는 부담스러울지 몰라도 언제까지 미룰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가른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너만 믿고 있겠다. 동생들과 엄마도 잘 보살펴야 한다.”
쥬페토가 가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갑옷 착용이 끝나자 헬름Helm을 썼다.
영주성 밖에서 진열한 병사 1천 명을 이끌고 출진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제론이 눈살을 찌푸렸다.
“베론드 남작이라고?”
지금은 자유의 몸이 아니지만 언젠간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품속에서 작은 메모장을 꺼내 ‘베론드 남작’의 이름을 적었다.
이 메모장의 이름은 앞으로 살생부殺生簿가 될 것이다.
* * *
베론드 남작은 우아한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꼬아 말아 올렸다.
따사로운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납치니 뭐니 골치 아픈 짓거리를 하는 게 아니었어.”
5살… 지금은 7살이 된 천재 정령사라고?
혼란스러운 전장에서는 기사라는 존재도 눈먼 화살에 다치거나 죽는다. 경지에 오른 기사라면 그럴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적어지겠지만 기사 한 명으로 전쟁의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
그러하니 아직 7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영지전에 참전할 리가 없었다. 정령이라는 존재가 희귀하고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전지전능한 게 아니니까.
화살 한 대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연약한 자신의 아들을 페리안 남작이 미치지 않고서야 전쟁에 참전시킬 리가 없었다.
“쯧. 쓸데없이 돈만 날렸지.”
‘붉은 달’ 시프 길드를 움직이기 위해 사용한 돈이 아까웠다. 하지만 영지전을 이기면 모두 회수가 가능했다.
유일하게 마음에 걸렸던 페리안 남작도 한 달 전에 돈을 주고 영지전에 참전하는 오러 익스퍼트 중급의 방랑기사를 고용해서 마음이 놓였다.
같은 오러 익스퍼트 중급끼리 싸우면 나머지는 병사들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된다.
“절대로 질 리가 없다! 이 말이지.”
베론드 남작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가 이미 눈앞까지 닥쳐온 것처럼 기쁘기만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