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67)
제 267화
267화
“으음.”
에이전을 침대에 눕히자 그가 쩝- 쩝- 입맛을 다신다.
에르딘은 그 모습을 보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대륙까지 와서 뭐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이 정도로 미안함을 전부 덜기에는 부족했다. 혹시나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따스한 마음의 남자가 빙의되어 에이전의 가슴까지 이불을 올려줬다.
“으으음.”
에이전이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곧 한 마리의 번데기로 변했다. 그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하자 에르딘이 문을 닫으며 나갔다.
그 이후 식당 층으로 내려가자 제론과 나머지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돌아다니기만 한 모양이다.
“잘 처리하고 왔어?”
“제론 님. 그 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해해서 경비대에 신고해요.”
에르딘이 따끔하게 한마디 했지만 제론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식사에 집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오늘 하루에만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는지 모르겠네.’
아마 최소 두 자리는 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세 자리를 돌파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론이 말했다.
“뭐 해? 앉아.”
“네, 네.”
에르딘은 자리에 앉으며 직원을 불렀다. 술과 안주 주문을 마치자 제론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알아낸 정보를 말하기 시작한다.
“데먼 마운틴은 누군가의 사유지였어.”
누군가라고 말한 까닭은 그 사람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보를 알아낸 것도 우연인지는 잘 모르겠어.”
“흐음.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에르딘도 제론의 말에 공감했다.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나 설화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누군가의 사유지였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우연인지 아닌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어. 치매에 걸리신 노인분이셨거든. 나도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어.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가 알게 된 거라. 아무튼…… 노인분께서 이렇게 말하시더군. 그 산에는 오래된 주인이 있다고 말이야. 무슨 말인지 물어보니까 아주 오래전 거금을 들여 데먼 마운틴을 사들인 귀족이 있다는 말이었어.”
“……그게 끝이에요?”
제론이 뒷말을 이어가길 기다리던 에르딘은 1분이 지나도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묻는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제론이 쟌느를 바라봤다.
“내가 알아낸 건 그게 전부야. 늦게 돌아온 건 노인분을 잠깐 지켜보다가 돌아와서 그런 거고. 아직도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다음은 쟌느가 말해줘.”
“나는 거금을 들여 데먼 마운틴을 사들인 귀족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도시의 관리청으로 가서 자료를 찾아봤어. 개척지가 아닌 이상 땅을 사고판 기록은 남아 있을 테니까. 그래서 알아보니까 218년 전에 아르타 남작이라는 귀족이 데먼 마운틴을 매입한 기록이 있었어. 누구인지 알아내고 싶었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그런지 신상명세에 대한 기록만 사라져 있더라고. ……어쩌면 기록을 없애버린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아르타 남작?”
제론이 귀족의 이름을 여러 번 곱씹었다. 중앙대륙인인 그가 남대륙의 귀족을 알 리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이내 어디선가 비슷한 이름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에이전이 깨어나면 아르타 남작에 대해 물어봐야겠어.”
타국의 귀족이 토지를 사는 건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국법이 그렇게 정해졌기 때문이다. 간혹 예외가 존재하지만 정말로 드문 일이었다. 전쟁영웅이나 그에 준하는 공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타국의 귀족을 전쟁영웅으로 인정할 리가 없고, 정말로 예외의 경우가 되어 토지를 사더라도 산을 살 리도 없었다.
즉, 아르타 남작이 페로쉐 왕국의 귀족이라는 것이다.
에이전이라면 왕실을 통해 아르타 남작에 대해 금방 알아낼 수 있다.
이튿날 에이전이 깨어나자 식사를 하며 데먼 마운틴이 아르타 남작의 사유지라는 것을 말했다.
에이전도 그 사실을 처음 알았는지 깜짝 놀라더니 식사를 마치고 아르타 남작에 대해 조사해보겠다며 나갔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잘하네.”
“그러게요.”
“맞아. 누구랑 다르게 말이야.”
제론이 킥킥 웃고선 태클을 걸었지만 에르딘은 그 ‘누구’가 자신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눈만 끔뻑거리고 말았다.
몇 시간 뒤, 에이전이 제법 두꺼운 책을 갖고 돌아왔다.
“페로쉐 왕국의 귀족 족보입니다.”
“무슨…… 귀족 족보요?”
제론이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어다.
“예. 귀족 족보요. 아마 생소하실 겁니다. 이것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요. 특별한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귀족의 족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니까요. 왕국의 역사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은데 귀족들의 족보를 누가 궁금해하겠습니까? 이 족보도 50년 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갱신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에이전은 짧은 말로 모두를 설득시키고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218년 전에 데먼 마운틴을 매입했다는 기록 덕분에 아르타 남작의 족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142년 전까지 아르타 남작 가문이 이 백작령에서 대대로 서기관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자작 위로 승작하며 작은 영토를 하사받았는데 데먼 마운틴과 가까운 곳이라고 합니다. 으음?”
족보를 쭉 따라가던 에이전이 미간을 가운데로 좁힌다.
제론과 일행들이 그가 다시 말하길 기다렸다.
“으으음. 뭔가 이상한데?”
“…….”
