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58)
제 258화
258화
“좋아. 그럼 마지막 네 번째 방법을 말할게”
제론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손가락을 하나 더 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가락은 언제 폈…… 아니, 그보다 세 번째 방법이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세 번째가 마지막인 게 멋있잖아.”
“아…… 진짜.”
여전히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제론을 바라보며 ‘한 대 칠까?’라고 생각했던 에르딘이 가까스로 오므렸던 주먹을 폈다. 선빵을 치더라도 제론이 막고 바로 반격해서 역으로 처맞기 때문은 아니었다. 절대로 아니다.
‘아무튼 아니야.’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운 에르딘이 네 번째 방법이 뭐냐고 눈빛으로 물었다. 저 시건방진 눈을 찔러버릴까 잠깐 고민한 제론은 피식 웃으며 애교로 넘어가 주기로 했다.
“이 마을을 다스리는 나라의 왕궁으로 가서 묻는 거야.”
“야, 이 미친……!”
퍽-!
에르딘은 말을 끝까지 잇지도 못한 채 처맞고 기절했다.
“하여간 성격 하나는 끝내주게 더럽다니까.”
“자기 닮아서 그래.”
“내가 성격이 뭐 어때서?”
“자기도 아주 끝내주잖아. 하지만 에르딘처럼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이라는 차이가 있달까?”
쓰러진 채 눈을 허옇게 뒤집어 깐 에르딘을 향해 쟌느가 혀를 쯧쯧 찼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 제론이었지만 평소의 무신경함으로 넘어가며 일행들에게 각자 생각나는 다른 방안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일행들 역시 제론이 말한 네 가지 방법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네 가지 방법 중에서 뭐가 좋을지 각자 의견을 말해주세요.”
“저는 마탑을 찾아가서 묻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제일 먼저 메이엔이 말했다.
나름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마탑에서 마을이 이렇게 된 이유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왕실이나 영주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국가 외교 관계를 생각하면 건드려서 좋을 건 없어요. 또한 우리가 남대륙에서 활동할 때 그 지역의 영주나 왕실의 협조를 구할 일도 있을 텐데 그때마다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고요. 다른 왕국으로 지역이동을 하더라도 우리에 대한 공문을 보내서 방해할 수도 있어요. 최악의 경우에는 오크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왕국에서 우리를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조작해서 소문을 퍼트린다면…….”
“그 정도면 충분해요. 의견 고마워요.”
제론이 중간에 말을 끊자 메이엔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로건이 힐책하는 눈빛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끙. 로건 님은 다른 의견 있으신가요?”
“흐흠! 저는 신전을 찾아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요?”
“남대륙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가 상인과 용병, 모험가, 그리고 각 교단을 통해서 전해집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상인과 용병, 모험가 길드에 의뢰를 한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의뢰를 거절할 거라고 예상하셨지요. 그런데 저와 제론 님께서 가신다면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겁니다. 적어도 왜 유령마을이 된 곳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이유 정도는 확인이 가능하겠지요.”
“새로운 다섯 번째 방법이군요. 들어보니까 저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쟌느의 생각은 어때?”
“난 마탑이나 신전이나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해.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어.”
“그럼 마지막으로 에르…… 딘은 여전히 기절했네.”
제론이 에르딘을 흔들어 깨우려고 했다. 하지만 허옇게 뒤집어진 눈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손목을 잡고 내공을 흘려보내자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부르르- 떨더니 벌떡 일어났다.
“헉! 헉!”
“괜찮아?”
유일하게 에르딘을 걱정하는 사람, 아니 유령이 묻는다.
거칠게 숨을 내쉬던 에르딘이 말한다.
“……방금 검은 강 건너편에서 작은아버지가 손짓하는 걸 봤어요.”
“작은아버지라면 아직 살아 계시다고 하지 않았냐?”
“그러니까 더 섬뜩한 거예요.”
제론은 에르딘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네 의견은 어때?”
“무슨 의견이요?”
“아, 맞다. 너 기절해 있었지.”
제론은 에르딘이 기절해 있던 동안의 상황을 친절하게 말해줬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일행들이 쑥덕거렸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네요.”
“익숙해질 때가 되긴 했죠.”
“성격이 저렇게 좋은데 왜 아직까지도 혼자ㅅ…… 읍읍!”
쟌느가 재빨리 로건의 입을 막았다.
일행들이 나누는 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론의 설명을 전부 들은 에르딘이 골똘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제론 님 마음대로 하세요.”
“……?”
“어차피 제가 낸 의견은 제외하거나 반대로 하실 거잖아요. 그러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제론 님이 하자는 대로 할게요.”
“음. 저 정도면 매를 버는 것도 재능인 것 같ㅅ…… 읍읍!”
로건의 입이 또다시 쟌느의 손에 막혔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한다고?”
“네.”
“후회 안 하지?”
“아마 할 걸요?”
제론은 에르딘이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오늘은 그냥 넘어간다.”
“감사합니다.”
“후우. 아무튼, 의견이 반으로 갈렸으니 내 선택만 남았네.”
“두구두구두구두구!”
에르딘이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입으로 효과음을 냈다.
“신전을 먼저 가보고, 거기서도 모른다고 하면 마탑으로 가자.”
“……라고 합니다! 빠밤!”
삼도천 혹은 스틱스 강을 건널 뻔해서 그런지 에르딘이 꽤나 유쾌해졌다.
제론은 녀석에게 하루에 두 번이나 죽음을 체험하게 할 생각은 없어서 가만히 놔두기로 했다.
“그럼 로레인은 에르딘, 네가 책임지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쉬거나 자거나 합시다. 그럼 해산!”
“해산!”
“해…… 가 아니라 뭐라고요?”
