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65)
제 265화
265화
“으……!”
에르딘은 지끈거리는 두통 속에서 눈을 떴다.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하지만 두통의 원인이 숙취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일어났다.
“아이고. 머리야.”
어젯밤에는 기분이 너무 울적해서 술기운을 억누르지 않고 마셨더니 금방 취해버리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필름이 끊어졌는지 기억을 더듬다가 깨달았다.
지금의 두통이 숙취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철컥.
“깼냐?”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제론이 묻는다. 깬 기척을 느끼고 온 것이리라. 에르딘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통의 정체가 숙취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모든 것이 기억났다. 다른 의미로 두통이 일어난다.
“아이고.”
“아이고는 무슨 아이고야? 됐고. 따라와.”
제론이 에르딘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따라가는 게 아니라 끌려가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아무렴 상관없다고 생각한 에르딘은 몸을 축 늘어트린 채 발걸음만 힘겹게 옮겼다.
옆방으로 가자 일행들과 함께 있는 에이전이 보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린다.
“……허업!”
에르딘과 시선이 마주친 그가 숨을 크게 들이켜더니 간질에 걸린 사람처럼 경련을 일으키다가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당황한 에르딘이 달려가 그의 손목을 잡고 내공을 흘려보냈으나 경련은 점점 더 거세져만 갔다. 로건이 재빨리 회복의 신성 마법을 사용했으나 소용없었고 입가에 거품까지 물었다.
“대환장 파티네.”
제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구경하는 쟌느와 메이엔에게 에이전을 처리하라고 눈짓했다.
“죽일까?”
쟌느가 품속에서 단검을 빼 들며 묻는다.
아무래도 눈짓을 잘못 이해한 모양이다.
“……죽일 거면 어제 죽이지 않았을까?”
“알아낼 정보는 다 알아냈잖아. 우리의 정체도 알아차린 모양인데 괜히 후환의 싹을 놔둬서 좋을 건 없지.”
“페로쉐 왕국 왕실한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잖아. 제발 에르딘처럼 되지 말아줘.”
“치. 농담인데 너무 심하게 말하는 거 아냐?”
“제가 뭘 어떻게 했다고 그러는 거예요!”
에르딘이 발끈해서 외쳤다. 제론과 쟌느가 동시에 풉! 하고 웃었다.
비교적 다른 일행들에 비해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메이엔이 나섰다.
“제가 그분을 깨울게요. 잘 붙잡고 계세요.”
“아, 네. 알겠어요.”
경련을 일으키는 에이전을 제압한 에르딘이 로건과 함께 그를 들어 올렸다. 그런 에이전에게 다가간 메이엔은 빗자루를 꺼내 마녀의 비술을 펼쳐 에이전의 정신을 공격했다.
“세상에.”
“맙소사.”
쟌느와 제론이 동시에 이마를 탁! 쳤다.
“꺼, 꺼어억-!”
또 다른 의미로 에이전이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서 거품으로 이뤄진 침을 줄줄 흘리며 눈을 뒤집어 깠고, 메이엔이 빗자루를 품속으로 집어넣자 그의 새하얗게 질렸던 안색이 서서히 본래의 색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신공격으로 깨우는 것도 깨우는 거긴 하지.’
말리려면 처음부터 말리거나, 제론 자신이 깨우는 게 맞다.
뒤늦은 후회와 에이전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을 웅장하게 채웠다.
“커헉!”
에이전이 크게 기침을 하며 힘겹게 눈을 뜬다. 자신을 바라보는 5쌍의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마지막에 에르딘과 시선이 마주쳤을 땐 흠칫 떨었지만 아까처럼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정말로 다행이라고 제론은 생각했다.
“사,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럼 이제 계속 이야기를 해볼까요?”
“네? 무슨 이야기를요?”
에이전은 이전까지 나눴던 대화를 잊어버린 것처럼 반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간을 찡그리더니 기억을 회복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말할 것처럼 입을 오므린 그가 에르딘을 힐끔 쳐다보며 입술을 꾹 다문다.
그의 눈빛에서 에르딘에 대한 공포심이 느껴졌다.
제론이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야.”
“…….”
“에르딘 너, 인마, 너!”
그제야 자신을 부른다는 걸 깨달은 에르딘이 목을 거북이처럼 쏙 집어넣은 채 눈치를 살피며 대답한다.
“저 왜요?”
“대가리 박아.”
“네?”
“네? 네에? 오늘 제대로 한 따까리 해볼래? 얼른 대가리 안 박아?”
에르딘은 제론이 화를 내고 있지만 진짜로 화난 게 아니라 화난 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시선이 에이전에게 힐끔힐끔 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야, 인마. 저 사람이 너 무서워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잖아.
제론의 말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기분.
에르딘은 냅다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쿵.
실수로 세게 박아서 머리가 아팠지만 분위기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었다. 또 그에게 저지른 실수가 뒤늦게 기억나며 미안해진 마음도 있었다.
“에이전 씨, 죄송합니다.”
“네?”
“제가 어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대가리를 박은 채 사과하자 에이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게 굽실거리면 아닌 척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이라도 된 것마냥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에르딘이 적어도 오러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강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왕실소속 특수부대 요원으로서 많은 훈련과 실전을 겪으며 쌓은 경험으로 이럴 때 어쭙잖은 우월감에 젖어 들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닙니다. 저 역시 심증만으로 에르딘 경을 범인으로 의심한 잘못이 큽니다. 그러하니 부디 제 낯이 부끄러움으로 물들기 전에 일어나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에르딘이 슬쩍 박았던 대가리를 들며 일어섰다.
