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28)
제 228화
228화
제론은 살짝 불편해졌다.
신병들이 교황청의 명령으로 호위하고 안내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반쯤 강제로 끌려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지금은 확실한 후자였다.
왜냐고?
자신과 일행의 의지가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번쯤은 교황청의 명령이 내려져서 자신들이 마차를 호위하고 안내해야 하는데 어떠냐며 의견을 물어봤어야 했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했다. 만약 불순한 의도가 느껴졌다면 아이오닉 교국이건 교황이건 간에 신경 쓰지 않고 뒤집어버렸을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순수한 제론의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내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니까.’
‘아론 다이트’라는 용병으로 활동하던 때와는 달랐다.
지금은 제로니아 페리안이라는 신분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횡포에 정식으로 항의를 하는 게 순서가 맞다. 뒷일은 그다음에 생각해야 한다. 만약 납득하지 못할 이유라면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제론이 팔짱을 끼고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마차는 교황청을 향해 열심히 굴러갔다. 도시 내부의 잘 닦인 도로를 중심으로 많은 시선이 모였다. 신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굴러가고 있는 마차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눈초리였다.
잠시 후 교황청에 도착했다.
교황청은 왕궁처럼 교국의 왕-대표자인 교황이 먹고 자는 등의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다른 왕국에는 없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바로 성역聖域의 존재였다.
성역이라는 단어의 뜻은 신성한 지역 혹은 구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황청의 성역은 진짜로 신성한 구역이었다.
‘아마……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했지.’
예전에 로건에게 들은 말을 상기시키며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성녀에게 받았던 배지를 꺼냈다. 교국의 통행증이라고 했다. 하지만 평범한 통행증은 아니었다. 다른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성녀와 교황을 바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
성녀가 이것을 준 사실을 잊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급박한 상황인가?’
교황청의 문이 열렸다. 마차를 호위하며 안내한 신병들이 물러났다. 마차는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성기사단이 문 안에서 길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몇 명이 낯익었다. 기억을 더듬자 야만족의 본진을 칠 때 본 적 있었던 얼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가장 마지막에 서 있는 제1성검이 보였다.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양의 신성력과 기세가 느껴졌다.
‘슈롬벨 백작님과 비슷한 수준으로 생각하면 되겠어.’
최대한 높게 잡은 것이다.
제론은 지금 교황청이 적으로 돌아섰을 경우의 가정을 세우고 전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신이라는 전력파악이 불가능한 존재가 있었지만 아무 때나 막 강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으로만 따로 분류해놨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오러 마스터 급 3명에 익스퍼트 107명의 전력인가?’
병사-신병은 전력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현명한 지휘관이라면 제론과 일행의 전력을 두 눈으로 목격해놓고 칼질 한 번에 십수 명씩 쓸려나가는 병사들에게 달려들라고 지시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마차를 이용하지 못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제론과 일행이 마차에서 내렸다. 뒤에서 교황청의 문이 닫혔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제1성검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교황청 내부는 한산했다. 돌아다니는 사람은 풀 플레이트 아머로 중무장을 한 성기사와 정예신병들밖에 없었다. 또한 건물 속에서 느껴지는 기척도 몇 없었다. 교황청의 평소 모습을 알지 못하는 제론과 일행들은 한 차례 고개를 갸웃했지만 로건만은 유독 반응이 남달랐다.
“사제들이 너무 없습니다.”
“무슨 말이죠?”
“교황청은 일반 국가로 비교하면 왕궁입니다. 왕궁에는 실무자가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죠. 해가 떨어져 퇴근을 하더라도 당직을 서는 실무자는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어떻습니까?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대륙 곳곳에서 흘러들어오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사람도 없지요. 으음. 굳이 비유를 하자면…… 왕궁으로 치면 시종과 시녀가 없는 겁니다.”
“마지막 비유는 적절하지 않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요.”
로건이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제론은 그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다시 앞을 바라봤다. 제1성검이 기척을 살피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이쪽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표정이 야만족 본진을 칠 때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물론 이쪽을 적대시하거나 경계하지는 않았다.
교황청의 문이 열리기 전에 했던 생각이 다시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무슨 일이 생기긴 했군.’
짐작되는 건 있었다. 바로 야만족이었다. 젤타 왕국을 경유해서 아이오닉 교국으로 온 자신들과는 다르게 제1성검은 야만족의 일을 수습하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알아낸 중요한 사실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여러분들께만 허락된 시간과 공간입니다.”
“저 안에는 누가 있는 겁니까?”
제론이 거대한 문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1성검은 대답했다.
“교황께서. 그리고 성녀께서 계실 겁니다.”
* * *
슈롬벨 백작은 편지를 내려놓았다. 눈꼬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편지의 내용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백작 부인이 걱정스럽게 남편을 바라봤다.
