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34)
제 234화
234화
“……!”
쟌느는 카야의 위로 올라간 입꼬리를 발견했다. 이윽고 시선이 마주친다.
파직!
2명의 마법사가 서로를 향해 3서클 번개 마법 라이트닝 볼트를 캐스팅해서 날린 것처럼 따갑게 오가는 시선. 동시에 쟌느의 머릿속에서 그녀가 한 말이 무한 반복으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저랑 같이요.
-같이 수도에서 알콩달콩 살아요.
-아이는 몇 명이 좋을까요? 3명이면 적당하겠죠?
점점 내용이 처음과 변질되고 있었지만, 쟌느의 머릿속에서는 실제로 카야의 말이 저런 식으로 곡해되어 재생되고 있었다.
‘아주 손자 이름까지 짓지 그래?’
머리가 타들어 갈 것처럼 뜨거워진다. 분명 자신이 들으라고 한 말이다. 그러므로 명백한 도발이다. 감정을 흔들어 흥분하게 만들어서 제대로 된 판단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기책이다.
쟌느는 냉정해지자고 생각했다. 평소 다혈질적인 성격이 자신의 단점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흥분하면 진다. 카야와 단둘이서 있는 자리도 아니다. 절대로 추태를 보일 수 없었다.
쟌느가 여기서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 고민하려는 순간 에르딘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어? 수도요? 잘됐네요. 저도 집에 가야 할 일이 있…… 헙!”
“얌마.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는 말 못 들어봤냐?”
제론이 에르딘의 입을 막고 속삭였다. 녀석이 눈치 없게 끼어들 줄 몰랐다. 또 앉아 있는 위치가 멀었고 식탁을 피해서 움직여야 했기에 입을 막는 타이밍이 살짝 늦었다.
‘평소에는 눈치 빠른 녀석이 이런 일에는 꼭 저렇다니까.’
에르딘은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는지 안색을 살짝 하얗게 물들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내 쟌느와 카야의 눈치를 살펴보다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두 사람은 서로를 신경 쓰기 바빠 이쪽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제론이 에르딘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떼자 녀석이 말했다.
“……그런데 뭔가 억울하네요.”
“잉? 억울할 게 뭐 있어?”
“제론 님한테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치욕스러워서요.”
“……역시 너도 제정신은 아니야.”
“그런 주인님 밑에 있는데 제정신일 리가 없잖아요.”
에르딘이 팩트로 조지자 제론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찌그러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쁜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 덕분에 쟌느와 카야의 신경전이 종전을 고했기 때문이다.
손님으로 페리안 자작성에 왔는데 꼴불견인 모습-쥬페토와 아이리에게 점수를 깎일 테니까-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한 두 여인이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표정만 싹 바꿔 가식적인 보여주기 식의 미소를 지었다.
물론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두 여인이 말이라는 칼로 신경전이라는 전쟁을 펼칠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고 쥬페토와 아이리만 남았다.
“어떻게 보았소?”
“어려워요.”
주어가 빠진 대화였지만 오랜 시간 부부로 지내온 두 사람은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있었다.
“……중요한 건 제론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요.”
“부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소?”
“당사자의 마음이 배제된다면 정략결혼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하하. 항상 생각하지만 부인을 사랑한 것은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잘한 일이오.”
“두 번째? 첫 번째는 뭔가요?”
“첫 번째는 바로 당신을 만난 것이오.”
쥬페토가 아이리를 느끼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답하자 그녀는 고운 이마를 살짝 접더니 말했다.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죠?”
“……?”
“날이 따뜻해지고 있긴 하지만 정신줄을 놓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부인…… 아직 초봄이오.”
* * *
쥬페토는 자작성을 방문한 손님들이 있다고 해도 업무를 멀리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업무를 미뤘다가는 책상 위에 쌓일 서류 양이 산을 이룰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뒤적거렸다.
가장 먼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은 몬스터 토벌이었다.
이번 토벌은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기적인 몬스터 대이동으로 인한 토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원을 요청한다면 병력을 보내주긴 하겠지만 그들이 모여서 자작령까지 도착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미 몬스터들은 사라지고 없다.
한발 늦은 뒤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툭. 툭. 툭.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고민했다. 몬스터 토벌이라고 하지만 몬스터 대이동과 비교하면 규모가 우스울 정도로 작다. 하지만 병력의 피해는 확실하게 있을 것이다.
오러 마스터인 유한을 토벌대장으로 보내도 마찬가지다.
인구수가 적은 페리안 자작령에서 병력의 피해는 엄청난 손실이었다.
특히나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특화된 정예 병사들은 왕국 어디를 가더라도 십부장 내지 백부장 대우를 받을 정도로 능력이 좋다.
‘이럴 때마다 나도 결국은 귀족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군.’
병력의 피해를 자작령의 손실로 취급한다.
일종의 재산처럼 말이다.
쓴웃음을 지은 쥬페토가 다시 고민에 잠길 무렵 집무실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엄마가 차 마시면서 하라고 보내셨어요.”
제론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 책상 위에 찻잔을 내려놨다.
쥬페토가 고맙다고 말하며 찻잔을 기울여 마른 목을 적셨다.
찻잔을 내려놓는 순간 머릿속을 번쩍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막내야.”
“네?”
“너 요즘 할 일 없지?”
“할 일 많아요.”
제론은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에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수작이 통할 쥬페토가 아니었다.
“오? 유모는 심심해서 죽을 것 같다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다고 하던데?”
“칫. 스파이가 심어져 있을 줄이야.”
제론은 손발을 부들부들 떨었다. 유모에게 짙은 배신감을 느꼈다.
