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68)
제 268화
268화
데먼 마운틴으로 향하던 어느 날 밤 에르딘이 다른 일행들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제론 님의 추종자가 한 명 더 늘어난 것 같죠?”
제론을 바라보는 에이전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기우라고 생각했지만…… 뭐랄까, 마치 신의 사도라고 부르며 따라다녔던 옛날의 로건을 보는 기분이었다.
“후후. 드디어 후배가 들어왔군요.”
“왜 뿌듯해하시는 건지 모르겠네. 역시 우리 중에서 정상인은 나밖에 없는 거였나?”
에르딘은 그런 로건을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제론이 에르딘의 혼잣말을 듣곤 피식 웃었다.
‘어떤 의미로는 제일 비정상인 놈이 무슨.’
가끔씩 왜 저럴까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에이전의 눈빛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에르딘의 비유처럼 추종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론은 저 정도 부담은 얼마든지 괜찮다고 생각했다.
‘민폐만 안 끼치면 되지.’
무엇보다 에이전이 소속된 특수부대의 권한이 무척이나 유용했다.
임무에 제한하여 백작 이하의 귀족들에게서 최대 1천 명의 사병을 강제로 차출할 수 있고, 증거만 있다면 상대가 누구든 최대 반역죄까지 성립시킬 수 있다.
가장 큰 권한이 위의 두 가지이고, 다른 여러 가지 자잘한 것들까지 말하려면 하루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많았다.
물론 적이 될지도 모르는 상대가 카헤론 공국을 다스리는 지배자-공왕이기에 반역죄를 성립시키지는 못하지만, 백작 이하의 귀족들에게서 1천 명의 사병을 차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쓸모가 넘쳤지만 말이다.
“비가 올 것 같아요.”
메이엔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행들이 고개를 들자 멀리서 먹구름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비가 좀 많이 오겠는데?”
제론이 눈살을 찌푸렸다. 먹구름은 무척이나 짙었고, 낮게 깔려 있었다. 언제 비가 쏟아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비를 피할 장소를 찾아 움직이려고 할 때 에이전이 말했다.
“비가 많이 온다면…… 그들이 습격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들?”
“비 오는 날 상단이나 용병단을 습격하는 도적단이 있습니다. 상단의 경우에는 물건만 빼앗고 사람들은 건들지 않고 돌려보내지만, 용병단은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죽이는 놈들입니다. 이 근방에서는 유명한 놈들이지만…… 으음. 이런 말로 하긴 조금 그렇지만 비 오는 날만 잘 피하면 마주칠 일이 없어서 큰 위협이 되는 놈들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에만 습격하는 도적이라. 신기하네요.”
보통 도적은 영지의 높은 세율을 견디지 못해 도망쳤다가 먹고 살길이 막막해져 무기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털거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비가 오면 시야가 제한되고 땅이 질퍽해져서 하반신을 받쳐주는 힘이 적어지고 미끄러워서 어지간히 뛰어난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 본래 실력의 50퍼센트라도 낸다면 다행이다. 그러하니 비 오는 날만 골라서 도적질을 하는 도적이라는 말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좀처럼 보기 드문 케이스네.’
일반적인 도적의 범주를 벗어난 놈들이다.
호기심은 생기지만 딱 그 정도였다.
게다가 지금 비가 많이 올 것 같다는 말은 엄청난 폭우가 내린다는 뜻이다.
잘 보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한 치 앞도 안 보일 수준이다.
제론의 안력이 어둠마저 간파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하지만 비까지 뚫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물을 건너뛰고 본다는 건 투시안 같은 초능력이나 마법으로 가능한 일이다.
물론 정말로 엄청난 폭우가 내릴지 말지는 잠시 후에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기감으로 알아차릴 수 있긴 하지만 불편한 것도 사실이지.’
신성을 갖기 전이었다면 강행군을 선택했을 것이다. 기감을 뿌려놓고 누군가가 다가온다면 알아차리고 반응하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은 빗방울이 하늘에서 땅까지 꽂히는 순간까지의 모든 데이터가 뇌로 전달된다.
낙하하는 속도와 흔들림, 땅에 부딪친 순간 튀어 오르는 물방울의 양과 방향 등등…… 받아들이는 데이터의 양이 너무 많아져서 뇌가 견디지 못한다.
기감의 범위와 받아들이는 데이터를 제한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기감을 죽이지 않는 이상 데이터가 쌓이게 된다.
기를 응용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신성 역시 어떻게든 컨트롤하고 있어 멀쩡히 잘 걸어 다닐 뿐이지, 제론은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언제 뻥-! 하고 터질지 모르는 엄청난 위력의 소형폭탄 말이다.
‘이대로 몸이 적응하길 기다리는 것도 문제가 많고.’
아직까지는 고작(?) 오러 마스터 급의 적만 상대했다. 앞으로 그 이상의 적이 나타나면 지금보다 더욱 많은 힘을 사용해야 한다. 신성을 전력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하고 적응을 끝내야 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말마따나 신성을 잘 다루게 되기까지의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솔직하게 마음만 먹으면 남대륙에서 몇 달 죽치고 앉아서 수련만 해도 어렵지 않게 예전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제론의 진짜 문제-걱정은 신성을 남용하다가 스스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 다른 ‘나’.’
의식 속 깊은 곳에는 생존과 투쟁의 삶을 살아갔던 과거의 또 다른 ‘나’인 유민현이 있다. 그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서 몸을 차지하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경우도 가정해야 한다.
