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32)
제 232화
232화
카야는 로얄가드 2명과 함께 페리안 자작령으로 향하고 있었다. 페리안 자작의 차남인 제론과의 혼담 때문이었다.
정확한 사실로 말하자면 혼담이 오가기 전의 상황이다. 애매모호한 ‘준’ 혼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 된 것은 카야의 영향이 컸다.
페리안 자작 부인인 아이리가 제론의 혼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부릅떴고, 아버지인 국왕을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당사자인 그녀와 국왕밖에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카론은 카야가 모종의 사고를 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가족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페리안 자작성이 있는 도시로 가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길어도 하루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작은, 아니 정정해서 엄청나게 큰 걱정이 있었다.
제론과의 마지막 만남이 아카데미 졸업식이었다는 것이다. 8년 동안 잘 자랐다지만 제론의 기억은 자신이 14살일 때에서 멈췄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야. 자신감을 가져. 내가 누구야? 오른 왕국의 꽃이라고.”
카야는 자신의 외모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안다.
주변에서 아름답다며 찬양하지 않아도 객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했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첫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소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녀의 첫사랑은 얼마나 더 오래 간다는 것일까?
자신감을 찾아가던 카야가 문득 과거의 제론을 떠올리곤 중얼거렸다.
“설마 취향이 이상한 건 아니겠지?”
아카데미에서 제론만큼 인기가 많은 사람은 없었다. 물론 카론도 나름 인기인이었지만 가족의 눈에는 부모가 아닌 이상 혈육이 아무리 잘생겨봐야 오크나 트롤이었다.
아무튼, 인기가 그렇게 많았는데 단 1번도 연애를 한 적이 없었다.
못난이 오빠야 1왕자로서 채신머리를 지켜야 해서 연애도 못 했다지만, 스켈레톤처럼 비실거리는 아이언하트 공작가 차남인 로한조차 연애를 시작해서 결혼까지 골인했는데도 말이다.
“혹시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소녀, 아니 소녀의 마음을 가진 여인은 자작성에 도착하기 전까지 엄청난 망상에 빠져 있었다.
* * *
쥬페토는 사용인들에게 평소보다 더욱 신경 써서 영주성과 저택을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몇 시간 뒤면 1왕녀-카야가 탄 마차가 도착한다. 막내아들-제론은 혼담이 아니라 간단하게 차와 식사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했지만 페리안 자작령의 영주로서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론!”
“예, 나으리.”
“정원을 정리해야 할 것 같으니 정원사를…….”
쥬페토는 저택을 돌아다니며 하인들에게 지시했다. 평소에는 잘 신경도 쓰지 않던 정원까지 정원사를 불러 손질하게 했다.
한편 그런 분위기를 느낀 쟌느가 살짝 초조해진 표정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1왕녀라고 했지?’
하루 동안 도시로 나가 수소문을 해본 결과 1왕녀-카야가 아름답기로는 왕국 제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왕국의 꽃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이니 굳이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외모가 엄청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긴장되지 않냐고 물어보면…… 솔직하게 말해서 부정할 수 없었다.
제론과 카야의 인연이 생각보다 깊었다.
전 대륙에 몇 없는 아카데미 중 한 곳이 오른 왕국에 있었다. 함께 아카데미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철없던 때라고 하지만 살을 비비며(?) 지내온 시간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다음 국왕이 될 왕세자와도 친하다고 들었다.
까놓고 말해서 절친이란다.
그런 절친이 옆에서 내 동생과 만나보는 건 어떠냐고 옆구리를 콕콕 찌르면 없던 흑심도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넌지시 제론에게 가서 1왕녀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뭐를 어떻게 생각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살짝 안도하기도 했다. 남자들은 은근히 단순해서 호감이나 흑심이 있었다면 깊게 고민을 하거나 대답을 피하며 그런 감정을 품고 있다고 티를 낸다. 하지만 제론은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카야라는 1왕녀를 이성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돼.’
여자들에게는 많은 무기가 있다.
가벼운 볼 터치나 바뀐 화장법,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말아서 내리고, 포니테일로 묶고, 몸짓과 손짓 등등 너무 많다.
게다가 어렸을 때가 마지막이라고 하니 특히나 갭 차이가 클 것이다.
“으으음.”
쟌느는 고민이 길어지면서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왕실의 꽃으로 곱게 자랐으니 자신처럼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지도 않았을 테고, 몸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들도 없이 깨끗한 피부를 자랑할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피부가 안 좋아진 거 같던데.”
북대륙에서 중앙대륙으로 온 탓일까?
물이 달라지자 피부에 트러블까지 생겼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로 올라서며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까칠까칠하다. 손끝에서 굳은살까지 느껴진다.
“나도 화장을 해볼까.”
이왕이면 머리도 곱게 땋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저 잠시 도시 좀 다녀올게요.”
“알겠습니다.”
로건에게 행적을 말해놓고 저택을 나갔다.
도시로 나가는 영주성의 성문에 도착한 순간 검문을 받고 있는 마차가 보였다.
쟌느는 1왕녀가 벌써 도착한 건지 긴장했다. 그리곤 마차에서 한 여인이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내리자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1왕녀가 갓난아이를 데리고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여인의 외모가 제론, 정확하게는 페리안 자작과 자작 부인을 많이 닮은 탓도 있었다. 그로 인해 여인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다른 귀족 가문으로 시집을 간 누나가 한 명 있다고 했다. 여인의 정체가 바로 그 누나-헤샤인 것이다. 곧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누구신가요?”
