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20)
제 220화
220화
야만족의 침략으로 타호른 왕국 수도가 전복된 이후로 북대륙의 분위기는 많이 침체되었다. 언제 어디서 야만족이 공격을 해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북대륙인들을 자극했다. 때마침 북대륙 곳곳에 도착한 슈롬벨 백작의 편지가 그들을 더욱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 * *
아이오닉 교국의 교황청.
교황은 슈롬벨 백작의 이름으로 온 편지를 조용히 내려놨다.
“…….”
몇 번이나 편지를 읽고 입속으로 곱씹었다. 덕분에 북대륙의 위기가 닥쳐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야만족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야만족을 괴물처럼 여기며 두려워하는 보통의 북대륙인들과는 다르게, 교황은 그들이 대륙인과 체격, 피부, 눈동자, 머리카락 색만 다를 뿐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믿는 신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태양의 교단은 악마를 신봉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분류할 뿐 다른 신들을 믿고 모시는 교단을 배척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교황은 눈을 감고 자신이 믿는 신께 기도했다.
‘솔라시여.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쿰베 왕국에서 베헤못이라는 악마가 현세로 강림한 이후로 솔라와의 연결이 약해졌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태양의 신의 존재가 안개처럼 흐릿하다.
교황은 답답한 마음에 일어섰다.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과열되었던 머리가 식는다.
하늘에 박혀 있는 달이 보인다.
응답이 없는 솔라를 대신해서 달과 어둠의 신인 루나에게 기도했다.
‘루나시여.’
교황은 흐릿하게 웃었다. 루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은 루나의 아바타가 아니었다. 태양과 인간의 신인 솔라의 아바타였다.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교황이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성녀가 문으로 걸어 들어온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성기사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성녀가 입을 움직였다.
“그대의 믿음대로 행하라.”
“……!”
교황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성녀의 입을 빌려 말한 존재가 누구인지 알았다.
“루나시여!”
“…….”
성녀, 아니 루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아침 아이오닉 교국의 신병들이 출정했다.
* * *
아이오닉 교국의 출정을 시발점으로 북대륙 전체가 움직였다.
각국에서 최소 10명의 기사와 2천 명의 병사를, 최대 20명의 기사와 5천 명의 병사를 보냈다.
이렇게 말하면 적은 숫자로 느껴지겠지만 북대륙에 존재하는 국가의 숫자는 수십에 달했다. 전부 합쳐서 10만 명을 훌쩍 넘는 병력이 타호른 왕국으로 집결하는 것이다.
북대륙에 세워진 3개의 마탑에서도 각자 4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를 20명씩, 총 60명의 마법사들이 파견되었다.
슈롬벨 백작은 그들을 비웃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는 쥐새끼들 같으니라고.”
북대륙은 야만족의 침략에 너무 적응해버렸다.
소위 말해 안전불감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타호른 왕국의 수도가 전복되었다는 소식을 퍼트려도 선뜻 먼저 나서는 놈들이 없었다. 아이오닉 교국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며 눈치만 살피는 꼴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였다.
“그런데 너무 많이 모이는 거 아닌가요? 소수정예로 이루어진 타격대로 운영한다면서요.”
“흠. 병력은 필요하다네. 타격대가 제아무리 날고뛰어도 모든 곳을 다 공격하고 막아내지는 못하니까. 야만족 놈들이 수틀려서 이곳저곳으로 도망치면서 습격하면 피해가 엄청나. 병사가 주둔하고 있지 않은 마을 같은 경우에는 약탈이 이뤄질 수도 있어. 그런 놈들을 잡아 족치려면 병사들이 있어야지.”
“듣고 보니까 맞는 말이네요.”
“자네는 전쟁의 지휘관으로 참전한 경험이 많지 않나 보군.”
제론은 슈롬벨 백작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요. 바후르 도적단 토벌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혼자서 따로 움직였죠.”
“바후르 도적단 토벌? 거기에 참여했다고?”
“으음. 정확하게는 바후르가 없는 바후르 도적단이었지요.”
“호오?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는가?”
“유명한 관광지 같은 던전을 탐험하러 갔을 때였어요.”
제론이 서대륙 모험담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자 슈롬벨 백작이 연속으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가 특히나 큰 관심을 가진 부분은 퓨리온 공작에 대한 것이었다.
대륙 공통법에는 ‘오러 마스터 급의 전략 병기는 범국가적 규모의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절대로 같은 사람을 향해 칼을 겨눠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같은 사람’에는 오러 마스터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뭐…… 아무래도 오러 마스터끼리 싸우다가 어느 한 명이라도 죽거나 불구가 되면 엄청난 전력손실이 생기니까 그런 규정을 정한 것 같았다.
“나랑 비교하면 어떻지?”
“한 수, 혹은 두 수 아래.”
제론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슈롬벨 백작이 턱을 쓰다듬는다.
“흐음. 생각보다 차이가 크군.”
제론이 그를 힐끔 쳐다봤다. 그의 표정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삼자의 입장이 되어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 같아 보였다. 가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는 결점이 있지만 평소에는 냉철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하긴, 괜히 연합군 군단장이 된 게 아니겠지.’
지금은 ‘전’이라는 글자가 앞에 붙었지만 말이다.
“자자. 우리도 내려가자고.”
