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07)
제 207화
207화
신화시대가 종막을 고하고 아스트랄의 존재는 미들어스를 떠났다.
여기까지가 제론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진실은 달랐다.
마녀라고 불리는 종족이 미들어스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마녀의 최후는 종족의 멸종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제론은 루나의 말을 듣고 마녀들처럼 미들어스에 남는 것을 선택한 녀석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생각을 메이엔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모른다.’였다.
‘모른다는 게 없다는 걸 뜻하지는 않아.’
마녀 일족은 오래도록 숲에서‘만’ 살아왔다. 외부활동을 다시 시작한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식이 저 먼 옛날-신화시대에서 멈춰 있었다. 그러하니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가정부터가 잘못됐어.’
미들어스는 신화와 함께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태양과 인간의 신 솔라가 성자와 성녀라는 아바타로 자신의 뜻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악마와 계약한 악마술사들이 언데드를 일으키는 것처럼 신화시대는 종막을 내렸을지 몰라도, 신화의 존재는 이 시대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정령의 왕이 정령왕을 뜻한다면…….’
제론의 시선이 어깨 위에서 식빵 자세를 하고 있는 네로에게 향했다.
“너 뭔가 알고 있지?”
-덜 하찮은 인간아. 아직 알아서 좋을 것 없다.
“그래서 말 안 했던 거냐?”
제론이 손을 뻗으려 하자 네로가 하악질을 했다. 또 엉덩이를 때릴까 봐 반사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이윽고 뻗어져 오던 손이 멈추자 꼬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 눈치만 살핀다.
“영감탱이라고 말한 존재. 정령이지?”
-…….
“평범한 정령은 아니지?”
-…….
네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말할 수 없다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녀석이 평범한 정령과는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정령술 수업을 들을 때 정령에는 등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해줬다. 또한 정령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등급을 뛰어넘는 ‘성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네로는 자신의 힘이 강해질수록 비례해서 능력이 강해지고 다채로워졌다.
처음부터 갖고 있던 힘을 조금씩 풀어내듯 말이다.
‘사대 원소. 그리고 사대 정령.’
흔히들 아는 수水·풍風·지地·화火가 사대 원소를 말한다.
또한 사대 정령 역시 사대 원소를 따라 위의 4가지 속성을 띈다.
그러나 그 편견은 깨진 지 오래였다. 번개의 정령, 얼음의 정령, 숲의 정령…… 그리고 빛의 정령과 어둠의 정령까지. 수많은 정령의 종류가 많은 시간이 지나 잇따라 발견되며 어쩌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아무튼, 수많은 정령들 중에서도 빛과 어둠의 정령은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우선 등급이 없다.
최하급-하급-중급-상급-최상급으로 등급이 나누어져 있지만 빛과 어둠의 정령은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등급이 없는 대신 계약자의 역량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힘의 총량이 정해진다. 무한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정령이라는 종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니까. 그래서 등급에 따른 힘의 총량이 정해진 다른 정령들과는 다르게 빛과 어둠의 정령이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샜지만, 등급이 존재하지 않는 어둠의 정령인 네로가 ‘영감탱이’라고 표현할 법한 정령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정령왕.’
제론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이었다.
-……!
네로가 흠칫 놀라며 꼬리를 빳빳이 세웠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제론이 정신을 깨우고 녀석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네로가 말했다.
-덜 하찮은 인간아. 영감탱이가 불러서 잠시…….
녀석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 채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
제론은 잠시 동안 벙찐 표정으로 어깨 위를 바라봤다.
* * *
네로는 며칠 동안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정령왕이라고 추측되는 존재의 부름으로 강제 소환을 당한 것 같았다.
제론은 가만히 녀석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정령왕은 계약자가 있는 정령에게 간섭이 가능하다.’
만약 정령왕과 싸우게 된다면 네로의 힘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 가정을 세우며 타호른 왕국의 수도로 전진했다.
타호른 왕국 전역은 전화戰火로 타오르고 있었다. 영지를 지나칠 때뿐만이 아니라 도시나 마을을 거쳐 갈 때도 신분검사가 철저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경초소가 습격을 받았는데 수도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도시와 마을이 멀쩡했다. 야만족이 수도까지 전복시킨 상황에서 습격할 도시와 마을을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쟌느.”
“응? 왜? 왜 불렀어?”
개냥이처럼 다가오는 쟌느에게 지도를 달라고 말했다.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 건넨다.
“야만족의 공격을 받은 곳이 어디 어디인지 체크 좀 해줘.”
“잠시만.”
쟌느가 이쑤시개처럼 얇은 나무 핀을 꺼내 지도에 꽂았다. 처음에는 핀을 꽂는 손놀림이 빨랐지만 꽂히는 핀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점차 속도가 느려졌다. 57개의 핀을 꽂은 뒤 쟌느는 생각하는 시간이 생겼다.
“으으음. 아! 여기가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꽂은 핀의 숫자는 62였다. 몇 달 동안 야만족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습격한 도시와 마을의 숫자이기도 했다.
자작령으로 환산하자면 5개의 영지가 그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그거 맞아?”
“혹시 모르니까 확인해볼게.”
쟌느가 잘못 꽂은 핀이 있나 확인한 순간 눈이 가늘어졌다.
“……어?”
“눈치챘나 보네. 수도를 시작으로 습격당한 도시와 마을의 순서를 짚어봐.”
쟌느가 ‘설마?’ 하며 62개의 핀을 손으로 슥- 그었다.
그러자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시간차 공격을 받은 도시와 마을이 선으로 이어졌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친다’라는 뜻의 고사성어였다.
