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26)
제 226화
226화
야만족 토벌이 끝났다. 북대륙은 평화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일의 끝은 아니었다. 야만족의 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것을 수습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제론과 그의 일행은 제외되었다. 공을 훔치거나 북대륙인이 아니어서 따돌리는 것이 아니었다. 타호른 왕국 왕실에서 그들을 초청했기 때문이었다.
슈롬벨 백작이 거대한 마차 안에서 몸을 눕힌 채 말했다.
“요즘 따라 몸과 마음이 가볍군. 군단장직이 없어서 그런가?”
“언제는 야만족의 침략을 막는 일이 명예롭고 영광된 사명이라며 집을 휙 나가놓고 무슨!”
쟌느가 옆에서 투덜거렸지만 슈롬벨 백작은 능글맞게 웃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거부당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진심으로 미워했다면 이렇게 얼굴조차 마주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다니라는 말에도 바로 질색하며 손사래 쳤으리라.
“그런데 딸아.”
“왜?”
“너 엄마한테 다녀오긴 했니?”
“…….”
“아빠나 딸이나 똑같구나.”
슈롬벨 백작이 비웃으며 말하자 쟌느가 얼굴을 구겼다.
제론은 다정한(?) 부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낄낄 웃었다.
“제론 님도 만만치 않은 거 아시죠?”
“야! 너는 뭐 다를 거 같아?”
에르딘이 눈을 깜빡거리다가 말했다.
“저는 엄마가 돌아가셨는데요?”
“……미안하다.”
쉽게 말하기 힘든 주제를 언급하니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차마 패드립은 칠 자신이 없던 제론은 순순히 사과를 하며 물러났다.
로건이 멍한 표정으로 에르딘을 보다가 말했다.
“에르딘 님도 평범한 사고방식을 갖고 계시지는 않는군요.”
“네? 제가요? 에이!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저기 봐요. 저기. 저 인간에 비하면 전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이에요.”
에르딘이 가리킨 사람은 제론이었다. 제론은 인상을 구기며 에르딘을 쳐다봤다.
“어디까지나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는 건 상대적이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면 에르딘 님 역시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 물론 저 역시 정상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겠지만요. 저는 제 자신을 예전부터 많이 고지식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겪은 일들 때문인지 담이 커진 탓인지 종종 무모한 행동을 하곤 하지요.”
“…….”
에르딘은 뜬금없는 로건의 자아 성찰에 침묵을 지켰다.
물론 반박을 할 생각도 했지만 논리에서 밀릴 것 같았다.
가끔씩 깜빡 잊곤 하지만 로건은 사제였다.
신성력을 사용해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신학과 학문을 공부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에르딘 역시 아카데미를 다니고 오른 왕국의 왕실에서 조기교육을 받았지만 사제들처럼 전문적으로 학문을 배우고 공부하지는 않았다.
‘질 싸움은 하지 말라고 했지.’
제론의 가르침이 이렇게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자네들은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중앙대륙으로 돌아가려고요.”
슈롬벨 백작의 질문에 제론이 대답했다.
정확하게는 남쪽으로 내려가며 아이오닉 교국을 들렀다가 갈 생각이었지만 자세한 경로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불필요한 대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흐음. 마음 같아서는 나도 가고 싶군.”
슈롬벨 백작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말처럼 마음만 그랬다. 그가 자리를 비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가벼운 예를 들면 야만족의 침공을 방어하는 설산이라든가, 아내의 원망이라든가 말이다.
혼잣말을 하는 슈롬벨 백작을 보던 제론이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집에 안 가봐도 돼?”
“어? 나?”
쟌느가 육포를 꺼내서 입속으로 넣으려다가 갑자기 시선이 집중되자 당황했다. 다시 육포를 주머니에 넣으며 입맛을 쩝 다신 그녀가 말했다.
“나도 깜빡하고 있었어. 가보긴 해야 돼. 안 그러면 엄마가 나를 찾아와서 등짝을 찰싹찰싹 때릴 거야.”
제론은 종종 등짝 스매쉬를 날리던 엄마-아이리를 떠올렸다. 어느 집안이든 엄마라는 존재는 비슷한 것 같았다.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그럼 거길 먼저 가보자.”
“진짜?!”
“응. 우리도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으니까.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잖아?”
“역시 우리 자기야!”
쟌느가 기뻐하며 제론을 껴안자 슈롬벨 백작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감히 어디서!’라는 눈빛으로 제론을 쳐다본다. 제론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자신이 껴안은 것도 아니다.
“슈롬벨 백작님께서 보고 계시잖아. 떨어져.”
“무책임한 아빠는 무시해. 언제부터 가족을 아끼고 챙겼다고 신경 쓰는 거람.”
딸의 언어폭력에 엉망진창으로 당한 슈롬벨 백작이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 * *
제론과 그의 일행은 타호른 왕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왕실로 직행하자 작은 연회가 열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기 위한 그런 화려한 연회가 아니었다. 제론과 그의 일행들을 배 터지게 만들 정도로 많은 술과 음식이 준비된 파티였다.
또한 성대한 연회를 열 여유도 없었다. 타호른 왕국 곳곳이 야만족의 공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섣불리 그런 연회를 열었다가는 왕실에 대한 민심이 흔들린다.
작은 연회가 끝나고 적지 않은 보상을 받았다.
수천 골드에 달하는 금화와 텔레포트 게이트 이용권이었다.
파웰 자작의 일회성 사용권이 아닌 영구적인 이용권이었다.
