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72)
제 272화
272화
“……!”
꽈드득!
병사가 착용한 투구와 갑옷이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그에 비례해 몸을 짓누르는 압력도 세지며 고통이 심해졌지만 찍-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압력이 너무 세서 입을 열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거기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병사님들. 그래요. 당신들 말하는 거야. 무슨 상황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실 분 계신가요?”
제론이 천천히 걸어가며 묻자, 병사들은 원하는 대답을 돌려주기는커녕 모세의 홍해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만들어준다.
“아무래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실 분이 없는 것 같네.”
“제가 친절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에르딘이 손을 번쩍 들고 신나서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기 시작했다.
쭉 이야기를 들은 제론이 짧게 요약했다.
“우리가 반란분자라서 체포한다고?”
“네! 제가 다 때려눕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딱 제론 님이 오신 거죠.”
“흐음.”
제론은 쟌느를 바라보며 눈짓으로 에르딘의 말이 진짜냐고 물었고,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대답했다.
정말로 신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제론과 에르딘의 관계였다.
“우리가 왜 반란분자래?”
“그건 저도 아직 못 들었어요. 일단 때려눕히고 천천히 들어볼까 생각했죠.”
이번에도 쟌느에게 묻자 맞다고 대답이 돌아온다.
‘어째 점점 나를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문득 든 생각.
제론은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닮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게다가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건 제론의 입장에서 환영이었다.
심마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줄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당신들 중에서 대장이 누구야?”
“…….”
제론이 질문하자 병사들은 동시에 한 곳을 바라본다. 바로 개구리처럼 엎드려 있는 병사였다. 어째 대표로 나와서 말하더라니, 라고 생각한 제론이 기운을 거두며 그 병사를 허공섭물로 일으켜 세워줬다.
“커헉-!”
병사는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며 두려움에 휩싸인 눈빛으로 제론을 쳐다봤다.
까딱.
제론이 검지를 움직이자 병사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역시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우리가 왜 반란분자지?”
“그,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잘 모르는데 우리를 체포한다고?”
“상부의 명령이라…….”
병사는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찌그러진 투구 사이로 흘러내리는 핏줄기 때문인지 병사가 애처롭고 서글퍼 보였다. 위에서 까라고 해서 깠더니 자기들이 까일 지경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곳이 무덤이라도 된 것마냥 공포에 질린 표정이 불쌍했다.
‘상부라면 영주인가?’
카헤론 공국에도 귀족은 있었다.
공국의 영토가 일개 국가라고 보기에는 작다고 해도 공작령이 그대로 공국으로 변한 것이니, 카헤론 대공을 따르던 귀족들이 공국의 영토를 쪼개서 양도받아 영주로서 다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이 지시를 내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를 어떻게 알고?’
국경초소가 텅 비었다. 신분검사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카헤론 공국의 국경을 넘어온 기록이 없다. 도시 성문을 통과하며 검문을 했지만 신분검사를 한 것이 아니라 방문목적만 묻기에 로건을 앞세워서 순례를 다닌다고 대답하고 들어왔다. 하이패스 급의 프리패스로 들어온 덕분에 신분이 다른 어딘가로 알려질 이유가 없다.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서로 오해가 있던 모양이니 영주님께 가서 직접 해명을 하겠습니다.”
“영주님이요?”
“네. 상부의 명령이라면 영주님의 명령으로 온 게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뷔고 자작의 사병이 아닙니다만…….”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희는 공국의 정규병사입니다.”
제론은 잠깐 병사의 말뜻을 머릿속에서 해석해봤다.
‘영주의 사병이 아니라 공국의 정규병사다. 공국의 정규병사가 반란분자를 체포하러 왔는데 고작 43명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5명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숫자가 너무 적다.’
심지어 기사나 기사급의 실력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악명이 높은 반란분자였다면 그런 실력자가 왔겠지만 페로쉐 왕국이나 카헤론 공국에는 반란분자라고 불릴 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병사들만 몰려온 것이다.
‘그러면 납득이 되기는 한데……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으면서 병사들만 보냈다고?’
일부러 자신과 일행들을 자극해서 병사들을 해치게 만들려는 것이다.
라는 결론으로 내려졌다.
‘개연성은 어디에 버렸는지 몰라도 단순히 짜증 나게 만들려는 목적이라면 효과는 충분하지.’
마이얀의 계획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데먼 마운틴에서 제론과 일행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그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리둥절했겠지만 말이다.
“그럼 갑시다.”
“네?”
“저희가 반란분자라서 체포하러 왔다면서요. 어쩌다가 그런 오해가 생긴 건지 몰라도 취조를 하면 알게 될 것 아닙니까?”
