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6)
제26화
26화
“그 형에 그 동생이라는 건가?”
“그렇겠지.”
“저 키와 덩치도 유전인가 보군.”
“그렇겠지.”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는 유한을 로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저게 유전으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란 말인가!
12살, 아니 넉넉잡아 13살로 보였다.
대리입학이 의심된다고 보고해서 다시 한번 조사를 해봐도 모자랄 판국이다. 그런데 기껏 하는 말이 ‘그렇겠지.’라고?
“이……!”
로쿤은 순간 유한에게 ‘너 제정신 맞냐?’라고 물어볼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이 야만스러운 북부대륙 출신의 기사는 한 번 기분이 상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주먹을 휘두를지도. 녀석과 싸워도 지지 않으리라 자신이 있지만 이길 자신도 없었다. 주먹 다툼을 한다면 그의 손해였다. 똑같이 징계를 받을 테니까.
“후우. 아무튼 가르시안 페리안의 동생이라면 앞으로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겠어. 페리안 남작가의 장녀인 헤이샤르 페리안처럼 특별한 구석이 있겠지. 네 생각은…….”
로쿤은 한참을 이어가다가 제론이 교실 밖으로 나가 산책하듯 뒷짐을 쥐고 걷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입학생들은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는데 혼자서 여유로웠다. 이건 또 참으로 기가 찼다. 겉모습은 소년인데 행동은 노인이다.
“…이거 애늙은이인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다.”
이번에는 야만스러운 북부대륙의 기사와 웬일로 마음이 맞았다.
‘나도 야만스럽다는 뜻이 아니고 뭐겠어?’
마음이 맞다는 사실에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다시 제론을 주시했다.
여유롭게 걷던 녀석이 숨어 있던 아카데미 관계자를 찾아내서 책을 요구하는 모습이 보였다. 숨바꼭질에서 술래가 숨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그딴 것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 처음부터 아카데미 관계자가 있는 위치를 알고 있었고, 그곳으로 간 느낌에 가까웠다.
“페리안 남작가에서 내려오는 오러 연공법을 익힌 건가?”
“아마도.”
유한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표정과는 달리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로쿤은 모르지만 아까 제론이 꼬맹이들을 부를 때 목소리에 오러가 담겨 있었다.
평범한 수법이 아니었다.
교실 사방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런 방식의 오러 사용법은 여러 전쟁 통을 겪어본 유한도 난생처음이었다.
‘게다가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두 명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 같기도 하고.’
이건 확실하지 않았다.
제론은 여러 차례 표정에서 짜증과 귀찮음을 드러냈다.
입학생들이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가 교실을 나가 이곳에서 구경을 하는 동안 제론이 한 번씩 슬쩍 곁눈질로 이쪽 방향을 쳐다봤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해도 됐다.
하지만 전쟁으로 극한까지 단련된 유한의 육감이 말해왔다.
자신의 시선을 느낀 것이라고!
‘나 역시 믿기 힘든데 이 녀석한테 말해봐야 소용없겠지.’
제론이 정말로 나이를 속이고 대리입학을 한 13살이라고 쳐도, 저 나이에 기척을 숨긴 오러 익스퍼트 상급 기사의 시선을 감지하는 존재는 대륙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내 육감을 믿지 못하는 거지.’
우연과 우연의 연속으로 겹쳐진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유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평가표를 들어 제론에 대해 짧게 써 내렸다.
S!
배치 고사의 평가만 남았다.
* * *
‘이야. 오픈 북 시험이라니! 이게 얼마 만이야? 대학교 때가 마지막이니까 거의 45년 정도 된 거 같은데.’
제론은 숨어 있는 아카데미 관계자에게서 갈취한(?) 책으로 오픈 북 배치 고사를 치렀다. 문제에는 숫자가 많았지만 절반이 신상명세를 쓰는 것이다. 이 정도는 9살짜리 꼬맹이도 조금만 생각하면 바로 적는다. 문제는 중반부부터였다.
‘이 세상은 철학이 발전한 곳일까?’
제론은 깊은 고심을 했다.
