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17)
제 217화
217화
쟌느는 슈롬벨 백작이 폭주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유유히 왕궁을 벗어났다. 병사들이 그녀를 잡기 위해 돌아다녀서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어렵지 않게 호텔로 돌아갔다.
한편 제론은 응접실에서 대기를 하다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슈롬벨 백작의 기척을 감지했다.
사나운 오러의 폭풍이 느껴졌다. 그를 막으려고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오러 마스터는 자연재해이자 홀로 군단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 인간병기였다.
왕실 기사들 역시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슈롬벨 백작이 너무 강했다.
제론은 턱을 쓰다듬었다.
“퓨리온 공작보다는 한 수, 혹은 두 수 아래 정도인가?”
대륙에는 공식적으로 50인의 오러 마스터가 있다. 지난 십몇 년간 죽은 자를 제외한다면 살아 있는 오러 마스터의 숫자는 30명에서 40명 안팎일 것이다. 그런 오러 마스터 중에서 행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중앙대륙의 레바테인 공작, 서대륙의 퓨리온 공작, 동대륙의 시무르 칸, 남대륙의 포르세단 후작, 마지막으로 북대륙의 슈롬벨 백작.
그들은 각 대륙을 대표하는 오러 마스터나 다름없는 셈이다.
위의 5명을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중앙대륙과 동대륙의 수준이 낮다.
물론 그들을 만났을 때를 기준으로 비교한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 더 강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제론은 그들이 퓨리온 공작을 뛰어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보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지.’
관심은 딱 그 정도.
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슈롬벨 백작이 그 정도의 실력자라고 하지만 왕실에는 퓨리온 공작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실력의 엘프 여인이 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어.’
차갑게 식은 찻잔을 들었다. 손목을 기울인 순간 슈롬벨 백작의 기척이 가까워진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응접실의 문이 ‘X’ 자로 쪼개지며 슈롬벨 백작이 나타났다. 팔목부터 손날까지 감싸는 오러 블레이드가 사납고 차가운 바람을 흩날린다.
그 바람을 맞은 제론이 생각했다.
‘좋은 바람이네.’
슈롬벨 백작의 수준은 퓨리온 공작이나 엘프 여인보다 아래였지만 막상 싸움을 붙어보면 예상외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러 마스터의 수준 차이는 절대적이지 않다.
뛰어난 기술을 구사할 줄 알거나, 오러의 양이 많을수록 유리한 건 맞지만 싸움의 승패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어떤 검술을 익혔냐에 따라 다수와의 싸움에서 유리한 사람이 있고, 일대일의 싸움에서 유리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퓨리온 공작이 다수와의 싸움에 능한 전자라면, 슈롬벨 백작은 일대일의 싸움에서 강한 후자였다. 두 사람의 수준 차이가 크지 않아서 막상 싸워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어느 한쪽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장소거나 쌓아온 경험치의 양,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차이가 나긴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슈롬벨 백작이 왜 자신을 찾아왔냐는 것이다.
슈롬벨 백작이 뒤에서 달려오는 기사들을 힐끗 돌아보고 제론에게 물었다.
“너냐?”
“……?”
제론은 미간을 가운데로 좁혔다. 뜬금없는 질문과 반말에 불쾌하다기보다는 당혹스러운 감정이 먼저 앞선다. 무슨 이유로 ‘너냐?’라고 묻는 것일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 가문의 오러 연공법 비전서를 가져오라고 내 딸을 유혹한 게 너냐고 묻는 거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평소였다면 반말로 응대했을 테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평소 에르딘이 항상 말하던 지랄 맞은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제론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직감이었다.
그 녀석이 제론에게 슈롬벨 백작-정체는 모르지만-을 막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다.
“딸? 오러 연공법?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듣지를 못하겠군요.”
“모르는 척하는 건지, 정말로 모르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뛰어난 연기로구나. 하하하하!”
슈롬벨 백작이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제론은 미간을 좁힌 채 자신의 직감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생각했다. 하지만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슈롬벨 백작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쟌느?”
“모르는 척하고 있던 것이 맞구나.”
슈롬벨 백작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그러자 오러 블레이드가 길쭉해지더니 순식간에 제론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제론의 몸이 쪼개졌다. 하지만 그가 쪼갠 것은 실체가 아니었다. 반으로 갈라진 제론의 잔영이 흐릿해지며 사라진다.
슈롬벨 백작의 눈이 이채로 반짝인다. 당황하지 않고 뒤로 돈다. 손바닥이 등을 후려치기 위해 뻗어지고 있었다.
팔꿈치로 제론의 손바닥을 친다.
‘이 정도면……?’
슈롬벨 백작이 생각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얼굴 위로 당혹감을 드러낸다. 손바닥을 친 팔꿈치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밀려나기 시작했다. 오러를 끌어올려 팔꿈치로 움직였다. 오러 블레이드가 맺혔다. 더욱 몸에 힘을 준다. 하지만 밀려나기 시작한 팔꿈치가 멈출 줄 모른다.
슈롬벨 백작이 팔꿈치에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낸 순간 제론 역시 내공을 끌어올려 손바닥에 장강掌罡을 두른 것이다.
“너……!”
슈롬벨 백작이 눈살을 찌푸리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엘프 여인이 제론과 슈롬벨 백작의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와 검을 휘둘렀다.
