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63)
제 263화
263화
쿵!
오른쪽 팔과 날개를 잃은 곤충 인간이 땅으로 떨어졌다.
자신에게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는지 찌르르- 거리며 울어댄다.
“재생력은 뛰어나지 않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잘려나간 팔과 날개의 단면에서 재생하려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트롤이었다면 단면이 부글부글 끓으며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을 것이다.
음파 공격 같은 게 살짝 거추장스럽긴 하지만 딱 그 정도다.
이내 제론이 고개를 저었다.
“음. 아니야. 갑피인지 외피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단단해. 오러 익스퍼트 상급 정도는 돼야 저걸 벨 수 있겠어.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는 점까지 생각하면 꽤나 위협적이려나?”
동대륙의 어느 왕국에는 와이번을 타고 싸우는 비행부대가 있다고 한다.
와이번이라는 몬스터를 가축처럼 길들였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그것을 타고 날아다니며 싸운다고 상상한다면 엄청나게 멋지고 대단한 전투력을 갖고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와이번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흔들리는 몸의 균형을 잡으려면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고, 그 상태에서 검을 휘두르거나 창을 내지르려면 와이번 탑승에 숙달된 기사라고 하여도 많은 연습을 필요로 했다.
훈련과 연습의 반복으로 그것을 능숙하게 해내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와이번을 타고 싸우는 것보다 땅에 내려와서 싸우는 게 더 강하다. 또한 와이번 비행부대를 육성하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고, 훈련 중에 라이더Rider가 낙하해서 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투부대 여러 개를 육성하는 게 더욱 이득이었다. 그래서 와이번 비행부대를 전투보다는 주로 정찰 용도로 사용하는 편이었다.
반면 저 곤충 인간은 날아다니며 음파 공격을 하고 비행궤도가 자유자재라서 웬만한 익스퍼트 급의 기사라도 상대하기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날아가면서 손톱만 휘둘러도 엄청난 위력이겠지.”
제론의 후한 평가와 다르게 오른쪽 팔과 날개가 잘린 채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볼품없는 모습이 된 저 녀석의 불운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는 것이다.
“멀리서 쫓아오기만 했어도 그런 꼴은 안 됐을 텐데 말이야.”
찌르르-!
곤충 인간이 몸의 갑피를 흔들어 소리를 내며 일어선다.
“왜? 꼬와?”
제론은 입술을 비틀며 검을 옆으로 그었다.
서걱- 곤충 인간의 무릎 아래가 날아간다. 일어나던 자세에서 그대로 무너지며 하나씩만 남은 팔과 날개를 꿈틀댔다. 마치 번데기가 되기 이전의 애벌레 같은 모습이다.
“꼬우면 덤비질 말았어야지.”
제론은 곤충 인간의 남은 팔과 날개도 잘라냈다. 더 이상 곤충 인간을 분석하려는 손놀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동작이 크고 과감했다. 곤충 인간이 고통스러워하며 찌르르- 울어댔지만 멈추지 않았다.
…….
그러던 어느 순간 찾아온 정적.
제론의 입가에 맺힌 비틀린 미소가 천천히 사라져 간다.
검을 곧게 세우고 숨이 멎은 것처럼 조용한 곤충 인간을 향해 내리긋는다.
쐐액-!
[그만.]곤충 인간의 몸이 반으로 쪼개지려고 하는 순간 박살 난 입에서 괴상한 울음소리가 아닌 대륙 공용어가 흘러나왔다.
제론은 검을 멈추며 물었다.
“이제야 말을 할 생각이 드셨나?”
[언제부터 알았지?]“언제부터 알기는 무슨. 멀리서 음침한 변태처럼 지켜보던 놈들이 갑자기 공격을 한다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그래서 한 번 찔러본 건데…… 짜잔-! 이렇게 낚이고 말았습니다.”
“그건 너희의 심성이 꼬였기 때문인 거고. 평범한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
[평범함의 기준이 언제 달라졌는지 모르겠군.]지금까지 만나온 대부분의 녀석들은 여기까지만 말해도 벌써 발끈했거나 검을 뽑아 들고 덤벼 오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놈’은 담담하게 대꾸한다. ‘놈’의 멘탈이 꽤나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너 ‘마이얀’이냐?”
[내 이름을 아는 걸 보니 메이란이 말했나 보군.]“메이란? 그 마녀 년이 왜?”
[모르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 그 계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이건 좀 재미없네.”
제론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왜 우리를 몰래 따라오기만 하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거지? 우리 파티의 전력을 알아내려고 했다기보다는……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맞나?”
[맞다. 앞으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으면 좋겠군. 쓸데없이 시간을 빼앗기는 건 딱 질색이니까. 너도 그게 좋지 않은가?]“그 부분은 일치하는군.”
[무슨 일로 남대륙으로 넘어온 것이냐?]“서로 하나씩 질문과 대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놈’-마이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론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이얀이 이쪽에 대해 궁금한 게 있는 것처럼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네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어떻게 알지?”
[흐음. 그것도 문제로군. ……이건 어떤가? 서로 두 가지 질문을 번갈아 하는 거다. 대답은 하나의 진실과 하나의 거짓을 번갈아 가면서 하는 거지.]“각자의 양심에 맡기자고? 트롤이 풀 뜯어 먹는 소리 하지 마.”
[후후. 역시 이 정도로는 넘어오지 않는군.]마이얀은 제론과의 대화가 즐거운 것처럼 웃었다.
‘특이한 놈이네.’
조직의 간부인지 다른 어디의 누구인지 몰라도 제정신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상황만 좋았다면…….’
