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15)
제 215화
215화
엘프 여인은 반쯤 혼이 나간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녀의 귀가 애처롭게 파들파들 떨릴 때가 되자 제론이 타이레논을 진정(?)시켰다.
“1왕자님. 고정하십시오. 수호자께서 일부러 감추신 것은 아닐 겁니다. 차마 말하지 못할 안타까운 사연이 있으시겠지요.”
“안타까운 사연? 안타까운 사연이라. 흐음.”
타이레논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아직 얼굴에서 분노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말을 계속 곱씹으며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 이해를 한 모양새다.
엘프 여인이 처음 로건이 제론에게 목숨을 구원받았을 때처럼, 황홀한 눈빛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타이레논의 혼잣말이 길어진다.
“그렇군.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지. 내가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어.”
제론은 마음속으로 그가 말했던 것들 중에서 한 가지를 부정했다.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니야.’
생각하지 못한 ‘척’한 것이다.
지금도 엘프 여인의 사정을 추리해가는 것 같은 혼잣말이지만, 사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정리가 끝났을 것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해 먹어야 하는지 말이다.
‘저 엘프는 하수인에 불과해.’
서대륙의 전쟁영웅 퓨리온 공작과 비견할 정도로 뛰어난 힘을 갖고 있지만, 사람의 신체로 비유하자면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머리가 아니라 칼을 쥐고 휘두르는 손이다.
손이 머리가 되어 판단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소문으로 듣기론 엘프는 때 묻지 않은 시골 청년처럼 순수하다고 하지 않던가?
모든 엘프가 순수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눈앞에서 애처롭게 귀를 파들파들 떨고 있는 엘프 여인은 세상 물정 모르는 ‘진짜’로 보였다.
제론 자신도 눈치챈 사실을 타이레논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엘프 여인에게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머리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머리는 국왕과 연결이 되어 있겠지.’
무려 왕실의 수호자다.
국왕이 아무것도 모른 채 왕세자의 안전을 맡겼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곳으로 열심히 오고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문이 열린다.
쿵-!
열심히 달려왔는지 국왕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다.
타이레논은 당황하지 않고 일어나 국왕에게 왕실의 예법으로 인사를 한다.
국왕이 손을 저어 인사를 대신하고 엘프 여인과 제론을 번갈아 쳐다봤다.
제론은 문이 열린 순간 이미 오른손의 손바닥을 가슴으로 가져가 오른 왕실의 예법으로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수호자-엘프 여인이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창백해진 채 귀를 파닥거린다.
“예를 거두시게.”
국왕이 시녀가 가져온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게…….”
타이레논이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은 국왕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오기 전 어떤 소동이 벌어졌는지 보고를 들었다. 단순한 오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으로 넘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국왕은 제론에게 허리를 숙였다.
“미안하게 되었네.”
“……!”
엘프 여인의 귀가 파닥파닥 날뛰었다.
그런 엘프 여인을 바라보는 타이레논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제론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작은 오해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하아.”
국왕의 한숨이 또 튀어나왔다. 파웰 자작령의 일은 왕실의 보고를 열어 값을 치렀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비록 허리를 숙여 사과를 했다고 하지만 제론은 자국의 귀족이 아니었다.
“정말로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진심인가?”
“물론입니다.”
국왕이 제론의 눈을 응시했다. 눈빛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아유! 좋아!’라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왕실의 체면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줘야 하나 고민하는 국왕에게 제론이 말했다.
“왕실의 수호자께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거면 되겠는가?”
“수호자께서 대답만 해주신다면… 아마 모두에게 손해는 없을 겁니다.”
“호오. ‘모두에게 손해가 없다.’라.”
국왕은 턱을 쓰다듬었다.
무엇을 질문할지 몰라도 질문과 대답 전부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겠네. 수호자께서 거부하신다면 본 왕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네. 하지만 그 가정을 염두에 두고 허락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맞는가?”
“맞습니다.”
“그럼 허락하겠네.”
제론이 엘프 여인을 바라보며 묻는다.
“수호자… 아니, 엘프들은 아인호르타하의 존재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아인호르타하?”
“대륙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조직을 이끄는 수괴의 이름입니다.”
타이레논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국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조금 전에는 상황을 간략하게 들어서 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엘프 여인이 왜 다짜고짜 제론을 ‘공격했는가?’였다. 그 의문이 지금 해소되었다.
‘엘프와 협력관계인 나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오해를 한 거였어.’
엘프가 때 묻지 않은 시골 청년 같다고 하지만 미련하고 멍청한 것은 아니다. 물론 수호자라는 의무를 저버리고 나선 건 큰 문제였다. 그로 인해 엘프 여인이 궁지로 몰린 것이지만 말이다.
국왕은 흥미롭게 제론과 엘프 여인을 지켜봤다.
“대답하지 않을 겁니까?”
“제 권한 밖의 질문이에요.”
엘프 여인이 귀를 추욱 내리며 대답했다.
“아인호르타하는 어떤 존재입니까?”
“그것도 제 권한 밖의…….”
“‘악몽의 집행자’는 언제부터 존재해왔습니까?”
“그것도…….”
제론이 질문할 때마다 엘프 여인은 같은 대답만 반복했다. 국왕과 타이레논의 표정이 점차 지쳐갔다.
제론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그럼 대답을 할 권한이 있는 엘프는 누구입니까?”
“그건…….”
“하이High 엘프로군요.”
“…….”
엘프 여인이 이번에도 부정하지 못했다.
제론은 악당처럼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를 하이 엘프께 안내하세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인간과 엘프의 신뢰를 깨트리고 싶지 않다면요.”
