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27)
제 227화
227화
백작 부인이 스테이크를 썰던 칼-나이프를 탁! 소리가 나도록 세게 내려놓았다. 슈롬벨 백작이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이윽고 들려오는 짧은 격려.
“고생 많았어요.”
목소리에 담긴 따스한 감정으로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식사 분위기가 끝을 맺었다.
“후우.”
쟌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짧은 격려가 들려오기 전과 후의 온도 차이가 얼마나 크던지 식당의 차가웠던 공기가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백작 부인이 제론과 일행들에게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작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사실 그녀도 손님들이 앞에 있는 자리에서 슈롬벨 백작을 몰아붙이는 게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최대한 자제한 것이었다.
속에 쌓고 있던 화火가 곪을 지경까지 오니 계속 참다가는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이해해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을게요. 그저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길 매일매일 신께 기도하며 걱정하던 아내의 못난 모습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아닙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론이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일행들 역시 이해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 부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는지 내려놓았던 나이프를 들고 스테이크를 써는 모습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고맙네.’
슈롬벨 백작이 눈짓으로 제론과 일행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슈롬벨 백작의 이야기 이후로 쟌느가 여행담을 말했다. 누구와는 다르게 백작 부인과 종종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녀는 살기에 가까운 기운이나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이야기를 풀지 않고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파웰 자작령의 사건을 비롯해 위험한 사건 사고 현장에 있었다는 이야기에서는 백작 부인의 꾸짖는 듯한 시선을 피하지는 못했다.
“……했던 거예요.”
이야기를 마친 쟌느의 뺨에는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에휴.”
움찔.
백작 부인의 한숨에 부녀가 몸을 한 차례 떨었다.
본능에 각인된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그런 부녀를 물끄러미 바라본 백작 부인이 맥주를 마시는 것처럼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여간. 아빠나 딸이나 똑같다니까.”
“으음. 너무 심한 말이 아니오?”
“심하긴 심하지. 나랑 아빠랑 똑같다니. 빨리 사과해, 아빠.”
“응? 내가? 너한테?”
슈롬벨 백작이 눈을 깜빡깜빡했다. 쟌느의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곧 크게 웃고선 잔을 들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다시 시작될 파티의 신호였다.
먹고 마시며 즐겼다.
단순한 표현이었지만 지금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전부였다.
“크하하하! 술이 술술 들어가는구나! ……그런데 자네, 지금 뭐 하고 있는 겐가? 잔이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어서 비우지 않고 뭐 하나?!”
“배가 너무 부르…… 에잇, 모르겠다!”
에르딘이 잔을 들어 슈롬벨 백작의 잔과 부딪쳤다. 실전으로 단련된 복부의 근육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배가 튀어나왔다. 에르딘뿐만이 아니었다. 슈롬벨 백작과 쟌느, 로건, 그리고 메이엔까지 눈에 띌 정도로 배가 불룩해졌다.
다들 먹고 마시면서 신경이 쓰였는지 계속 자신의 배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제론 님은 왜 배가 그대로인 거예요?”
“응? 뭐가 그대로야? 봐봐. 귀엽게 툭 튀어나왔잖아.”
제론이 손바닥으로 조금, 그것도 아주 조금 튀어나온 배를 문질렀다. 에르딘은 빤히 제론의 배를 보다가 재차 물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배가 꺼지고 있어요.”
“그거야 내가 소화력이 좋아서 그렇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진짜였다.
제론의 에너지소비량은 말이라는 것으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래서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둬야 한다. 안 그러면 언제 배가 또 고파질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거 아시죠?”
“미안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설명이야.”
제론은 입을 크게 벌려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큰 고깃점을 들어 입속으로 쑤셔 넣었다.
“으음. 요즘 운동을 많이 했더니 단백질이 부족해. 너도 많이 먹어둬.”
“언제 또 열심히 뛰어다닐지 모르니까요?”
“그렇지. 정확해.”
에르딘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열심히 고기를 잘라 먹었다.
잠시 후 식사를 가장한 파티가 끝났다. 일행들은 전부 방으로 돌아갔다. 슈롬벨 백작과 백작 부인, 그리고 제론만 남았다. 물론 제론이 남는다는 사실이 신경 쓰여서 마지막까지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 한 사람이 있긴 했었다.
“무슨 일인데?”
“들어가 있으렴.”
“엄마.”
“들어가 있으래도!”
쟌느는 백작 부인의 단호한 목소리에 작게 입술을 깨문 뒤 돌아갔다. 이윽고 3명만 남게 되자 백작 부인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제 딸과 무슨 사이인지 들었어요.”
“부인. 우리이오. 우리.”
“좀 조용해 해요.”
찰싹.
슈롬벨 백작이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말을 정정하려다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맞았다. 그제야 어색하게 웃으며 제론과 시선을 마주친 뒤 스윽 고개를 돌렸다.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끼어들 생각도 없다는 뜻이었다.
“저는 부인의 따님과 아직 아무 관계가 아닙니다.”
“그렇군요. ‘아직’은 아니군요.”
“…….”
“제 딸을 잘 부탁해요.”