‘오른 왕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문제라던가. ‘현재 오른 왕국에 올바르지 못한 관습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에 대해 서술하시오.’라는 되먹지도 못한 문제라던가.
그 뒤로도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문제가 계속 나열되어 있었다.
‘흐음. 이걸 어떻게 해야 하려나.’
깊은 고심을 거듭하는 제론을 쳐다보며 유한은 평가표에 S를 하나 더 적었다.
S의 옆에 ‘나이에 맞지 않게 생각이 깊다.’라고 추가로 덧붙였다.
바로 그때 제론이 코가 근질근질해지며 재채기를 했다.
“에취!”
살짝 흘러나온 콧물을 닦아내며 생각하기를 멈췄다. 9살짜리 꼬맹이들이 열심히 배치 고사 시험지를 채우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현대의 27년과 무림의 30년, 이 세상의 9년을 살아온 자신이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노릇은 아니었다.
‘그래, 일단 쓰고 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조용하고 평화롭게 아카데미 7년을 보내고 싶었던 제론은 최대한 간단하고 쉽게 문제가 요구하는 정답을 적어 내렸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왜?”
제론은 배치 고사 성적표를 확인하고 멍하니 반문했다.
1반 1등 제로니아 페리안 – S클래스 1반 배정
그의 이름이 성적표 맨 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와! 역시 네가 1등이구나!”
“그럴 줄 알았어!”
망연자실한 제론의 옆으로 1반 입학생들이 와서 말했다.
당연히 제론이 1등을 할 줄 알았다며 축하해 준다.
잠깐이지만 제론의 리더십을 겪은 모두가 인정한 것이다.
곧 다른 반 입학생의 성적표를 확인한 어떤 꼬맹이가 헛숨을 들이켜며 소리쳤다.
“헉! 1왕자께서도 S클래스셔!”
7반 1등 카이론 오른 압실론 – S클래스 1반 배정
“젠장.”
제론은 바로 표정을 구겼다.
1왕자랑 같은 반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아카데미 7년은 아무래도 글러 먹은 모양이었다.
“……?
“……!”
제론이 절망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주변이 시끌벅적해지며 꼬맹이들이 홍해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서기 시작했다.
제론의 시선이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고.
홍해의 기적 사이로 걸어오는 위로 바짝 세운 화려한 금발의 소년을 발견했다. 인상이 더욱 짙게 구겨졌다. 소년의 정체가 1왕자 카이론 오른 압실론이기 때문이었다.
“네가 S클래스로 배정받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카이론은 고개를 살짝 들어 턱이 훤칠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말했다.
‘목 안 아프나?’
제론이 실없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입학식 때부터 1왕자와 붙더니 반 배치까지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이고 말았다.
“지금 감히 누구 앞에서 한숨을……!”
“지금 감히 누구 앞에서는 무슨. 아까 선생님한테 전달 못 받았어?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상 모두가 동등한 신분이다!’ …라고. 아카데미에 온 이상 우리는 똑같은 입학생일 뿐이야. 여기서 너는 1왕자가 아니야. 아카데미 입학생이지. 나도 같은 아카데미 입학생이고.”
주변에서 제론과 카이론의 대치를 지켜보던 꼬맹이들이 입을 쩌억- 벌리며 경악했다. 제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선생님이 진짜로 저렇게 말했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상대가 조금 예외였다.
무려 1왕자였다.
큰 이변만 없다면 현 국왕의 뒤를 이을 왕세자 말이다!
‘1왕자께서 노하시면 어쩌지?’
이곳에 있는 우리들이 아니라 가문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며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혹시나 밉보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1왕자의 반응은 그들의 예상을 벗어났다.
“흐음. 확실히 그렇군. 미안하게 되었다. 아니. 미안하다.”
카이론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납득하고 제론에게 사과하는 게 아닌가!
“어?”
“지금 내가 뭘 본 거야?”
이곳에 있는 꼬맹이들은 귀족 가문의 자제이거나 부호의 자식 등 많은 사람을 아래에 둔 높은 위치의 삶을 살아왔다.
