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31)
제 231화
231화
“으음?”
쥬페토는 제론이 끼어들자 살짝 의아했으나, 곧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고선 넘어갔다.
“알프레드, 제론을 안내해줘서 고맙다네.”
“아닙니다. 제론 도련님을 모시게 되어서 기뻤을 따름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본분을 다하도록 물러나겠습니다.”
알프레드가 물러나자 쥬페토는 앞장서서 영주성으로 갔다.
제론의 옆으로 간 쟌느가 작게 속닥였다.
“고마워.”
“아냐. 나도 뭐라고 말하기 난처했거든. 아빠한테 안 좋은 이미지로 보이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제론이 무표정으로 말하며 곁눈질로 쳐다봤다.
쟌느의 낯빛이 살짝 창백해져 있었다.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여러 가지 볼꼴과 못 볼 꼴까지 다 본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고마워.”
쟌느가 팔 옷깃을 잡으며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옷깃이 잡혀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몸이 흠칫 떨리는 게 느껴진다. 뺨과 귓불이 빨개진다. 흔한 판타지 소설의 동정인 주인공처럼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착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빠 앞이라고 부끄러운가 보네.’
물론 다른 식으로 착각하긴 했다.
다른 의미로 동정인 주인공들처럼 눈치가 꽝인 제론이었다.
영주성으로 가며 쥬페토는 제론에게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을 물어봤다.
그로 인해 알게 된 점은 쥬페토가 예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내부 사정까지는 몰랐지만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라면 알지 못할 정보를 언급했다.
“그럼 앞으로 야만족의 침공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겠구나.”
“맞아요. 문제는 북대륙의 정세가 앞으로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죠.”
“흐음. 진지하게 고민을 할 필요가 있겠구나.”
……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대화를 이어갔지만, 북대륙이 피해를 수습하고 추스른 다음 다른 대륙으로 영토를 넓히기 위한 전쟁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음? 그건 무슨 말이냐?”
“야만족의 침공에는 놈들의 조력이 있었어요.”
‘놈들’이라고 했지만 어느 조직을 말하는 것인지 쥬페토는 알아들었다. 암중에서 대륙에 혼란을 일으킨 자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더욱 큰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움직일 거다. ……라고 이해하면 되겠군.”
“그렇죠.”
“동대륙에 티아맛Tiamat이 나타났다는 소식은 들었니?”
“티아맛이요? 아뇨. 듣지 못했어요.”
쥬페토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북대륙까지는 아직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구나. ……옛날에 수도 아카데미에 갑자기 나타났던 동대륙의 대검호를 기억하느냐?”
“시무르 칸이라면 기억해요.”
놈은 반쪽짜리 오러 마스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제법 흘렀으니 그가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라면 올바른 방향을 찾아서 수련했을 것이다. 반쪽이 아닌 진짜가 되기 위해 말이다.
아무튼, 시무르 칸의 앞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어떤 남자가 나타나 티아맛을 조종해 공격했고, 도시가 쑥대밭으로 변했으나 그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티아맛을 조종했던 남자를 놓쳤다는 것이다.
“……아마 놈들 중 하나일 거예요.”
“아무튼, 그런 일이 있어서 우리 왕국에서도 비상이 걸렸단다. 아무래도 오러 마스터를 노리고 공격했다고 판단해서 레바테인 공작에게…….”
“오른 왕국은 당분간 괜찮을 거예요.”
“……그건 무슨 말이냐?”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게요.”
“그래, 알겠다.”
부자父子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영주성에 도착했다. 일행들에게 방을 배정해주는 사이 제론은 아이리-엄마한테 갔다.
엄마는 티타임을 갖고 있었다. 하녀도 없이 혼자서 우아한 손짓과 함께 찻잎을 띄우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찻물을 우려낸다. 그걸 바라보며 반대편 의자에 앉던 제론이 생각했다.
‘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아티팩트로 주전자의 물을 끓여서 바로 붓는데, 저렇게 하면 차 맛이 쓰고 떨떠름해지기 때문에 잠깐 식혔다가 천천히 부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훈수 질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엄마의 잔잔한 바닷가 같은 표정 아래로 엄청난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잘못 말했다가는 태풍이 그대로 이쪽을 향해 거칠게 몰아칠 거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
“…….”
모자母子는 오랜 시간을 침묵했다. 아이리는 찻물을 우려내는 데 집중을 했고, 제론은 그런 엄마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오랜 침묵이 깨진 것은 아이리가 우려낸 찻물을 들이켠 순간이었다.
“……써.”
“엄마, 내가 할게요.”
제론이 말하자 엄마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네가 왜?’라는 표정이다. 뾰족한 가시 같은 게 눈빛에서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착각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엄마가 찻잔을 내려놓자 그것을 비우고 처음부터 천천히 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내가 왕년에 다도 좀 했지.’
한때 무림에서 다도의 1인자로 유명했던 다신茶神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은 적도 있었다.
다도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제론-유민현은 현대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무림과 서역을 돌아다니며 방법을 찾고 있던 도중이었고, 번번이 실패로 이어지자 점점 초조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도가 마음 수양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를 찾아가 가르침을 부탁했다.
다도 수업을 공짜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다신이 재물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돈을 싫어하거나 가난하게 사는 건 아니었으니까.
유민현은 소문처럼 많은 이득을 얻었다. 마음이 안정되었고 조금 더 침착해졌다. 큰 고마움을 느낀 그는 다신에게 적지 않은 재물과 몇 가지 부탁을 들어줬다.