야만족의 습격이 성동격서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절묘한 시간 차로 습격이 이뤄졌고, 쿰베 왕국의 사건과 타호른 왕국의 혼란으로 냉철한 시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면 눈치채는 게 힘들 정도였다.
‘지금쯤이면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말이야.’
쿰베 왕국의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뒤처리가 남았지만…… 이건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구호단의 활동과는 별개로 타호른 왕국을 공격하는 야만족을 퇴치하기 위한 북대륙 공식협정이 제1 순위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뀌었다.
제론은 지도를 잠시 가져가겠다고 말한 뒤 일정을 알렸다.
“우선 다들 쉬어요.”
일행들은 휴식도 거의 없이 움직였다.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쉬는 시간에도 수련했다. 때때로는 가만히 앉아서 쉴 시간도 필요하다.
“쉬는 것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하지 마요. 오늘은 피로를 풀 생각만 해요. 특히 에르딘 너 말이야. 너.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날 테니까 미리 준비해놓는 거 잊지 마세요.”
제론은 일행들에게 신신당부하고 거리로 나갔다.
쿰베 왕국에서 안에 든 것을 몽땅 써버려서 아공간 주머니가 가벼웠다. 언제 필요할 때가 올지 몰라서 다시 채워야 한다. 그런데 포션 가게와 식료품 가게를 들렀지만 많이 사지는 못했다. 전란에 휩싸인 상황이라 그런지 물건이 부족하다는 주인의 말이 있었다. 값도 몇 배로 뛰었다.
‘가는 곳마다 비싸게 사네.’
위험한 곳을 골라서 다니니 그런 것이다. 다른 도시를 가더라도 비슷한 가격이거나 더 비싸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가격이 오르리라. 조금 비싸다고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존버-‘존나게 버티기’의 줄임말-하는 것보다는 살 수 있을 때 최대한 사놓는 것이 이득이다.
그래도 몽땅 싹 쓸어가지는 않았다. 머릿속으로 생각해둔 양만 사고 나머지는 필요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놔뒀다. 이 도시에서 이 물건들을 살 사람이 없어서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다들 암묵적으로 필요한 양만큼만 구비해 놓는 것이다.
‘북부라서 그런지 날씨도 많이 춥네.’
중앙대륙은 완전한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북부대륙은 한겨울처럼 춥다. 여름이 되면 따뜻해지겠지만 한참 나중의 일이다.
그 증거로 사람들의 옷이 아직도 두꺼웠다.
현대로 치면 패딩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표정 또한 어두웠다.
야만족의 습격을 당할까 불안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많았지만 야만족의 괴상한 주술 때문에 제대로 방어도 하지 못하고 함락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의 불안은 당연했다.
제론은 필요한 물건만 구입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서서히 해가 저물고 있는 탓인지 여관 안은 손님으로 붐볐다. 저녁을 먹는 손님과 이른 술과 음식을 즐기는 용병들로 빈 탁자를 찾기가 힘들었다.
‘방에서 저녁을 먹어야겠는데?’
라고 생각한 순간 에르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론 님! 이쪽이에요!”
미리 내려와서 자리를 잡아놓은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아름다운 미인이 2명이나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여 있었다. 평소였다면 치근대거나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야만족의 습격으로 치안이 강화된 터라 모두가 눈치만 살피며 나서지는 않았다.
일행들로서는 난동을 피우지 않아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쿰베 왕국을 떠나 타호른 왕국에 도착하기 전에는 이런 일이 몇 번 생겨서 꽤나 골치가 아팠다. 치근대는 놈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돌려보내려고 해도 난리법석을 피우는 몇몇 놈들 때문이었다.
적당히 내공을 흘려보내면 얼굴이 창백해진 채 돌아가는 놈들이 있는 반면 돈이나 신분으로 쟌느나 메이엔을 겁박해서 사려는 새끼들이 있었다.
뭐…… 그런 녀석들의 최후는 반병신이었다.
‘살아 있는 게 다행이지.’
마음 같아서는 구족을 멸하고 싶을 정도였다.
제론은 일행들이 앉은 탁자로 가서 식사를 주문했다.
“……까지 주세요.”
5명이 먹기에는 과도하게 많은 음식을 주문했지만 용병들의 식사량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종업원은 담담하게 받아 적었다.
“알겠습니다. 앞서 주문받은 음식이 많아서 살짝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 팁이요.”
제론은 종업원의 손에 은화 2개를 몰래 쥐여줬다. 종업원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졌지만 정말로 티가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이 작게 속닥거렸다.
역시 뇌물이 최고였다.
* * *
“이번에는 저 도시인가?”
사람의 치아로 엮어진 목걸이를 목에 건 남자가 비릿한 미소로 도시를 바라본다.
서서히 남자의 주위로 모여드는 무리들.
모두가 추운 날씨 속에서도 반쯤 헐벗은 복장이었다.
* * *
밤이 깊어졌다.
하루를 푹 쉬기로 했던 일행들이기에 가벼운 술 한 잔을 곁들였다. 사실 일행들은 술 마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들 몰래 수련을 할 예정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내심 짐작한 제론이 술을 권유하자 어색하게 웃으며 거절하였으나.
“적당히 마시는 건 괜찮잖아? 잠도 푹 자기 좋고.”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술잔을 기울이려는 찰나 에르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술 마셔도 끄떡없지 않아요?”
“……?”
불현듯 이상한 낌새를 느낀 일행들.
제론이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강력한 힘의 파장을 느꼈다.
콰-앙–!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