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54)
제 254화
254화
제론은 에르딘이 날뛰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녀석을 지켜봤다. 오라쿤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오래됐다. 처음부터 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 뒤에서 그런 기운을 팍팍 흘리고 있었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다.
“괜찮으려나?”
걱정해서 하는 혼잣말이 아니다. 에르딘이 오라쿤과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의문이었다. 에르딘을 가르친 제론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이길 수 있다.
녀석의 성취는 얕지 않다. 하지만 싸움과 관련되면 이상할 정도로 나약하고 소극적인 모습이 나타나서 위와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싸움을 싫어한다는 게 나쁜 건 아니야.’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제론이 이상하다고 하는 이유는 싸움을 일단 피하고 보려 하는 에르딘의 태도 때문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녀석의 모습을 생각하면 싸움을 피하려고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
그러나 곰곰이 잘 생각해보면 뺀질거리면서 일단 내빼고 본다. 일종의 반사적인 회피였다. 피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결국 포기하고 맞서 싸우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점점 더 강력한 적들이 나타날 거야.’
회피는 결국 잠깐의 평화를 즐기는 것에 불과했다.
영원히 도망치며 숨어서 살 생각이 아니라면 싸워야 한다.
‘그래야만 소중한 누군가를 지킬 수 있어.’
이번에도 회피하려고 했다면 단호하게 돌아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예정과 다른 상황이 펼쳐진 서대륙과 북대륙의 여정과는 다르게 남대륙은 위험할 것을 알고 가는 거니까 많은 각오가 필요했다. 단순히 제론 자신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많이는 바라지 않는다. 조금씩이라도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충분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에르딘을 지켜보던 제론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제론이 중얼거린 순간 에르딘이 오라쿤의 주먹을 막았으나 충격을 흘려보내지 못해 멀리 날아가서 나무를 부러트리고 있었다. 쟌느가 오크의 목덜미에 단검을 꽂아 넣고 돌아오던 도중 그의 혼잣말을 듣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흐응. 그렇다고 하기에는 많이 아파 보이는데?”
“……원래 어릴 때는 다치고 그러면서 크는 거야.”
“어릴 때?”
쟌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문득 제론의 나이가 떠오른다.
‘연하……였지?’
1살인가 2살 연하로 기억한다. 이윽고 제론과 에르딘이 같은 나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딴죽을 걸고 싶지는 않아서 대충 얼버무린다.
“으응. 그렇구나. 어릴 때는 그렇지, 뭐.”
뜨끔한 제론이 헛기침을 하며 파리를 내쫓듯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두 사람을 향해 달려오던 오크 5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뒤따라 달려오던 오크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응?”
제론이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오크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난다.
“뭐야, 너네 겁먹었냐?”
“취익-!”
대답 대신 돌아오는 짧은 콧소리.
언뜻 위협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제론은 그 콧소리에 담긴 두려움을 읽었다. 패배-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오크라고 들었는데 털끝 하나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건 포함되지 않았나 보다.
쟌느가 제론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고 묻는다.
“그럼 나는 저 녀석 맡으면 되는 거지?”
마물의 숲에 있는 하이 오크는 에르딘이 싸우는 오라쿤이 전부가 아니다. 또 다른 하이 오크가 제론의 강함을 알아차리곤 콧김을 취익- 취익-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 ‘저 녀석’이 바로 또 다른 하이 오크였다.
“흠.”
제론은 잠시 쟌느와 하이 오크를 번갈아 쳐다봤다. 두 명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으로 비교하려는 것이다. 이윽고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충분히 비벼볼 만하다는 대답이었다.
“그럼 뒷일을 부탁할게.”
쟌느가 찡긋- 윙크를 하고 하이 오크를 향해 달려갔다.
“크롸-!”
배틀 크라이가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통성명 따위는 하지 않았다. 품속에서 꺼내 든 단검 6자루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두 팔을 휘두르자 손가락 사이의 단검들이 모두 다른 궤적을 그리며 하이 오크를 향해 날아간다.
하이 오크가 거대한 도끼를 들고 풍차처럼 돌렸다.
단검들이 풍압에 빨려 들어간다.
‘통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어.’
쟌느는 달려가다가 발로 땅을 2번 찼다. 그녀의 몸이 사라지더니 하이 오크의 등 뒤에서 나타난다. 제론이 타호른 왕실의 보고에서 가지고 나와 선물한 블링크 부츠의 능력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하이 오크가 흠칫 놀라며 몸을 돌렸지만 목에 단검이 박히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
“칫. 얕네.”
즉사를 시키려고 했는데 단검이 절반도 파고들지 못했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기운과 돌처럼 단단해진 피부 때문이다.
빠르고 가벼운 발놀림으로 하이 오크와 거리를 벌린 그녀는 새로운 단검-블링크 대거를 꺼내 들었다. 던지면 최소 1m에서 최대 5m까지 블링크하고 나타나는 단검이다. 허를 찌르기 좋은 무기지만 저 하이 오크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이 오크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세는 최소한 자신 혹은 에르딘 이상이다. 물론 기세가 힘의 척도를 증명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잡기에 당할 만큼 수준이 낮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 정도에 당할 수준이었다면 방금 끝났지.’
목에 단검이 꽂히며 고통을 느꼈기 때문일까?
하이 오크는 전보다 더욱 거세게 푸른 기운을 뿜어내며 도끼를 높이 들고 노를 젓듯 크게 돌렸다. 잠깐 무슨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쟌느였지만 천천히 하이 오크를 중심으로 엄청난 바람이 몰아치자 재빨리 블링크 대거를 던졌다.
