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53)
제 253화
253화
예전에 제론이 의식의 가속화는 주마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죽음에 이르기 직전이나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며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진짜 뜻은 그게 아니지만.’
정확하게는 무엇이 언뜻언뜻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쓰이기 나름인 것처럼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전혀 이해를 못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보이는 거였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적이 어디를 공격하려는 건지 보인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 적의 공격이 이미 도달한 장면이 보이는 거였다. 미래 예지가 아니다. 근육의 움직임, 호흡, 시선 등을 뇌가 받아들여 마치 이런 일이 생길 거라면서 환영을 보여준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처럼 보여.’
에르딘은 수십 명의 오크에게 둘러싸였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모든 공격이 다 보였다. 피하고 창으로 가슴을 꿰뚫고, 막고 무릎으로 턱을 박살 냈으며, 품속으로 파고들어 주먹으로 머리를 박살 냈다.
십여 명의 오크가 10초도 지나지 않아 작살 났다.
에르딘은 다음 상대를 탐색했다. 숨결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 정도 베스트 컨디션은 한 번도 없었다.
오크들이 겁을 먹은 것처럼 주춤거리자 에르딘은 포효하듯 외쳤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덤벼!”
“크롸라라라-!”
오크들은 언제 겁을 먹었냐며 배틀 크라이를 터트렸다. 그들의 기세가 다시금 거친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에르딘은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오크들의 기세를 받아들이며 한 줄기의 섬광이 되어 달려갔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존재했지만 오크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단순한 육체의 힘만으로도 최소 오러 유저가 오러를 사용하는 상태의 근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게다가 정체 모를 푸른 기운이 몸에 피어오른 뒤로는 근력이 강화되었고, 피부가 돌처럼 단단해졌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면 꽤나 애먹었을 만큼 까다로운 상대였을 것이다.
에르딘의 창이 오크의 단단한 피부를 두부처럼 푹푹 찔렀다. 오크들이 추수한 볏단처럼 픽픽 쓰러졌다.
그럼에도 그들의 피어오른 기세가 꺼질 줄 모르니, 에르딘은 오크의 투지에 감탄하며 내공을 더욱 세게 끌어올렸다.
파츠츠-!
뇌기가 함께 일어나며 에르딘의 몸을 둘러쌌다.
오크들이 송곳니를 날카롭게 드러내며 제 몸이 타죽을 것을 알지만 불을 향해 날아가는 불나방처럼 덤벼들었다.
그런 오크들의 공세가 멈춘 것은 다른 오크들보다 더욱 크고 흉포한 배틀 크라이가 터진 순간이었다.
크로로로로로로로-!
의식을 가속화시킨 에르딘의 집중력마저 깨트릴 정도로 거대하고 사나운 투기가 있었다.
에르딘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바라보자 다른 오크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큰 놈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저 녀석이다.’
놈이 앞으로 나오자 다른 오크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거나 옆으로 비켜난다.
오크들의 눈빛에서 호승심과 더불어 존경과 경외가 함께 느껴졌다.
‘어?’
호흡을 가다듬던 에르딘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놈은 다른 오크들에 비해 단순히 머리 하나만 더 큰 게 아니었다. 보통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송곳니가 겨우 보일 정도로 짧아야 하는데 손바닥 한 뼘만큼 길다.
‘하이High 오크!’
오크 중에서 1만 분의 1 확률로 태어나는 변종이다.
인간으로 치면 돌연변이나 다름없지만 오크의 경우에는 우수한 종자로서 훨씬 더 강인한 육체를 갖고 태어난다.
‘얼마나 강할까?’
에르딘은 몸이 달아올랐다. 하이 오크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다. 언뜻 슈롬벨 백작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이전에는 그와 100번을 싸운다면 전부 패배한다는 그림만 그려졌지만 지금은 살짝 달랐다. 뭐라고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 슈롬벨 백작을 떠오르게 만드는 저 하이 오크를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일까?’
모른다.
잔뜩 안달이 난 지금으로서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봐야 저 하이 오크와 싸우고 싶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아.”
창을 고쳐서 쥐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하이 오크와 4m 간격을 두고 멈춰 섰다.
놈 역시 더는 앞으로 나오지 않고 간격을 유지한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내디뎠다가는 에르딘의 제공권에 들어선다는 걸 안 것이다.
주황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갑자기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정말 살벌한 외모였다.
오크라는 종족 자체도 인간인 에르딘이 보기에 꽤나 무섭고 징그러운 외모인데 하이 오크는 그런 오크보다도 2배는 더 심했다.
“크르-! 위대한 전사. 네 이름이 무엇인가?”
놀랍게도 하이 오크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대륙 공용어였다.
대부분의 오크들이 대륙 공용어를 익히지 않아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입을 틀어막고 놀라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대륙 공용어가 제법 유창하군. 오크들은 대륙 공용어를 잘 외우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크르? 잘 외우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필요가 없어서 안 익히는 거다. 그런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서 좋을 건 없다.”
에르딘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
“……내 이름은 에르딘이다. 네 이름은?”
“대부족 카쿠른의 8번째 이빨 오라쿤이다.”
“8번째 이빨? 카쿠른에는 너보다 강한 오크가 7명이 더 있는 건가?”
“그렇다. 하지만 다른 부족을 포함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지 오라쿤도 알지 못한다.”