“마침 잘 됐다. 요즘 자작령이 몬스터로 골머리를 썩고 있단다. 네가 좀 처리해줬으면 좋겠는데, 어때?”
“공짜로요?”
제론이 엄지와 검지를 말아서 붙이곤 위아래로 흔들었다.
쥬페토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여행을 다녀오더니 많이 뻔뻔해졌구나. 아니, 원래 뻔뻔하긴 했지. 음. 아무튼, 내가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줬는데 그 정도 부탁도 못 들어주니?”
“제가 어렸을 적에 영지가 재정난으로 허덕일 때 아티팩트…….”
“허흠! 아들이 되어 가지고 아빠가 부탁 하나 하자는데!”
옛 부끄러운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쥬페토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제론이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런 부탁이라면 거절 안 하죠.”
“기사 4명과 병사 1,500명, 그리고 마법…….”
“괜찮아요. 저랑 일행들끼리 움직일게요.”
“너랑 일행들이라면…… 사제님도?”
“네. 5명이면 충분해요. 며칠 내로 몬스터 씨를 말릴 수 있어요. 그럼 당분간은 자작령에서 몬스터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할 거예요.”
“자신만만한가 보구나.”
“서대륙과 북대륙에서 있었던 일을 아시잖아요.”
“…….”
쥬페토는 무거워진 눈빛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그 순간 집무실 내부의 공기가 달라졌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기세가 쥬페토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며 갖게 된 힘이 아니었다.
쥬페토라는 사람이 가진 존재 자체의 기세였다.
하지만 제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제로니아 페리안으로 환생한 이후 겪은 일들뿐만이 아니라 마선이었던 유민현의 경험으로 저보다 더욱 무거운 기세를 받아본 적도 있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았다.
‘……어? 뭔가 내가 불효를 저지르는 기분이 드는데, 착각이겠지?’
갑자기 기분이 좀 찝찝해진 제론이었다.
“아무튼, 연세도 있으신데 이런 건 거둬들이세요. 그러다가 뼈 삭아요.”
“어, 음. 뼈가 삭는다는 말은 처음 듣는구나.”
“당연하죠. 제가 처음으로 한 말이니까요.”
“…….”
쥬페토는 헛웃음을 치며 기세를 거뒀다.
“5명으로 충분하다고 하니 알겠다. 하지만 유한 경은 함께 데리고 가려무나. 병사들은 부족할지 몰라도 그는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렇게 할게요.”
제론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유한과도 볼 일이 있었다. 이참에 전부 해결하면 된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카야는 언제 출발한대요?”
카야는 1왕녀였다.
언제까지 페리안 자작성에 머무를 수만 없다.
“음. 너랑 같이 돌아간다고 하시더구나.”
“그래도 괜찮아요?”
“국왕 전하께 허락을 받았다고 하시던데…… 자세한 건 나도 모르니까 정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려무나. 나는 더 이상 싸움에 끼어들기 싫으니까.”
“싸움?”
제론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곧 ‘아!’ 하면서 쥬페토가 말한 싸움이라는 말을 이해했다.
‘쟌느와 카야의 싸움을 말한 거구나.’
여자들의 싸움에 끼기 싫은 건 제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치를 안 본다고 하지만 안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일행들과 다녀올게요. 아 참. 언제 가면 돼요?”
“지금 바로도 되고, 오후나 내일도 돼.”
“그럼 지금 바로 갈게요. 준비물은…… 음식이 필요하니까 야전식으로 준비해주세요. 1시간, 아니 30분이면 되죠?”
야전식은 전쟁 중에 일반음식을 먹을 상황이 안 될 때를 위한 전투식량을 말한다. 몬스터의 잦은 출몰과 변방에 위치한 페리안 자작령에서는 인기 많게 팔리는 것이었다.
“그래. 일행들에게 잘 설명하는 것도 잊지 말고.”
“그리고, 저는 그렇다 쳐도 일행들한테는 적절한 포상금을 주는 건 잊지 마세요.”
“끙.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으니까 얼른 가봐라. 업무가 잔뜩 쌓여서 오늘도 야근해야 할 것 같으니까.”
쥬페토가 손을 휘젓자 제론은 집무실을 나갔다.
바로 일행들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일행들은 그렇지 않아도 너무 잘 먹고 잘 쉬어서 몸을 좀 풀고 싶었다며 좋아했다. 깜빡하고 포상금 이야기를 안 했지만 다들 신경을 안 쓰는 눈치였다. 어지간히 몸이 찌뿌둥했나 보다.
“제론 도련님, 조심히 다녀오셔야 해요.”
유모가 울먹이며 전투식량이 담긴 배낭을 건넸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제법 강해요.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정도는 아니에요.”
“그래도 이 유모는 늘 제론 도련님을 걱정하고 있답니다. 어디서 다치지는 않는지, 밥을 잘 먹고 다니는지, 위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매일 밤마다 신께 기도하고 있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레퍼토리였다.
제론은 유모를 다정하게 안아주며 달래준 뒤 자작성을 나섰다.
자작성 성문을 나가려는 순간 카야가 나타났다.
“왜 저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요?”
“어? 그야…….”
“정말 저질이야.”
제론이 변명을 하기도 전에 휙 등을 돌려서 간다.
긁적.
“아무래도 미움받은 거 같지?”
“미움받았다고 하기보다는…… 으음. 아니에요.”
에르딘이 눈치는 참 빠르지만 여심에는 쥐뿔도 관심이 없는 제론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 점점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군요.”
메이엔과 로건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하하호호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