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55)
제 255화
255화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제론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쟌느의 손을 잡고 밝게 웃자 그녀가 얼굴이 붉히며 시골 여인처럼 순박하게 배시시 웃는다.
이렇게 보면 예쁘고 참한데 하이 오크와 싸우던 모습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고 등골이 섬뜩해진다.
“내가 앞으로 잘 할게.”
“……?”
쟌느가 눈을 깜빡이며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는 실수를 저지른 제론은 내심 당황했지만 변명할 틈도 없이 덤벼드는 오크를 막기 위해 달려갔다.
“감히 누구를 노려!”
“자기?”
제론이 대답하지 않고 오크를 베어낸다. 긴장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거칠게 숨을 내쉬기까지 한다. 손가락 하나만 튕겨도 수십 명의 오크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이 말이다.
“자기야?”
“후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다친 곳은 없지?”
“하여간 재롱둥이라니까.”
피식 웃은 쟌느가 제론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두 사람이 애정 싸움을 하는 사이 에르딘과 오라쿤의 싸움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에르딘의 몰골이 꽤나 볼 만했다. 오라쿤과 끊임없이 접전을 벌인 탓에 내공으로 보호하는 가죽 갑옷이 반쯤 걸레가 되었고, 피부가 피멍 들고, 어떤 곳은 쥐어 뜯겨 나간 것처럼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외부의 상처보다 더욱 심각한 건 내부의 상처였다.
깊은 내상을 입었는지 얼굴이 거무죽죽했다.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장애가 남을 정도로 큰 상처가 없다는 게 다행이면서도 신기할 정도였다.
“승부를 보려나 보네.”
“괜찮은 건가?”
“안 괜찮으면 어쩌겠어.”
쟌느가 에르딘을 걱정했지만 제론은 무덤덤했다.
저 정도의 적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앞으로 맞닥트릴 적들과는 감히 대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싸움은 앞으로 벌어질 싸움의 가장 낮은 허들에 불과하다.
“그리고, 믿으니까.”
“오……?”
“왜 그런 눈으로 봐?”
“그런 낯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니까?”
제론은 헛기침을 하며 쟌느의 시선을 피했다. 메이엔과 로건의 상태를 확인하니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었다. 슬슬 존재감이 사라져가는 두 사람이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고 생각한 제론이 다시 에르딘을 바라보며 쟌느에게 묻는다.
“메이엔과 로건 님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글쎄. 나도 장담을 못 하겠어. 솔직히 두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공기가 좀 달달한 거 같으면서 쓰기도 하단 말이지.”
“그치? 나도 그런 느낌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됐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메이엔이 마음에 걸려. 아, 혹시나 오해할까 봐 말하지만 나쁜 쪽으로 걸린다는 건 아니야. 메이엔의 마음이 어떨지 모른다는 뜻이야. 아무래도 종족이 다르니까.”
“그래도 겉모습은 우리랑 차이가 없잖아?”
“그건 그래.”
에르딘이 오라쿤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뒤로 날아간 오라쿤은 잠시 동안 몸을 꿈틀대며 일어서지 못했고, 에르딘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창에 강기를 입히고 달려갔다.
“……하지만 겉모습은 같을지언정 속이 달라. 그게 조금 걱정이야.”
“으음. 오크와 트롤의 사랑 같다고 보면 되려나?”
“그건 비교가 너무 비약적이야. 그 정도 차이는 아니라고.”
제론이 헛웃음을 들이켰다. 아무리 그래도 오크와 트롤의 사랑은 좀 심했다.
‘잠깐. 둘 다 욕망대로 살아가니까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비슷하긴 하려나?’
메이엔과 로건은 욕망이 없거나 욕망을 자제하며 살아간다.
오크와 트롤의 사랑과 비교하면 정반대였다.
“……비약적이긴 하지만 다른 의미로 비슷하긴 하네.”
“흐응. 그래? 그럼 인간과 엘프의 사랑은 어때?”
크롸라라라-!
가공할 힘을 느낀 오라쿤이 힘겹게 일어나 배틀 크라이를 터트린다.
쟌느가 잠깐 눈살을 찌푸리며 오라쿤을 바라본다.
대화를 방해하니까 뿔난 거다.
“내가 엘프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흐응. 많이 힘들겠네. 그래도 응원은 해줘야지.”
“잘 할 거라고 생각해. 메이엔은 몰라도 로건 님은 믿음직하잖아.”
“사실 나도 그래.”
의견이 하나로 합쳐진 제론과 쟌느가 다시 에르딘의 싸움에 집중했다.
배틀 크라이를 터트린 오라쿤이 높게 뛰어 투석기의 바위처럼 낙하했다.
에르딘은 강기 막을 만들어서 오라쿤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주변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언제부터인가 제론과 쟌느처럼 관전자의 포지션이 된 오크들이 충격파를 피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녀석들의 대화가 꽤나 웃겨서 하마터면 배꼽을 잡을 뻔했다.
“취익! 오라쿤은 무식하다!”
“무식한 오라쿤! 3년 전에도 무식하더니 지금도 무식하다! 취익!”
“구루! 네 뒤에 흙더미가 파도처럼 몰려온다! 취익!”
“취익. 나는 이미 늦었다. 부족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카쿵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아다오. 부탁하…… 취이익-!”
가히 자연재해를 맞닥트린 수준의 반응들이다. 보다 못한 제론이 거대한 강기 막을 만들어서 오크들을 덮치려던 충격파와 흙더미 파도를 막아주자 그들이 머쓱해하며 고마워한다.
“취익. 위대한 전사. 고맙다. 이 은혜 잊지 않겠다.”
