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10)
제 210화
210화
제론은 가짜 유성우를 떨어트린 주술진을 해체했다.
해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의 축을 제거하면 끝이었으니까.
주술진의 해체가 끝나자 하늘에서 떨어지던 가짜 유성우가 멎었다.
성벽과 도시 안에서 분투하던 야만족들이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제론의 일행들을 주축으로 기사들과 병사들이 그들을 제압했다.
야만족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너, 뭐냐?”
제론이 주술진을 해제한 뒤 허공에 나타난 사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곧장 검으로 베지 않은 이유는 사내의 몸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바테인 공작의 머리카락보다 색이 더 짙어.’
타오르는 화염과 같은 색깔이 아니라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 보였다.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만큼이나 불길했다.
사내가 제론을 바라보며 입술을 뗐다.
“네가 제로니아 페리안이 맞나?”
놈의 입에서 허스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의 목소리가 듣기 좋고 매력적이라면 저놈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음울하거나 침울한 것에 가까웠다.
늪지대나 짙은 어둠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알고 왔으면서 왜 물어보냐?”
“과연 듣던 대로군.”
“넌 뭐 하는 놈이냐?”
“내 정체는 짐작하고 있을 텐데.”
사내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제론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일부러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비꼬아 말했는데 전혀 반응하질 않는다. 가벼운 도발에도 쉽게 넘어오던 메이란과는 달랐다. 뭐라도 알고 있다면 그걸 이용할 텐데 사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건 됐고. …저 녀석이 사람은 맞긴 하나?’
사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무척이나 특이했다.
정제된 마나나 오러의 느낌이 아니었다.
세상에 퍼져 있는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기운이다. 그런데 안정적이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선천지기와는 달랐다. 살아 있는 생명에게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운이다.
‘자연경의 경지에 올라섰다면 저런 기운을 갖고 있는 것이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런 존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초월자는 아니었다.
상단전의 힘-‘신성’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묘하다.’
직감이 검을 휘두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사내가 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는다.
“감이 좋군.”
“이건 감이 아니라 능력이야, 짜샤.”
“짜샤? 그건 무슨 말이지?”
마지막 ‘짜샤’는 한국말이었다.
“서대륙 말.”
“큭. 나를 웃기려고 한 거였다면 성공했다. 아주 훌륭하군.”
“…….”
제론은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중앙대륙 말이야.”
“크큭!”
“…동대륙 말이라고 해도 안 믿지?”
“크크큭!”
“하아. 남대륙…….”
“크하하하!”
“…말은 아니니까… 야, 인마!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사내가 크게 웃자 제론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사내는 웃음을 뚝 그치고 음울한 눈빛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내 이름은 아인호르타하. 네가 사사건건 방해한 일들의 주모자다.”
“……!”
‘악몽의 집행자’의 보스였다.
* * *
“끄악! 내 다리!”
“조금만 더 참아! 바위를 치우고 있어!”
“긴 나무판자와 돌을 가져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제, 제 아내가 저 아래 깔려 있습니다! 제발 구해주십시오. 으허헝!”
“저 야만족 새X들을 죽여! 죽이라고!”
“정 죽이지 못하겠다면 내 앞으로 데려와! 내 손수 뼈와 살을 분리시켜서 고통에 찬 비명 속에서 죽도록 만들 테니!”
“내 친구가 죽었어! 내가 보는 앞에서!”
에르딘은 뒷정리를 돕다가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의 울분이 극한에 치닫는다. 생포한 야만족을 처참하게 죽이라고 울부짖는다. 그러지 못하겠다면 자신들이 나서겠다고 외친다.
솔직히 그 심정이 공감되었다. 눈앞에서 제론이 죽을 뻔한 모습을 봤을 때 반쯤 눈이 돌아갔다. 엄청난 살의에 지배되었다.
만약 제론이 죽었다면 그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불 보듯 뻔했다.
‘베헤못.’
평생을 노력해도 복수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자신과 도시의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복수의 대상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지금도 병사들이 야만족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지 않았다면 달려가서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분노는 점차 과열되기 시작했다.
“비켜! 비키라고! 지금 저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지 못한다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멈춰! 가까이 다가오지 마!”
“남편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요!”
“진정해! 진정하라고!”
병사들과 사람들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그런 사람들의 울분을 잠재운 것은 병사들이었다.
“나라고 안 죽이고 싶은 줄 알아?!”
“나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건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놈들을 고문해서 정보를 캐내는 게 먼저야. 다들 알잖아? 지금 야만족이 각지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거. 우리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고!”
병사들도 도시 사람들과 같은 심정이었지만 분노를 참고 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로 눈물을 글썽거리는 와중에서도 병사들의 진심을 알아들었다.
“조금만. 정말로 조금만 더 기다리고 참아봐. 반드시 필요한 정보만 캐내고 살아 있는 이놈들을 제물로 던져 줄 테니까.”
“…….”
사람들은 한 명, 두 명 발걸음을 돌렸다.
* * *
“이름이 너무 기니까 짧게 줄여서 아인이라고 부르지.”
아인호르타하-아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에게 처음으로 생긴 변화였다. 그러나 제론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어갔다. 이름을 짧게 줄이는 것으로 도발하거나 화나게 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처음 본 사이에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니까 기분이 나쁠 수도 있긴 하겠지만 정말로 ‘살짝’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인의 속마음은 달랐다.