오라쿤은 작게 고개를 젓곤 몽둥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로 두껍고 긴 창을 에르딘에게 겨눴다. 전사로서 서로의 이름을 나누었으니 대화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에르딘 역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공의 흐름을 부드럽게 흘려보냈다.
다른 오크들과 싸우는 것이라면 내공의 소모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됐지만 오라쿤과는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오라쿤의 역량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금방 지쳐서 나가 떨어진다.
사실 지쳐 쓰러진다고 해도 제론이 어떻게든 뒷일을 책임지겠지만 오라쿤 같은 강자와 싸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컸다.
점점 더 강한 적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오라쿤이 그것의 첫 시작이다. 그래서 더욱 질 수 없었다. 고작 여기서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절망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에르딘이 마음을 다잡고 눈을 감고 뜬 순간 대결이 시작되었다.
오라쿤의 창이 대기를 가르며 쏘아졌다. 하이 오크의 육체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발리스타를 쏜 것처럼 대기가 찢겨져 나가는 파공성이 들려왔다. 완전히 마음을 다잡은 에르딘이 옅은 신음을 흘릴 정도였다.
‘힘은 이쪽이 밀릴 거야.’
내공을 전부 사용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사실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무모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생각이다.
‘이길 수 있어. 내 창술이라면.’
창술의 기본기술은 3가지다.
바로 란攔·나拿·찰扎.
란攔은 상대의 공격을 밖으로 눌러 막는다.
나拿는 상대의 공격을 안으로 눌러 막는다.
마지막 찰扎은 상대를 찔러 공격한다.
에르딘은 처음 창술을 배울 때 다른 것을 전부 제외하고 란·나·찰만 몇 달간 수련했다. 나중에 제론이 말하길 고작 몇 달 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일평생…… 그러니까 늙어 죽을 때까지 란·나·찰만 수련해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화려한 기술이 세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그랬지.’
에르딘이 그런 생각을 하며 창을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발리스타의 화살처럼 두껍고 긴 오라쿤의 창을 밖으로 밀어서 흘려보냈다.
오라쿤의 눈이 커졌다. 콧잔등이 씰룩거리는 게 당황했다는 증거였다.
호흡을 끊지 않고 손목을 비틀었다. 오라쿤의 몸이 작게 휘청거렸다. 동시에 창이 회전하며 찌르기 좋은 위치로 움직였다.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진각을 밟았다. 쿵- 바로 곧게 찌른다. 창이 섬전처럼 앞으로 뻗어 나간다.
하지만.
‘빗나간다.’
에르딘은 창이 오라쿤에게 닿기도 전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크오오오오!”
오라쿤은 포효하며 허리를 비튼다. 창이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고 스쳐서 지나갔다. 예상했던 바였다. 이윽고 회전력이 더해진 후려치기가 에르딘의 머리를 노렸다. 맞으면 머리가 박살 날 것이다.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의식의 가속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용하고 있더라도 예상하고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상대-오라쿤 역시 마스터 급의 강자였다. 어쩌면 대륙에서 공인한 56명의 오러 마스터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예측을 뛰어넘는 변수를 만들어 낼 힘이 있다.
‘……나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지.’
용형보를 펼친 순간 에르딘의 움직임이 변했다. 머리를 노리는 바리스타…… 아니, 창을 피하고 오라쿤의 등 뒤로 이동해서 공격했다. 섬전처럼 내질러진 창이 등을 찔렀다.
꽈득.
“……?”
소리가 이상했다. 창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막혔다. 단단한 그물에 조여지며 막힌 것처럼 말이다.
당혹감에 움직임이 잠깐 멈칫한 순간 오라쿤의 주먹이 안면을 가격했다.
“……크르?”
“헉! 헉!”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오라쿤.
에르딘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어느새 뒤로 물러나 있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정말로 맞았을 거야.’
방금 겪은 것은 찰나의 순간 의식이 가속화를 하며 본 환영이었다.
오라쿤의 주먹이 안면을 가격하는 걸 본 순간 운룡대구식을 펼쳐 뒤로 물러났고, 그로 인해 위기를 벗어났지만 자칫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숨이 거칠어졌다.
‘그런데 방금 내 찌르기를 막은 건 뭐였지?’
에르딘은 의문을 가졌다. 푸른 기운을 제외하면 오라쿤의 몸에는 투박한 가죽 갑옷만 걸쳐져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창강이 깃든 창날을 막았다.
오라쿤은 에르딘의 의문이 해결되길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았다.
“후! 하!”
배틀 크라이가 터져 나오며 에르딘의 몸이 움찔 떨렸다.
동시에 오라쿤의 주먹이 투석기의 바위처럼 날아갔다.
쾅-!
“크윽!”
에르딘은 창대를 눕혀 오라쿤의 주먹을 막았다. 하지만 압도적인 힘을 전부 막아내지는 못하고 몸이 멀리 나가떨어졌다.
콰드득!
얼마나 힘이 세던지 허리보다 두꺼운 나무를 부러트리고도 에르딘이 날아가는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등짝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에르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까득!
눈앞이 흐릿해지려고 하자 혀를 세게 깨물었다.
핏물이 흘러나오며 입 안을 적셨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든 에르딘은 공중에서 몸을 뒤집었고, 두 발로 다음에 부딪칠 예정이었던 나무를 발로 차며 오라쿤을 향해 다시금 몸을 날렸다.
“과연 위대한 전사로구나!”
오라쿤이 크게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