야만족에게서 북대륙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연합군의 군단장으로서 집을 떠날 때도 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편지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참았다.
그런 부인에게 슈롬벨 백작이 말했다.
“백수가 되었소.”
“……백수요?”
백작 부인은 이해하지 못할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침착하게 되물었다.
여전히 백수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말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되물은 것이었다.
“야만의 땅이 사라졌다고 하오.”
“네? 그게 무슨……?”
“으음. 말 그대로라오. 야만의 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전언이오.”
슈롬벨 백작이 편지를 건네자 백작 부인이 받아서 읽었다.
남편의 말처럼 편지의 내용은 야만의 땅이 사라졌다는 내용뿐이었다. 더불어 설산의 눈 폭풍도 그쳤단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던 백작 부인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을 끝냈다.
“이제 밖으로 싸돌아다닐 일은 없겠네요.”
“……으음.”
슈롬벨 백작은 고혹적으로 빛나는 백작 부인의 시선을 피했다.
갑자기 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 * *
한편 제론과 일행은 교황과 성녀를 접견해 슈롬벨 백작의 편지와 똑같은 내용의 말을 듣고 있었다.
누구보다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쟌느였다.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그녀만 북대륙인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그녀에게 교황이 말했다.
“제1성검과 성기사단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이라오.”
“그렇다면 본래 야만의 땅이었던 곳에서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였다오.”
“야만의 땅이 사라지기 전에 일어난 현상이 있었습니까?”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하오. 설산의 경계병들이 그것을 증언했소.”
제론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대로 눈을 가린 성녀를 바라봤다. 그녀라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성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면 저희를 왜 여기까지 호위해서 안내하도록 지시하셨던 겁니까?”
“그대들은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오. 사라진 야만의 땅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공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도 하고…… 아무튼, 그 부분은 미안하게 되었소.”
교황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제론과 일행 모두가 담담하게 교황의 사과를 받았다. 제론은 몰라도 일행들이 그런 태도를 하고 있는 건 큰 발전이었다. 물론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교황의 사과를 받은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했을 테니 말이다.
“또한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었다오.”
“한 가지만요?”
“……생각해보니 한 가지가 아닌 것 같다오.”
교황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정정했다.
* * *
접견이 끝나고 성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성녀는 제론에게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대화를 하자고 요청해왔다. 무슨 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짐작이 되는 게 있었다. 일행들에게 쉬고 있으라며 말한 뒤 성녀를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성역이요.”
“……여전히 사교성이 없으신 것 같군요.”
성녀가 걸음을 멈추고 제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대로 가려져 있어서 어떤 눈초리로 쳐다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죽일 듯 노려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로 성역에 가는지 말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 정도는 먼저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요? 무슨 일로 성역에 가는 겁니까? 라고요.”
“제가 큰 오해를 했군요. 사교성이 없으신 게 아니라 많아지셨고, 많이 뻔뻔해지시기까지 했습니다.”
“하아.”
“그래도 옛날 같지는 않아서 좋네.”
“…….”
성녀는 옛 흑역사를 떠올리곤 발을 쿵쿵 구르며 걸어갔다.
성역은 누군가에게 특별히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역의 존재를 감지한 순간부터 꺼림칙한 감각이 발끝부터 솟아 올라왔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다.
본능을 갖추고 있는 생명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행동이었다. 물론 본능을 이겨낼 정도로 이성적이거나 자제력이 뛰어난 자라면 성역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 경우에 제론이 포함된다. 하지만 적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갈 생각이 없었다. 가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이 바로 그 특별한 경우라는 것이다.
“으음.”
“걱정하지 마세요.”
제론이 신음을 흘리며 고민하자 성녀가 손을 뻗어 어깨 위로 올렸다. 따스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이 흘러들어와 피부에 둘러졌다. 방수 처리 코팅을 한 것처럼 꺼림칙한 감각이 사라졌다.
“이건 뭡니까?”
“신력이에요.”
“신성과 신력은 무슨 차이가 있는 거죠?”
“저도 몰라요.”
“아, 그렇…….”
평범한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던 제론은 성녀의 까칠한 목소리에 말끝을 흐렸다. 아까 뭐라고 했더니 앙금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신성을 힘으로 발현하면 신력이겠지.’
신성력과 신력의 차이는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았다. 성역 안으로 들어가자 작고 하얀 방 가운데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독하게 이질적이었다. 성녀에게 이제 무엇을 하면 되냐고 물어보려던 제론은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라진 것은 그녀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조금 전까지 있던 공간이 아닌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뺨을 살짝 꼬집었다.
따가웠다.
“꿈은 아니군.”
“맞아요. 꿈이 아니에요.”
푸근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의자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던 것 기억하죠?”
“물론이죠.”
여인의 정체는 바로 루나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