“저는 제론의 동료인 쟌느라고 해요. 언니를 뵈어요.”
쟌느는 반사적으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언니라는 말에 헤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동생의 친구로군요. 저는 헤샤라고 해요. 아시는 것 같지만 제론의 누나예요. 반가워요. 그런데 어디를 가시던 것 같던데 붙잡아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중요한 일도 아니었는걸요.”
“흐응. 혹시 어디를 가려고 한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헤샤가 쟌느의 옷차림을 훑어보고 물었다. 무례한 질문이 될 수도 있었지만 목적을 물어봐야 한다는 여자로서의 설명하기 어려운 직감이 발동했다.
“화장품을 좀 사고 싶어서 나가던 길이었어요.”
“어머.”
화장품을 산다는 건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싶다는 말이다.
역시 여자의 직감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저택에 있는 걸 사용하면 돼요.”
“그건…….”
“마침 잘 됐어요. 따라오세요.”
쟌느는 우물쭈물하더니 헤샤를 따라갔다. 그리곤 평소와 다르게 헤샤의 앞에서 기가 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헤샤의 무공이 대단해서는 아니었다.
로한과 결혼한 이후로 자연스럽게 무공을 수련할 기회가 줄어들어서 아직도 오러 익스퍼트 상급과 최상급 사이에서 머물러 있는 그녀였다.
단순한 무력만 비교하자면 쟌느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헤샤에게는 제론의 누나라는 직위(?)가 있었다.
쟌느가 무시하고 잘 보일 필요가 없는 대상이 아니라 잘 보여야만 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나 정말로 제론을 좋아하고 있구나.’
왠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언니가 예쁘셔서 그런지 아이도 엄청 귀엽고 예뻐요.”
“호호.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헤샤는 우아한 귀부인처럼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문 채 쪽쪽 빨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갓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쭈글쭈글하니 징그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보면 볼수록 그 감정이 커졌다. 자신이 어렸을 때도 엄마가 똑같이 여겼을 거라고 생각하니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몇 살이에요?”
“……이제 6개월 됐어요. 예정보다 몇 달 늦게 나와서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너무 건강해서 탈이에요. 새벽마다 매일 밥 달라고 울어대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니까요.”
헤샤는 마음속으로 정정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는 않겠지만 사랑스러운 마음과는 반대인 얄미움도 함께였다.
‘그래도 엄마는 네가 너무 예쁘고, 너무너무 소중하단다.’
얄밉지만 사랑스러운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자 칭얼거리며 오동통한 팔을 휘젓는다. 그 모습마저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이를 낳으면 어떤 기분이에요?”
“음.”
헤샤는 고민했다.
그리고.
“쟌느 양도 낳아보면 알게 될 거에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 * *
헤샤는 하인을 통해 아빠와 엄마한테 도착했다고 소식을 전달하고 자신의 방으로 쟌느를 데려갔다. 로한과 결혼하며 출가외인이 되었지만 아직 방은 그대로 있었다. 1년에 한두 번씩 온 탓도 있었지만 아빠 엄마가 보고 싶거나 쉬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언제든 오라며 남겨두신 것이다.
“아가씨.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유모. 아샤를 잠시 부탁해요.”
“호호. 알겠어요.”
헤샤는 자신의 아이-아샤를 유모에게 맡기고 화장대 앞에 쟌느를 앉혔다. 서랍에서 화장품과 화장도구를 꺼냈다.
“평소에 화장 잘 안 하죠?”
“어떻게 아셨어요?”
쟌느가 깜짝 놀라서 되묻자 헤샤는 그런 그녀를 귀엽게 바라봤다.
‘안 그렇게 보이는데 엄청 순수하네?’
딱 봐도 귀족 가문의 여식이었다. 귀족의 몸짓과 습관이 은은하게 남아 있다. 게다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아서 파티나 연회를 많이 다녔다면 보통 불여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몇 차례 반응을 지켜보니 정말로 들판에서 자란 거칠고 순수한 잡초(?)였다.
‘나쁘지 않네.’
아니.
나쁘지 않다는 정도가 아니다.
연회나 파티를 나가면 귀족 가문 여식들 여럿이 제론을 소개해달라며 들러붙는다. 외모가 뛰어난 여식들은 많지만 성격이나 평소 행실이 좋은 것(?)들은 거의 없다. 유부남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것을 자랑삼아 말하며, 힘 좋은 하인을 침대로 끌어들여 배 밑에 깔려서 비명을 지른다.
그런 것들이 풍기는 나쁜 느낌이 쟌느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제론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헤샤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1왕녀께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쟌느를 도와주고 싶어졌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는 좀 그러니까.’
1왕녀는 풀 메이크 업을 해 올 것이다.
그녀를 맞상대하려면 이쪽도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적어도 대등한 싸움을 해야 한다.
“……어떻게 알긴요? 피부가 좋으니까 딱 보면 알죠.”
“좋긴요. 많이 거칠어서 부끄러운걸요.”
“그럼 저를 믿고 맡기세요.”
“네?”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칼과 방패가 있어야 하지만 여자들의 싸움에서는 다른 것을 들어야 하는 법이에요.”
헤샤가 양손에 브러시를 들며 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