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18)
제 218화
218화
제론은 어깨를 빙글 돌렸다.
뚜둑.
굳어졌던 뼈와 근육이 풀리며 시원하게 소리가 났다.
위의 상황은 곧 정리가 될 것으로 보였다.
왕실 기사들이 도착했다.
또한 슈롬벨 백작이 아닌 또 다른 오러 마스터의 기운이 느껴진다.
오러 마스터 초입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런 소동을 일으키고도 슈롬벨 백작이 계속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뛸 수는 없을 것이다.
‘목적은 완수했어.’
옷의 먼지를 털며 생각했다.
제론은 슈롬벨 백작의 공격을 제대로 반격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슈롬벨 백작과는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나중에는 알게 되었지만…… 이럴 때마다 직감이라는 녀석이 참 편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쟌느의 아버지일 줄은 몰랐지.’
쟌느는 자신이 젤타 왕국의 귀족 가문 출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곳은 타호른 왕국이었다. 그녀의 가족을 타지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의문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대화를 종합한 결과 슈롬벨 백작은 쟌느와 만난 것 같았다. 그러니까, 편지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시기적절했다는 뜻이다. 대충 슈롬벨 백작이 날뛰기 전에 일어난 소동이 쟌느의 짓으로 추정되었다.
‘여기에 아버지가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보러 간 거겠지.’
한 마디로 우연과 우연이 겹쳐져 만들어진 대환장 파티였다.
와장창-!
위층에서 기물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상황이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큰 착각을 한 것 같았다.
제론은 레이피어를 고쳐 쥐고 점프했다. 떨어진 구멍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
슈롬벨 백작과 기사단장 로베인이 싸우고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사방에서 번쩍였다.
충돌로 인해 생긴 풍압으로 응접실이 난장판으로 변해간다.
제론은 시선을 돌렸다. 응접실 밖에서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당연하겠지.’
저들의 실력으로 오러 마스터들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는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고깃덩어리로 변한다.
목숨이 아깝다면 가만히 지켜보는 게 좋다.
‘엘프는…… 없고.’
1왕자 타이레논 역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둘뿐만이 아니라 전부 마찬가지였다. 오러 마스터들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몸을 피한 것이다. 말은 즉, 1왕자 궁에는 지금 보이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텅 비었다는 뜻이다.
“현명하네.”
제론은 히죽 웃으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쿵!
균열이 생긴 대리석 바닥을 통해 진동이 퍼졌다.
쩌저적.
작은 소리였지만 균열이 조금씩 커져 간다. 두 명의 오러 마스터가 제론에게 시선을 돌렸다. 싸움에 집중하고 있던 나머지 제론이 위로 올라온 걸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곤 제론이 한 짓을 깨달았다.
“무슨 짓을……!”
“바닥이 무너집니다!”
기사단장 로베인이 신음을 흘리듯 중얼거린 그때 응접실 밖에서 대기하던 기사가 외쳤다. 조금씩 커지던 균열이 순식간에 거미줄처럼 변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콰드드드-!
응접실을 기준으로 10m 반경의 바닥이 엄청난 굉음을 토해냈다. 응접실 밖에 있던 기사들이 다급하게 물러났다. 슈롬벨 백작과 기사단장 로베인도 망설이지 않고 전장을 이탈했다.
그런 두 명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제론이 피식 웃고서 느긋하게 빠져나갔다.
* * *
“무너지는 줄 알았소.”
“소리가 좀 우렁차긴 했지요.”
제론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타이레논이 살짝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1왕자 궁을 통째로 무너트릴 것처럼 소리를 내던 균열은 응접실과 양옆의 방, 그리고 복도까지만 무너트리고 끝났다. 허겁지겁 도망치던 기사들은 그렇다 쳐도 두 명의 오러 마스터까지 속인 것이다. 덕분에 싸움이 끝났으니 더욱 커졌을 피해를 제론이 줄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슈롬벨 백작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는 아마 반년 이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것이오.”
“반년 이상? 반년 이상이라면 길군요.”
“그것도 그가 연합군의 군단장이라서 짧은 것이오. 사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던 것도 설산에서 연합군을 퇴각시킨 명령 불복종의 죄 때문이지만, 북대륙 공식협정으로 며칠 안에 사면을 받을 예정이었소.”
원래대로라면 1달 동안 갇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북대륙으로 넘어온 야만족을 물리치는데 슈롬벨 백작이 필요했다. 어중간한 실력을 가진 기사가 아니라 무려 오러 마스터였으니까. 그래서 그간의 공적을 기리고 공식협정을 참작하여 사면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며칠을 참지 못하고 탈출해서 1왕자 궁으로 침입한 것으로 모자라 왕실의 손님을 공격했다. 왕실의 체면과 법을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례를 남기면 곤란하긴 하지요.”
“맞소.”
“흐음. 전례와는 별개로 저 역시 곤란하긴 합니다.”
“무엇이 말이오?”
“저도 조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제 일행 중 한 명이 슈롬벨 백작의 딸입니다.”
타이레논이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슈롬벨 백작의 딸……?”
“하하.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오해를 한 모양인지 저를 찾아왔더군요.”
제론은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자신에게 잘못은 없었다. 파웰 자작의 부탁으로 소개장과 편지를 갖고 왔다. 그런데 하필 이곳에 쟌느의 아빠인 슈롬벨 백작이 갇혀 있었을 뿐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따지면 한도 끝도 없지.’
아무튼, 슈롬벨 백작을 최대한 빨리 빼내 줄 생각이었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었다.
‘쟌느의 아빠니까.’
