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59)
제 259화
259화
“많이 서운하냐?”
“그냥 뭐…… 하루 봤는데 서운할 건 없죠.”
라고.
말한 에르딘이 계속 뒤를 돌아본다.
마을은 작은 점으로도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반나절을 꼬박 이동했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사부작사부작 걸어간 것도 아니고 메이엔의 사역마를 타고 이동했다. 중앙대륙과 남대륙의 경계 근처만 아니었다면 이미 다른 마을이나 도시에 도착한 지 오래다.
제론은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에르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사실 어젯밤에 우리를 훔쳐보던 놈들이 있었어.”
“……누구인가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론을 직시하며 에르딘이 묻는다.
‘예전이었다면 무슨 이유로 훔쳐봤냐고 물어봤을 덴데.’
제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싸움과 관련되면 나약하고 소극적인 모습만 나타나던 녀석이 조금은 성장했다는 거다. 지금 이 순간만 그런 것인지 진짜로 성장을 한 것인지 확신을 가지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로레인이 에르딘을 변하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어.’
사실 제론으로서는 헛웃음이 나와도 모자라지 않았다.
에르딘을 변화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는데 정작 엉뚱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때리고 질책하기보다는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계기를 갖는 건 어렵지만 마음을 다잡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법이니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나도 몰라. 놓쳤거든.”
“제론 님이 놓쳤다고요?”
에르딘의 눈이 가늘게 뜨여진다.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 아니다. 정체 모를 감시자가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어떤 놈들일까 생각하는 눈빛이다.
“기척을 숨기는 능력이 탁월해. 흔적도 거의 남지 않아서 추적도 못 했어. 쓰읍. 어떤 놈인지 몰라도 이런 적은 나도 처음이야.”
“조직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남대륙에서 오크를 들쑤셔서 움직이게 만든 놈들일지도 모르고.”
가능성은 두 가지다.
전자의 경우에는 오른 왕국한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약속을 깨는 게 아니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어디서부터 캐 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후자보다는 차라리 전자가 나은 상황.
‘남대륙으로 갈 일이 있다면 마이얀이라는 놈을 조심하라고 했었지.’
메이란은 제론과 일행들이 남대륙으로 갈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예상했다는 말이 맞으리라. 해서 정황상 마이얀이라는 자가 조직의 인물이었다.
위의 생각처럼 전자의 상황이라면 마이얀이라는 인물에 대해 파고들다 보면 유령마을과도 접점이 생길 것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막막한 상황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조직과 연관을 짓고 있었네.’
제론은 유령마을이 조직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빠트렸다. 하지만 상관없다. 연관이 있든 없든 에르딘의 성장을 위해 알아보고 해결할 것이다.
“다음 마을…… 아니, 도시로 바로 가자.”
“알겠어요.”
일반적으로 도시에는 교단의 신전이 있다. 도시 면적이 적을 경우에는 작은 건물에 교회라는 형태로나마 존재한다. 하지만 유령마을처럼 작은 마을에서는 사제의 얼굴은커녕 옷깃조차 찾을 수 없다. 설령 사제가 있더라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큰 도시로 가야 했다.
“가장 가까운 도시가 며칠 걸려?”
“7일 정도 더 가야 해.”
“자작성이 다음 도시에서 4일이라고 했나?”
“응.”
다음 도시까지 강행군을 하는 기준으로 7일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그 도시에서 4일을 더 강행군해야 한다.
자작성이 있는 도시까지 바로 가는 건 무리였다. 가까운 도시를 먼저 들르기로 했다. 몇 시간을 더 이동하자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서 천막을 쳤다.
아공간 주머니가 이럴 땐 참 편리했다.
무겁고 큰 배낭을 메고 다닐 필요가 없다.
“제론 님. 간이침대 좀 꺼내주세요.”
“어, 잠깐만.”
“제론 님. 간이식탁 좀 꺼내주세요.”
“어, 잠깐만.”
“제론 님. 간이의자 좀 꺼내주세요.”
“어, 잠……깐이 아니라! 아공간 주머니 줄 테니까 네가 갖고 있어. 아니지. 다 설치하고 돌려줘.”
“쳇.”
아공간 주머니를 준다는 말에 눈빛을 반짝이던 에르딘이 아쉬워하며 혀를 찬다.
‘저, 저, 탐욕스러운 자식.’
저러다가 배불뚝이 탈모 귀족이 되는 거다.
제론은 천막 주변으로 진법을 설치했다. 반경 100미터 밖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생명체를 탐지해서 신호를 보내는 마녀의 비술을 깔아뒀다. 평소였다면 진법을 설치하는 것으로 끝냈겠지만 유령마을에서 하루를 머무를 때 멀리서 지켜보던 놈이 또 나타날지도 모른다.
마녀의 비술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제론은 죽여 놨던 감각을 두통이 오지 않을 한계 내에서 최대한 일깨웠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유령마을에서도 감각을 조금 더 깨워놨다면 감시자들을 놓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아쉬움이 생겼지만, 실수는 한 번이면 충분했다. 이번에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안 자냐?”
“잠이 안 와요.”
에르딘이 천막 천장을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로레인 때문에 그래?”
“네.”
“그래. 너무 늦게 자지는 말고.”
“보통 이럴 때는 이유라도 묻는 게 예의 아닌가요?”
“넌 잠이 안 올지 몰라도 난 졸려. 잘 거야.”
