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69)
제 269화
269화
에이전의 입장에서는 제론이 가히 신의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제론의 진짜 힘을 알고 있는 일행들로서는 다소 의아한 광경이었다.
‘일격으로 전부 쓰러트리지 못했다고?’
에르딘은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 제론의 일권一拳은 대기를 폭발시켰다. 자세한 원리는 모르지만 대충 몸을 중심으로 내공을 원으로 터트리며 어떻게 한다는 식으로 알고 있었다. 당해본 입장으로 예상컨대 그 위력은 최소 오러 익스퍼터 수십 명을 피떡으로 만들고도 남을 정도다.
무기를 들고 나타난 수십 명이 오러를 다루는 유저User라는 건 굳이 싸워보지 않아도 풍기는 기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말인즉슨 제론의 공격으로 전부 죽거나, 일어나지 못할 큰 내상을 입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쓰러진 놈들은 힘겹지만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힘을 일부러 바깥으로 흘려보내신 건가?’
에르딘은 의문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론이 저딴 놈들한테 당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따로 무슨 생각이 있으신 건가?’
그러지 않아도 최근 제론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끼곤 있었다.
낯빛이나 몸 주위로 흐르는 기운이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냥 직감이었다.
예전에 제론이 고수가 되면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감각이 생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바로 그것으로 느낀 것이다.
‘분명 이상하긴 한데…….’
에르딘은 끙끙 앓았다. 제론이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그것의 뚜렷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사실 직감이라는 게 대부분 그랬다. 대표적으로 적의 기습을 미리 알아차리는 예지에 가까운 직감 역시 논리적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가깝다. 하지만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냥 제론에게 물어보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쫄보 근성으로 똘똘 뭉친 에르딘은 제론을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대상으로 느끼지만, 제론은 에르딘을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론이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은 까닭은 손과 발이 사라질 정도로 오글거리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에르딘이 끙끙 앓고 있는 사이 제론의 공격은 한 번 더 수십 명을 향해 몰아치고 있었다.
콰앙-!
공간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의 폭발음과 함께 수십 명이 볼링공에 맞은 핀처럼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힘겹지만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일행들의 표정에 믿기지 않는다는 의문이 드러날 무렵 제론의 웃고 있는 표정이 보였다.
‘음흉한 계략을 꾸미고 있었구나!’
에르딘이 흠칫 놀라며 생각했다. 나머지 일행들 역시 비유가 다르긴 했지만 비슷한 생각을 각자의 머릿속에 떠올렸다.
하지만 정작 제론은 음흉한 계략 같은 건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힘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신성을 억누르고 내공만으로 싸우는 건 어색하네.’
주먹을 쥐고 펴며 제론이 생각했다.
일격으로 수십 명의 도적을 쓰러트렸지만 놈들이 멀쩡하게(?) 일어선 까닭은 격산타우-때린 대상이 아닌 다른 대상에게 타격을 전달하는 발경법 중 하나-를 펼쳤기 때문이다.
격산타우의 대상은 수십 명의 도적이 아닌 그 주변의 환경.
그러나 충격파까지 상쇄할 이유는 없었다.
그랬다.
도적들은 충격파에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격산타우를 펼쳤다고 해도 충격파는 약하지 않았다. 잠깐에 불과하지만 땅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대기가 물결쳤으며, 내리던 비가 역류할 정도였으니까.
‘조금만 더 해볼까?’
제론은 주먹을 꾸욱- 쥐었다.
서슬 퍼런 눈빛으로 날붙이를 든 채 다가오던 도적놈들이 한 대를 맞고 일어선 뒤로는 제론의 눈치만 살핀다.
눈빛을 읽으니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내 도망치지 못한 건 충격파에 휩쓸리며 다리가 바람 부는 날의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론이 발을 앞으로 내딛자 한 도적이 외친다.
“화살을 쏴! 얼른 쏘라고!”
파바밧-!
무섭게 빗줄기를 뚫고 여러 개의 화살이 날아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찬 빗줄기를 뚫고 올 정도의 화살이라면 그 위력이 만만하지 않을 테지만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화살이 아니라 공성 무기인 발리스타에 오러 블레이드를 두른 채 쏴도 부족했다.
제론은 쥐었던 주먹을 폈다.
원을 그리듯 두 손을 움직이자 몸을 꿰뚫을 것처럼 날아오던 화살들이 빗줄기와 함께 두 손바닥 사이로 빨려 들어왔다.
도적들이 경악해서 소리친다.
“……!”
“오, 오러 마스터라도 이런 건 불가능해!”
그들을 향해 씨익- 웃어준 제론이 말했다.
“돌려주마.”
양팔을 크게 펼치자 화살들이 주인들에게 되돌아갔다.
그냥 돌려준 것도 아니었다.
되돌아간 화살은 본래 꽂혀 있는 통이 아닌 주인들의 미간에 박혔다.
“그런데 너희, 그냥 도적이 아니네?”
제론은 얼어붙은 도적들을 향해 다가가며 물었다.
사실 용병과 도적은 한 끗 차이였다. 용병길드를 통해 정식으로 의뢰를 받아 수행해 돈을 벌면 용병이고, 지나가는 사람을 약탈하면 도적이다. 지금 눈앞의 도적들 역시 용병들이 착용할 만한 가죽 갑옷과 칼만 무장하고 있었지만…… 딱 한 가지, 제론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
“페로쉐 왕국의 기사단인가?”
“……우리 같은 도적이 왕국의 기사단이라고? 재미있는 헛소리를 다 듣는군.”
“그런 헛소리를 안 들으려면 오러의 흔적부터 잘 지웠어야지.”