여전히 에이전은 에르딘이 불편했는지 몸을 움찔움찔 떨었지만, 제론보다 하급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시선을 아예 제론이 있는 방향으로 고정시켰다.
최대한 인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흠흠. 그보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고요?”
“네. 에이전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희의 목적 역시 에이전 님과 동일하니까요.”
“그 말씀은 유령마을에 대해 알아보고 계시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저희의 외모를 보면 아시겠지만 남대륙인이 아닙니다. 중앙대륙에서 순례를 위해…… 아, 이 분이 순례자이신 로건 님이십니다. 태양의 교단의 중급 사제시죠.”
로건은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눈을 댕그랗게 뜬 에이전이 허겁지겁 로건을 마주 보며 성호를 그었다. 그 손짓이 제법 능수능란해 보였다. 곧 그가 태양의 교단 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 로건 사제님. 축복을 좀 내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평소에는 이런 부탁을 잘 안 하는데…… 이번에는 임무를 맡으면서 급하게 움직이느라 신전에 들르지 못했습니다.”
에이전이 머쓱하게 웃으며 왼쪽 무릎을 땅에 대고 앉았다.
로건이 그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리며 축복의 기도를 외웠다.
“분위기 좋은데요?”
“너 때문에 개떡같이 된 분위기가 로건 님 덕분에 좋아진 거지.”
“누가 그걸 몰라요?”
제론이 팩트로 두드려 패자 에르딘이 짜증 난다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이내 겨우 좋아진 분위기가 다시 나빠졌다간 제론한테 맞을 것 같아서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표정을 지었다.
그 미소가 실없이 보인다는 걸 본인은 절대로 모를 것이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계속 이야기를 하죠. 저희는 로건 사제님을 모시고 순례의 길을 걷기 위해 중앙대륙에서 넘어왔습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남대륙으로 넘어오는 마지막 배를 탔지요.”
제론은 차분하게 도시 성문을 통과할 때 써먹었던 사연을 늘어놨다. 어차피 그 배의 주인이 남대륙인인지 중앙대륙인인지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실제로는 그 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물의 숲을 통과해서 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나았다.
“……해서 저희는 유령마을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움직이던 도중 이 도시로 오게 되었습니다.”
“으음. 저 역시 같은 이유로 이 도시까지 왔었죠.”
“그리고…… 도시의 소동이라면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제론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가자 에이전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했다. 이내 도시의 소동이 유령마을과 관련되었다고 의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눈앞의 사람들이 그 소동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그때 자고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만, 정체불명의 괴한 두 명 중 한 명이 저희 일행입니다.”
“저예요.”
“……!”
흠칫 놀란 에이전이 쟌느를 쳐다봤다.
겉모습만 보면 눈이 저절로 돌아갈 정도로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성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긴장감으로 몸이 굳어졌다.
그 이유는 에이전의 감각이 평범한 사람보다 몇 배 뛰어났기 때문이다.
사건 현장을 벗어나던 에르딘을 발견한 것도,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뛰어난 감각 때문이었다.
“저희가 이 사실을 밝힌 이유를 먼저 생각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
에이전이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 * *
“오른 왕국에 없다고?”
시무르 칸은 모험가 길드의 조사결과를 듣고 중얼거렸다.
“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남쪽으로 이동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 무슨 일이 무슨 일인데?”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모험가 길드원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시무르 칸은 뻣뻣한 목을 베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의 인물이 그저 그런 소모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참았다.
“아직 확인이 된 정보는 아니지만 남대륙으로 넘어갔다는 말도 있습니다.”
“남대륙으로 넘어갔다고?”
시무르 칸은 키득 웃으며 손을 까닥였다.
이제 꺼지라는 뜻이었다.
모험가 길드원은 작게 목례를 하고 사라졌다. 그의 목덜미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시무르 칸이 뒤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마음대로 하세요. 언제부터 제 말을 들으셨다고 물어보십니까?”
“근신이 어제까지였나?”
“예.”
부관이 대답했다.
잠시 생각을 한 시무르 칸이 검을 허리춤에 매달고 성을 나갔다.
부관은 당연하다는 듯 그의 뒤를 따라갔다.
* * *
폴른 제국의 49대 황제 하인워드는 퓨리온 공작의 말에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
“부디 소신의 청을 윤허해주십시오.”
“허나 공작은 폴른 제국의 영웅이다. 공작이 제국의 영토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승냥이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폴른 제국의 곳곳에 뿌리를 내렸던 사악한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그러하니 전쟁영웅 한 명이 없다고 폴른 제국의 위치가 위태로워질 리가 없었다. 지금 하인워드 황제가 걱정하는 것은 퓨리온 공작의 안위였다. 제국의 품을 벗어나면 그가 위험할 때 도와줄 수 없다.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책이 있는가?”
“최근 서대륙에서 무명을 떨치는 말콤이라는 용병이 있습니다. 과거 바후르 도적단을 토벌할 때에 알게 된 자인데, 그를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고작 용병 한 명으로 말인가?”
“그는 평범한 용병이 아닙니다.”
하인워드 황제가 눈에 호기심을 띄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