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05)
제 205화
205화
타호른 왕국은 북대륙에서도 가장 최북단에 위치한 국가였다. 또한 북대륙 공식협정으로 야만족의 침략을 대비해 각국에서 차출된 50만의 정예병력이 항상 주둔하고 있는 ‘불가침不可侵’의 국가이기도 했다.
그런 국가의 수도가 야만족의 공격으로 전복됐다.
“……그런데 거길 간다고요?”
“어. 간다고.”
“왜요?”
“…….”
제론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녀석의 이마가 유니콘의 뿔처럼 솟아나 있지만 저 질문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진짜 문제는.
“타호른 왕국을 전복시킨 야만족이 그 녀석들이랑 관련되어 있어. 그래서 내 눈으로 확인하려고 가는 거야.”
“나중으로 미뤄요.”
“그러니까 왜?”
“…….”
라는 식의 대화가 몇 번째 이어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에르딘은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의 시선을 회피한다. 그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된다.
‘베헤못한테 된통 깨지긴 했지.’
그냥 된통도 아니다.
완전히 처참하게 짓이겨졌다.
일행들은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마음이 편치 않을 테지.’
그중에서도 에르딘은 특히나 오래전부터 자신의 곁에 있던 녀석이다. 자신의 주인이 그런 몰골로 변하는 모습을 봤는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을 리가 없다. 강해져야 한다고 결심했지만 마음 깊숙이 은연중에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성녀-루나가 오지 않았다면 베헤못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최후의 수법이 통하지 않은 시점에서 정해진 결과였다.
이번에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 운이 언제까지 따르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베헤못을 강림시킨 조직과 관련된 야만족을 찾아간다고 하니, 에르딘의 입장에서 또다시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베헤못 같은 아스트랄의 존재가 소환되는 일은 앞으로 거의 없을 거야. 게다가 나는 예전보다 더욱 강해졌어. 그때 같은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아.”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녀석이 말끝을 흐린다. 살짝 거칠어진 숨소리가 느껴진다.
‘트라우마에 빠진 건가.’
말은 저렇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 밤 여느 때보다도 뼈와 살을 깎아 수련한다. 어떻게든 트라우마를 이겨보려고 하지만 힘들기 때문에 투정 부리는 것에 불과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건 온전히 본인의 몫이지.’
제론이 격려의 뜻을 담아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다른 일행들의 표정도 확인했다. 에르딘처럼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을 뿐 비슷한 표정이다. 모두 살짝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어쩌면 신화 속의 존재를 계속 맞닥뜨리고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매일 밤 꿈속에서 악몽처럼 베헤못이 나타난다. 녀석은 뽑혀진 머리를 재생하며 오만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봤다.
비단 잠을 잘 때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명상에 잠겨 있어도, 길을 걷다가도 불쑥 찾아온다.
이런 중압감이 두렵지는 않았다.
‘겪어본 적이 있으니까.’
한두 번도 아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경험했다. 하지만 무림에서와는 다르게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목숨이 아깝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는 소중한 ‘존재’가 없었다.
유민현은 혼자였다.
훗날 수하가 생기고 세력을 가졌으나 특별히 정을 준 이들이 없었다. 지켜야 할 존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많아졌다. 그런데 힘이 부족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지 못하고 잃을까 봐 두려웠다.
‘그래. 나도 두려웠던 거였어.’
인정하고 나니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중압감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더욱 각오가 날카롭게 세워졌다.
절대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가 말이다.
‘강해져야 해.’
지금보다 더.
베헤못이 50프로가 아니라 100프로로 강림한다고 하더라도 이겨낼 만큼 강해져야 한다.
* * *
타호른 왕국까지의 여정은 결코 길지 않았다.
제론은 하루의 절반을 수련에 힘 쏟았다. 베헤못의 ‘선물’을 완전히 소화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상단전의 힘. 그들이 ‘신성’이라고 부르는 힘을 보다 자세히 파헤쳤다.
‘자신의 존재를 의미하는 힘.’
루나는 ‘신성’을 존재의 증명이자 뚜렷한 형태를 가진 본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형태라는 것이 꼭 사람의 몸이나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물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불이라고 말하면 바로 어떠한 것인지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루나는 ‘달’과 ‘어둠’의 신이다. 특별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모두가 그것을 말하면 바로 알아듣는다. 그것이 바로 ‘신성’의 증명이었다. 또한 그녀의 설명처럼 그녀의 ‘어둠’은 끈적끈적하고 불길한 어둠을 의미하지 않았다. 낮의 태양을 대신해서 밤을 비추고 모든 것을 포근하고 자애롭게 감싸 안는 어둠이다.
그 사실을 듣는 순간 인식할 수 있게 뚜렷해야 한다.
그래서 증명이라고 한 것이다.
‘나 자신을 증명하는 것.’
제론은 과거를 돌아봤다.
제로니아 페리안이라는 존재의 인생을 뛰어넘어 전생의 유민현의 삶까지 천천히 되짚었다. 그야말로 ‘처절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 투쟁의 삶을 반복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왜 투쟁을 반복했을까?’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의 의의는 아니었다. 존재를 증명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무엇을 얻기 위해 싸웠냐고 물어봐도 승리해서 특별하게 무언가를 얻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왜?’
