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02)
제 202화
202화
“으음.”
제론은 내심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게 성녀의 모습을 살펴봤다.
성녀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몸을 휩싸고 있는 기운이 변했다. 베헤못처럼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 이질감이 무엇인지 안다.
바로 신성이다.
말인즉슨 성녀의 몸을 빌려 누군가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라고 해서 잠깐 착각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달과 어둠의 신 루나.’
미들어스에서는 반쯤 잊힌 존재인 베헤못과 다르게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속에서 이름이 불리우고 있는 신이었다.
“……이거 추태를 보였군요.”
“괜찮아요. 제 아이가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한 거니까요.”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건가요?”
성녀, 아니 루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항상 제게 기도를 올린다며 도통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아요. 사람들과 어울려야지 사회성이 길러지고 성격도 많이 밝아지고 그러는 건데…… 매일 어둠침침한 방에 틀어박혀 기도만 하고 있으니 점점 성격이 음침하게 변해가고 있어서 걱정이에요.”
“……?”
저기요. 당신 달과 어둠의 신 아니요? 어둠의 신이 어둠침침한 방에 틀어박혀서 기도를 한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어쩌라는 거요?
게다가 말투가 꼭 잔소리를 하는 엄마 같다. 성녀가 루나를 괜히 어머니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파릇파릇한 나이에 연애도 하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도 만나보고, 경험도 좀 쌓아가면서 사교성도 기르고…….”
“…….”
루나가 성녀의 모습으로 말하니 자책하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뭔가 기분이 기묘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자기가 자신을 디스하고 있는 모습이다. 상녀와 루나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몸이 같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려 10분 동안 푸념을 늘어놓던 루나가 조금씩 목소리를 낮추더니 사과했다.
“제가 제 아이를 제외하고 인간과 대화를 나눈 적이 너무 오랜만이라…… 큰 실례를 했어요.”
“아닙니다. 루나께서 마음이 풀리셨다면 괜찮습니다.”
“시간도 많지 않은데…… 휴우.”
“혹시 강림에도 시간제한이 있는 겁니까?”
“네. 길어도 1시간 정도예요. ‘약속’으로 인해 제 아이의 몸을 빌리는 것도 많은 힘을 소모해요. 베헤못…… 그의 경우에는 오래전 이 땅에 남겨놓은 악마…… 그러니까 악신의 유물들과 많은 제물, 그리고 솔라의 아바타를 이용했기 때문에 많은 간섭력을 확보했고, 그로 인해 완전에 가까운 강림이 가능했던 것이죠.”
“으음. 짧게 요약하자면 베헤못의 소환이 특별한 경우라는 거네요.”
“맞아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고요.”
“…….”
루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지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부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베헤못의 소환은 특별한 경우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다시 특별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만약 이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다시 베헤못과 싸운다면?’
냉정하게 판단했다.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10번을 싸워도 10번 전부 패배한다.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신성’으로써의 공격도 소용없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대상의 제약도 없다. 그런데도 놈은 50프로의 힘을 갖고 있었다.
100프로의 힘으로 강림한다면 그때처럼 잔재주가 통하지 않는다. 막무가내 개싸움이고 자시고 손가락 하나에 짓눌려 찍- 하고 터져 죽는다. 그 정도의 격차가 있는 것이다.
‘더욱 강해져야 한다.’
강해질 방법이 있다. 상단전을 개발하는 것이다.
제론은, 아니 유민현은 상단전의 기운을 제대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 상단전의 기운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 맞다. 중단전만으로도 오롯이 천하를 발아래에 두었다. 그래서 우화등선을 할 때가 돼서야 제대로 상단전의 기운을 사용했다.
‘상단전의 기운을 신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상단전은 머리에 위치해 있다.
현대에서는 그것을 가리켜 초능의 영역이라고도 말한다.
사람을 초월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초월한 능력이란 뭘까?’
예전에는 ‘나랑 상관없는 일이지.’라고 피식 웃으며 넘길 질문이었다. 하지만 무림을 넘어 이 세상에서 환생한 제론에게는 진지하게 고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저를 만나고 싶어 하셨다고요?”
“맞아요.”
루나가 왜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 것인지 알아야 했다.
* * *
밖으로 나간 에르딘은 뚱한 표정으로 천막을 응시했다.
다른 일행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불안해.”
쟌느가 중얼거렸다.
“내 거가 여자랑 단둘이 천막 안에 있어.”
“그…….”
로건이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걱정하고 있는 불경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녀이지 않은가?
이번 쿰베 왕국의 사건을 일으킨 전 성녀도 아닌 진짜 성녀였다. 하지만 쟌느의 표정은 톡 건드려도 터질 것처럼 불안정했다.
법보다 주먹이 더욱 가깝다는 말처럼 괜히 건드려서 손해를 볼 이유는 없었다. 물론 로건 역시 어느 정도 불만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저는 수련을 하러 갈게요.”
한참을 물끄러미 천막을 바라보던 에르딘이 자리를 떠났다. 쿰베 왕국의 수도가 무너진 날 이후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창을 휘둘렀던 그였다.
다른 일행들도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모두가 힘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로건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천천히 어디론가 걸어갔다.