“맛있는 거 혼자 먹는다고 욕해서 미안하다. 취익!”
“위대한 전사여! 내 딸은 부족 제일 미녀다! 내 딸과……!”
“닥쳐라! 취익! 네 딸이 부족 제일 미녀라면 내 딸은 대륙 제일 미녀다!”
몇몇 오크들이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다. 물론 대륙 공용어가 아니라서 제론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말이다.
“뭐라는 거야?”
“고맙다는 거 아닐까?”
제론과 쟌느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크의 언어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인 순간이었다.
* * *
에르딘의 창이 오라쿤의 심장을 꿰뚫었다.
오라쿤은 두 눈을 부릅떴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위대한 전사와 싸울 기회를 주신 투신께 영광을.”
말을 마친 오라쿤이 축 늘어졌다.
“하아. 하아.”
에르딘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의 몸을 받았고 천천히 땅으로 눕혔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로 한 끗 차이였다. 단 한 번이라도 공격을 실패했다면 쓰러진 것은 오라쿤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그는 존중받아 마땅한 전사였다.
“저도 당신 같은 위대한 전사와 싸우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에르딘은 오라쿤을 향해 묵념했다. 어느새 주위가 적막으로 물들었다. 오크들이 투기를 가라앉힌 채 원을 그리며 서서 에르딘을 바라보다가 무기를 높게 들었다.
우-! 우-!
함성을 두 차례 지른 오크들이 길을 열었다.
제론과 일행들은 잠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기다렸다.
오크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대륙 공용어로 말했다.
“마물의 숲을 통과할 때까지 우리가 호위하겠다. 취익!”
“굳이 왜 그러는 거지?”
“전사의 의식을 통과한 위대한 전사들에게 하는 예의다.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취익.”
“그렇다고 하네.”
제론은 가늘게 뜬 눈으로 오크들을 바라봤다. 갑자기 공격한다거나 적진으로 데려가려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완전히 의심을 푼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괜찮을 것 같았다.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문제는 없지만.’
그렇게 제론과 일행들은 오크들의 호위를 받고 마물의 숲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공격해오는 몬스터들은 오크들이 전부 처리했다. 잠을 잘 때는 불편하게 야숙을 해야 했지만 경계와 보초도 전부 오크들이 알아서 해주니 나름 편했다. 이윽고 3일 뒤 마물의 숲을 완전히 벗어났다.
나름 정든 오크들과 이별의 인사를 나눈 뒤 남대륙으로 완전히 진입하기 위한 마지막 장벽, 넓은 강물을 건넜다.
그리고 며칠 뒤.
“……마을이다! 마을이에요! 제론 님!”
에르딘이 방방 뛰며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다들 며칠째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찝찝해하고 있던 터였다.
도시처럼 목욕탕이 있지는 않겠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물이야 데우면 되니까. 또한 딱딱한 땅바닥이 아니라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눕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덤으로 식사까지.
“목욕물! 침대! 식사!”
눈에서 광기마저 띤 에르딘이 마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고, 곧 입구에 도착해서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으며 외쳤다.
“어, 없어? 아무도 없어?! 어째서?!”
남대륙으로 와서 처음 도착한 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마을이었다.
멀리서 기감으로 마을을 미리 탐색한 제론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담담했지만, 다른 일행들 역시 에르딘처럼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마을을 찾아볼까?”
“지도에서는 이 주변에 마을이 이곳밖에 없었어. 다음 마을은 적어도 10일은 더 가야 나와.”
“저 마을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건가.”
쟌느가 꺼림칙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유령마을은 전쟁이나 자연재해, 고령화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사람이 살게 되지 않게 된 마을을 말한다.
단순히 그게 전부였다면 꺼림칙하지 않을 것이다.
“전염병이나 스펙터 때문에 사람들이 죽거나 도망친 걸지도 모른다는 거지?”
“응. 일단…… 여기서 보기에는 전염병은 아닌 것 같아. 아무 냄새도 안 나.”
“스펙터는 물리치면 되고.”
“그렇지?”
“그럼 들어가 보자. 혹시 모르니까 로건 님께서 신성 마법을 걸어주세요.”
“알겠습니다.”
갑자기 존재감이 생긴 로건은 일행들에게 사특한 존재에게서 영혼과 육신을 보호해주는 신성 마법을 걸었다. 메이엔도 마녀의 비술을 신성 마법과 충돌하지 않게 잘 걸어서 이중으로 보호했다.
“혹시 계신가요?”
에르딘이 제일 먼저 들어갔다.
평소였다면 겁을 먹어서 제론에게 선두를 양보했겠지만 마을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얼른 씻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누구 계시다면 말씀 좀 묻겠습니다!”
에르딘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하지만 흔한 쥐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전염병 같은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럼 저희가 집 안을 살펴보고 올 테니 두 분께서 우물이 있는지 확인 좀 해주세요.”
로건과 메이엔에게 우물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한 뒤 제론과 에르딘, 쟌느가 집 안을 살펴보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잠시 후 다시 모인 일행들은 확인한 바를 말했다.
“우물은 바로 떠서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합니다.”
“사람이 산 지 오래된 것 같아요.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어요.”
“적어도 몇 달은 넘은 것 같던데?”
“언데드 특유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어.”
종합한 결과 잠깐 머물렀다 떠나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들어가 각자 방에 짐을 풀었다. 집 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몰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침대가 문제였다.
“콜록! 콜록!”
하루라도 편안하게 자고 싶어서 매트리스를 털었는데 먼지가 엄청나게 뿜어져 나왔다.
“침대는 포기해야지.”
거칠게 기침하는 에르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론이 매트리스를 제자리로 돌려놨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