때문에 상하 관계를 나누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식을 파괴하는 이해하지 못할 종류였다.
1왕자에게 감히 망언을 지껄이는 제론이나 순순히 인정하는 카이론이나, 꼬맹이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너, 이름이 뭐냐?”
“제로니아 페리안.”
“풀 네임을 묻는 게 아니다. 가족들이 너를 부르는 애칭을 말하는 거야.”
“아하. 제론이라고 부르면 돼.”
“호오? 나는 카론이라고 부르면 된다.”
카이론-카론이 거만하게 들어 올렸던 턱을 내리며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손을 쭉 내미는데 악수를 하자는 것으로 보였다.
제론이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그래, 앞으로 적당히 친하게 지내자.”
“적당히 친하게 지내자고? 하하! 재밌는 말이다. 그래, 적당히 친하게 지내자. 왕실의 선생들에게 어려서부터 예법을 배워서 그런지 말투가 조금 딱딱하긴 하지만 차차 고쳐가도록 해보마.”
“그래. 부디 꼭 그랬으면 좋겠다. 아저씨 같으니까.”
“하하하하!”
제론이 무슨 말을 하던 카론은 빵빵 터졌다.
‘생일 케이크 사면 주는 폭죽인 줄 알았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웃음보가 터져.’
꼬맹이들이 여전히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아카데미만 졸업하면 다시는 볼 일 없는 애들이니까.
“그럼 손이라도 잡고 같이 1반으로 가는 건 어떤가?”
“게이도 아니고 손을 왜 잡아?”
“게이? 그건 무슨 말이지?”
카론이 알아듣지 못할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를 좋…… 아니다. 못 들은 거로 해. 아무튼, 같은 남자끼리 손잡고 그러는 거 아니야. 잡을 거면 좋아하는 여자 손을 잡으라고.”
“좋은 말이로군. 사랑하는 레이디의 손을 잡아 이끄는 사내라!”
“그게 왜 그렇게 해석이 되냐?”
제론은 황당한 시선으로 카론을 쳐다봤다.
이윽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란히 서서 1반으로 향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꼬맹이들은 여전히 당황해서 서로를 바라보기 바빴다.
* * *
1반으로 가자 벌써 자리에 앉아 있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중 한 꼬맹이가 일어나서 제론에게 다가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의 옆에 있는 카론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정중하게 예법으로.
“1왕자님의 존안을 뵙습니다.”
“오랜만이다. 로한.”
카론은 익숙하게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여긴 아카데미다. 모두가 똑같은 입학생일 뿐이야. 또한 사적인 자리이기도 하니 소름 돋게 존댓말은 하지 마라.”
“하하. 알겠어. 사실 나도 소름이 돋았다고? 여기 팔 보이지?”
꼬맹이-로한이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줬다. 돋아난 소름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잘 관리되어 정돈된 깨끗한 팔뚝만 보였다.
‘제법 넉살이 좋은 녀석이네.’
제론이 생각했다.
“그보다 옆에 있는 애는 누구야?”
“음? 아, 소개하지. 새로 사귄 친구 제론이다.”
“친구?”
로한이 눈을 크게 뜨며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제론이 아닌 카론을 바라봤다. 이내 엄지와 검지로 콧잔등을 잡으며 말하길.
“크으! 우리 카론이 사교적인 성격으로 변했다니! 이 형은 기쁘단다.”
“왕족 모욕죄로 구족을 멸해지고 싶은 모양이군.”
“방금 누군가가 모두가 똑같은 입학생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로한은 카론의 협박 농담을 듣고도 넉살 좋게 흘려 넘겼다.
곧 그가 제론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로한이라고 해. 풀 네임은 로이하른 폰 아이언하트. 너에 대해서는 들었어. 13살 같은 9살이라고 하던데. 진짜였네?”
아이언하트!
오른 왕국에 존재하는 3대 공작가 중 하나였다.
“허미.”
제론이 허탈하니 중얼거렸다.
1왕자에 이어 공작가가 나타났다.
그것도 같은 반으로!
제론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아카데미 생활 7년에 대한 일말의 희망조차 지금 이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