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00)
제 200화
200화
[……!]베헤못이 괴성을 질렀다. 글자로 표현하지 못할 분노에 찬 함성이었다. 제론은 피부가 쩌릿쩌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마로 녀석의 안면을 받았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받아버렸다.
쾅-!
베헤못이 괴성을 지르던 도중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녀석의 코뼈가 부러졌다. 제론처럼 쌍코피가 뿜어져 나왔다. 시간이 되돌려지며 쌍코피가 콧속으로 스며들었지만 흘렸었다는 ‘사실’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정도면 동점인가?”
[이…… 이……!]베헤못은 모욕을 받은 전형적인 귀족의 표정으로 발톱을 휘둘렀다.
‘지금 생각하지만 정말로 싸움을 못 해.’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베헤못이 가진 모든 능력의 총량은 제론을 압도적으로 상회하지만 전투의 경험만큼은 훨씬 부족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힘과 권능, 그리고 666마리라는 마수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지금처럼 개판으로 싸우는 경험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기록처럼 남겨진 신화시대의 신적인 존재들은 간단하게 손을 젓거나 권능을 펼쳐서 우아하고 고고하게 적들을 세상에서 지웠다.
직접적인 전투를 벌이더라도 몇 번의 손짓만으로 끝났다.
‘그딴 건 싸움이 아니지.’
일방적인 학살이다. 벌레를 손가락으로 짓눌러서 죽이는 것이다. 그런 학살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 수법이기도 하다.
‘저 녀석 눈에는 아마 내가 제법 큰 이구아나나 도롱뇽처럼 보이겠지.’
어쩌면 바퀴벌레나 곱등이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나름대로 좋았다.
박멸하려고 해도 박멸되지 않는 불멸의 벌레들이었으니까.
제론은 피식 웃으며 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녀석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른다. 옆구리에 박혔다. 뼈를 가르다가 막힌다. X나게 아팠다. 그 고통으로 정신이 번쩍 든다. 검날을 잡고 녀석의 가슴을 찔렀다.
[……!]흠칫 놀란 베헤못이 몸을 비틀며 피한다. 하지만 옆구리에 박힌 발톱이 빠져나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검신은 가슴이 아닌 그보다 조금 더 아래의 흉부를 관통했다.
[으아아아아-!]“아프냐? 나도 아프다.”
제론이 비릿하게 웃으며 손을 옆으로 당겼다. 손바닥이 찢어지며 검신이 천천히 옮겨진다. 베헤못의 비명이 더욱 커진다. 비명에 담긴 힘의 파동이 제론의 피부를 가른다. 전신이 핏물로 적셔진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정도는 고통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팔이 떨어질 것처럼 덜렁거리지도 않았다. 목이 반쯤 잘려나가 숨이 끊어질락 말락 한 것도 아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이, 이 무식한……!]“나보다 강한 적을 상대할 때는 죽을 각오도 해야 하는 거야.”
그런 뒤에 살아남으면 강한 놈이 되는 것이다.
유민현의 지난 삶이었다.
제론은 곧 유민현이기도 했다.
그 기억과 경험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우야. 생각해보니까 좋네? 내가 너를 죽이면 신살자神殺者-갓 킬러God Killer가 되는 거잖아? 이 정도면 쌉이득이지.”
제론의 두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더 이상 봐주지 않는다!]“어? 봐줘도 돼. 빨리빨리 쉬었다 가요. 총각.”
베헤못은 흥분해서 동작이 커졌다.
그때 또 다른 약점을 파악했다. 제론에게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던 이상한 힘을 마구잡이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터트린 선천지기의 기운이 전신에 깃들었다.
베헤못이 신성이라고 말했던 상단전의 기운이 손에 머금어졌다.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저 녀석만큼은 꼭 죽이고 죽으련다.
광기로 물든 제론의 두 눈이 베헤못에 고정되었다.
“회랑會浪.”
파도가 원을 그리며 제론과 베헤못을 향해 모였다. 거대한 구체를 만들어내며 빠져나갈 틈을 없앴다. 베헤못의 다급해진 표정을 보고 있자니 피식피식 실소가 흘러나왔다.
“웃어.”
[……!]“안 웃어? 그럼 웃게 만들어 줄게.”
제론은 검을 놓고 베헤못의 얼굴을 잡았다.
발톱이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지만 허리만 비틀어 옆구리로 받았다. 얼굴을 붙잡은 손으로 입가를 찢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선혈이 찢어진 입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제론의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연달아 옆구리를 찌른 발톱이 뼈를 끊어내고 내장까지 닿았다. 배 속이 발톱으로 헤집어지며 목구멍에서 핏덩어리가 게워졌다.
그것을 베헤못의 얼굴에 뱉어냈다.
[……!]녀석이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청각이 마비된 것이 아니었다. 배 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모든 신경이 쏠려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입꼬리를 더욱 길게 찢었다.
‘다른 존재의 신체가 닿아 있으면 시간을 되돌리지 못한다.’
이건 확신하고 한 것이 아니다. 혹시 모를 가능성만 염두에 두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남았을지 모른다. 적지 않은 가능성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성공……했지.”
퍼엉-!
상단전의 기운을 폭발시켰다.
손이 너덜너덜해졌다.
살점이 날아가며 뼈가 드러난다.
그 손으로 녀석의 흉부에 박힌 검을 아래로 때렸다.
손이 반쯤 잘려나간다.
녀석의 흉부가 사타구니까지 반으로 갈라졌다.
저건 시간을 되돌리지 못한다.
재생시킬 수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베헤못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런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을 테니까 이해했다.