백작 부인이 일어나 깊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당황한 제론이 벌떡 일어나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백작 부인은 허리를 펴지 않은 채 재차 말했다.
“제 딸을 잘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백작 부인.”
슈롬벨 백작이 옆에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끙.’ 하고 앓는 소리를 흘렸다.
죄 많은 가장은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방으로 돌아간 제론에게 쟌느가 찾아왔다. 부모님과 무슨 대화를 나눴냐고 묻는 그녀에게 제론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쟌느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치자 물러났다. 그리곤 잠시 후 어디선가 고성이 들려왔다. 들어보니까 슈롬벨 백작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고성의 주인공은 물론 쟌느였다.
쟌느의 폭동은 백작 부인이 등장하자 진압되었다. 씩씩거리며 방 앞을 지나가는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튿날 슈롬벨 백작과 백작 부인의 배웅을 받고 떠났다.
“조심히 다녀오렴.”
“종종 편지라도 해라.”
쟌느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포옹해주며 눈물의 이별을 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씩씩거리더니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풀린 것이다.
‘참 단순해.’
저 단순함은 슈롬벨 백작을 닮은 것이 틀림없었다.
마차를 타고 하루를 이동하자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는 도시에 도착했다. 휴식하지 않고 바로 게이트를 이용했다. 마차를 타고 움직이니 다들 기운이 넘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나절을 더 움직여 국경을 통과했다. 중간에 국경경비대가 검문을 하겠다며 막아섰지만 신분검사를 하던 도중 제론과 일행을 알아보곤 바로 통과시켰다.
“야만족에게서 북대륙을 지켜주신 영웅들을 위해, 경례!”
“충!”
제론과 일행은 국경경비대의 경례를 받으며 유유히 떠났다.
초소를 통과하고 가까운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기를 2차례.
그렇게 북대륙의 마지막 여정지인 아이오닉 교국에 도착했다.
* * *
아이오닉 교국은 여느 국가와 많은 부분이 달랐다.
우선 작은 마을부터 큰 도시까지 건축물의 양식이 달랐다.
마을에서는 건축물의 양식을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었지만 큰 도시로 가면서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중세유럽과 고대 그리스의 차이였다.
아이오닉 교국의 건축물이 고대 그리스의 건축 양식과 100프로 똑같다는 말이 아니라 어느 정도 유사한 면이 있다는 뜻이었다.
‘신이 함께 살아가던 시절의 건축 양식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거라고 했지.’
그리스의 건축 양식이 특이한 것도 신의 인격화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다른 점은 복장이었다.
외지인을 제외한 모두가 사제를 떠올리게 만드는 복식의 옷을 입고 있었다.
듣기로는 사제에 대한 존경의 예우라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졌을 때 사제를 대신해서 희생하기 위해 만들어진 풍습의 잔재로 남겨진 옷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제가 굉장히 많았다.
얼마나 많냐면 10명 중 1명이 사제였다. 대부분이 수습 사제나 하급 사제이긴 했지만 간혹 중급 사제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교국의 땅을 밟는 것은 오랜만이군요.”
로건이 감회가 새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대 교황의 손자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교국을 떠나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에게는 교국이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후회하시나요?”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옛날의 저에게 지금 같은 용기가 있었다면 아마 도망치지 않았을 겁니다.”
이제는 되돌아가지 못할 옛날이었다.
“그래도 전 지금의 제가 좋습니다. 신의 사도를 모시고 대륙을 떠돌아다니는 것도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가끔 너무 힘들 때만 빼면……요.”
“당분간은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당분간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군요.”
로건이 쓴웃음을 지었다.
여행의 피로를 풀고 이튿날 바로 떠났다.
아이오닉 교국에도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었지만 다른 국가처럼 돈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주 오래전에는 마법이 사악한 악마의 힘이라고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오해가 풀렸지만 특별한 경우에만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오랜 전통처럼 남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십 며칠 후 교황청이 위치한 도시에 도착했다.
어떤 의미로는 성스럽게도 느껴지는 그런 새하얀 성벽이 제론과 일행을 맞이했다.
* * *
“정지.”
성문을 지키는 경비대-신병이 마차를 세웠다.
흔한 신분검사였다.
그러나 제론과 일행의 정체를 안 순간 흔하지 않은 신분검사가 되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신병들이 우르르 나와서 단체로 마차를 호위했다. 신분검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누구길래 신병들이 저러는 거야?”
“타국의 귀족이 아닐까?”
“귀족 나리였으면 마차 위에 인장이 박힌 깃발이 있었겠지!”
“그럼 고위 사제인가?”
“하이 프리스트-대주교도 저러지는 않을 텐데?”
사람들의 의문이 깊어졌지만 제론이 탄 마차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신병들의 호위를 받고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제론은 마차의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옆에서 걷는 신병을 불렀다.
“저기요?”
“예.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인지는 제가 묻고 싶은데…….”
“아. 교황청에서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제로니아 페리안과 그의 동료들이 성문을 통과하면 안전하게 호위해서 교황청으로 안내하라고 말입니다.”
“고마워요.”
제론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마차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