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14)
제 214화
214화
1왕자 궁의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엘프 여인이 그림자 속에서 귀를 격하게 움직이며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즐겁게 감상했다. 잠시 후 시녀가 차와 과자를 내왔다. 차를 음미한 제론이 살짝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차향이 독특하군요.”
시원한 향이 먼저 코끝을 찔러오고 뒤를 이어 은은한 단맛이 입 안을 맴돈다. 페퍼민트 차처럼 톡 쏘는 시원한 향과 달랐다. 입 안을 맴돌고 있는 은은한 단맛 때문이 아니었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덜 차가운 눈을 작게 뭉쳐서 입속에 넣어 천천히 녹여 먹는 것 같습니다.”
“정확한 표현이오.”
타이레논은 살짝 놀란 듯 제론을 바라봤다.
“설산에서만 자라는 ‘눈꽃’이라는 꽃이 있소. 365일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항상 눈으로 뒤덮여 있지. 그 꽃의 잎을 따와 24시간 동안 저온으로 타지 않게 볶은 뒤 숙성을 시켜 띄워 마시는 차가 바로 이것이오. 숙성기간이 길면 길수록 향과 맛이 고급스럽게 짙어져 가격도 수백 배까지 뛰는, 타호른 왕국만의 특산물이라고 자부하오.”
“…….”
가격이 수백 배까지 뛴다는 말에서 찻잔 주위로 황금빛이 반짝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가격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저런 말까지 했는데 쌀 리가 없다.
게다가 설산은 대륙과 야만의 땅을 가로지르는 경계지역이었다. 경계근무를 서는 기사와 병사를 제외하면 출입이 허락된 소수의 인원만 설산에서 ‘눈꽃’을 채집할 수 있다.
365일 내내 눈이 내리는 날씨를 제외하더라도 몬스터와 짐승이 많아서 멀쩡한 ‘눈꽃’을 구하는 것부터가 힘들다.
또한 꽃잎이 조금이라도 상했다면 찻잎으로 쓰지 못한다.
잎에 밴 향과 맛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격을 어렴풋이 짐작하자면 적어도 수백 골드는 우습게 넘는다.
차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제론과 그의 일행이 중심에 있던 쿰베 왕국의 베헤못 강림이나 파웰 자작령의 야만족 습격에 대한 사건이 주를 이뤘었다.
타호른 왕실이 제론과 일행의 정체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왕실의 일원인 타이레논에게도 귀띔이 들어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사자인 제론에게 개인적인 의문을 물었고, 제론은 베헤못의 강림만 축소시켜 말한 뒤 나머지는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했다.
“…잡담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소.”
의문을 해결한 타이레논이 제론을 놓아줬다.
이제는 제론의 차례였다.
-야, 나와도 돼.
전음으로 말하자 타이레논의 그림자 속에서 엘프 여인이 나왔다. 벌겋게 달아오른 귀가 격하게 움직였다.
제론은 엘프 여인의 귀를 신기하게 쳐다본 뒤 말했다.
“엘프가 왜 숲을 떠나서 인간사회에 섞여 사는 거냐?”
“대답할 의무는 없어요.”
“뭐 그럼 됐고. 아인호르타하라는 녀석을 알아?”
“……!”
엘프 여인이 오러를 뿜어 나무줄기처럼 움직였다. 제론의 팔과 다리가 오러에 묶였다. 조금만 힘을 줘도 절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제론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엘프 여인을 바라봤다.
“이게 무슨 짓인가!”
바로 타이레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론은 파웰 자작의 소개장을 들고 온 공식적인 왕실의 손님이었다.
수호자라는 엘프 여인이 얼마나 대단한 권위를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손님에게 무력을 사용한다는 건 왕실-집 주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자는…….”
“변명은 필요 없다!”
“…….”
엘프 여인의 귀가 축 늘어졌다.
시무룩해진 것이다.
상황을 재밌게 구경하던 제론이 말했다.
“1왕자님, 저는 괜찮습니다.”
“본 왕자가 안 괜찮소! 뭐 하는 것이냐?! 어서 오러를 거두……!”
“정말 괜찮습니다.”
뿌드득-!
타이레논과 엘프 여인은 밧줄이 강제로 끊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제론이 팔다리를 움직여 오러로 이루어진 밧줄을 끊어내고 있었다.
“오, 오러를 끊어낸다고?!”
“역시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다!”
“무슨 일입니까!”
타이레논은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경악했고 엘프 여인은 레이피어를 들어 제론에게 겨눴다. 동시에 응접실 문을 지키고 있던 왕실 기사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엘프 여인을 발견하곤 검을 뽑았다. 타이레논과 제론이 응접실에 들어간 걸 알고 있어서 엘프 여인을 침입자로 오해한 것이다.
“무기를 내려놔라!”
“침입자다! 어쌔신이 1왕자님을 암살하러 침입했다!”
엘프 여인이 재빨리 타이레논의 그림자로 숨었다.
“어쌔신이 도망친다!”
“1왕자님,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자, 잠깐!”
삐익-!
타이레논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왕실 기사가 호각을 분 뒤였다. 호각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대충 개판 5분 전이었다.
* * *
타이레논의 중재로 개판이 마무리되었다.
한 차례 진을 뺀 타이레논은 푹신푹신한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병사들만 몰려와서 다행이었다. 아버지-국왕을 지키는 로얄 가드가 왔거나 수호 마법진이 발동됐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수습이라는 걸 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나와라.”
