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70)
제 270화
270화
에르딘이 여전히 제론을 쳐다보며 말했다.
“쟌느 님.”
“응?”
쟌느도 여전히 제론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존댓말과 반말 중 하나만 하면 안 돼요?”
“왜요?”
“그게…… 불편해서요.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인 게 편한데 왔다 갔다 하니까 조금 그렇다고 할까?”
“한마디로 너 편하자고 그런 거네요?”
“네. 맞아요.”
에르딘은 순순히 수긍했다.
쟌느가 피식 웃으며 어떻게 하겠다고는 말하진 않은 채 화제를 전환했다.
“혹시 우리 자기가 심마에 든 건 아닐까?”
“심마요? 에이. 그런 거였으면 지금 우리가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죠.”
에르딘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왜 자신만만한진 모르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쟌느가 생각했다.
물론 저 말에서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바로 ‘우리’가 아니라 ‘제가’라고 말이다.
자연스럽게 일행 전부를 자신과 똑같이 만들었다.
에르딘이 맨날 제론한테 맞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듣기로는 심마가 엄청나게 위험하다고 했지.’
쟌느는 다시 제론을 보며 생각했다.
오러 연공법에도 심마와 비슷한 현상인 마인드 컨퓨젼Mind Confusion라는 것이 있다.
직역하자면 정신의 혼란 또는 정신의 혼동이다.
주로 오러 익스퍼트의 기사들에게서 벌어지는 현상인데, 억지로 마나 홀을 넓히거나, 무리해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려고 하거나, 강제로 상승의 경지로 올라서려고 할 때 오러가 역류해서 정신이 돌아버리며 미치광이가 된다.
정신력이 강한 기사들은 마인드 컨퓨전을 견뎌내거나 이겨내지만, 그러지 못한 기사들은 광견병에 걸린 것처럼 날뛰거나 살인마가 된다.
‘확실히 그런 상태로 보이지는 않아.’
쟌느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을 하다가 제론의 정확한 현재 모습을 짚었다.
‘걱정이나 근심이 많은 사람처럼 보여.’
다르게 표현하자면 끙끙 앓다 못해 속이 곪아버리기 직전이다.
남대륙으로 넘어오기 전에도 저런 모습이 가끔 보이곤 했다. 지금은 닫혀 있던 꽃봉오리가 활짝 열리고 말았다.
‘쓸데없이 예쁘네.’
쟌느가 머릿속에서 꽃봉오리 안에 제론의 얼굴이 있는 상상을 했다가 얼른 고개를 흔들어 지웠다. 제론의 머리를 똑 떼서 꽃봉오리 안에 집어넣는다고 생각해보니 조금 잔인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카헤론 공국의 기사단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 비를 막아주는 아티팩트를 들고 밖에 다녀온 에이전이 죽은 기사 한 명의 칼과 가죽 갑옷을 가져와서 살펴보더니 말한다.
“여기 보시면 가죽의 결이 제 것과 다른 게 보이실 겁니다.”
에이전이 입고 있던 가죽 갑옷을 벗어서 안쪽으로 뒤집었다.
가죽의 결은 무두질 방법과 사용한 도구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뭐가 다른 거시여?’라며 눈만 껌뻑일 정도로 차이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갑옷을 만드는 장인이나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어?’ 하면서 바로 알아차린다.
그런 의미로 에이전의 가죽 갑옷과 죽은 기사의 가죽 갑옷은 그 결이 확실히 달랐다.
대략…….
각도가 오른쪽으로 2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다.
“뭐가 보여요?”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에르딘과 쟌느가 두 눈을 슥슥 문대고 봤지만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2도의 각도란 정말로 미묘한 차이였던 것이다. 심지어 가죽의 패턴에 따라 결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가죽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용한 동물 혹은 몬스터의 가죽에 따라 패턴이 전부 다르죠. 자, 제 가죽 갑옷과 이 가죽 갑옷은 형태만 다를 뿐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가죽의 결이 달라요. 그 말은 가죽을 무두질한 장인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결도 결이지만 이게 제일 중요한 증거인데, 이 가죽 갑옷이 크로뱃이라는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크로뱃이라는 몬스터와 지금 상황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약간 억측이 아닐까요?”
에르딘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갑옷을 만들 때 쓰는 가죽은 공급량의 문제로 종류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싸구려 가죽 갑옷 같은 경우에는 고블린이나 놀, 코볼트의 가죽을 사용하기도 하지요.”
싸구려 가죽 갑옷은 용병들이 사서 입거나 병사들에게 보급되는 하급 라인의 가죽 갑옷을 말하는데, 양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급이 많은 가죽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중급 라인부터는 트롤이나 오우거, 미노타우로스 등 중형급 이상의 몬스터 가죽으로 가죽 갑옷을 만든다.
“그리고 고급으로 분류되는 가죽 갑옷은 장인의 솜씨가 바뀌고, 마법을 인챈트해서 아티팩트처럼 만듭니다.”
하급 라인에서 쓰이는 놀이나 코볼트의 가죽으로도 중급 라인 이상의 품질이 탄생되는 게 위의 이유 때문이었다.
게다가 갑옷 같은 것에는 마법을 인챈트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에 사실상 중급 라인에서도 상위 라인이 실질적으로 고급으로 취급받는다.
아티팩트 화 된 갑옷은 고급 중에서도 최상위인 보물이고 말이다.
“이야기가 잠깐 딴 길로 샜는데……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제 가죽 갑옷과 이 가죽 갑옷이 똑같은 가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
“바로 남대륙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진 몬스터 크로뱃의 가죽으로 말입니다.”