“크왁-!”
하이 오크는 블링크 대거가 깜빡인 순간 고함을 질렀고, 다시 모습을 나타낸 블링크 대거는 보이지 않는 힘에 맞고 튕겨 나갔다.
“하. 저건 또 무슨 능력이야?”
중얼거린 쟌느는 또다시 발로 땅을 2번 찼다. 하이 오크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목이 찔린 경험이 있던 하이 오크가 당황하지 않고 즉시 반응하며 쟌느가 나타난 곳으로 도끼를 바로 내려쳤다.
도끼가 머리를 쪼개기 직전 쟌느가 사라졌다.
블링크 부츠의 능력을 재사용한 것이다.
도끼는 쟌느의 머리를 쪼개는 대신 땅을 반으로 갈랐다.
쾅-!
“취익?”
하이 오크가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블링크 부츠의 능력이 곧바로 재사용이 가능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당황도 잠깐.
쟌느의 살기를 느낀 하이 오크는 몸을 두르고 있는 푸른 기운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단검이 공격하려던 부위를 정확하게 막았다.
“……!”
쟌느가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푸른 기운을 어느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오러와 비슷한 힘.’
아마도 오크만이 다루는 특별한 힘이라고 생각되었다.
단검을 회수하며 몸을 빙글- 돌려 발차기로 하이 오크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안타깝게도 실패했다. 자신의 발차기를 막은 주먹이 날아온다. 양팔을 교차하며 막는다. 오러를 둘렀지만 충격이 상쇄되지 않고 뼈를 시큰거리게 만든다. 동시에 몸이 붕 떠서 뒤로 날아간다.
‘아악!’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까 전에 에르딘이 왜 그런 꼴이 됐는지 알 것 같았다. 충격을 상쇄하거나 흘려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오러를 두르지 않았다면 팔이 부러지다 못해 끊어져서 그대로 몸을 터트렸을 것이다. 이런 괴력이라면 별다른 도리가 없다.
또한 블링크 부츠를 사용하면 쉽게 몸을 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용횟수가 바닥났다. 다시 마나가 충전될 때까지 사용하지 못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공중에서 몸을 틀어 균형을 맞춘 쟌느는 블링크 대거를 회수하며 생각했다. 나무를 발로 차서 앞으로 튕겨 나가 하이 오크를 향해 오러 구체를 만들어 날렸다.
‘상성이 좋지 않아.’
단검의 칼날은 길지 않다. 오크의 두꺼운 가죽과 근육을 뚫기 힘들다. 오러를 담는다면 가능하겠지만 푸른 기운으로 가죽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면 버거워진다.
게다가 눈앞의 오크는 평범한 오크가 아니라 하이 오크였다.
신체 능력이 비이상적으로 뛰어나고 푸른 기운을 한 곳에 집중시켜 강화를 할 수 있다.
‘오러 블레이드라면 베어낼 수 있어.’
만약 통하지 않는다면?
그럴 땐 어떡해야 할까?
쟌느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 가서 생각하면 돼.’
평범한 오크였다면 모를까 하이 오크를 상대로 어쭙잖은 가늠질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제론이나 에르딘처럼 기사나 전사 타입이 아니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암살자에 가깝다. 암살자는 일격에 적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그런 것이 가능한 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암살자로서는 실격이지만.’
쟌느가 피식 웃으며 하이 오크를 바라본다.
오러 구체를 주먹으로 쳐내는 모습이 보인다. 무식한 짓이지만 적의 사기를 꺾이게 만들기는 충분한 수법이다. 하지만 오크가 그런 잔머리를 굴리는 종족이 아님을 안다. 적을 앞에 두고 피하지 않는, 돌진밖에 할 줄 모르는 광전사Berserker가 바로 오크의 본질이다.
또다시 상성이 맞지 않다며 속으로 투덜거린 그녀가 하이 오크의 공격을 피하며 허벅지를 깊게 벴다.
머리를 짓이기려는 주먹을 피하며 종아리를 벴다.
다음은 발목. 그다음에는 팔목.
쟌느는 급소를 피해 천천히 하이 오크의 몸 곳곳에 칼자국을 남겼다.
“크륵!”
어느 순간 하이 오크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늦은 뒤였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풀썩- 무너져 내리자 자신의 발밑에 물웅덩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싸움이 이뤄지는 장소에는 물웅덩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취익- 거칠게 숨을 내쉬며 아래를 바라보니 물웅덩이의 정체가 자신의 녹색 피가 고인 피 웅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야? 이제 알아차린 거야?”
쟌느가 단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배시시 웃는다. 그녀는 하이 오크를 일격으로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천천히 숨통을 조여 갔다.
목숨과 직결된 곳을 노린다면 금방 눈치채거나 혹은 방어할 것이다. 아무리 멍청한 오크라도 그 정도 지능은 있다. 그래서 조금씩 말려 죽이기 위해 급소가 아닌 다른 부위를 노렸다.
하이 오크의 덩치가 크다는 점이 참 다행이고 좋았다.
베고 찌를 면적이 많았다.
트롤처럼 엄청난 재생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상처가 회복되는 속도보다 피를 흘리는 양이 더 많았다. 또한 피부의 재생은 빠를지언정 뼈와 뼈를 연결하는 인대나 근육과 뼈를 연결하는 힘줄을 재생시키는 건 느렸다.
“……라는 건데, 뭐 상관없으려나?”
쟌느는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서 하이 오크의 정수리에 꽂았다.
하이 오크의 눈빛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론이 혀를 내둘렀다.
‘앞으로 잘 해줘야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