동료의 가족이라면 자신의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제론은 슈롬벨 백작을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센 거래를 했다.
“야만족.”
“음?”
“야만족 퇴치에 저 역시 참가하겠습니다. 대신 슈롬벨 백작을 감옥에서 빼주십시오. 죄를 사면받기 어렵다면 연합군 군단장의 직위를 박탈하고 집행유예로 돌리는 방법도 괜찮습니다.”
타이레논은 제론의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제론이 대단한 무력을 가진 자라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쿰베 왕국에 강림한 베헤못이라는 악신과 싸워서 살아남은 존재였다. 하늘과 땅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싸움이었다고 한다. 물론 어느 정도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라는 건 확실했다.
그런 그가 야만족 퇴치에 나서준다면 반년이 걸릴 전쟁도 몇 달로 줄어든다. 슈롬벨 백작의 처우가 어차피 문제로 삼아질 테니 더하고 빼기를 반복해도 이득만 남는다.
“한번 말해보겠소. 으음.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런 말을 하기 조금 그렇지만 그대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오.”
“그렇다면 좋죠.”
타이레논이 제론의 말을 전하러 갔다.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슈롬벨 백작과 함께 돌아왔다.
슈롬벨 백작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제론을 쳐다봤다.
“자네, 좋은 남자였군.”
“…….”
제론은 그가 말하는 좋고, 나쁘고의 기준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하지만 일정한 경지에 오른 무인들 치고 제정신인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괜한 말을 꺼내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타이레논이 슈롬벨 백작의 수갑을 직접 풀어주며 말했다.
“슈롬벨 백작, 명심하시오. 그대는 오늘부로 연합군 군단장이 아니오. 아까처럼 또다시 실수를 저지른다면 타호른 왕국과 젤타 왕국의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슈롬벨 백작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살겠군.”
수갑이 풀리자 어깨와 손목을 돌리며 그가 중얼거렸다.
타이레논은 잠시 미간을 좁혔다가 폈다. 이윽고 뒤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시종에게 가져온 물건을 제론에게 건네라고 말했다.
“왕실의 성의이오.”
“하하. 슈롬벨 백작을 풀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론은 웃으며 말했다.
타이레논은 ‘역시 실례였나?’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시종이 들고 있던 주머니가 제론의 품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성의는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겠소.”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슈롬벨 백작과 함께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배웅하겠소.”
제론과 슈롬벨 백작은 타이레논의 배웅을 받으며 호텔로 돌아갔다. 수도의 분위기가 살짝 나빴다. 간밤의 소란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왕실에서 병사들을 풀어 야만족과의 싸움을 대비하기 위한 대대적인 훈련이 있었다고 알리며 분위기를 해소시켰다.
호텔에 도착하자 에르딘이 목욕을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제론을 보고 다가오려다가 슈롬벨 백작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흠칫 놀란다.
“호오?”
슈롬벨 백작이 눈을 반짝였다.
에르딘이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을 단번에 파악한 것이다.
“…….”
“…….”
슈롬벨 백작과 에르딘이 서로를 바라봤다.
슈롬벨 백작은 호기심, 에르딘은 호승심을 담은 눈빛이었다.
대치가 길어지며 기파가 흔들렸다.
그것을 알아차린 쟌느가 방에서 나오며 두 사람의 대치를 끝냈다.
“아빠?”
“오! 사랑스러운 내 딸!”
“아빠가 왜 여기 있어?”
쟌느는 슈롬벨 백작을 반가워하기 전에 이상함부터 느꼈다.
슈롬벨 백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위가 나를 감옥에서 탈출시켜줬단다.”
“제론이? 아니, 그전에 탈출시켜줬다고?”
쟌느가 오해를 하려는 것 같아 제론이 얼른 나서서 설명했다.
“아. 그러니까 우리 자기한테 칼부림을 했다는 거네?”
“정확하게는 칼부림은 아니었단다. 검을 압수당해서 손에 오러 블레이드를…… 커헉!”
쟌느가 슈롬벨 백작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비명을 지르고 깽깽이 발로 뛰는 아빠를 매몰차게 외면한 딸이 제론에게 다가갔다. 다친 곳은 없는지 전신을 쑥 훑어내린다.
“미안해. 내 아빠지만 참 답이 없어.”
“…….”
제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확실히 슈롬벨 백작은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연합군 군단장의 직위로 박탈당했으니 엄마는 좋아하겠네.”
“명예로운……!”
“명예고 나발이고. 어휴. 쌤통이다.”
“딸아. 사랑스러운 내 딸아. 너는 어찌하여 이 아비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냐.”
“내 마음과 엄마의 마음은 왜 몰라줘?”
아빠와 딸이 티격태격했다. 하지만 말은 저래도 사이가 나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메이엔과 로건까지 나타나자 부녀父女는 티격태격하던 것을 멈추고 호텔 직원에게 식사를 주문했다.
슈롬벨 백작은 식사가 나오기 전에 자기소개를 했다.
“전 연합군 군단장이자 쟌느의 아빠인 슈롬벨 백작이라고 하오. 뭐…… 이건 중요하지 않고. 미숙한 딸과 어울려주고 보살펴줘서 참으로 감사하오.”
“…….”
일행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서로 눈치만 살폈다. 갑자기 나타난 오러 마스터의 정체가 쟌느의 아빠라고 하니까 당황한 것이다.
“편하게 대해주시오. 내 딸의 동료라면 내 아들과 딸이나 다름없으니.”
“하여간 진짜 오지랖은!”
쟌느가 식탁 아래에서 슈롬벨 백작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억!”
슈롬벨 백작이 비명을 질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