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22)
제 222화
222화
“뭐라는 거야?”
푹-!
에르딘은 창으로 야만족의 흉부를 깊게 찔렀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인 놈이 눈을 부릅뜬 채 앞으로 넘어졌다. 발로 야만족의 시체를 밀어서 반대편으로 넘어뜨렸다.
“……끝났네?”
에르딘이 주변을 둘러보자 일행들이 야만족을 전부 처리한 상태였다. 제법 빠르게 해치웠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3명씩 넘게 쓰러트렸다.
안전한 곳에 숨어 있던 로건이 나타나 일행들의 상처를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다들 멀쩡했다.
사제인 그가 활약할 순간은 한동안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다들 많이 굶주린 상태야.”
제론이 야만족의 시체를 살펴보고 말했다.
다른 곳은 괜찮은데 볼만 홀쭉하다. 얼마나 홀쭉하던지 가죽만 남아 있었다. 살을 빼거나 마른 체형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굶주린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야만족의 약탈은 악랄하고 무자비했다네. 짓밟힌 도시와 마을에는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지. 모조리 다 죽인 거야. 먹을 것조차 남기지 않고 모조리 불태우기까지 했어. 만약 놈들이 조금의 자비라도 베풀었다면 지금 이런 꼴이 되지 않았을 거야. 놈들은 그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고 있는 거야.”
슈롬벨 백작은 검 날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적의 보급을 끊는 것은 전쟁에서 종종 쓰이는 전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무조건 죽인다!’라는 식으로 함께 죽자고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전술이다.
지금 야만족이 겪고 있는 것처럼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달아 습격에 실패하며 활동 범위에 제약이 생긴 지금은, 북대륙 곳곳에서 몰려오는 병사들이 숨통을 천천히 조여오기 시작했다.
야만족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후일을 기약하고 물러나거나,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다.
혹은.
위의 두 가지 선택지 외에도 마지막 한 가지가 더 있다.
“흐음. 아무래도 탈영한 것 같죠?”
“그런 것 같군.”
제론과 슈롬벨 백작의 생각이 일치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지자 무리를 이탈하는 야만족이 나타났다.
로이난 자작령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주친 것을 보니 확실하다.
‘녀석들, 강해지려고 탈주했군.’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질 못할 드립이 떠올랐다.
구덩이를 파고 야만족의 시체를 모았다.
불태우지 않고 흙으로 묻어 덮었다.
불태운다면 연기가 피어올라 주변에서 탈영을 한 야만족을 찾아다니는 다른 야만족이 그것을 발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감지가 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건 올바른 자세였다.
야만족의 시체를 묻을 때 가장 먼저 나선 것도 슈롬벨 백작이었다. 그것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는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움직인다.
‘이래서 기업에서 중고신입을 쓰는 건가?’
경력이 없는 신입사원처럼 하나하나 설명해주지 않아도 된다. 무척이나 편리하다.
“조금만 더 이동합시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구덩이를 다지고 이동했다.
* * *
이틀 뒤 로이난 자작령에 들어섰다.
그날 이후로 탈영한 야만족과는 마주치지 않았다. 그 녀석들이 운이 좋아서 탈영을 성공한 것 같았다. 아니, 제론 일행과 마주쳤으니 다른 의미로는 더럽게 운이 나쁜 거였다.
“여기가 어디쯤이지?”
슈롬벨 백작이 지도를 펼쳐서 확인했다. 하지만 위치를 찾지 못했는지 한참 동안 지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쟌느는 한숨을 푹 내쉬고 지도를 빼앗았다.
“지도도 못 보는 양반이 왜 자꾸 지도를 봐?”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벌써 노안이 왔나.”
“아빠, 오러 마스터거든?”
“내 나이가 64살이다. 노안이 와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야.”
아빠와 딸을 제외한 모두가 동시에 몸을 움찔 떨었다. 슈롬벨 백작이 겉모습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64살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쟌느가 기가 찬 표정으로 말했다.
“겉모습이 30대 중반인데 무슨? 그리고 오러 마스터한테 노안이 온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서대륙의 퓨리온 공작도 팔팔하게 날아다닌다고 하던데 아빠가 벌써 노안이 왔으면 평생 못 이기겠네?”
“노안 따위는 근성으로 회복할 수 없지!”
“응. 힘내. 지도도 못 보는 전 용병단장 출신 아빠.”
슈롬벨 백작이 시무룩해져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이내 제론에게 가서 딸 때문에 속상하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저런. 속상하셨겠네요.”
제론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슈롬벨 백작의 등을 두드려줬다.
“자네, 좋은 남자로군. 내 딸과의 교제를 허락하겠네!”
“저런. 속상하셨겠네요.”
“하하하! 아이는 몇이나 계획하고 있는가?”
“저런. 속상하셨겠네요.”
“5명 정도가 제일 적당하지 않겠나? 아들 2명 딸 3명. 아니면 후계자 자리 때문에 다툴 수도 있으니 아들 1명에 딸 2명 혹은 3명도 괜찮아. 옛날에는 아들이 무조건 최고였는데 요즘에는 딸이…….”
제론은 기계처럼 ‘저런. 속상하셨겠네요.’라는 말만 반복하며 쟌느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지도와 주변 지형을 번갈아 확인하다가 제론이 다가오자 고개를 들고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슈롬벨 백작을 상대할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태도였다.
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래서 딸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저런. 속상하셨겠네요.”
제론은 여전히 기계적으로 말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가 요즘에는 아들보다는 딸이 좋다며 신나서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쪽으로 가면 돼?”
“으음. 저쪽으로 2시간만 더 이동하면 될 것 같아.”
