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1)
제21화
21화
방랑기사 유프란은 비릿하게 웃으며 주위를 훑어봤다.
곧 뜨거운 선혈로 젖어 들 푸르른 초원!
오러 익스퍼트 중급의 기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준귀족에 달한다.
그러나 유프란이 어느 제국이나 왕국에서 작위를 받아서 안착하지 않고 대륙을 떠돌아다니는 이유는, 마음속에서 들끓는 살인의 광기를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유 없는 살인은 귀족과 평민을 막론하고 죄가 된다.
물론 귀족 모욕죄라는 말도 안 되는 법을 들먹여서 죽이기도 하지만 보이는 족족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귀족이 지배자 계층이었기에 불만만 마음속으로 가질 뿐 대놓고 겉으로 표출하는 자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 유프란에게 전쟁터란 마음껏 살인의 광기를 드러낼 수 있는 곳이었다.
살인을 하면 할수록 그의 명성이 높아지는 이득까지 있다.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살인의 죄가 적용되지 않으니까!
“스읍. 후우.”
이 상쾌한 공기가 곧 비릿하고 짠 혈향으로 물들 것이다.
유프란은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곧 땅이 울리며 멀리서 몰려오는 군대가 보였다.
기세가 보통이 아니다.
고작 1천 명의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페리안 남작령은 주기적으로 몬스터 토벌을 한다고 하더니 아주 거짓은 아닌 모양이군.”
유프란이 희미하게 웃으며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몰려오는 군대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더욱 검으로 베는 맛이 있을 테지.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사이 고용주인 베론드 남작이 말의 고삐를 끌고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참 꼴이 가관이었다.
‘기사도 아닌 주제에 갑옷은 왜 입었지?’
비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건 고용주였으니까.
“곧 페리안 남작의 군대가 당도할 것이오.”
“보고 있소. 기세가 제법 대단하오만.”
“그래 봐야 유프란 경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 아니겠소?”
“그렇게 추켜 세워주면 부끄럽소.”
“유프란 경께서는 다른 오만한 기사들과 달리 겸양까지 갖추셨구려.”
“베론드 남작께서도 훌륭한 영주시지 않소?”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에 금칠해주는 사이 페리안 남작의 군대가 300m 앞까지 도착했다.
페리안 남작이 진군을 멈춘다. 곧 기사 2명을 대동하고 앞으로 나왔다.
베론드 남작도 유프랑 경과 다른 기사 3명을 대동하고 나섰다.
두 남작은 50m 간격을 두고 마주 봤다.
“항복하고 투항하시오. 하면 영토의 절반은 남겨드리겠소.”
“…….”
베론드 남작이 콧수염을 우아하게 만지며 말했다.
페리안 남작의 표정이 바이저로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뻔히 보였다.
‘겁에 질렸나 보군!’
페리안 남작의 병력은 고작 1천 명이었다. 반면 자신은 3천 명이나 된다. 또한 소문을 들었다면 오러 익스퍼트 중급의 방랑기사 유프란을 고용했다는 사실도 알 테니 패배를 직감하고 있으리라.
베론드 남작은 거만하게 허리를 뒤로 젖히며 계속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허나 계속 해보겠다…….”
“어쩔 것이오?”
페리안 남작의 바이저 사이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베론드 남작이 흠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줬다.
“끄, 끝을 보는 수밖에!”
“그 의지 확고한 것으로 생각하겠소.”
페리안 남작이 더는 할 말 없다는 듯 말의 머리를 돌렸다.
베론드 남작은 잠시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분개했다.
“저, 저런 안하무인을 봤나!”
베론드 남작이 대동한 기사들과 유프란은 내심 진짜 안하무인이 누구인데 저러고 있노라며 헛웃음을 들이켰다.
‘그래도 상관없지.’
유프란은 베론드 남작이 안하무인이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살인의 광기를 맘껏 푸는 전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군.’
바이저 안으로 언뜻 비친 페리안 남작의 안광이 지나치게 맑고 고요했다.
패배를 생각하고 있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두 남작이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뿌우우우우우우-!
곧 개전의 신호가 초원에 울려 퍼졌다.
* * *
쥬페토는 분노를 고요하게 잠재운 채 베론드 남작과 마주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들을 때 순간 검을 뽑아 들 뻔했지만 참았다.
개전의 신호가 울리지 않았다. 그때를 참지 못하고 놈의 목을 베었다면 영지전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 되며, 이는 중죄에 해당된다.
기사의 작위는 귀족이라면 누구라도 내릴 수 있다.
귀족의 작위는 백작 이상부터 가능하다.
물론 정식으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가 존재한다.
왕실로 가서 작위를 받는 합당한 이유와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허나 영토는 오직 국왕만이 내릴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영주의 위치란 같은 귀족 중에서도 반급 높았다. 국법으로 영지전을 승리하더라도 영주와 그의 가족을 죽이지 못하는 것으로 정해놓았다.
그래서 영지전에서 승리하더라도 영주를 죽이지 못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평범한 귀족으로 돌아갈 뿐이다.
“철저하게 짓밟고 빼앗아주마.”
뿌우우우우우우-!
쥬페토가 중얼거린 순간 개전의 신호가 울려 퍼졌다.
곧바로 말의 고삐를 당겨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뒤에서 기사들이 당황하며 재빨리 따라붙으려고 했으나 쥬페토의 말은 주인의 분노를 알고 있는지 혀를 길게 옆으로 빼낸 채 전속력으로 달렸다.