‘건방진 놈.’
하찮은 인간과 다르게 자신의 이름은 하나의 ‘상징’이자 ‘증명’이었다.
그것을 마음대로 줄이니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솟았다.
그럼에도 분노가 겉으로 티 나지 않는 것은 특유의 포커페이스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가며 웬만한 일에는 감정이 잘 변하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해 표정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쉽게 말해 표정이 굳어져 버린 것이다.
사실 조금 전에도 그가 웃을 때 표정이 굳어 있어서 제론은 ‘재미없는데 억지로 웃어준 건가? 차라리 그냥 웃지 말고 욕을 하지.’라고 생각하며 민망해했다. 웬만한 표정도 간파하는 제론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인의 표정에 변화가 없던 것이었다.
아무튼, 아인은 분노로 들끓는 가슴을 겨우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왜 내 앞에 나타난 건데?”
“베헤못을 격퇴한 존재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격퇴?”
아인은 제론이 피식 웃자 고개를 갸웃했다. 표정에 변화가 없으니 살짝 섬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베헤못을 격퇴했다는 말에 자조가 섞인 웃음밖에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냥 발렸어. 그래, 완전히 개처발렸지.”
“누가 보아도 네 승리였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누가 봐도 내 패배였어. 놈은 멀쩡한 몸 상태로 돌아갔고, 루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난 죽임을 당했겠지. 그걸 누가 승리라고 해?”
“필멸의 존재가 불멸의 존재를 상대로 궁지로 몰아세워 신성까지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다른 곳도 아닌 미들어스에서 말이다. 네게는 들리지 않겠지만 베헤못을 비웃는 목소리가 아스트랄에 널리 울려 퍼졌다. 그 싸움은 네 승리가 맞다.”
“닥쳐. 내가 패배했다고 느꼈으면 패배한 거야.”
“신기한 인간이로군.”
제론이 으르렁거리듯 말하자 아인이 이마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신기한 인간이었다.
초월자도 아닌 필멸자가 ‘신성’을 몸속에 품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그 ‘신성’으로 베헤못을 궁지로 몰아세운 것은 더더욱 신기했다.
모든 것이 신기한 인간이다.
‘야만족은 포기해야겠군.’
이곳에서 제론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제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베헤못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놈은 자신을 패퇴시킨 존재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손익계산을 하면 야만족을 포기하는 것이 맞다.
자신의 목적을 완수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약속은 잊지 마.”
“약속? …아, 앞으로 10년 동안 오른 왕국에 그 어떠한 피해도 끼치지 않을 거라는 거 말인가. 메이란이 아직 쓸모가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군.”
메이란은 영혼의 맹세를 했다. 약속을 어기면 그녀의 영혼이 소멸된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쓸모가 없어지면 약속을 지킬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메이란이 오래오래 살아 있기를 바라야 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적의 목숨까지 걱정해주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인이 사라졌다.
제론은 마지막까지도 검 자루에 올린 손을 내리지 못했다.
“베었어야 했나?”
손아귀에 찬 땀이 땅으로 떨어졌다.
* * *
제론이 도시로 돌아갔을 땐 새벽이었다.
뒷정리를 도와주다가 잔뜩 지친 에르딘은 벽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제론이 기척을 드러내자 녀석은 눈을 떴다. 비슷한 타이밍에 쟌느도 흐릿한 눈빛을 일으켜 제론을 바라봤다.
“제론 님!”
“제론!”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메이엔과 로건이 힘겹게 눈을 뜬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오면서 봤어.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줘도 되니까 우선 푹 쉬어. 특히 로건 님은 지금 언데드라고 말해도 믿길 정도로 초췌해 보이니까 그대로 눈을 감아요.”
“…….”
로건이 손을 휘적거리다가 제론이 말하자 눈을 감았다.
네크로맨서가 죽자 다시 안식을 찾은 언데드 같았다.
메이엔은 조용히 손을 들어 인사했다.
제론도 손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녀도 많이 지쳐 보였다.
“자기… 안아줘.”
“우리 제론 님이 왜 쟌느 님의 자기예요?”
“……?!”
쟌느가 화가 난 표정으로 뭐라고 말하려다가 기운이 빠졌는지 고개를 옆으로 떨군다. 에르딘은 그 모습을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제론에게 가서 안아주라고 눈짓을 보낸다.
“환장하겠네.”
제론은 천막 주위에 은신의 진법을 설치하고 돌아와서 쟌느와 에르딘을 각자의 침낭 속으로 쑤셔 넣었다. 진이 빠진 녀석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애벌레처럼 침낭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제론도 잠을 잘까 고민했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이 또렷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쪽 주변으로 다가오는 무리가 있었다. 적이 아니었다.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천막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분명히 이쪽에서 천막을 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웅들께서 이곳에 안 계시지 않느냐?”
“…….”
기사가 반문하자 병사들은 입을 쏙 다물었다.
제론은 그들이 무엇… 아니, 누구를 찾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은신의 진법에서 나가며 묻는다.
“혹시 저희에게 볼일이 있으신가요?”
“으악! 귀신이다!”
병사들이 뒤로 자빠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