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03)
제 203화
203화
신성력은 신이 내려주는 힘이 아니다!
누군가가 제론의 생각을 알았다면 신성모독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제론도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러나저러나 관심이 없었다.
신성력을 내려주는 게 신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랴.
그러나 이번 베헤못의 강림 사건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솔라의 아바타로 놈이 강림한 것.’
뒤늦게 루나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번 사건에는 솔라의 의지가 개입된 것이냐고 말이다.
사실 개입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다른 존재도 아닌 솔라의 아바타였으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속사정은 다를 수도 있다.
‘상상은 잘 안 되지만 약점이 잡힌 걸지도 모르고.’
‘약속’이 어쩌고저쩌고 말한 걸로 봐선 저 위쪽 세상에서는 자기들만의 리그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깊어지려는 순간 로건이 묻는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몸은 괜찮아요. 으음. 아주 좋아요. 녀석이 왜 선물이라고 하면서 제 몸을 회복시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렇군요.”
로건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다물었다.
묘한 침묵이 내리깔린다.
제론이 그의 얼굴을 슬쩍 확인했다.
‘심란해 보이네.’
그럴 만도 했다. 눈이 있다면 로건 역시 베헤못이 전 성녀였던 아타시아의 몸으로 강림한 걸 봤을 테니까. 진실을 알지 못하는 사제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구호 활동에 전념하고 있지만 로건은 그렇지 못했다. 물론 어떤 활약을 하고 고초를 겪었는지 알기 때문에 다들 그에게 쉬라고 권했다고 한다.
오랜 침묵 끝에 로건이 입술을 연다.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으음. 글쎄요. 이건 저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진실이란 밝혀지지 않은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만…… 제가 그동안 너무 무지했지요.”
로건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지無知란 아는 것이 없다는 뜻과 하는 짓이 미련하고 우악스럽다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는 단어였다. 그가 이번 사건을 통해서 심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는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 진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말입니다.”
“성장하셨군요.”
“이것을 성장이라고 포장해주시니 조금 쑥스럽군요.”
제론은 다른 말이나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또한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눈치’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로건은 우물쭈물 말끝을 흐리며 뒷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
“그러니까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하시면 안 될까요?”
“신의 사도, 아니. 제론 님의 동료가 되고 싶습니다.”
“환영해요.”
제론이 히죽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로건도 똑같이 히죽 웃으며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붙잡았다.
* * *
에르딘은 창을 휘둘렀다.
쇄애애액-!
개기가 뭉툭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말 그대로 창을 ‘검처럼’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대를 잡고 있는 손에 금방 땀이 찼다. 양팔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전신이 땀으로 범벅된다. 곧 팔뚝이 파르르 떨린다.
창을 휘두르고 있던 시간은 짧았다. 고작 30분 정도였다. 하지만 양 팔목과 발목에 달아놓은 무거운 쇳덩어리가 그를 금방 지치게 만들었다.
‘무게를 더 늘리고 싶은데.’
그런 욕심이 든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지금도 팔목과 발목에 달아놓은 쇳덩어리조차 적응하지 못했다. 여기서 더 무게를 늘린다는 건 과욕에 불과했다.
“과한 욕심은…….”
“부족한 것만도 못하다.”
혼잣말에 호응을 하듯 들려오는 목소리.
에르딘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자 씨익 웃는 모습으로 서 있는 제론을 발견했다.
제론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그 말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
“뭐…… 워낙 많이 듣다 보니까요. 이제는 뇌리에 박혀 있을 정도예요.”
투덜거리듯 하는 말에 제론이 피식 웃고 시선을 내렸다. 에르딘의 팔목과 발목에 달린 쇳덩어리. 그곳을 정확하게 바라본다. 평소에는 달고 있지 않은 물건이다.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거 굉장히 비효율적인 수련법이야.”
“……와. 초장부터 개빡치게 만드네.”
에르딘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개빡……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론은 똑똑히 들었지만 끙- 하고 앓는 소리를 한차례 낸 뒤 모르는 척 넘어갔다. 에르딘의 심정이 어떤지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더욱 효율적인 수련법을 알려줄게.”
“진짜요?!”
“……왜 개빡친다고 했는지 알겠네.”
좀 전까지는 으르렁대다가 지금은 눈이 반쯤 뒤집혀져서 개처럼 헥헥-! 대는 모습을 보니까 괜히 배알이 꼴린다.
“그 전에 네 수준부터 좀 파악하자.”
“이거 떼고 할까요?”
“아니. 손목 내밀어봐.”
에르딘은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시며 손목을 내밀었다.
제론이 손목을 잡고 내공을 흘려보냈다.
‘임독양맥은 역시 막혀 있네.’
내공의 흐름은 예전보다 더욱 안정적이고 부드러우며 빨라졌다.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에서도 극에 달한, 그러니까 초절정의 무인이라는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조금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어.’
아무리 초천재인 자신이 열과 성을 다해 수련을 시켰다고 하지만 10년도 안 돼서 완전한 초절정의 무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결과물이다.
‘재능은 평범한데 어떻게 가능한 거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제론이 내공으로 세맥까지 훑었다.
맥이 단단하고 질기다. 초절정에서도 극에 다다른 수준이다. 외부에서 천천히 기운을 빨아들이는 것으로 봐서는 조금이나마 조화의 경지에도 한 발 내디딘 것 같았다. 제론도 인생 2회차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정도로 엄청난 결과물이다.