모두가 뭐가 이상하냐며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중요한 단서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의 집중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도 에이전은 한참 동안 족보를 이리저리 뒤지더니 계속해서 ‘이상한데?’라는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이윽고 30분이 지날 무렵 에이전이 몇 개의 페이지 모서리를 접어서 앞뒤로 왔다 갔다 넘기며 일행들에게 보여줬다.
짧게 요약을 하자면.
“……75년 전 아르타 자작 가문이 영지전에서 승리하면서 주변의 자작령을 흡수했는데, 라스트 네임-성을 바꾸었습니다. 카헤론 백작이라는 생뚱맞은 신생 백작이 나타나 버렸군요.”
제론이 요약해서 말했다. 에이전이 이상하다고 말한 이유는 알겠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닐 것이다. 고작 그것이 전부였다면 이렇게 모서리를 접어서 보여줄 필요가 없다.
에이전이 신중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카헤론 백작이 아닙니다.”
“……?”
“마지막 페이지를 보십시오.”
족보에는 접힌 모서리가 하나 더 있었다. 그곳에는 카헤론 백작이 50년 전 마지막으로 승작한 작위가 적혀 있었다.
“……카헤론 공작.”
“50년이 지난 지금은 카헤론 대공이 되었습니다.”
* * *
키르르-!
“이 녀석은…… 애매하군.”
마이얀은 갈색의 갑피로 이루어진 마충인을 쭉 훑어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평소였다면 충분하다며 만족했겠지만 제론이라는 초월자를 본 탓에 눈이 확 높아져 버렸다.
“페로몬은 통하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졌어. 갑피로는 오러 블레이드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도 증명되었고. 이 정도로는 안 돼. 페이크Fake 마스터와 비슷한 수준이 한계야.”
페이크 마스터는 만들어진 오러 마스터를 말했다. 자질이 있는 실험체를 선별해서 강제로 오러 홀을 형성시키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뽑아낸 기운을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불어넣으면 완성된다.
설명은 간단했지만 오러 홀을 형성시키는 과정에서 10명 중 1명만 살고,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만큼의 기운을 불어넣다가 10명 중 1명이 산다. 한 마디로 100명 중 1명꼴로 페이크 마스터가 된다는 뜻이다. 자질이 있는 실험체라는 기준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1퍼센트가 아니라 0.1퍼센트 혹은 그 미만이라고 보는 게 맞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를 찾아오겠지.”
제론은 후환을 내버려 두는 그런 어설픈 녀석들과는 달랐다. 잠깐 대화를 나눴지만 알 것 같았다. 이곳으로 찾아올 것이다. 조직과는 좋지 못한 인연이 많은 걸로 알고 있으니 반드시 올 거다.
“나도 대비해야겠지. 어차피 오크들이 부족을 통합시키기 전까지는 발을 붙잡고 있어야 하니까 잘된 일이로군.”
실험체를 수집하는 건 잠깐 멈춰야 할 것 같다. 남대륙 전역으로 퍼져 있는 마충인과 페이크 마스터를 전부 불러들였다.
“운이 좋아서 피나 살점 한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군.”
마이얀은 아직까지도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탐욕.
그것이 바로 그를 지금까지 살아 있게 한 원동력이었으니까.
* * *
대공이라는 작위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제국에서는 새로운 황제로 등위한 황제의 형제들을 일컫기도 하고, 황제의 자매 혹은 황녀와 혼인한 남편을 지칭하기도 한다. 또는 하나의 국가 안에 독립적인 자치권을 인정받은 작은 나라-공국의 지도자를 말하기도 했다.
페로쉐 왕국은 제국이 아니었다.
말인즉슨 후자인 공국의 지도자를 의미했다.
“데먼 마운틴은 카헤론 공국에 위치해 있는 건 아닙니다만, 과거 아르타 남작이 매입을 했다면 엄연한 카헤론 공국의 영토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말은 카헤론 대공이 우리를 막아설 수도 있다는 거죠?”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카헤론 대공이 유령마을의 사태와 연관되어 있냐는 질문이었다.
“으음. 맞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이전은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왕실의 명령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그에게는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이었다.
‘다른 귀족도 아닌 카헤론 대공이 이번 사건의 용의자라니.’
특수부대의 권한으로 조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왕실에서 개입해야 한다.
공국은 하나의 나라니까.
그러나 이 사실을 왕실에 알린다고 생각하니 불쑥 반감이 솟구쳤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자 놀랍게도 왕실을 불신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카헤론 공국이 독립적인 자치권을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작은 나라였지만, 이런 짓을 은밀하게 저지르려면 교총지부도, 마탑도 아닌 페로쉐 왕국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한 마디로 카헤론 대공이 용의자라면 왕실 역시 용의자라는 것.
처음부터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것이다.
에이전은 왕실에서 왜 이런 임무를 내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돌아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국민에게 공표라도 하려 했던 걸까?
그것이 만약 진실이라면.
‘완전 개X발 새끼들이잖아.’
에이전의 이가 빠드득 갈렸다.
그런 에이전을 바라보던 제론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탁- 치며 말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세요.”
“……?”
“나쁜 놈들이잖아요. 혼내줘야죠.”
제론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에이전은 멍하니 그 미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X나 멋있다.’
이 남자라면 진짜로 나쁜 놈들을 마구마구 혼내줄 것 같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