제론이 피식 웃고선 말하자 도적들, 아니 기사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표정을 본 제론은 입술을 비틀며 다시 말했다.
“왕국의 정규군이 아니면 공국의 정규군이냐?”
“죽여!”
기사단이 악에 받쳐 덤벼들었지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1분 뒤 전원이 비에 젖은 땅 위에 쓰러졌다.
중간에 도망치려던 녀석들이 있었지만 얼마 가지도 못했다.
멀리서 화살을 쏜 궁수대를 제외하고는 사상자가 전무했다.
제론이 바닥에 떨어진 막대기 형태의 아티팩트를 집어 들었다.
비를 막고 있는 투명한 막의 정체였다.
“이런 아티팩트를 들고 다니는데 도적 따위일 리가 없지.”
서대륙의 바후르 도적단도 도적의 탈을 뒤집어쓴 하부조직이었다. 귀족들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쉽게 말해 더러운 일을 해주는 사냥개다. 이번 경우에는 사냥개라고 보기 힘들지만 다른 식으로 접근이 가능했다.
“제론 님.”
빗줄기를 뚫고 에르딘이 왔다. 제론이 고개를 돌려 녀석을 봤다. 잠깐 시선을 돌리자 다른 일행들은 천막 안에 있었다.
폭우가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천막이 무너지거나 날아가지 않게 지켜봐야 해서 에르딘 혹은 쟌느 중 한 명이 남아야 했다. 그래서 에르딘이 쟌느를 제치고 달려온 것으로 보였다.
‘아이고. 이 화상아.’
에르딘은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쟌느가 천막 안에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천막으로 잠깐 시선을 옮긴 제론이었기에 그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아, 젠장.”
“응? 왜요?”
“자살했어. 전부 다.”
에르딘이 거북이 목을 한 채 제론의 눈치를 살폈다.
‘자살’이라는 단어만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기사단이 모종의 수법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
제론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놈들을 살려뒀을 리가 없다.
‘정보를 캐내려고 했겠지.’
하지만 죽은 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살려둔 이유가 사라졌다.
에르딘이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했다.
“됐어. 쫄지 마.”
“진짜요?”
“손해보다는 이득이 크니까 봐주는 거야.”
제론은 기사들의 품속에서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에르딘도 헤헤 웃으며 잽싸게 움직였다.
당연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비를 막아주던 막대기 아티팩트와 통신용 귀걸이 아티팩트, 그리고 착용한 가죽 갑옷과 칼이 전부였다. 멀리서 활을 쏜 궁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막으로 돌아가자 에이전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이 피부를 따갑게 했다.
‘부담스럽네.’
그것도 꽤 많이.
제론은 볼을 씰룩거리곤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에이전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손을 들어서 멈추라고 했다.
“조금 피곤하네요.”
“아! 예. 예! 제가 자리를 펴겠습니다.”
간이침대를 설치하고 이불까지 까는 에이전.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깔끔하게 잘 깔린 이불을 보는데 제론의 마음이 불편하다.
‘아, 각이 져서 그렇구나.’
군대에서는 이불을 펼 때도 각을 잡는다.
각을 못 잡으면 어떻게 되냐고?
‘X나게 갈굼받는 거지.’
그런 의미로 에이전은 갈굼을 안 받았을 것 같았다.
각이 아주 날카롭다.
살갗이 베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부츠를 벗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씻을 필요는 없었다.
몸은 막 씻고 나온 것처럼 뽀송뽀송하다.
내공으로 체온을 조절하고, 불순물이 묻지 않게 피부에 두르고 있으면 되니까.
뭐, 야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씻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지만 굳이 씻으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천막 밖으로 나가 폭우를 맞아도 되고 빗물을 받아서 씻어도 된다.
이쪽 세상은 현대와 다르게 빗물이 엄청 깨끗하다.
거의 청정수다.
그냥 마셔도 될 정도다.
‘그나저나 상단전을 강제로 막아도 큰 문제는 없네.’
상단전의 기운은 신성으로 변질되었다.
변질이라고 하니까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아무튼, 이번에는 상단전의 신성이 다른 곳으로 흐르는 통로를 막고 하단전과 중단전의 내공으로만 싸웠다. 하단전과 중단전의 내공이 아직 신성으로 변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싸움을 한 이유도 있었다.
또 다른 ‘나’ 유민현이라는 위험요소를 억누르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상단전의 기운이 신성으로 변질되며 ‘나’ 유민현의 의식이 깨어났다.
‘원영신을 흡수한 탓이야.’
탈마의 경지에 오르면서 자신의 혼의 일부를 떼어내 만든 화신이자 분신이 바로 원영신이다. 그런데 흡수한 원영신은 이쪽 세상에서 환생한 뒤 만든 원영신이 아니라 무림에서 만든 것이다.
즉, 유민현의 혼으로 만들어진 것.
‘완전히 녹아든 것을 분리하는 건 불가능해.’
왜 ‘나’-유민현이 가만히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있는지 몰라도 분리가 불가능하다면 강제로 틀어막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
‘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란 제론이 의식을 가라앉혔지만 ‘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착각으로 인한 환청이 들려온 것일지도 몰랐다.
‘너무 예민했나?’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마찬가지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다른 의미로 위험했다.
찌그래기들과 싸울 때는 상관없지만, 베헤못과 같은 아스트랄의 강대한 존재를 상대할 때는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서는 안 된다.
가끔 ‘나’의 존재가 제론이 스스로 만들어낸 거짓된 존재가 아닐까 의심할 때도 있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나?’
제론은 머리카락을 헝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런 제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두 쌍의 눈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죠?”
“맞아요. 평소의 우리 자기랑 조금 달라.”
바로 에르딘과 쟌느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