“주, 주군!”
* * *
유프란은 개전 신호와 함께 앞으로 달렸다. 때마침 페리안 남작이 선두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오러 익스퍼트 중급의 기사라고 하더니 병사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싶은 모양이었다.
‘피를 못 보는 게 아쉽군.’
살인의 광기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첫 상대가 페리안 남작이었다. 그를 죽이지 못하기에 큰 실망을 했으나 이내 그를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유프란은 오러 익스퍼트 중급에서도 상위에 꼽혔다.
페리안 남작이 몬스터 토벌로 단련되었다고 한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기사를 상대하는 방법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자, 그럼 영토를 지닌 귀족의 피는 어떤지…….”
유프란이 검을 뽑아 든 순간 페리안 남작의 모습이 거대해졌다.
말은 어디에 버렸는지 높게 뛰어오른 상태였다.
‘아니. 거대해진 게 아니야. 벌써 앞까지…….’
유프란의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이윽고 머리 아래가 허전해지며 시야가 암전했다.
* * *
쥬페토는 땅에 착지하며 머리가 사라진 기사의 시체를 뒤로한 채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함성을 지르며 진격하던 병사들이 침묵했다. 개전의 신호로 시끄러웠던 초원이 적막으로 물들었다.
저 멀리서 경악하고 있는 베론드 남작이 보였다.
그를 향해 스산한 미소를 지어주며 말에 올라탔다.
“페리안 남작령의 힘을 보여줘라!”
목소리에 오러를 담아 외쳤다.
와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의 함성이 어느 때보다 크게 터져 나왔다.
* * *
페리안 남작령과 베론드 남작령의 영지전은 인접한 영지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페리안 남작가가 오른 왕국의 건국부터 이어져 온 명문이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베론드 남작의 압승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관심을 끈 가장 큰 이유는 두 번째였다.
베론드 남작이 야망이 크고 욕심도 많은 자였기에 페리안 남작령을 집어삼킨 다음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페리안 남작령의 압승으로 영지전이 끝났다.
오러 익스퍼트 중급의 방랑기사 유프란 경을 일격으로 베었다는 소문이 뒤따라 퍼졌다.
영지를 갖고 있는 영주라면 방랑기사 유프란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고액의 대가를 받고 영지전이나 전쟁에 참여하는 기사였다.
변방의 영주들은 페리안 남작이 오러 익스퍼트 중급의 경지를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곧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만약 페리안 남작이 영토를 넓히기 위해 칼끝을 이쪽으로 겨눈다면 승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페리안 남작이 영토를 넓힐 생각이 없노라며 서신을 날리자 안도했다.
평소 그의 성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영지전이 끝난 뒤 패배자에 대한 처분만이 남았다.
“제, 제발 부탁드리오!”
베론드 남작이 엎드려 쥬페토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그는 패배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병사 1천 명과 병사 3천 명의 전투였다.
같은 오러 익스퍼트 중급의 기사도 고용해서 페리안 남작을 상대하도록 했다.
절대로 패배하지 않으리라. 오직 승리만이 존재하리라!
그런데 페리안 남작이 그를 일검에 베어내며 전장의 판도를 뒤집어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본 3천 명의 병사들과 3명의 기사들은 공포에 질려 전의를 상실했고,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항복했다.
베론드 남작은 절대로 물러서지 말라고 소리쳤으나 목에 페리안 남작의 검에 겨눠지고 그의 서슬 퍼런 눈빛과 시선을 마주치자 오줌을 지리며 기절해서 치욕까지 당했다.
하지만 치욕은 문제가 아니었다.
영지전의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빼앗을 권리가 있다.
“과, 관례를 생각하시게!”
“베론드 남작 당신은 그럴 생각이 있었고?”
“물론이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지껄이는군.”
베론드 남작은 저도 모르게 입술에 침을 발랐다. 하지만 쥬페토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나자 또다시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당신의 처분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빼앗을 권리가 있다.”
베론드 남작령은 오늘부로 페리안 남작령에 흡수된다는 말이었다.
베론드 남작은 허망한 표정으로 쥬페토를 올려다봤다.
쥬페토가 그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도록.”
“흐, 흐어어어!”
베론드 남작이 공포에 휩싸여 신음을 흘리며 기절하고 말았다.
* * *
“흐음. 역시는 역시였나?”
제론이 승전보를 전해 듣고 히죽 웃었다. 그는 엄마와 형, 누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빠가 패배할 것이라고 1도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무공을 전수했는데!’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가 나타났어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제론이 아빠한테 전수한 검술은 대형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 쓰라며 알려준 것이다. 인간형 몬스터 대부분이 몸놀림이 날쌔고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려면 시간을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먼저 체력이 떨어져서 지치니까! 그래서 일 검에 목을 베거나 치명적인 급소를 공격하도록 쾌검류를 몇 가지 알려줬다.
아마도 방랑기사라는 놈의 목을 벨 때 그중 하나를 사용했을 것이다.
‘흐흐. 영토를 다스리던 영주가 한순간에 빈털터리 귀족이 되었으니 비참하겠지. 하지만 이거 어쩌나? 내 살생부에서는 이름이 안 지워질 텐데.’
페리안 남작령을 노린 대가는 철저하게 치를 속셈이었다.
그게 몇 년이 지나더라도 상관없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으니까.’
제론이 히죽 웃으며 승전고를 울리고 돌아오는 아빠를 마중하러 나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