* * *
“흐음.”
루나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제론이 턱을 쓰다듬었다.
내용은 어렵지 않았다.
이해하기 쉬웠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의 존재가 미들어스에서 나타날 거라고?’
강림이 아니다.
루나는 ‘강림’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나타날 거라고만 말했다.
‘그 말은 곧 신화의 존재가 정체를 감춘 채 살아가고 있다는 거지.’
신화의 존재라고 했지만 거창한 존재만 있는 게 아니다.
위험도 상위등급의 몬스터 사이클롭스도 신화의 존재다.
개체수가 적어서 잘 발견되지 않을 뿐이다.
“베헤못의 강림으로 인해 아스트랄과 미들어스의 경계가 흐릿해졌어요. ‘약속’이 어겨진 순간부터 정해진 수순이죠.”
“트롤링을 했다는 거네요.”
“트롤? 링?”
루나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문득 생각났지만 굉장히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갖고 있는 신이었다.
“아. 민폐를 끼쳤다는 말입니다.”
“그런 표현이라면 맞아요.”
“그런데 그런 말을 저에게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당신의 운명.”
또 나왔다.
운명 어쩌고저쩌고.
벌써부터 듣기 싫었지만 제론은 억지로 생글생글 웃었다.
“당신은 이레귤러Irregular예요. 이 세상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특이점이에요.”
“오…….”
운명이 어쩌고저쩌고하는 것보다 있어 보였다.
‘아니. 있게 들렸다는 말이 맞구나.’
아무튼, 지금까지 자신의 운명을 거론한 모든 이야기를 총망라하자면 다른 세상과 이쪽 세상에 발을 반반 걸치게 되면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쉬운 말을 왜 이렇게 어렵게 하는 거지?’
알아듣기도 어렵게 말이다.
“사실 초월자도 아닌 존재가 ‘신성’을 갖고 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돼요.”
“아, ‘신성’. 그러고 보니 궁금했어요. 왜 이걸 ‘신성’이라고 부르는 거죠?”
제론이 상단전의 기운을 손바닥 위로 모으며 물었다.
루나의 시선이 제론의 손바닥 위로 옮겨졌다.
“기원起源. 근원根源. 존재存在. 그것을 이루는 힘. 자신의 존재를 의미하는 힘. 그래서 ‘신성’이라고 말해요.”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네요.”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말했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고차원적인 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루나의 뒷말이 이어지자 제론은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신성’은 증명이에요. ‘달과 어둠’. 저의 존재를 뜻해요. 하지만 제 어둠은 끈적끈적하고 불길한 어둠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포근하고 자애로운, 낮의 태양을 대신해서 밤을 비추는, 모든 것을 감싸 안는 어둠이죠.”
“증명?”
“맞아요. 더욱 쉽게 말하자면 본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떠한 뚜렷한 형태를 가진 본질이요. ……아! 자세히 말해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간섭력이 부족하네요. 이번 대화는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야기를 나눠요.”
그 말을 끝으로 루나가 성녀로 돌아왔다.
“…….”
성녀는 손가락을 꼼지락대다가 품속에서 안대를 꺼내 눈을 가렸다. 귓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루나가 한 말을 다 듣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음침하다던가, 사교성이 부족하다던가, 라는 말들 말이다.
‘모르는 척해줘야지.’
제론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시선만 돌렸다.
* * *
성녀가 입을 연 것은 몇 분의 침묵이 흐른 뒤였다. 잠시 대화를 나누자 루나가 왜 사교성이 부족하다고 푸념을 늘어놨는지 알 것 같았다. 한 마디씩 대화를 나눌 때마다 대화가 뚝뚝 끊겼다.
‘그래도 어렸을 적에 만났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았는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성녀는 자신으로 인해 대화가 뚝뚝 끊긴다는 것을 깨닫곤 울상을 지었다. 눈이 안대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눈물이 글썽글썽 매달려 있을 것 같았다.
“그, 그럼 나중에 다시 올게요!”
“…….”
제론은 도망치듯 천막을 나가는 성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나중에 다시 온다고 말한 것으로 봐서는 이곳에서 더 머무를 예정인 듯했다.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로 풀고 밖으로 나갔다. 천막 밖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성녀를 보기 위해 온 것 같았다.
‘얘들은 어디 있지?’
일행들과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기운을 흘려서 파악하자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각자 흩어져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한테 먼저 갈까 생각했다.
‘역시 사제님이 먼저지.’
에르딘이나 쟌느가 알았다면 섭섭했겠지만 로건이 제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옆의 천막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기도를 올리고 있는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척을 살짝 드러내자 로건이 움찔 떨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신의 사도시여.”
“제가 신의 사도가 아닌 건 진작 알아차리셨잖아요?”
“제 마음속에서 제론 님은 여전히 신의 사도십니다.”
“뭐…… 그렇다면 편하실 대로 불러주세요.”
일행 중에서 정신을 잃기 전과 깨어난 뒤의 변화가 가장 큰 사람을 꼽자면 단연코 로건이었다.
중급 사제였던 그의 신성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아졌다.
‘신성력도 신이 내려주는 힘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제론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