쟌느가 가리킨 방향으로 이동했다. 약 2시간을 더 걷자 마을에 도착했다. ‘바헬의 사나이들’이 먼저 도착해서 텅 빈 마을을 정리해둔 상태였다.
“오! 형제들이여!”
“크하하하! 형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소?”
“오랜만이오, 형님!”
슈롬벨 백작과 ‘바헬의 사나이들’은 뜨거운 포옹을 했다.
‘바헬의 사나이들’은 전부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사내들이었다. 짧게 잘린 잔디 같은 수염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실력은 확인하지 않아도 몸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기세로 알 수 있었다. 전부 뛰어난 전사들이었다.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아문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상처가 몸에 새겨져 있었다.
“으하하!”
“크할할할!”
저러다가 숨이 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크게 웃던 그들은 곧 제론과 그의 일행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슈롬벨 백작은 씨익 웃으며 제론과 그의 일행을 소개했다.
“이쪽은…….”
“오오!”
“그리고, 이쪽은…….”
“오오!”
일행을 한 명씩 소개할 때마다 반응이 꽤나 격렬했다. 마지막으로 쟌느를 소개할 차례가 되자 ‘바헬의 사나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처음 봤는데 처음 본 것 같지 않은 위화감이 들기 때문이었다.
“……내 딸이다.”
“누구? 형님 딸이라고?”
“설마 그 꼬맹이?”
“세상에! 맙소사!”
“어렸을 때는 귀엽긴 했는데 형님의 피가 섞였다면 저런 외모가 나올 리가 없는데?”
모두가 슈롬벨 백작과 쟌느를 번갈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야, 이 자식들아! 내가 뭐 어때서!”
“형님. 양심이 있다면 조카한테 사과하십시오.”
“맞아. 딸로 태어났는데 형님 닮았으면 진짜…… 어휴. 나였으면 칼로 찔렀다. 진짜.”
쟌느가 대화를 듣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삼촌들이 알고 보니 좋은 분들이었네요.”
“…….”
제론과 나머지 일행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한 차례 거한 환영식이 끝났다.
멀쩡한 집에 짐을 풀고 다시 모였다.
“겉보기에는 비실한데, 그렇게 세다고?”
“저래 보여도 오러 마스터야. 너희들이 몽땅 덤벼도 못 이겨.”
슈롬벨 백작이 킬킬 웃으며 말하자 ‘바헬의 사나이들’이 에르딘을 빤히 쳐다봤다.
실제로는 그들보다 강할지도 모르겠지만 겉모습이 워낙 우락부락한 근육질이라서 그런지 에르딘은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성기사들은?”
“아직 도착 안 했소.”
‘바헬의 사나이들’ 중 한 명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늦어도 밤이나 내일까지 합류하기로 했으니까 뭐. 아무튼, ‘바헬의 사나이들’이 다시 뭉쳤군. 감회가 참 새로워.”
“아 참. 우리 용병단 이름 바꾼 지 오래됐어.”
“뭐? ‘바헬의 사나이들’이 아니라고? 왜?!”
“왜긴 왜야? 용병단장인 형님이 나가서 그런 거잖소!”
“끙.”
슈롬벨 백작은 그 말에 입이 다물어졌다.
용병단을 이끌던 단장이 귀족 가문 여식과 결혼하게 되었다며 용병단을 탈퇴했으니 해산이 되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래도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이름만 바꾼 걸 보니 그들의 우락부락한 근육처럼 엄청나게 진한 동료애로 뭉쳐진 사이라는 걸 증명한 셈이다.
“용병단 이름은 뭐냐?”
“‘용감한 사나이들’!”
“‘바헬의 사나이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제론이 중얼거리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밤이 되자 마을로 다가오는 무리가 있었다.
적이 아니었다.
달빛에 번쩍거리는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치고 있는 성기사단이었다. 제1성검으로 보이는 남자가 성기사단을 멈추고 앞으로 나왔다. 슈롬벨 백작도 앞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쳤다.
동시에 뻗어진 손.
굳게 잡고 악수를 나눈다.
“이걸로 빚은 갚은 겁니다.”
“물론이오.”
제1성검이 손짓으로 성기사단을 움직였다. 마을로 그들이 들어섰다.
‘용감한 사나이들’은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성기사단을 보며 호승심을 드러냈다.
에르딘과 다르게 겉모습에서부터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쓰읍.”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하네.”
“강하겠지?”
“당연하겠지. 네놈은 칼 한 번 받아내지 못하고 당할 거야.”
“네. 다음 자기소개.”
‘용감한 사나이들’이 군침을 흘리는 사이 성기사단이 짐을 풀고 왔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제1성검이 투구를 벗자 얼굴의 상처가 달빛에 번들거렸다.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며칠 뒤 야만족 토벌 출병식이 시작되오. 야만족들이 그 낌새를 놓칠 리가 없겠지. 아마 그때부터 움직일 것이오. 우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본진을 칠 예정이오.”
“만약 본진에 야만족이 전력을 유지한 채 그대로 잔류했다면 어떡할 겁니까?”
“그럴 일은 없소.”
“……?”
“출병식과 동시에 놈들의 공간이동장치가 있는 모든 장소에 총공격이 펼쳐질 것이오. 놈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보낼 테니…….”
“우리는 본진에 남아 있는 모든 야만족을 척살하면 되는 것이로군.”
슈롬벨 백작이 서슬 퍼런 미소를 지었다.
* * *
야만족 토벌 출병식이 시작되었다. 슈롬벨 백작의 말처럼 야만족의 공간이동장치-뱀의 굴이 설치된 모든 장소를 동시에 공격했다.
야만족은 토벌대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토벌대는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일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라고!”
야만족 남자는 뱀의 굴을 지키기 위해 야만족을 보냈다.
멀리서 본진을 지켜보던 제론이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이 기회인 것 같은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