물론 사정에 따라 이용이 제한될 수 있지만 특별한 일만 없다면 언제든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서 아이오닉 교국을 통과할 생각이었던 제론에게는 매우 훌륭한 보상이었다. 수천 골드의 금화가 안 훌륭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무조건 좋은 거니까.
“혹시나 북대륙에 올 일이 있다면 또 들러주시게. 귀한 손님으로서 언제나 반기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타호른 왕실의 무궁한 영광을 빌겠습니다.”
제론과 일행은 잠을 푹 잔 뒤 바로 젤타 왕국으로 이동했다.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어서 국경을 넘기까지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젤타 왕국의 영역으로 들어가자 슈롬벨 백작이 나섰다. 슈롬벨 백작의 인장으로 번거로운 절차를 전부 생략하며 통과했다.
그 뒤로는 젤타 왕국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했다.
‘정말로 편한 여행이네.’
제론이 멍한 표정으로 마차의 창문 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3일도 지나지 않아 젤타 왕국의 동쪽에 위치한 슈롬벨 백작령에 도착했다.
텔레포트 게이트는 정말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이동장치였다.
“후우. 오랜만에 내 영지로 돌아왔군.”
슈롬벨 백작이 마차 위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봤다. 낯익은 풍경이 보였다. 거의 1년 만이었다. 자신을 대신해서 대리 영주직을 맡고 있을 아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보고 싶소. 부인.”
“엄마한테 안 맞기를 기도하시는 게 낫지 않아?”
“끙.”
슈롬벨 백작이 쟌느의 비꼬는 질문에 앓는 소리를 냈다. 사실 그도 그것이 걱정이었다. 1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다. 그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아마도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내가 못 살아! 못 산다고!”
슈롬벨 백작성에 도착하자 건강한 중년여성이 롱 소드를 휘두르며 외쳤다. 슈롬벨 백작이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리곤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부인! 부인! 제발 진정하시오!”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진정하게 생겼냐고!”
“그, 그게 아니라 뒤에 손ㄴ…….”
“제발 좀 죽어서 돌아오지 왜 살아서 멀쩡히 돌아와!”
롱 소드가 빛살을 만들어냈다.
슈롬벨 백작에게 공격을 허용할 정도로 뛰어난 검술 실력과 오러 소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러 익스퍼트 중급에서 상급 사이는 되는 것 같았다.
제론과 그의 일행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쟌느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오냐! 오늘 나 죽고 너 죽자!”
“부인, 제발! 손님들이 계신단 말이오!”
“지금 손님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
“당연히 부인이 중요하오!”
“그럼 딱 가만히 서 있어!”
백작 부인이 슈롬벨 백작을 진짜로 죽일 것처럼 달려들었다.
제론은 힘겹게 입술을 뗐다.
“부부 사이가 좋으시군.”
“……?”
에르딘은 웬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제론을 쳐다봤다.
* * *
백작 부인이 흥분을 가라앉힌 것은 10분이 지난 뒤였다.
“딸.”
“네. 엄마.”
“앞으로.”
“앞으로!”
쟌느는 군인처럼 절도 있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백작 부인이 쟌느를 노려봤다. 곧 표정을 풀고 환하게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엄마!”
쟌느가 백작 부인의 품에 안겼다. 두 여성의 키와 체격이 비슷했다. 슈롬벨 백작의 피를 이어서 그런 줄 알았더니 모녀가 판박이로 닮은 것이었다.
“어디 다친 곳 없지?”
“응응! 꺅!”
백작 부인이 손바닥으로 쟌느의 등짝을 세게 쳤다.
슈롬벡 백작에게 한 것처럼 칼부림을 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제론과 일행들은 생각했다.
“손님들이 계시니까 이 정도로만 하겠어.”
“헤, 헤헤. 고마워. 엄마.”
쟌느의 표정이 안도감으로 물들었다.
백작 부인이 시선을 돌려 슈롬벨 백작을 응시했다.
슈롬벨 백작은 몸을 뻣뻣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당신!”
“네. 부인.”
차렷 자세를 한 그가 숨을 멈췄다. 긴장감으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허허.”
“지금 웃어?”
“흑흑.”
“지금 울어?”
“…….”
슈롬벨 백작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괴상한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렸다.
백작 부인이 그를 향해 콧방귀를 뀐 뒤 제론과 일행 앞으로 가서 우아하게 치맛단을 들었다.
“반가워요. 케이트 슈롬벨 백작 부인이에요.”
“바, 반갑습니다. 백작 부인. 제로니아 페리안이라고 합니다. 짧게 줄여서 제론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저는 에르딘 제이워커입니다.”
“저는 솔라를 모시고 있는 사제 로건이라고 합니다.”
“메이엔이에요.”
“호호. 모두 반가워요. 부족한 제 남편과 함께 다니시느라 많이 고생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그런 고생을 할 일이 없을 테니까요.”
마치 슈롬벨 백작의 생명은 오늘로써 끝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슈롬벨 백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쟌느가 어색하게 웃으며 엄마를 바라봤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
제론은 어색하게 웃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말하며 슈롬벨 백작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백작 부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기세만큼은 가히 오러 마스터도 찜 쪄 먹을 것처럼 강렬했다. 조심스럽게 쟌느에게 전음으로 백작 부인 앞에서는 자기라는 호칭을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쟌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 역시 자기의 ‘ㅈ’도 꺼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백작성에 짐을 푼 제론과 일행은 시녀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마쳤다. 그 후에는 백작 부인이 준비해준 예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가자 호화로운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음식을 먹으며 슈롬벨 백작이 그간 있었던 일을 천천히 풀었고, 백작 부인이 스테이크를 썰며 들었다. 스테이크를 써는 칼이 언제 그를 향해 날아가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속에 얹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