슈롬벨 백작을 제론에게서 떼어 내기 위한 위협용이었다.
뒤로 물러서지 않으면 베인다.
그 사실을 기세로 미루어 짐작한 슈롬벨 백작은 재주넘듯 뒤로 텀블링을 했다. 거리가 벌어지자 엘프 여인과 제론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엘프여. 그대는 누구인가?”
두 종족이 무슨 관계인지 유추하려는 것이었다.
“…….”
엘프 여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타이레논의 명령 때문에 슈롬벨 백작을 막아서긴 했지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슈롬벨 백작이 한쪽 눈썹을 찡그린 채 잠시 생각했다.
“그렇군.”
“……?”
“내 딸 몰래 엘프와 바람을 피우는 거였어.”
“뭐요?”
제론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들이켰다. 슈롬벨 백작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진작 알아차렸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하긴, 왕궁에서 미쳐 날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했어야 했다.
“쟌느와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정말인가?”
슈롬벨 백작이 진지하게 묻자 제론은 잠시 기억을 더듬어봤다.
-부끄러워하기는.
쟌느가 팔짱을 끼려고 하자 빼니까 들은 말이다.
-세심한 남자네. 그런 남자 참 좋더라.
밥 먹기 힘들다니까 수프를 먹는 건 어떠냐며 타박하니 돌아온 대답이다.
-자기…… 안아줘.
쿰베 왕국의 사건이 끝나고 지친 그녀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말하지만 안아서 재워달라는 말이었다.
여기까지 기억을 되새겨보자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정말 아무 사이가 아닌가?’
처음으로 가진 의문.
그것이 표정으로 드러나자 슈롬벨 백작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아니. 정말로 엘프 여자랑 바람피우고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오늘 처음 봤어요.”
제론이 다급하게 변명했다.
머릿속으로는 ‘내가 왜 변명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럼 쟌느를 좋아하는 거냐?”
“쟌느를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그럼 싫어하는 거냐?”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슈롬벨 백작이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면 이용했다는 뜻이로군.”
“그건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제론이 정색하며 말했다.
“오해? 필요 없다. 검사라면 말이 아닌 검으로 대화하는 법. 진짜로 오해고 그것을 풀고 싶다면 검을 들어라.”
“…….”
제론은 처음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는 억지를 부리거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말 속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로 말…… 아니,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검을 들지 않고 뭐 하고 있지?”
“후우.”
제론이 엘프 여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
“검 줘요. 검.”
엘프 여인이 들고 있던 검을 머뭇거리며 제론에게 건넸다.
‘이걸 진짜로 주네?’
엘프가 순진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검사에게 있어서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검을 넘겨줄 줄은 몰랐다.
제론은 검을 받아서 한 차례 휘둘러봤다.
찌르는 공격에 특화된 레이피어라서 그런지 베는 맛이 약했다.
그사이 슈롬벨 백작은 오러를 끌어올려 임전의 태세를 취했다.
‘과연 내 딸이라서 그런지 안목이 뛰어나군.’
정체 모를 청년-제론-이었지만 몇 번의 손속을 나눈 결과 자신이 승패를 장담하기 힘든 상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야만족의 침략을 막는 연합군의 군단장이기 이전에 딸의 아빠였다.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녀가 점찍은 남자-쟌느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갑니다?”
“음.”
슈롬벨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론은 땅을 발로 찼다.
탕-!
총이 발사된 소리가 나며 제론의 몸이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났다.
슈롬벨 백작은 제론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손을 휙휙 그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에서 그물처럼 펼쳐지며 제론이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차단했다. 하지만 눕혀진 레이피어가 앞으로 뻗어진 순간 오러 블레이드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렇게 손쉽게?!’
흠칫 놀란 슈롬벨 백작이 백스텝을 밟자 그곳으로 제론의 주먹이 꽂혔다.
콰드득-!
대리석 바닥에 균열이 생겼다. 제론의 손은 바닥 깊숙이 박혀 있었다. 잠깐이지만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틈을 놓칠 슈롬벨 백작이 아니었다. 그가 두 팔을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뻗은 순간 날카로운 송곳의 형태를 띤 오러 블레이드가 미사일처럼 제론을 향해 날아갔다.
“……!”
두 사람의 결투(?)를 지켜보던 엘프 여인이 흠칫 놀라며 끼어들려고 했지만 이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 제론과 시선이 마주치자 몸이 저절로 굳어졌다. 뱀 앞에 있는 쥐가 된 심정처럼 말이다.
날카로운 송곳의 오러 블레이드가 제론에게 쏟아졌다.
콰가가강-!
균열이 생긴 대리석 바닥이 제론을 중심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게다가 응접실은 2층이었다. 즉, 1층과 2층 사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이다.
“슈롬벨 백작!”
때마침 왕실 기사들이 도착했다.
국왕을 지키는 로얄 가드의 기사단장 로베인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달려와 롱소드를 휘둘렀다. 롱소드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가 슈롬벨 백작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노렸다. 더 이상 왕궁에서 난동을 피우지 못하도록 절단하려는 것이었다.
슈롬벨 백작은 ‘칫.’이라고 짧게 아쉬운 소리를 내고 로베인의 검을 막았다.
오러 블레이드와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치며 응접실 내부에 엄청난 풍압이 일어났다.
와장창-!
응접실 안의 기물이 깡그리 부서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