그 이후로 다신에게 다도 수업을 받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오랜만에 다도를 하니까 좋네.’
게다가 근래에 겪은 사건이 한두 개였던가.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일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할 정도로 엄청난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체감되고 다도를 하며 마음이 여유를 되찾는다.
잔에 뜨거운 물을 채운다. 엄마가 찻물을 우려내는 사이 펄펄 끓었던 물이 식었지만 삼매진화를 일으켜 다시 끓였다.
잔이 따뜻해지자 물을 버리고 찻잎을 넣었다.
내공을 삼매진화의 역순으로 차갑게 변환시켜 펄펄 끓었던 주전자 속의 물을 살짝 식혔다. 그리곤 찻잎이 들어있는 잔에 천천히 넣었다.
3분 동안 찻잎을 우려내고 다른 찻잔에 찻물을 옮겼다.
“드세요.”
“……좋구나.”
엄마가 찻잔을 살짝 기울여 입에 적신 뒤 말한다.
동시에 눈빛에서 박혀 있던 가시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함께 왔다던 여식은 누구니?”
“어, 음.”
“네 아빠한테 다 들었단다.”
제론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하지 않자 엄마의 눈 모양이 가늘어졌다.
“엄마는 막내가 무척이나 소중하단다. 너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위험한 사고를 당한 건 아닐지, 매일 걱정하고 아무 일도 없이 항상 건강하라고 신께 기도를 올린단다.”
“하…… 하하.”
“웃어?”
“아닙니다. 어머니.”
제론이 바로 정색했다.
아이리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제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제 혼담이 오가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 얼마 전에 좋다는 답장도 왔단다.”
왕실의 인장이 찍혀 있는 편지를 슥 내민다.
읽어보라는 뜻이리라.
제론은 눈썹을 가운데로 좁히며 편지를 꺼내 읽었다. 미사여구가 화려하게 나열되어 있었지만 본 내용은 길지 않았다.
짧게 요약하자면,
아주 좋습니다! 만나도록 하죠!
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하지만 혼담의 대상은 페리안 자작 가문의 차남과 오른 왕국의 꽃이라고 불리는 카이야스 오른 압실론 1왕녀였다.
그러니까…… 제론과 카야였다.
“제가? 카야랑?”
제론은 편지에 찍혀 있는 왕실의 인장을 본 순간 예상하긴 했지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카야라면 맨날 흥! 흥! 거리던 꼬맹이였다. 아카데미를 마지막으로 본 적도 없었다.
“……설마 제가 정략결혼의 희생자로……!”
“앉아.”
“네. 어머니.”
경악한 표정으로 일어섰던 제론이 순순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절해도 된다.”
“그럼 거절하죠.”
“이유가 뭐니?”
“으음.”
제론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제일 먼저 쟌느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쟌느에게 이성적으로 호감을 느끼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하기 힘들다. 하지만 호감이 없는 거냐고 물어본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부분에서 두 가지 생각이 대립을 하게 된다.
‘어렵군.’
타인의 입장이 되면 쉽게 내릴 결론이 자신의 것이 되니까 힘들다. 이래서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이다.
“고민이 많나 보구나. 함께 온 여식…… 자이나르 슈롬벨이라고 했니? 그 여식이 마음속에 깊게 들어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맞니?”
“……부정할 수가 없네요. 맞아요. 조금 전에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는데 딱 어느 쪽이라고 확신이 안 들어요. 싫은 건 아닌데…… 결혼을 생각하면, 으음…… 이라는 느낌?”
“그래. 모두가 살아온 환경과 생각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어. 게다가 엄마나 아빠가 이런 인생을 살아왔다고 해서 우리 막내까지 똑같은 길을 걸으라고 말하는 건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엄마의 성의를 봐서라도 한번 만나 보려무나. 가볍게 차 한 잔 마시고 돌아와.”
제론은 곰곰이 생각하고 물었다.
“엄마나 아빠의 체면은요?”
“어떻게든 되겠지.”
살짝 당혹스러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부드럽게 웃어주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괜히 실소가 흘러나왔다.
“알겠어요. 차 한 잔 마시고 올게요. 그런데 날짜가 언제예요?”
“편지 뒷면에 적혀 있단다.”
제론이 편지를 뒤집자 또 다른 내용이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내일?”
* * *
덜컹.
마차가 돌조각을 밟고 작게 흔들렸다.
마부는 살짝 고개를 돌려 뒤의 창문을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창문을 통해 청순가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왕국의 꽃이라고 불리는 카이야스 오른 압실론 1왕녀.
바로 카야였다.
카야의 모습은 제론이 마지막으로 본 시점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우선 키가 많이 자라 170cm가 되었다.
실제로는 169.6cm라는 말도 있었지만 본인이 170cm라고 빠득빠득 우겨서 모두가 알겠다며 넘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또한 제론이 기억하던 그녀의 작고 가늘던 몸이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가야 할 곳은 들어간 모양새로 보기 좋게 변했다.
웬만한 성인 남성의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풍만해진 언덕과 복숭아처럼 탐스러워진 둔덕이 아름다운 드레스 안에 수줍게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아카데미 학생일 때는 포니테일을 항상 유지했지만 지금은 폭포수처럼 길게 흘러내렸으며, 머릿결이 비단처럼 곱기까지 했다.
괜히 왕국의 꽃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고 말하듯 남자들이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 된 것이다.
“……흥.”
창문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던 카야가 콧소리를 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