각 대륙마다 서식하는 몬스터의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
그중에서 남대륙에서 서식한다고 알려진 크로뱃CroBat은 박쥐 형태의 몬스터인데, 주로 동굴에서 살며 곤충이나 짐승 등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사실 거기까지는 에르딘의 의문처럼 증거라고 할 만한 게 아니었다.
남대륙에서 크로뱃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드는 왕국이 몇몇 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사실.
가죽 갑옷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크로뱃의 가죽이 대략 30마리분에 달한다는 것이다.
수십 명으로 이뤄진 기사단 모두가 크로뱃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착용하려면 1천 마리를 넘게 가죽을 벗겨야 하는데, 크로뱃이 멸종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숫자가 서식하는 군락은 남대륙에서 오직 딱 한 곳, 페로쉐 왕국 안의 또 다른 나라 카헤론 공국밖에 없었다.
“이건 국가기밀입니다만…… 10년 전 이런 결이 나오도록 가죽을 무두질하는 장인이 왕실에서 카헤론 공국으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결정적인 한 마디였다.
* * *
늦은 밤, 카헤론 대공은 반갑지 못한 손님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잠옷 바람으로 나와야 했다.
“무슨 일이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음침한 냄새를 풍기는 자가 쇠를 긁는 듯한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 누군가 공국으로 찾아올 것이오.”
“누군가 온다고?”
“그렇소.”
“그가 누구이오?”
검은 로브 속에서 푸른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적!”
그것도 아주 위험한.
* * *
다음 날, 제론은 평소처럼 행동했다.
“야, 인마!”
“악! 악!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으면 맞아야지!”
도망치는 에르딘을 쫓아가 붙잡은 제론이 머리에 혹이 날 때까지 마구 꿀밤을 먹인 뒤 돌아왔다. 꿀밤을 먹다가 에르딘이 실신한 것은 이제 제법 흔한 일이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해?”
“대략 5일?”
“5일이라…… 얼마 안 남았네.”
예상 밖의 일로 페로쉐 왕국에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남대륙으로 넘어온 지 1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다.
‘으음. 사실 단순히 오크들이 중앙대륙을 침공할지 알아보러 온 거긴 하지만 말이야.’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성과는 있었다.
바로 조직의 거점 중 한 곳을 알아낸 것이다.
“제론 님! 다음 도시가 카헤론 공국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도시래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에르딘이 후다닥 달려와서 말했다.
“도시에 가면 시원한 스프도 먹고, 매콤한 양념을 잔뜩 바르면서 구운 꼬치구이도 먹고 싶어요!”
“그래.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라.”
“하아. 저번에 아카데미 갔을 때 꼬치구이를 사 먹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에요. 진짜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에르딘이 재잘재잘 떠들자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낸 제론은 에이전을 손짓으로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부터 해줘야 할 일이 있어요.”
“……! 말씀하십시오.”
에이전이 두 눈을 부릅뜨며 각 잡고 섰다.
전형적인 군인의 자세였다.
‘군인이 아니라 요원 아니었나?’
하긴.
무슨 차이가 있겠어.
군인이나 요원이나 국가에 소속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까고, 누우라고 하면 누워야 하는 신세는 똑같다.
“공국 주변의 영지를 돌아다니면서 병사들을 모아주세요. 지금도 살짝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최대한 빨리 모아서 포위하고 있다가 신호를 주면 바로 덮쳐요.”
“넵! 알겠습니다!”
“최대한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안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죄 없는 백성들의 피해가 커져요.”
“페로쉐 왕국을 위하여! 반드시 해내고 말겠습니다.”
에이전이 경례를 하며 말했다. 경례를 받아준 제론이 기사단한테서 파밍한 통신용 귀걸이 아티팩트를 주자 그가 떠났다.
‘다음 도시까지 2일. 공국의 국경까지 3일. 데먼 마운틴을 들렀다가 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총 합쳐서 10일에서 15일 사이인가?’
에이전과 함께 움직이느라 일정이 조금 늦춰졌다. 그래서 병사들을 끌고 오라는 임무를 내리며 보냈다. 그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섭섭해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죄 없는 백성들이라는 명분을 괜히 준 것이 아니다.
“조금 빠르게 움직이자.”
제론과 일행들은 5일의 거리-에이전과 같이 움직일 경우-를 2일로 줄이는 기염을 토하며 카헤론 공국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도시에 도착했다.
“얼음이 동동 띄워진 스프! 양념 꼬치구이!”
에르딘은 짐을 풀자마자 얼른 뛰어나갔다.
에이전도 갔으니 자신의 앞길을 막을 존재는 없었다.
“신났네. 신났어.”
“요즘 많이 답답했나 봐.”
제론과 쟌느가 저 멀리 사라지는 에르딘의 등을 보며 하하호호 웃었고, 로건과 메이엔은 은근슬쩍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
물론 데이트라는 건 로건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메이엔은 같이 가자는 말에 눈만 깜빡이다가 ‘그래요.’ 하고 따라 나간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일행들이 흩어지고 멀리서 그 모습을 쳐다보는 존재가 있었다.
찌르르.
바로 마이얀의 마충인이었다.
찌르르-.
마충인은 어딘가로 신호를 보냈다.
* * *
마지막 도시에서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제론이 일행들, 아니 에르딘에게 말했다.
‘제론 님이나 정신 똑바로 차리시죠?’
얼마 전의 제론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 에르딘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꾸역꾸역 집어삼키면서 엄청난 인내심을 길렀다.
이윽고 며칠 뒤 카헤론 공국의 국경에 도착했다.
“…….”
제론은 검지로 뺨을 긁으며 국경초소를 바라봤다.
“으음. 아무도 없네.”
“그러게요. 다들 휴가라도 떠났나?”
에르딘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국경초소가 텅 비는 일은 왕국이 함락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다 철수시킨 것이다.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다는 거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