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66)
제 266화
266화
남대륙의 전운은 동대륙과 서대륙까지 미쳤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페룬 왕국과 가헨트 왕국이 오크에게 정복당했기 때문이었다.
“크롸라라라라-!”
배틀 크라이를 터트린 하이 오크가 도망치다가 붙잡힌 왕자의 발목을 잡고 높게 들었다. 몽둥이를 휘두르듯 내려치자 왕자의 머리가 깨지며 뇌수와 뼛조각이 땅에 뿌려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왕과 왕비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 악마들! 너희는 저주를 받을 거다! 신의 저주를! 신께서 너희를……!”
악에 받쳐 외치던 왕비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 채 머리통이 날아갔다. 그 옆에 무릎이 꿇려진 왕은 흐느끼며 울었고, 그런 왕을 향해 또 다른 하이 오크가 다가갔다.
“크륵! 가헨트 왕국은! 오늘부로 사라진다!”
“신이시여…… 어찌하여……!”
왕은 빌어먹을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성을 빠져나간 왕족이 있다. 바로 공주였다. 공주가 무사히 도망쳐 다른 왕국에 오크의 침략을 전하면 가헨트 왕국은 멸망할지언정 복수는 할 수 있다.
그런 왕을 절망에 빠트리려는 것처럼 한 오크가 회색으로 풀린 눈빛의 공주를 붙잡아왔다. 공주는 험한 꼴을 당했는지 옷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고 하체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취익. 사로잡아왔다. 빠져나간 공주를.”
“크륵. 살아 있군.”
하이 오크는 공주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왕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왕자처럼 땅에 패대기쳤다. 퍼억- 왕은 공주의 몸이 산산조각으로 찢겨져 나가는 것을 보며 정신을 놓고 말았다.
“히, 히히……!”
왕이 눈을 뒤집고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하이 오크가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주먹을 휘둘렀다.
파각-!
* * *
페룬 왕국과 가헨트 왕국의 비보가 다른 왕국으로 전해진 것은 몇 달 뒤였다.
제론과 일행들이 에이전과 함께 유령마을의 사태를 조사하러 돌아다니고 있을 무렵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시간을 되돌려.
페로쉐 왕국의 자작성이 있는 도시의 호텔에서 에이전은 제론의 말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되새기고 몇 번을 곱씹었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나쁜 의도가 있었다면 이미 자신은 죽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실 그 판단보다 에이전을 이성적으로 납득시킨 것은 로건의 존재였다.
“태양의 교단 사제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데 저를 속이시거나 거짓말을 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로건이 겪은 여러 가지 경험과 제론에게 물들어서 아주 뻔뻔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에이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가 되었다.
에르딘은 벌써부터 입이 근질거리는지 제론의 눈치를 슬쩍 살폈고, 제론이 눈짓으로 닥치고 있으라며 말하자 코를 훌쩍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믿어주시니 기쁘면서도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사제님의…… 그리고 여러분의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저 역시 유령마을의 사태가 빠르게 종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고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아는 바는 전부 말했습니다. 이제 요원님께서 아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공유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로건이 에이전에게 ‘요원님’이라며 부르자 그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요원님이라니요. 부끄럽습니다.”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니까요.”
“당분간 함께 움직일 것 같은데 편하게 에이전 경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에이전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그렇게 말했고, 그 뒤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조사를 하며 알아낸 사실을 공유했다.
그가 말한 정보는 암살자 길드에서 알려준 사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소득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정보가 디테일했고 교총지부와 마탑에서 심상치 않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형태라도 파악이 가능하게 해줬다.
“……그래서 마탑을 조사하려고 했지만 교총지부의 개입으로 무산되었습니다.”
“왕실에서는 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까?”
“네? 아, 예. 교총지부가 나서면 페로쉐 왕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왕국에서도 어쩔 수 없이 수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남대륙에서 교총지부가 갖고 있는 권력은 일개 국가를 뛰어넘었으니까요.”
“교총지부의 권력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마지막 질문은 제론의 것이었다.
에이전이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곤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성자…… 혹은 성녀께서 계시지 않을 뿐 가히 제국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상 남대륙에서 가장 크고 거대한, 그리고 강력한 병력을 소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혹시 마탑과 교총지부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가 있나요?”
“으윽. 없……습니다. 모두가 심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끝내 마탑을 조사하지 못하고 물러난 거고요.”
에르딘이 갑자기 끼어들자 에이전이 움찔 떨고 대답한다.
‘그럼 남은 문제는 페로쉐 왕국의 왕실이 이번 일과 연관되어 있냐 마냐인가?’
‘더 문’의 암살자 길드원은 가헨트 왕국의 유령마을 사건에 왕실도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잘못된 정보이거나 거짓 정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이라면 페로쉐 왕국의 왕실도 이번 사건의 관계자라는 것이다. 에이전 역시 관계자이거나 아무것도 모른 채 이용당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연기가 아니라면 후자겠지.’
아직까지는 진실만을 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지금은 지켜볼 단계였다. 또한 에이전은 몰라도 다른 왕실소속 특수부대 요원을 신뢰하는 건 불가능했다. 페로쉐 왕국의 왕실이 관계되어 있다면 결국 끈을 잡고 올라가다 보면 그들 역시 발을 내딛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에이전이 제론과 일행들의 새로운 파티원으로 합류했다. 그와는 페로쉐 왕국 내부에서만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왕실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왕실의 허락 없이는 타국으로 갈 수 없다고 한다.