슈롬벨 백작이 씨익 웃으며 제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전’ 연합군 군단장은 자신의 부대를 순회하듯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가서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슈롬벨 백작을 알아본 이들은 감동받거나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그 외에는 눈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후자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쟤는 누구야?’라는 표정이었다.
그 뒤로 슈롬벨 백작이 할 일은 없었다.
부대편성과 운영은 ‘전’ 연합군 군단장의 몫이 아니었다. 새로 부임한 연합군 군단장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녔다.
그 꼴을 보는 슈롬벨 백작의 표정이 꽤나 유쾌했다.
“명예는 개뿔! 역시 사람은 편하고 봐야 해.”
“평소에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엄마가 아빠 머리채를 쥐어뜯는다고 길길이 날뛰었어. 집으로 돌아가면 각오해야 할 거야. 아니. 그 전에 또 딴 데로 새면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
쟌느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슈롬벨 백작이 상처받은 표정으로 딸을 바라봤다.
로건은 그런 부녀를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따님께서 참으로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게요? 어딜 봐서요?”
에르딘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랑이 없다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꼭 사랑의 형태가 다정하고 부드럽다고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 보기 좋은 모습이 더 좋겠지만 말이죠.”
“으음. 로건님은 사제가 맞으시군요.”
“제가 평소에 사제답지 못한 행동을 했습니까?”
로건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르딘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에는 딱 봐도 ‘아! 신앙심 깊은 사제님이시구나!’라는 걸 알았는데 요즘에는 조금…….”
“……!”
로건은 충격에 빠졌다.
제론은 메이엔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에르딘에게 물었다.
“메이엔은?”
“아, 필요하신 물품이 있다고 나가셨어요.”
“언제 돌아온다고 하셨고?”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어요.”
시간을 확인하니 그 정도 여유는 있었다.
‘알고 갔겠지.’
제론과 그의 일행은 슈롬벨 백작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슈롬벨 백작을 사면시킨 것이 제론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슈롬벨 백작이 안 보이는 게 더 불안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저 왔어요.”
1시간이 지나자 메이엔이 한 보따리 짐을 들고 돌아왔다.
일행은 마지막으로 각자 짐을 점검한 뒤 수도를 벗어났다.
슈롬벨 백작이 길잡이로 나섰다.
“내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유명한 용병단을 이끌었었다. 지금도 지나가는 용병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아!’ 하고 알 정도로 유명했었지.”
“용병단 이름이 뭔데요?”
“‘바헬의 사나이들’. 들어봤나?”
“아니요.”
슈롬벨 백작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금방 회복한 그가 호언장담을 했다.
“지도만 있으면 길 찾는 것쯤은 누워서 빵 먹기다.”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서 펼친 그가 한참 동안 쳐다봤다. 잠시 후 주변을 둘러본다. 다시 지도를 접어서 품속에 넣으며 말했다.
“지리가 많이 바뀌었군. 하나도 못 알아보겠어.”
“……?”
“저 산도 옛날에는 없었어.”
“제가 지도를…….”
“어허.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아악!”
말과 비명이 절묘하게 이어진다.
쟌느가 망설이지 않고 아빠의 정강이를 발로 찼기 때문이다.
슈롬벨 백작이 고통을 호소하며 허리가 숙여진 틈을 타 재빨리 품속에서 지도를 꺼냈다.
“딸 바보 아빠는 그것마저도 감동스러웠는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정강이가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요?”
제론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에르딘이 물었다.
“남의 집안일에는 끼어드는 거 아니랬어.”
“그건 맞아요.”
“날씨가 좋군요. 솔라께서 하늘 위에서 저희를 지켜보고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
로건마저 부녀의 행동을 보지 못한 것처럼 딴청을 피웠다.
그사이 메이엔이 사역마를 소환해 탈 것을 제공했다.
쟌느가 지도를 확인하고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면 돼.”
“으으……!”
그때까지도 슈롬벨 백작은 정강이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딱 달라붙은 바지가 아까보다 많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꽤나 세게 걷어찬 것 같았다.
“아. 참고로 엄마가 자기 대신 차라고 했어.”
“그런 거였구나.”
슈롬벨 백작이 언제 신음을 흘리고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일어선다. 하지만 걸을 때마다 발을 절뚝거리는 모습이 남자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다.
로건이 코끝을 훔치며 말했다.
“저는 사제입니다.”
“……?”
제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제는 신께 귀의한 몸입니다.”
“아,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셨군요.”
“흠흠. 너무 직설적으로 말씀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로건이 주변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요. 아무도 신경 안 써요.”
“저는 신경 쓰는데요?”
“네가 왜?”
“제론 님을 모시는 가신이니까요.”
“내 가신인 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후계자를 낳으셔야죠.”
“내가 영주도 아닌데 후계자가 왜 필요해?”
“제론 님의 명성이 서대륙과 중앙대륙, 이제는 북대륙까지 퍼졌어요. 굳이 오른 왕국이 아니더라도 어디를 가든 한 자리는 내어줄걸요? 그리고 오른 왕국에서 제론 님을 순순히 놓아줄 리도 없고요.”
“맞아. 그러니까 젤타 왕국에서 같이 살래?”
제론은 눈빛을 불태우며 다가오는 에르딘과 쟌느를 피해 도망쳤다.
슈롬벨 백작의 일은 마냥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