아아.
파르르 떨리는 귀가 보인다.
짜릿해.
* * *
엘프 여인이 하이 엘프에게 연락을 넣으러 간 사이 국왕과 대화를 나눴다.
“그대는 ‘그들’과 많은 접점이 있던 모양이더군.”
“그렇습니다. 저는 성인식을 치른 뒤 대륙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악몽의 집행자’와 엮인 몇 가지 사건을 말했다.
국왕과 타이레논의 눈이 화등잔같이 커졌다.
서대륙의 폴른 제국에 큰 사건이 벌어졌다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생존자가 몇 없거나 퓨리온 공작이 은폐한 사건의 세부적인 내용은 알아내려야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용병으로 활동했던 제론의 명성이 대륙에 퍼지지 않은 이유였다.
국왕이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지금 들은 것은 모두 함구하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제론이 옅게 미소 지었다.
역시 국왕은 눈치가 빨랐다. 폴른 제국이 북대륙으로 원정을 오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그 불씨가 전 대륙까지 번진다면 모르는 일이다.
굳이 아는 척 나섰다가 폴른 제국이 기분 나쁘다며 사이가 나빠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바후르 도적단의 두목이 동대륙 출신이라는 점과 마수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더욱 가치가 있다.
야만족의 공격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다면 타호른 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뒤덮인다.
“허어.”
국왕은 이런 고급 정보를 준 제론에게 무엇을 줘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혹시 자네, 혼인은 하였는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막내 공주가 아직 혼약을 맺지 않았는데, 생각이 있다면 말하시게.”
“전하! 막내 공주는 아직 9살… 으읍!”
깜짝 놀란 타이레논이 일어나 외치자 국왕이 그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튀어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쯧.”
“…마음만 받겠습니다.”
제론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설을 꾹 삼켰다.
9살과 혼인을 맺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현대였다면 포돌이 아저씨가 수갑을 들고 찾아왔을 것이다.
* * *
에르딘은 침대를 뒹굴거리며 생각했다.
‘왜 안 돌아오시지?’
제론이 파웰 자작의 편지를 전달하러 간 지도 벌써 3시간이 넘었다. 도무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해가 떨어졌다. 슬슬 어디서 무슨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어디를 가기만 하시면 항상 사건 사고가 일어났지.’
걸어 다니는 인간재해다.
괜히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스리며 다른 일행들을 찾아갔다.
“무슨 일이 있으면 뭐 어때?”
“네?”
“불안해하는 건 알아. 하지만 제론이 웬만한 일로 눈썹 하나 까딱일 그런 인간으로 보여? 당할 것 같으면 먼저 엿을 먹일걸.”
“그건 알죠. 그래도 걱정이 되네요.”
“베헤못의 일로 초조해하는 건 알아. 하지만 우리가 제론을 못 믿어주면 누가 믿어줘?”
“역시 그렇죠?”
“착하네. 왜 제론이 너를 아끼는지 알 것 같아.”
쟌느가 에르딘의 머리를 슥슥 문질렀다.
에르딘이 애 취급당하는 기분에 그녀를 쀼루퉁하게 쳐다봤다.
문득 쟌느가 평소에 입던 옷이 아닌 검은색 쫄쫄이 타이즈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옷차림이 왜 그래요?”
“어디를 좀 가야 할 것 같아서.”
“설마….”
“에이. 우리 자기 만나고 부업 그만뒀다니까? 우리 아빠가 왕실의 감옥에 갇혀 있어서 잠깐 만나고 오려는 거야.”
“아, 그렇군요.”
에르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이상함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묻는다.
“네? 왕실의 감옥이요?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제대로 들었어. 간략하자면, 우리 가문이 설산의 경계를 지키는데 야만족이 넘어온 거야. 끝까지 맞서 싸우자니 시간을 끌기는커녕 몰살당할 것 같아서 아빠가 퇴각을 명령했고. 뭐, 그 대신 목숨을 건졌지만 감옥에 갇히게 된 거야.”
“…쟌느 님은 타호른 왕국의 귀족 자제셨군요.”
“감옥에 갇히게 된 부분에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보네?”
“저 오른 왕국 왕실 소속이에요.”
“아, 이해했어.”
에르딘이 대답하자 쟌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아무튼, 다녀올게.”
“들키지 않게 조심히 다녀오세요.”
쟌느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에르딘이 창문 밖으로 폴짝폴짝 뛰어가는 그녀를 응시했다.
“별일 없겠지?”
* * *
엘프 여인은 제론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갖고 돌아왔다.
“숲으로 당신을 초대한다고 하셨어요.”
“숲?”
“스노우 엘프 부족이 살고 있는 숲이요.”
“여기서 멉니까?”
“인간의 걸음으로는 13일 정도 걸려요.”
“그럼 하루면 충분하다는 말이군요.”
“……?”
제론이 태연하게 말하자 엘프 여인의 귀가 까딱거렸다.
인간의 걸음으로 13일 걸리는 거리가 왜 하루로 줄어드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제론이 오러의 밧줄을 힘으로 끊어낸 것을 떠올리곤 무언가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본 왕자도 동행해도 되는지 전하였는가?”
“앗. 그건……!”
“제 일행은요?”
“아앗.”
엘프 여인의 귀가 좌우로 파닥거렸다.
“다, 다시 물어보고 올게요!”
삐익-!
엘프 여인이 응접실을 나가려는 순간 바깥에서 호각소리가 울리자, 그녀는 울상이 된 채 외쳤다.
“저, 저 침입자 아니에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