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40)
제 240화
240화
“좋아요.”
메이란이 어깨를 으쓱했다. 시무르 칸의 고독함은 대륙에서도 유명했다. 이미 거절을 할 것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른 왕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정보는요?”
“……그건 어디서 들었지?”
시무르 칸의 기세가 변했다. 피부가 찌릿찌릿할 정도로 사납고 흉포해졌다.
메이란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우리 조직은 변수가 될 만한 모든 것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해요. 당신의 행적을 파악하는 건 기본이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도 알아내야만 속이 풀리죠. 당신이 ‘해가 저무는 밤’ 호텔에서 누군가와 싸웠고 패배했다는 건 오래전에 파악한 일이에요. 그리고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도 알아냈죠.”
“누군데?”
“미안하지만 그것을 알려주는 건 불가능해요. 제 목숨이 달린 문제거든요. 하지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시무르 칸께서 약속하신다면…… 알려드릴 수는 있어요.”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시무르 칸은 메이란의 목소리에 담긴 강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네.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요.”
“좋아.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주어를 비롯해 빠진 것이 많은 약속. 어디서 말장난을 하냐며 비웃고 베어내도 되지만 시무르 칸은 그러지 않았다. 메이란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이유 모를 초조와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재밌는 년.’
저런 약속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칼을 쥔 것은 이쪽이다. 말 그대로 목숨이 달렸으니까.
어쩌면 저런 말 자체가 거짓일지도 모르지만 저 년에게서 느껴지는 초조와 불안은 진짜였다.
“그래서 누구냐?”
“오른 왕국의 페리안 자작 가문 차남.”
시무르 칸의 이맛살이 접혔다. 불쾌하게 여기는 감정이 흘러나온다.
다시 한번 묻는다.
“틀림없겠지?”
“제 목을 걸어도 좋아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이내 시무르 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까 약속했던 것처럼 살려는 드리지.”
“호호. 고마워요.”
고혹적으로 웃던 메이란은 목 아래에서 검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검은 또 언제 치운 거야?’
등줄기가 땀으로 젖어 들기 시작했다. 시무르 칸이 역으로 골단과 티아맛을 해치운 것이 절대로 요행으로 벌어진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반대로 그를 찾아온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라면 서대륙의 퓨리온 공작이나 북대륙의 슈롬벨 백작과 비교해도 약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어.’
메이란은 엄청난 고양감에 젖어 들었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만으로도 아랫도리가 저릿해진다. 가빠지려는 숨결을 겨우 참아내며 시무르 칸에게 질문했다.
“서비스로 조직의 목적에 대해 알려줄게요.”
“조직을 배신하려는 건가?”
“아니요. 안타깝지만 저는 배신을 하지 못하는 몸이랍니다. 사악한 악당에게 붙잡힌 공주의 몸이거든요.”
“큭큭. 사악한 악당과 배를 붙이며 사는 마녀겠지.”
“호호. 저를 창부라고 생각하셔도 좋아요. 저는 제가 살길을 찾으려는 것일 뿐이니까요.”
시무르 칸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서 조직의 목적이 뭐지?”
“신화의 재림, 그리고 그 신화의 멸망!”
“……!”
* * *
이틀 뒤 비가 그쳤다. 땅이 빗물에 흠뻑 젖어 질퍽였다. 다행스럽게도 해가 쨍쨍 내리쫴서 금방 마를 것처럼 보였다.
제론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일이면 출발할 수 있겠군.”
예상은 적중했다.
그날 밤 쥬페토를 찾아간 카야는 이튿날 땅이 마른다면 왕실로 복귀하겠다고 전했고, 실제로 다음 날 땅이 마르자 복귀를 준비했다.
제론과 일행들도 수도로 향할 채비를 했다.
일행들이 함께 가는 이유도 있었다.
에르딘은 가족을 보러 가고 메이엔은 아카데미로 가서 선생님을 뵙고 싶다는 이유였다.
쟌느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제론이 가니까 같이 가는 거였다. 마지막으로 로건은 혼자 자작성에 남아도 할 게 없어서 따라간다고 했다.
그렇게 수도로 향하는 마차는 카야가 타고 왔던 1대가 아니라 제론과 일행들이 타고 가는 것까지 2대로 늘어났다.
출발할 시각이 되자 마부가 마차를 몰고 나타났다. 로얄가드 1명이 마부 옆에 앉고 나머지 1명은 카야와 함께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제론과 일행들이 탈 마차도 왔다. 그런데 마차를 끌고 온 마부가 마부석에서 내리더니 돌아갔다.
“저희 마부는요?”
“여기 있잖아.”
에르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제론이 그를 바라보며 대답하곤 마차로 올라탔다. 멍하니 제론의 대답을 해석하는 에르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쟌느와 메이엔, 로건도 뒤따라 차례대로 마차에 몸을 실었다.
곧 에르딘은 제론이 말한 마부가 자신임을 깨닫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마부석에 앉았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차가 출발했다. 자작성을 빠져나가 도시에 진입하자 속도를 줄였다. 병사들이 마차 길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마차 길이 쾌적해지자 속도를 높였다.
“마차를 타고 가는 건 오랜만이네.”
메이엔이 감상에 빠져 중얼거렸다. 도시의 성문을 빠져나가자 들판이 나타났다.