에르딘을 제외한 제론과 일행들은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붙잡아보려고 한 에르딘이었지만, 로건마저 에르딘의 손을 피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체술이 언제 저렇게 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귀찮아?”
로레인이 분해하는 에르딘의 소매를 잡고 묻는다.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문제 될 건 없네. 나랑 놀아줘.”
에르딘은 서글프고 애처롭게 느껴지는 로레인의 눈빛에 미안해져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머리를 잘 말려서 그런지 비듬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로레인이 눈살을 찌푸린다.
“나 30분 뒤면 다시 유령으로 되돌아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응. 너 기절한 지 10분 정도 됐어.”
“좋아. 뭐 하고 놀까? 하고 싶은 거 있어?”
“……나 음식 먹어보고 싶어. 맛있는 음식이면 더 좋겠지만 네가 요리를 잘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아무거나 만들어줘.”
아까 식사를 할 때 접시 위에 앉아서 왜 방해를 하나 싶더니 자기도 먹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8년 동안 혼자였기까지 했으니까 더 그렇겠지.’
에르딘은 배려심이 없던 자신에 대해 반성했다.
그보다.
“나 요리 잘해. 맛있게 만들어줄게.”
“진짜?”
로레인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직 앳되지만 이런 작은 마을에서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예쁘장한 소녀였다.
에르딘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요리는 훌륭한 집사가 되기 위한 덕목 중 하나야.”
“집사? 귀족 나리를 모시던 거야?”
“응. 저 못돼 먹은 남……자아앜!”
어디선가 날아온 지풍이 에르딘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찔끔 나온 눈물을 닦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가 내가 모시는 사람이야.”
“아이코. 실수했네. 아빠가 귀족 나리들한테는 존댓말을 꼬박꼬박 붙여야 한다고 했는데.”
“너 제론 님한테 존댓말 했어.”
“아, 진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엄청 무서워하던데? 왜 그런 거야?”
“으음. 나도 잘 모르겠어. 이런 몸이 되니까 괜찮은데 아까 유령일 때는 귀족 나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뭐라고 해야 하지? 몸이 잔뜩 얼어버렸어. 가깝게 다가가는 것도 무섭고, 쳐다만 봐도 막 몸이 떨렸어.”
“사람 자체는 나쁘지만 나쁘지 않아.”
에르딘은 팔에 강기를 둘러 지풍을 쳐내며 끝까지 말을 이었다.
“나쁜데 나쁘지 않다는 건 뭐야?”
로레인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 * *
“…….”
멀리서 제론과 일행들이 있는 유령마을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신체구조는 사람과 동일했으나 눈이 곤충의 것처럼 겹눈이었으며, 품이 넓은 로브와 복면으로 두 눈을 제외하고 전부 가린 정체불명의 존재였다.
찌르르-.
정체불명의 존재가 몸을 꿈틀대더니 괴상한 소리를 냈다.
찌르르르-.
마치 신호를 주고받는 것처럼 괴상한 소리가 다른 곳에서도 났다.
곧 유령마을을 지켜보던 정체불명의 존재가 흠칫 놀라더니 땅속으로 꺼졌다.
제론이 정체불명의 존재가 있던 자리에 나타나 주변을 살펴봤다.
“쳇. 놓쳤나.”
땅속으로 꺼진 정체불명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아쉬워하더니 다시 유령마을로 돌아갔다.
잠시 후, 정체불명의 존재가 땅속에서 기어 나왔다.
찌르르-.
* * *
“흐에에에엥.”
로레인은 에르딘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며 질질 짰다.
질질 짰다고 표현한 이유는 정말로 질질 짰기 때문이었다.
꼴불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울면서 음식을 먹던 로레인이 에르딘의 손에서 손수건을 받고 코를 팽- 하고 풀었다.
“맛있어. 너무 맛있어. 흐에에에엥!”
“……으.”
에르딘이 엄지와 검지만 이용해서 손수건의 끝자락을 집어서 들었다. 빨면 괜찮겠지만 지금 당장은 들고 있기도 힘들 정도로 콧물로 아주 젖어 버렸다. 조심스럽게 한쪽으로 내려놓고 새로운 손수건을 꺼냈다. 그것 역시 콧물로 젖어버려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뻔했다.
정말로 다행인 건 더 닦을 콧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더 나올 콧물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처럼 몸이 생긴 거지?”
“몰라. 내가 한 거 아니야.”
“으음. 뭐 그건 나중에 묻기로 하고. 이제 몇 분 남았지?”
“5분 정도. 더 짧을 수도 있어.”
“뭐 하고 놀아줄까?”
“안아줘.”
“그러지 뭐. ……가 아니라! 어허! 나 그렇게 경박한 사람 아니야!”
“변태. 음탕해. 그냥 살포시 안아주라는 말이야. 사람의 품이 그리웠다구.”
“윽! 윽!”
에르딘은 화살이 가슴에 꽂힌 것처럼 휘청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다가가 로레인의 작은 몸을 안아줬다.
로레인은 에르딘이 안아주자 품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앗, 으, 앗?!’
에르딘은 당황했지만 로레인을 밀어내지 않고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로레인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유령이 되었네.
“…….”
-그래도 고마웠어.
에르딘은 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누구의 짓인지 몰라도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 *
로레인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을 풀고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에르딘은 직감으로 그 사실을 느꼈다.
이튿날 유령마을을 떠났다.
마을 입구를 벗어나 여러 차례 뒤를 돌아봤다.
“…….”
로레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낮이라서 나타나지 못하는 걸까?’
다음에 또 온다고, 그때까지 잘 있으라며 인사하고 싶었다.
에르딘이 작은 점으로 변해 완전히 사라지자 로레인이 나타났다.
-바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