이불을 이마까지 끌어올리며 제론이 말했다.
에르딘은 피식 웃고선 말했다.
“제론 님이 졸리다고요?”
“비웃냐?”
“비웃으면 처맞는데 설마요. 예전에 그러셨잖아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며칠 밤새도 쌩쌩하다고. 저도 안 졸린데 제론 님이 졸리면 어디가 아픈 거죠.”
그 ‘어디’가 머리라고 들리는 건 착각이 분명했다.
“그래. 그럼 예의상 물어봐 주마. 왜 로레인 때문에 잠이 안 와?”
“저도 모르겠어요.”
“죽고 싶냐?”
“그건 아니에요.”
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아무 생각이 없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다. 거기서 ‘네’라고 대답했으면 바로 모가지를 180도 돌려주려고 했는데 말이다.
“……불쌍하냐?”
“네. 불쌍해요. 그리고 안타까워요. 로레인을 저렇게 만든 놈들에게 화도 나요. 하지만 아무것도 못 하는 제 자신에게는 더 화가 나요.”
“…….”
“그 녀석. 맛있지도 않은 음식을 먹으면서 너무 맛있다고, 사람의 품이 그리웠다면서 고맙다고 말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불쌍하다고, 안타깝다고 느낀 제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웠어요.”
“…….”
“제론 님, 자요?”
“아니.”
“그렇구나.”
에르딘이 그 뒤로도 계속 무슨 말을 떠들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건 아니었다. 녀석이 원하는 건 들어주는 것이다. 제론은 녀석의 바람처럼 기억에는 담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천막을 걷고 다시 출발했다. 전날 밤의 하소연 때문인지 에르딘의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곤 했지만 미련이나 후회보다는 어떠한 각오를 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얘기를 해줘야 하나?’
제론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전날 밤 에르딘이 하소연한 이야기. 다른 일행들도 전부 들었다. 에르딘의 감각은 속일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제론까지 속이지는 못했다. 아침이 되자 다들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이동할 준비를 하면서도 에르딘의 눈치를 은근슬쩍 살핀다.
‘아니야. 알아서 뭐 좋을 게 있다고.’
말하면 흑역사를 만들었다면서 괴로워할 게 뻔했다.
이런 건 모르고 넘어가는 게 좋다.
이런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으며 가는 에르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배알이 꼴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말이다.
목적지인 도시에는 하루 일찍 도착했다.
몬스터나 도적의 습격 같은 방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은 아니지.’
남대륙은 V자 형태를 하고 있고 그 밑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펼쳐져 있어서 해양 몬스터와 해적의 습격이 잦았다.
내륙에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무척이나 평화로운 곳이다.
그게 몬스터나 도적의 습격이 없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오크가 용병으로 활동하며 몬스터와 도적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오크는 물과 배를 지독하게 싫어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오크들은 내륙에서만 활동하는데, 남대륙에서 가장 큰 문제인 해양 몬스터와 해적을 제외하면 남는 게 몬스터와 도적밖에 없었다.
마물의 숲에서 몬스터가 포화되어 다른 곳까지 피해를 끼치지 못한 이유 역시 오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오크가 전쟁을 일으켰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아빠가 모험가 길드에 의뢰해서 오크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때와 지금은 많은 시간 차이가 있다. 이미 전쟁이 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마물의 숲에서 오크가, 그것도 하이 오크라는 마스터 급 실력자가 있다는 건 중앙대륙에서 남대륙으로 넘어오는 병력이 있다면 막으라고 배치를 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것을 알아차렸어.’
정작 마물의 숲을 지키고 있는 오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이 오크가 왜 있냐고 물어봐도 다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냐며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되묻기만 했다.
‘하이 오크였다면 알고 있었을까?’
오라쿤과 이름 모를 하이 오크는 오크들 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대단한 전사였다. 조폭으로 비유하자면 중간보스나 행동대장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제론은 스스로의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을 내렸다.
‘아마 마물의 숲으로 들어오는 전사들과 싸우라는 식으로 명령을 받았을 거야.’
대충 생각을 정리한 제론이 도시의 성문을 통과할 차례가 되자 검문에 응했다.
“중앙대륙에서 왔다고?”
검문을 하던 병사들이 제론의 신분증을 보다가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특별한 의심이나 다른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중앙대륙에서 왔다는 사실 자체를 신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남대륙이 워낙 폐쇄적인 대륙이다 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실제로 중앙대륙이라는 말에 주변 모두가 제론과 일행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기 바빴다.
“중앙대륙에서 왔다고?”
“마물의 숲을 넘어온 건가?”
“에이. 설마. 멀리 경유해서 온 거겠지.”
“하지만 요즘 전쟁 때문에 배를 안 띄우고 있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에서 한 명의 말이 제론의 귀에 들려왔다.
‘전쟁이 벌어졌구나.’
중앙대륙과 남대륙의 경계에는 마물의 숲이 있고 넓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물의 숲을 통과하지 않고 남대륙으로 오려면 멀리 돌아서 강을 넘어와야 한다.
강을 넘으려면 배를 타야 하는 건 당연한 순서.
하지만 전쟁 때문에 배를 띄우지 않고 있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관심을 끌어버렸네.’
제론은 작게 혀를 찼다.
“무슨 목적으로 도시를 방문하신 겁니까?”
검문을 하던 병사들이 아까와 다르게 경계를 하며 묻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