“…….”
“내 그림자에서 썩 나오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엘프 여인이 쭈뼛쭈뼛 그림자에서 나왔다. 자신의 잘못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제론은 소리 없이 키득키득 웃었다.
엘프 여인이 제론을 노려봤다.
타이레논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불같이 화를 냈다.
“지금 그대의 잘못을 깨우치고 사과는 하지 못할망정!”
“…….”
파르르.
엘프 여인의 귀가 힘없이 떨렸다.
엘프 특유의 미모와 애처로운 모습이 합쳐져 안타까움과 탄성을 자아내야 하지만 타이레논의 분노는 그것조차 무시할 정도로 엄청났다.
물론 제론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저 새X 고자는 아니겠지?’
엘프 여인의 외모는 여태껏 제론이 본 여자들 중 독보적이었다. 심의 때문에 자세히 묘사는 못하지만 ‘오우야!’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이레논은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고 엘프 여인을 질책하고 있었다.
고자가 아니면 인내심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이다.
‘아니면 북대륙은 미의 기준이 다를지도 모르지.’
미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자 묘하게 납득이 되었다.
취향이 다를지도 모른다.
‘취향은 존중이지.’
제론은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타이레논을 말렸다.
“1왕자님, 진정하십시오. 수호자께서 실수하신 것은 사실이나 제가 오해하게 만든 잘못도 있습니다.”
쫑긋.
엘프 여인의 귀가 위로 섰다. 의심으로 물들었던 눈빛이 변했다. 제론이 자신의 편을 드니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오해하게 만든 잘못? 그게 무엇이오?”
“아인호르타하.”
엘프 여인의 몸에서 기세가 흘러나왔다.
타이레논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엘프 여인이 아까처럼 다짜고짜 공격을 한 것은 아니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페리안 공. 아인호르타하가 무엇이기에 수호자께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오?”
“대륙의 혼란을 일으키는 세력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타이레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
‘악몽의 집행자’라는 유치한 이름의 조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아인호르타하라는 자가 그 세력을 이끄는 수장입니다.”
“페리안 공께서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소?”
“만났으니까요. 수호자께서도 아인호르타하라는 자를 알고 계신 것 같던데, 맞습니까?”
엘프 여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반응이 긍정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많이 불쾌하오.”
“네?”
제론은 타이레논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이 불쾌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아, 페리안 공으로 인해 불쾌하다는 말이 아니오. 본 왕자가 여태껏 아무것도 모르는 꼭두각시처럼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오.”
타이레논의 시선이 천천히 엘프 여인에게 향했다. 불쾌하다는 말의 대상은 제론이 아니라 엘프 여인-수호자였던 것이다.
엘프 여인이 귀를 쫑긋거리며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전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시는가?”
“…….”
“역시 그랬군. 역시 그랬어.”
타이레논은 입술을 비틀었다. 부드러웠던 인상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무거운 기세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까지 기품이 있는 귀족이었다면 지금은 일국의 왕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이지만 타이레논의 기세에 제론이 반응할 정도였다.
‘왕세자의 자리를 화투치기로 딴 게 아니구나.’
제론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문득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카론이 떠올랐다.
* * *
“에취!”
카론은 뒷목이 뻐근해질 정도로 세게 재채기를 했다.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시녀가 옆에서 그것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지저분한 것을 닦는 게 아니라 귀한 물건에 묻은 먼지를 닦는 것 같은 손놀림이었다.
그 대상이 카론이었기에 당연했다. 오른 왕국의 1왕자이자 왕세자… 즉, 현 국왕의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릴 차기 국왕이었으니까!
“누가 내 얘기라도 하는 건가?”
“…….”
“흐음. 로한 녀석 아니면 제론 녀석이겠지.”
카론은 시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왕세자가 처리하는 업무 중에서는 중요한 비밀도 있지만 곁에 있는 시녀는 마법의 계약으로 이곳에서 보고 듣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로한 녀석은 요즘 많이 바쁘다고 하던데. 그럼 제론 녀석이 내 얘기를 했나? 뒷담화라도 하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어.”
카론이 키득 웃었다.
그 두 명이 아니라면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왔다 갔다. 기껏 오라고 해서 왔더니 자신이 없었다. 녀석의 성격이라면 나중에 잔소리를 퍼부어댈 게 분명했다.
“…….”
키득거리며 웃던 카론의 시야에 산처럼 높게 쌓인 서류 더미가 보였다.
“아카데미 때가 좋았지.”
지금은 한숨만 나왔다.
* * *
타이레논의 분노는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론은 재밌게 구경을 하며 차와 과자를 먹고 마셨다.
“그렇다면 엘프들은 오래전부터 아인호르타하와 그가 이끄는 세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허면 무슨 이유로 그것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냐? 본 왕자는 왕가의 수호자라고 자처한 그대가 사실 다른 마음을 품고 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구나.”
“그,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왜 숨기고 있던 것이냐고 묻지 않았던가!”
“이유가 있…….”
“무슨 이유? 본 왕자에게 말하지 않은 것까지는 이해하나 전하께 숨긴 것은 무어라 변명할 텐가?”
“그건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왕실의 손님에게 위협을 가했지? 처음부터 끝까지 잘 숨기고 있었다면 될 일을!”
“죄송합니다.”
“죄송한 일을 왜 한 거지?”
과자를 집던 제론의 손이 멈칫했다.
‘저거 후임 갈구는 선임 같은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