‘그리고…… 탈각을 실패했던 게 아니었고 말이야.’
예상대로라면 이 힘은 우화등선을 하고 얻었어야 할 신선神仙의 힘이다.
우화등선은 곧 인간의 육신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하는 탈각脫殼을 의미한다.
탈각을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제론, 아니…… 유민현은 탈각을 이루었고 알지 못하는 어떠한 일로 말미암아 기억을 잃어버린 채 이쪽 세상에서 환생한 것이었다.
‘기억을 되찾아야 해.’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
투툭.
빗방울이 발 앞으로 떨어졌다. 생각에서 빠져나온 제론이 고개를 들자 먹구름이 머리 위를 순식간에 덮는 것을 발견했다.
에르딘이 손짓을 하며 외친다.
“이쪽으로 와요! 어서!”
살짝 경사가 진 길 위에 작은 터가 보인다.
천막만 얼른 친다면 잠시 비를 피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제론과 쟌느가 재빨리 달려갔다. 빗방울이 떨어진 순간 폭우가 곧 쏟아져 내릴 거라는 걸 알았다. 여유롭게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천막! 큰 놈으로!”
“여기요!”
제론이 외치자 에르딘이 천막을 바로 꺼냈다.
2인용 천막이 아니라 10인용 대형 천막이었다.
전쟁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런 날씨 상황에서 2인용 천막을 쳤다간 고정을 시켜도 바람의 세기에 통째로 날아가거나 폭우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지도 모른다.
천막을 신속하게 치며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비가 내리면 땅이 물러져서 고정말뚝이 뽑힐지도 모르기 때문에 평소보다 깊게 박았다.
천장을 받쳐줄 중앙기둥을 세울 때쯤 나머지 일행들이 도착했다.
“어, 엄청 빠르시군요.”
멀리서 빠르게 천막을 쳐지는 속도를 본 에이전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당황한 것과 달리 재빨리 움직여서 천막의 사각 모서리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연결된 줄을 빳빳하게 당겨 고정말뚝에 묶었다.
로건과 메이엔보다 천막을 치는 솜씨가 훨씬 좋았다.
“훈련을 받을 때 비슷한 걸 많이 쳐봤습니다!”
제론의 시선을 의식한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잠시 후 천막을 완성하자 모두가 안으로 대피했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투두두둑-!
천막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조금 거센 정도였지만 1초…… 1초가 지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빗줄기가 세져간다.
에르딘이 천막 입구를 걷어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봤다. 제론의 예상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비가 내렸다.
얼마나 세게 내리는지 빗물이 튀어 안까지 들어온다.
“아이고. 엄청 내리네.”
“야. 문 닫아.”
“네네. 알겠…….”
입구 휘장을 내리려던 에르딘이 멈칫했다.
장대비 속에서 무기를 든 수십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리는데 어떻게 그걸 아냐고?
천막을 향해 다가오는 자들의 머리 위 1미터에 투명한 장막을 친 것처럼 빗줄기가 좌우로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는 대략 20미터.
그전까지는 그들이 다가오는 걸 알지 못했다.
“제론 님.”
“알아.”
에르딘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하자 제론이 간이의자에서 일어났다. 저들이 무기를 들고 있지만 도적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흉흉한 기운이 수십 명의 몸에서 풀풀 흘러나오고 있었다.
“놈들입니다.”
에이전이 옆으로 와서 말했다.
비가 오는 날마다 상단 혹은 용병단을 습격한다는 도적단을 말하는 것이다.
“상단은 물건만 빼앗고 용병단은 전부 죽인다고 했죠?”
“예.”
“그럼 반갑게 맞아줄 필요는 없겠네요.”
“저도 돕……?”
에이전이 검을 빼 들었지만 제론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두리번거리자 에르딘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쪽을 바라보니 흉흉한 기운을 흘리는 무리에게 다가가는 제론의 등이 보였다.
“위험합니다!”
“괜찮아요.”
태연한 에르딘의 반응에 에이전이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일행이 위험한데 뭐가 괜찮……!”
쿵-!
말하던 도중 폭우를 뚫고 들려오는 소리.
화들짝 놀란 에이전이 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자 제론의 주먹이 곧게 뻗어져 있었고, 흉흉한 기운을 흘리는 무리가 사방으로 나자빠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군요. 그래. 괜찮았던 거였어.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죠?”
“네. 꼬집어 드릴까요? 아니면 조금 더 세게?”
“그 정도로 정신이 나간 상태는 아닙니다.”
에이전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자신의 뺨을 세게 꼬집은 뒤였다.
얼얼한 통증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진짜라는 체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에르딘 경도 엄청났지.’
에르딘의 몸에서 흘러나왔던 흉악한 기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평소 얼빵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면모였다.
‘그렇다면 이 일행의 리더인 제론 님은 얼마나 강한 거지?’
곧 그 질문의 대답이 눈앞에 펼쳐졌다.
쿠궁-!
제론이 발을 구르자 그를 중심으로 반경 10미터의 공간이 흔들렸다.
땅은 파도가 치는 바다처럼 출렁였고, 대기는 잠잠한 수면 위로 물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물결이 일어났으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아래로 떨어지던 비가 역류하여 하늘로 치솟았다.
“허억?”
에이전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숨을 삼켰다. 지금 자신이 보는 광경이 현실인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어찌 한낱 인간의 힘으로 이런 경천동지할 일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이 아니고서야…… 흡!”
에이전은 저도 모르게 나불거린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