제론도 지금처럼 엄청난 고통을 느껴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다시는 이러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반복되는 법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이제…… 끝내자.”
제론은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베헤못의 머리를 뽑아버렸다. 척추뼈가 통째로 뜯겨져 나왔다. 그 짜릿한 손맛을 느끼며 제론이 추락했다.
‘몇 달만 푹 쉬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아래로 떨어지던 제론의 시야에 베헤못의 몸이 천천히 시간을 되돌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던 것이 보였다.
놈은 사나운 포효를 터트렸다.
‘상단전의 기운으로 공격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제론은 쓴웃음을 흘렸다.
* * *
에르딘은 땅으로 떨어지는 제론을 향해 달려갔다.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았지만 주먹으로 거세게 때려서 강제로 일깨웠다. 받아야 한다. 받지 못하면 제론은 죽는다.
평소의 제론이었다면 알아서 잘 착지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의 모습이 어떠한가.
마치 봉에서 줄이 풀린 깃발처럼 보이지 않던가.
“받아!”
쟌느가 아티팩트를 던졌다. 에르딘이 보지도 않고 받았다.
몸에서 힘이 솟아난다.
로건이 산을 타며 힘들어할 때 보조했던 체력증진과 회복의 아티팩트였다.
“밟고 가요!”
메이엔이 지팡이로 땅을 때려서 계단을 만들었다. 그것을 밟고 하늘로 달렸다.
마지막으로 신성력을 쥐어짠 로건이 신성 마법을 걸었다.
몸이 날아오를 것처럼 가벼워졌다.
아니.
비유가 아니었다.
메이엔이 만들어내던 계단이 더 이상 없었다.
정말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가벼운 것도 발밑에 아무것도 없으니 그렇게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닿는다!’
떨어지는 제론에게 손끝이 닿았다. 넝마가 된 옷깃을 잡았다. 손을 끌어당기자 옷깃이 찌지직- 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들여왔다.
“시이이이이X!”
기합처럼 욕설을 지껄이며 허공에서 몸을 굴렸다.
제론을 겨우 안으며 땅으로 떨어졌다.
최대한 제론이 땅에 부딪치는 면적이 적게 감싸 안았다.
“컥!”
“커헉!”
“크헥!”
데굴데굴 구르며 돌부리에 부딪쳤다. 입술을 비집고 꼴사나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제론의 안위였다.
“제, 제론 님?”
구르면서 어디가 부러지기라도 했는지 전신이 욱신거리며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힘겹게 제론을 품에서 놓으며 상태를 확인했다.
제론이 숨을 쉬지 않았다.
“숨 쉬세요!”
철-썩!
뺨을 세게 쳤다. 다시 확인했다. 아직도 숨을 쉬지 않는다. 두 손바닥으로 거칠게 싸다귀를 날렸다.
철-썩! 철-썩!
“숨 쉬라고요!”
“비키십시오!”
허겁지겁 달려온 로건이 에르딘을 밀쳐냈다. 힘이 없어서 내동댕이쳐졌지만 일어나 제론에게 달려왔다. 로건이 제론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동공에 초점이 없었다. 회색빛으로 흐릿해진다.
“포션을 꺼내십시오!”
“아공간 주머니! 아공간 주머니!”
에르딘이 제론의 품속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찾았다.
다행히도 있었다.
포션을 꺼냈다. 마개를 따고 제론의 입속으로 부어 넣었다.
“그걸 막 부으면 어떡해!”
“인공호흡을 하겠습니다!”
“제가 할게요! 자주 해봐서 그게 더 나을 거예요!”
쟌느가 제론의 기도를 확보하고 입을 맞췄다.
에르딘이 창을 들고 허공에서 포효를 터트리는 베헤못을 노려봤다.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한다면 공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베헤못은 포효를 터트리기만 할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왜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치욕을 겪게 한 제론을 찢어 죽이러 내려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에르딘의 어깨를 짚는 손길이 있었다.
“괜찮아요.”
“성녀님?”
“늦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성녀가 눈을 감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르딘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 바로 그때 베헤못이 성녀를 노려보며 외쳤다.
[루나! 어찌하여 미들어스에 간섭하는 거냐!]“그것은 제가 묻고 싶군요.”
성녀의 입에서 고요하고 평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입을 빌려 ‘루나’가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스트랄의 존재는 미들어스에 간섭하지 못한다. 그것이 ‘약속’이었을 텐데요? 그 ‘약속’을 깨트린 것으로도 모자라 솔라의 아바타로 강림을 하다니……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요. 반드시 책임을 물도록 할 거예요.”
[책임? 누구에게?]베헤못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베헤못에게서 제론과 싸울 때처럼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힘을 쏟아낸 뒤의 모습 같았다.
“물러나세요. 그대의 간섭력을 이용하면 저 역시 일부나마 강림이 가능합니다.”
[……큭큭! 크하하하하하!]베헤못이 짐승처럼 사납게 웃었다. 땅이 흔들리고 대기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지만 제론과 그의 일행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성녀, 아니 루나가 베헤못의 힘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돌연 웃음을 뚝 그친 베헤못이 천천히 시선을 돌려 제론을 바라봤다. 다시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진체眞體까지 피해가 끼쳤다는 증거였다. 50프로에 불과한 강림이었다고 하지만 초월자도 아닌 존재가 자신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존재한 이후로 이런 고통도 느껴본 적 없었다.
[과연. 재밌었다.]베헤못은 손가락을 튕겼다. 작은 불빛이 제론에게 날아갔다.
루나가 그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멈춰 섰다.
[선물이다.]마지막으로 말을 남긴 베헤못이 사라졌다.
전 성녀였던 아타시아의 육체가 땅으로 추락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