나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제론의 의식이 천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생존과 투쟁의 삶을 살아갔던 유민현이 고개를 들었다.
‘놈’이 말한다.
-나약해졌구나. ‘나’.
사나운 맹수의 눈동자가 먹잇감을 노리듯 응시한다.
제론은 영혼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나약해진 거냐? 이 우스운 꼴을 좀 보라지.
‘놈’은 제론을 비웃었다.
허나 우습게도 무어라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그럴 가치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다. 베헤못을 눈앞에 뒀을 때보다 더욱 무거운 중압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얼어붙어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마선이라고 불리었으며 천상의 선인들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나’가 어찌하여 이렇게 영락하였는지…… 참으로 우습구나.
‘그게 무슨 소리냐?’
-호오. 영락하였다고 하나 과연 ‘나’란 말인가?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크하하하! 참으로 재밌어. 지켜볼 맛이 좀 있겠는데?
‘무슨 개소리냐고 묻잖아!’
-이만 돌아가라. 지금의 ‘나’에겐 아직 허락되지 않은 곳이니.
쾅-!
제론의 영혼이 엄청난 충격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내쉬며 눈을 뜨자 여러 개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의 주인공은 일행들이었다. 그들이 호위를 하듯 주변으로 둘러선 채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눈빛에서 걱정과 우려가 잔뜩 묻어났다. 내면의 변화가 바깥까지 드러난 모양이었다.
에르딘이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묻는다.
“……괜찮으세요?”
제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말로 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좀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의식의 수면 아래에 존재했던 ‘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놈’은 ‘나’였다.
동시에 ‘나’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짐작이 됐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을 갖고 있어.’
지끈-.
생각을 그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마치 손오공의 긴고아처럼 엄청난 고통이 머리를 옥죄었다. 그것은 버티려고 해도 버틸 그런 종류의 고통이 아니었다. 육체의 고통이 아니었으니까.
‘시X!’
제론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육성으로 욕을 토해내지도 못했다. 머릿속으로 욕설을 지껄이며 ‘놈’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그러자 고통이 천천히 사라졌다.
마치 ‘놈’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아직은 이르다 이거지.’
제론은 조금 더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어떤 기억을 잃었는지 몰라도 ‘놈’에게 거기서 딱 기다리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놀랍게도 아까의 시선이 느껴지며 알겠다는 감각이 돌아왔다.
“이제는 정말로 괜찮으니까 다들 푹 쉬어요.”
일행들에게 말하고 제론이 불침번을 섰다.
자신 때문에 다들 몇 시간 동안 깨어 있었다.
* * *
타호른 왕국에 가까워질수록 제론은 점점 더 강해졌다. 혼자만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일행들 역시 나날이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나 발군이었던 것은 에르딘이었다. 녀석은 세상과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며 뛰어넘어야 할 벽을 코앞까지 맞닥트렸다. 임독양맥을 뚫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 녀석을 위해서 제론이 손수 집도했다.
에르딘의 등에 양 손바닥을 얹고 내공의 운기를 도왔다.
“입 열지 마.”
“……!”
에르딘은 한순간에 밀어닥쳐오는 고통에 눈을 크게 떴다. 눈꼬리가 찢어졌다. 핏줄기가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엄청나게 아팠다. 하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
아니, 열지 못했다.
제론이 내공으로 입술을 봉인시키고 있었다.
입을 열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쾅- 쾅-!
임독양맥이 한 번에 하나씩 뚫리며 고통이 첩첩산중을 이루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시야가 흐릿해지며 의식이 꺼지려 했다.
“정신 차려.”
따가운 기운이 심장을 따끔하게 자극했다. 따끔하게라고 표현했지만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임독양맥을 뚫는 고통에 비해 따끔한 수준이었을 뿐이지 절대로 통증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절벽에서 밀어버릴 거야! 창으로 찌를 거야!’
정신줄을 놓고 붙잡기를 반복하며 살의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임독양맥의 타동이 끝나자 환골탈태가 시작되었다.
머리카락이 벗겨지고 새것이 자라났다. 피부가 타들며 뽀얀 새살이 돋아났다.
제론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양손으로 에르딘의 전신을 주물렀다. 환골탈태를 이루며 탁기가 전부 빠져나간 지금이 벌모세수가 가장 큰 효과를 낼 때였다.
당연히 위험했다.
무림의 역사상 환골탈태와 벌모세수를 동시에 시도하는 일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적어도 초절정 고수 수십 명이 하루 종일 번갈아 가며 붙잡고 있어야 할 일이었다.
‘아이고. 힘들다.’
제론도 이번만큼은 고됐다. 단순히 내공의 양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력의 문제였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에르딘이 죽거나 일평생 장애를 갖고 살게 된다.
땀을 뻘뻘 흘리고 손끝이 둔해질 때쯤 환골탈태와 벌모세수가 끝났다.
에르딘의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표정이 평화로워졌다.
숨소리를 고르게 내쉬었다.
제론은 마지막으로 내공을 흘려보내 녀석의 몸속을 확인하고 뒤로 벌러덩 누웠다.
“이걸 언제 또 해?”
“이번에는 내 차례야?”
쟌느가 불순한 마음이 잔뜩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