손목을 놓으며 제론이 묻는다.
“너 요즘 내공심법 수련은 하고 있어?”
“네. 매일 하고 있죠.”
“임독양맥은?”
“거긴…… 제론 님이 건드리지 말라고 해서 내버려 뒀어요.”
“잘했어.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몸이 뻥-! 하고 터졌을 거야.”
“…….”
에르딘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잖아도 요즘 몸 상태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제론이 정신을 잃은 사이 임독양맥이라고 부르는 곳을 뚫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악마의 유혹처럼 귓가를 계속 간지럽혔다.
그때마다 제론의 말을 기억해내고 겨우 참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참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면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이제부터는 임독양맥을 뚫을 거야.”
“……네?”
몸이 뻥-! 하고 터진다며?
날 죽일 셈이냐?
이 미친 주인 놈아?
“표정으로 욕하지 마.”
움찔.
“제, 제가 언제요? 저 지금 머릿속이 막 새하얗게 물들고 막 그래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요?”
제론은 ‘저 녀석 정말 거짓말 못 하네.’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래. 그렇다고 하자. 아무튼…… 음, 언제가 좋을까. 여기서는 좀 그러니까 다른 마을이나 도시…… 아! 깊은 산속이 제일 좋겠어. 소리가 제법 요란하거든.”
“소리가…… 제법 요란해요?”
“어. 네가 엄청난 비명을 지를지도 몰라.”
에르딘의 낯빛이 창백하게 변했다.
* * *
일행들에게 차례대로 찾아간 제론은 밤이 돼서야 천막으로 돌아왔다. 쟌느가 꽃처럼 피어오른 미소를 짓고선 뒤따라 들어온다.
“그래서 뭘 가르쳐 줄 건데?”
제론은 쟌느에게 무공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물론 무공이라고 말한 건 아니었다.
가문에서 내려져 오는 비기라고만 말했다.
“그건 천천히 생각해본다고 말했잖아.”
“궁금하니까 그렇지.”
“그보다 야만족에 대해서 새로 들어온 정보 있어?”
‘야만족’이라는 단어를 듣자 쟌느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했다. 입가에 피어올랐던 미소가 사라졌다. 심각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작은 쪽지를 꺼낸다. 쪽지 안에는 여러 개의 단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 들었지만 내용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짧게 요약을 하자면 야만족의 공격에 타호른 왕국의 수도가 전복됐다는 내용이었다.
쿰베 왕국의 구호단과는 별개로 각국에서 병력이 차출돼서 놈들을 소탕하기 위해 출정했지만, 타호른 왕국의 수도에 도착하자 흔적도 찾을 수 없게 꼭꼭 숨어서 추격하지 못했다고 한다.
“생존자는?”
“많지는 않지만 있었어. 그런데 야만족의 규모가 생각보다 컸어. 설산의 경계를 넘어온 숫자보다 몇 배에 달한다고 해.”
“또 다른 경계를 넘어온 건 아닐까?”
“그건 아니야. 이번에 경계가 뚫린 곳은 한 군데였어. 다른 루트를 통해서 온다는 건 불가능해. 차라리 텔레포트 게이트처럼 이동장치를 만들었다는 말이 더욱 신빙성이 있겠어.”
“혹시 그 신빙성이 진짜 아냐?”
“……어?”
쟌느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문득 고개를 갸우뚱한다. 자신이 말하긴 했지만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럴싸했던 것이다.
야만족은 대륙과는 궤가 다른 특이한 주술을 사용한다.
마법처럼 사람을 이동시키는 주술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마녀의 비술 중에서도 있고 말이야.’
야만족의 존재는 아주 오래전에 밝혀졌다. 주술이 발전을 해왔고 수준이 높아졌다면 공간 이동술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나 잠깐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와.”
“걱정해주는 거야?”
쟌느가 집착 쩌는 눈빛으로 묻는다. 제론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쟌느가 천막을 나가기 무섭게 마치 자기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메이엔이 들어온다.
잠깐 천막 밖을 내다보니 에르딘과 로건이 줄을 서고 있다.
‘진짜였어?’
* * *
3일 뒤 제론과 그의 일행은 마지막으로 성녀를 만나기로 했다. 아이오닉 교국으로 향하려는 여정은 취소했다. 루나를 이미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녀가 천막으로 들어와 앉자 천사의 날개가 새겨진 해 모양의 배지를 꺼냈다.
그런데 돌려주려고 내밀자 그녀가 거절했다.
“그것은 아직 쓰이지 않았어요.”
“……?”
“으음. 그 배지는 성녀에게 지급되는 통행증이에요.”
“로건에게 들었어요.”
“아…… 음…….”
성녀가 잠시 입을 뻐끔거리더니 귓불을 붉힌다. 일행들은 그런 성녀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제론은 두 번째라서 그런지 무덤덤했다. 저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던진 말이기도 했다.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건 아이오닉 교국으로 오라는 말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여전히 귓불을 붉히고 있는 성녀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쓰일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루나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맞아요.”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일행들이 당황했다.
“루나 님?”
“설마……?”
“달과 어둠의 신 루나 님을 말하는 거야?!”
“루나 님을 뵈었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