이튿날 자작성의 도시를 떠나 다른 마을로 이동했다. 목적지인 마탑은 2개의 나라를 경유해야 도착한다. 하지만 마탑으로 가기 전에 찾을 것이 있었다.
“혹시 페로쉐 왕국의 영토에서 인적이 드물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있나요?”
“으음. 왕실의 사유지와 데먼 마운틴이 있습니다.”
왕실의 사유지라면 인적이 드물고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사유지를 관리하기 위한 사용인들을 전부 비밀 엄수시키는 건 무리였다. 또한 사냥철이 되면 귀족들과 함께 사냥대회를 열기도 해서 무슨 일을 꾸미기엔 적당한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하나.
“데먼 마운틴은…… 아주 먼 옛날 악마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산입니다. 어디까지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말이라서 실제로 악마가 살았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요.”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이유는 악마가 살았다는 전설 때문만이 아니었다.
계절과 상관없이 밤이 되면 으스스해지는 분위기와 유령이 울부짖는 듯한 바람 소리 때문에 담력이 세다고 유명한 사람조차 데먼 마운틴에 다가가다가 오줌을 지린다고 한다.
이 사실을 의아하게 여긴 모험가 길드에서 조사를 나섰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돌아왔으며, 마탑 역시 산의 지형 때문에 으스스한 분위기가 나타나며 바람 소리가 그런 것이라고 공표했다. 그 뒤로는 사람들이 접근하지는 않지만 크게 무서워하지도 않는 그런 곳이 되었다고 한다.
“가끔 이상한 것을 봤다고 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습니다.”
“이상한 것? 그게 뭔가요?”
“저도 데먼 마운틴에 대해서는 알아보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제론은 에이전의 대답을 듣고 데먼 마운틴을 캐보자고 말했다.
평소였다면 에이전은 반대했겠지만 유령마을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기 때문에,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며 동의했다.
마을을 들를 때마다 데먼 마운틴에 대해 묻고 다녔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이 따라왔지만 로건을 잘 이용해서(?) 둘러대자 별것 아니었다는 반응으로 알고 있는 전설이나 설화, 소문을 말했다.
“밤이 되면 악마가 산의 정상에서 크게 울부짖었다고 하더군.”
“악마가 울부짖으면 사람들이 홀려서 산으로 갔다는 말도 있었지.”
대부분 살짝 바뀐 비슷한 말을 했다.
그렇게 한참 묻고 다니던 도중 한 남자가 말했다.
“몇 년 전인가? 거무스름한 뭔가가 휙 지나간 걸 본 적이 있어.”
“그게 몇 년 전입니까?”
“으음. 몇 년 전이었더라.”
제론은 남자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자 실버를 몇 개 찔러줬다.
“아아! 기억났어. 아마 대략 8년? 9년? 전이었을 거야.”
자본주의 만세였다.
남자는 오래전에 묻어뒀던 기억을 꺼내며 아는 것을 전부 말했다. 그래도 아주 양심이 없던 건 아닌지 돈을 더 요구하지는 않았다.
“8년이나 9년 전이라면 얼추 맞아떨어지네.”
“그런데 아까 그 남자가 거무스름한 것만 봤다고만 했는데 그게 유령마을과 관련되어 있을까요?”
“관련이 없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제론의 대답에 에이전이 의아해했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나중에 괜히 데먼 마운틴이었다고 알게 되는 것보다 지금 바로 확인하는 게 나아요. 그래야 경로가 복잡해지지 않기도 하고요.”
“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요.”
데먼 마운틴은 백작령 하나와 후작령 하나를 지나가면 바로 나온다.
다른 왕국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딱 위치해 있으니 괜히 헛걸음하다가 돌아오는 것보다는 중간에 가는 게 낫다.
에이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해가 저무는 것을 보고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를 머물고 가야겠군요.”
때마침 음식 재료와 향신료도 다 떨어졌다.
제론과 일행들은 여관에 방을 잡고 각자 자유 시간을 가졌다.
“데이트 가자.”
쟌느가 제론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말이 데이트지 같이 필요한 것을 사러 가자고 하는 뜻이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다녀오세요.”
“그럼 저는 메이엔 양과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로건과 메이엔도 함께 움직였다.
남은 두 사람 에르딘과 에이전이 서로를 바라봤다.
“딸꾹!”
에이전이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동행한 지도 일주일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에르딘을 무서워하고 있던 그였다.
에르딘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오늘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풀어야겠네.’
* * *
흩어진 일행들이 돌아왔을 때 에이전의 얼굴은 술기운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에르딘처럼 실수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취한 와중에서도 에르딘의 눈치만 설설 살필 뿐이었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어요.”
“……아입니다.”
혀가 꼬이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눈치를 살피면서도 대답은 꼬박꼬박 잘 한다.
“에르딘 경이 좋은 사뢈인 건 알지만…… 눈이 마주찔 때마다 저도 모르궤…….”
“…….”
한참을 중얼거리던 에이전이 탁자에 머리를 부딪쳤다.
“후우.”
에르딘은 점원을 불러 계산하고 에이전을 들쳐 업고 방으로 올라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