까지 생각한 제론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내공을 끌어올려 외부의 기운을 차단했다. 무언가가 정신을 미혹시키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마이얀에게 호감을 가질 뻔했다.
“초장부터 장난질이냐?”
[오!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지금까지 한 번도 눈치챈 존재는 없었는데 말이야. 이거 참 신기하군. 연구실로 데려와서 머릿속을 해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야.]“자신 있으면 해보든지.”
제론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 자신을 미혹시키려고 한 것의 정체는 페로몬이다. 페로몬이란 같은 종의 동물끼리 의사소통에 사용되는 화학적 신호를 일컫는 말이다. 거창한 설명이지만 쉽게 설명해서 냄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무미무취의 최면향이라고 말하는 게 맞고 말이다.
[후후후! 내가 사죄의 뜻으로 한 가지 질문에 대해 솔직하게 대답하지.]“남대륙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냐?”
[나한테 화가 난 게 아니었나? 생각보다 질문이 빨리 나와서 당혹스럽군.]“닥치고 대답이나 해.”
[남대륙에서 꾸미고 있는 일이라. ……그래. 나는 남대륙에서 오러 마스터를 만들고 있는 중이야.]“겸사겸사 다른 일도 저지르고 있고?”
[그건 두 번째 질문이로군. 미안하지만 대답은 하지 못하겠어.]“그럼 이만 꺼져.”
제론은 곤충 인간의 몸을 깨끗하게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 * *
“재밌군.”
마이얀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것처럼 듣기 거북하고 끔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론이 남대륙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긴 찰나 재료를 수집하고 다니는 마충인魔蟲人의 시각에 그들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제론과 일행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마충인의 시각을 항상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충인이 제론과 일행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하며 ‘재료’ 수집을 멈추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각을 공유했다.
“……무척이나 흥미로워. 곤충의 페로몬을 눈치채고 차단한 것도 신기하지만 인간의 육신으로 초월자의 격을 이룬 건 가히 경이로울 정도야.”
인간이 불멸을 이룰지언정 초월자에 오른 전례는 없었다.
신화시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초월자가 된다는 건 격의 상승이었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딴 존재라는 말이 있지만 전부 개소리다.
신화시대의 종막 이후 불멸자들이 아스트랄로 떠나며 미들어스에 남게 된 필멸자들 중 전쟁에서 승리해 대륙을 지배하게 된 인간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써 내린 거짓이다.
짐승 중에서 유일하게 이지를 갖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그런 인간이 초월자가 된다는 건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탈피를 마쳐 나비로 변하는 것처럼 탈바꿈 혹은 진화에 가까운 기적이었다.
“하이 오크나 하이 엘프처럼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해야 하나?”
1만 분의 1 확률로 태어나는 변종 하이 오크.
세계수의 사랑을 받아 정수를 품고 태어나는 하이 엘프.
인간 중에서도 그런 존재가 있다.
특출한 신체와 압도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인간이 말이다.
“……피와 살점을 구할 수는 없을까?”
마이얀이 탐욕을 드러냈다.
* * *
제론은 검에 묻은 즙을 털어냈다. 잠깐 대화를 나눴지만 무척이나 불쾌한 녀석이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적한테 인정사정 봐주는 건 제 목숨을 끊어달라며 목을 내미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건 당할 뻔한 입장이었기에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쟌느라면 걱정되지는 않지만.”
곤충의 페로몬은 모르고 당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냉철한 이성만 갖고 있다면 이상한 낌새를 금세 알아차리고 미혹당하지 않는다. 사실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페로몬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페로몬이 짧은 시간 동안 큰 효과를 내려면 지독해야 하는데, 몸에 닿기도 전에 이상하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그보다 오러 마스터를 만들고 있다고 했었지.”
북대륙에서 야만족을 도왔던 실전경험이 없는 오러 마스터를 말하는 것이다. 반쪽짜리 오러 마스터였지만 오러 홀에 저장된 오러의 양은 가히 중상급 이상의 마스터 수준이었다. 하지만 경험이 미천하다는 부분 때문에 큰 위협은 되지 않지만 재생력이 제법 뛰어나서 방심하는 순간 당하고 말 것이다.
“……곤충 인간도 마이얀이 만들었다고 가정한다면 마수인 역시 놈이 만든 거라고 봐야겠지.”
아니면 서대륙에서 죽인 흑마법사-데카론이 마수인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서대륙을 벗어난 이후로 마수인과는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이얀이 언제 또 개수작을 부릴지 모른다.
제론 자신은 큰 문제가 없지만 다른 일행들이 마음에 걸렸다.
“우선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제외하고 곤충 인간과 만들어진 오러 마스터에만 집중해야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시로 들어간 제론은 한밤중의 소란으로 출동한 경비대를 피해 호텔로 돌아가던 쟌느와 합류했다. 곤충 인간의 페로몬에 당한 흔적은 없었다. 대신 곤충 인간의 피가 마치 녹색 야채를 갈아서 즙으로 짜낸 뒤 끓여서 끈적끈적하게 만든 것 같다며 투덜거렸다.
신박한 표현법이지만 고개가 저절로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적절했다. 호텔로 돌아가자 에르딘은 곯아떨어져 자고 있었고, 메이엔이 로건의 등을 아기처럼 토닥이며 재우고 있었다.
메이엔이 검지를 세워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
“쉿.”
로건이 깨지 않게 조용히 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냥 둘 다 때릴까.”
제론은 쟌느가 옆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듣고 몸을 흠칫 떨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