시야가 확 트이며 속까지 시원해진다. 몬스터 퇴치를 하고 다닐 때는 답답한 게 없었지만 성으로 돌아오자 속에 무언가 얹히기라도 한 것처럼 불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편해지면 안 되니까.’
메이엔은 그런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그녀의 사명 때문이었다. 마녀 일족을 멸망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스트랄과 미들어스가 나누어진 순간 마녀 일족의 운명이 정해졌으니까. 그러니까 그녀가 마녀 일족의 운명을 바꾸려는 행동은 아스트랄과 싸우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알았다면 미쳤다거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스트랄의 존재는 대륙에서 말하는 신과 악마였다.
영원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일개 필멸자가 싸움을 거는 건 맨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다. 하지만 메이엔은 가능성을 보았다.
바로 제론이었다.
그는 특이하고 특별한 존재였다. 소위 말하는 이레귤러였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운명에서는 벗어난 존재.
제론의 곁에 있으면 그녀 역시 운명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게 전부였다면 가능성이라는 희망적인 말로 포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악마와 대적했다. 악마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마魔에 속한 존재인 마족과는 달랐다. 신과 반대편에 서 있는 진짜 악마와 대적했다.
비록 패배하였지만 실낱같은 승리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때보다 더 강해진 지금은 어떨지 그녀도 쉽게 예측이 되지 않았다. 패배의 확률이 더욱 높았지만…… 글쎄? 어쩌면 베헤못을 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나 역시 불가능하지 않아.’
비록 자신에게서 가능성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타인을 통해 엿봤다.
‘힘을 길러야 해.’
마녀 일족이 뿌린 모든 씨앗을 거두고 싹을 틔운 뒤 신과 악마와 대적할 힘을 갖춘다. 메이엔이 제론과 함께 대륙을 여행하고 있는 이유였다.
그런 그녀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는 손길이 있었다.
“……사제님?”
“자매님의 일은 잘 풀릴 것입니다.”
“고마워요.”
메이엔은 로건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했다. 그가 신의 이름을 거들먹였다면 그랬을 터이나 온전히 진심만을 따스하게 전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는 무심코 웃고 말았다.
생각해봐라. 참으로 이상한 조합이다. 신을 믿고 따르는 사제와 마녀가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개가 봐도 어이없어서 웃을 일이었다.
그런 그녀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로건이 말했다.
“가끔씩 저는 생각합니다.”
“……?”
“과연 신께서는 정말로 인간을 아끼고 위하시는 것일까? ……라고 말입니다.”
“그건 생각이 아니라 의심이 아닌가요?”
메이엔은 묻고 나서 아차! 했다. 사제에게 신을 의심한다는 말은 곧 불신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을 따스하게 위로해준 로건한테 나쁜 말을 하고 말았다.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건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과 달랐다.
“맞습니다. 의심하는 겁니다. 과연 신의 저의가 무엇일지 저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예측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합니다. 경전에도 나와 있지요. ‘모든 것을 항상 의심하라.’라고 말입니다. 처음에는 그 구절을 저에게 다가오는 호의가 선善인지 악惡인지 구분하고 분간하라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신의 저의조차 의심하라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저는 당신의 신을 믿지 않습니다. 도리어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건…….”
메이엔은 ‘사제로서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물으려던 것을 참았다. 그가 이미 자신이 한 말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표정에서 무엇보다도 순수하고 신실하지만 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현자賢者의 지혜가 엿보였다.
“제가 믿는 것은 신이 아닌 선善입니다.”
“신이 아닌 선…….”
“과연 신께서 인간을 위하셨다면 이런 혼란이 닥쳐온 것을 방치하셨을까요? 절대로 아니었을 겁니다. 신과 우리는 다릅니다. 신의 말을 우리의 뜻대로 해석하면 안 되지요. 어쩌면 소수의 인간을 위해 다수의 인간을 무참히 살해하고 희생시킬 수도 있습니다.”
“…….”
“그래서 저는 제 눈으로 확인하려고 합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서 말이죠. 메이엔 자매님께서도 자신을 믿으며 당신의 신념을 확고하게 다지실…… 으음, 말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가르치려고 드는 것 같군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니에요. 좋은 말씀이셨어요.”
메이엔은 맑게 웃었다. 로건이 귓불을 붉히며 헛기침했다.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던 제론과 쟌느가 불편한 심정을 겨우 감췄다.
그때 마차를 몰고 있던 에르딘이 로건을 불렀다.
“로건 님.”
“네. 에르딘 형제님.”
“솔라께서 정말로 악마의 강림을 도우셨을까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건의 대답은 확고했다.
“솔라께서 당신의 아바타를 세상에 내리신 것은, 당신의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코 미들어스의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었지요. 그런 당신의 아바타에 베헤못과 같은 악마가 매개체로 강림을 했다는 것은 솔라께서 허락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솔라께서는 저희의 적인가요?”
에르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로건을 시험하는 질문이었다.
“아직 모릅니다.”
“…….”
“하지만 저희의 적이 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저희를 선택할 겁니다.”
로건은 말하며 담담하게 신께 기도를 올렸다.
‘부디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시기를.’
마차는 무거운 적막 속에서 달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