제론이 순순히 따라가겠다고 하자 일행들과 병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한다.
“무슨 생각이야?”
쟌느가 제론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샤벨 타이거를 잡으려면 샤벨 타이거 굴로 들어가라고 했어. 그래서 샤벨 타이거 굴로 가보려고.”
“위험하지 않겠어?”
“나를 믿어봐.”
병사들이 앞에 있는데 마이얀이 저 병사들을 죽이게 만들려고 했다며 떠벌떠벌 거릴 수는 없었다.
쟌느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제론을 믿기로 했다.
‘난 내조의 여왕이니까.’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한 그녀는 일행들에게 짐을 챙기라고 전했고, 병사들과 함께 대공의 성으로 이동했다.
마이얀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진 순간이었다.
* * *
“카헤론 대공! 이 멍청한!”
마이얀은 마충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 상황을 알아차렸고, 카헤론 대공이 자신의 충고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분노했다.
“……어차피 카헤론 대공도 제거해야 된다.”
비록 많은 시간과 재물이 손해를 봤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면, 그건 손해가 아니라 이득이었다.
마이얀은 카헤론 대공과 제론과 그의 일행을 동시에 죽여 버릴 계획을 새롭게 짜기 시작했다.
* * *
“큭큭!”
카헤론 대공은 와인이 든 잔을 높이 들고 축배를 들었다. 본래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마이얀을 엿 먹였다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음침한 마법사 놈의 뒤통수를 언젠간 한 번 꼭 때리고 싶었지.”
“조급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카헤론 대공을 수호하는 기사가 말했다.
기사의 이름은 포럼 잭슨.
카헤론 대공의 오랜 친구이자 유일무이하게 충언을 아끼지 않는 신하였다.
“예정보다 이르긴 했지만 지금보다 더 늦은 뒤라면 녀석이 먼저 우리를 제거하려고 했을 거다. 그 녀석이 꾸미고 있는 일을 포럼, 너는 알고 있지 않더냐.”
“…….”
“그리고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다. 그 음침한 마법사가 경계를 할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가진 자들이라면 내가 먼저 포섭해서 이용하면 되지.”
“쉽지 않을 겁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적어도 세상을 뒤집어 놓으려는 놈보다는 낫겠지.”
카헤론 대공은 잔을 크게 기울여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차피 카헤론 공국의 최후는 멸망밖에 없다.’
카헤론 공국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고 있던 그는 반드시 이 지옥 같은 영겁의 굴레가 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 * *
대공의 성에 도착하자 5명의 기사와 수백 명의 병사들이 제론과 일행을 정중하게 맞이했다.
“대공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반란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워놓은 것치고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태도가 정중하다. 그런데 5명의 기사 중 1명이 제법 강했다.
‘오러 마스터네.’
그 기사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56명의 마스터가 아니었다.
사실 세계관 확장이 여기까지 이어진 시점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기도 했다. 실제로는 공식적인 마스터보다 비공식적인 마스터가 더 많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제론 자신과 일행 중에서도 마스터가 3명이고 마스터 급 강자가 1명이다.
게다가 만들어진 마스터-페이크 마스터까지 생각하면 비공식적인 마스터의 숫자는 추정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진다.
“제론 님.”
“알아.”
“……?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러니까 일단 들어갑시다.”
에르딘이 시무룩해져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대공의 성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홀에서 한 남자가 홀로 서서 제론과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양팔을 벌리며 반갑게 인사한다.
“하하! 반갑습니다. 카헤론 대공이라고 합니다.”
“제론입니다.”
제론과 일행들도 자기소개를 했다.
“성대한 연회를 준비했으니 부디 기분 좋게 즐겨주십시오.”
카헤론 대공이 인사하며 손짓을 하자 아름다운 시녀들이 나와 제론과 일행들을 각자의 자리로 안내했다.
제론과 일행을 제외한 다른 손님들은 없던 모양이었다.
푸짐한 음식과 술이 나올 때까지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식사가 되었다.
카헤론 대공은 맛이 어떠냐, 간이 맞냐는 등의 질문만 하고 다른 어떠한 사적인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일행들은 처음에는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점차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배가 가볍게 차자 제론이 말했다.
“왜 우리를 불렀습니까?”
“후후.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론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이얀이 당신의 적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마이얀과 한패가 아니었습니까?”
“한때는 그랬지요.”
카헤론 대공은 여유롭게 스테이크를 썰며 대답했다.
제론은 그의 ‘한때는’이라는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지금은 아니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물론 당신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한 나라를 다스리는 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아야 했습니다. 그의 힘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죠.”
“헛소리도 멋지게 하는군요.”
“하하! 만약 제게 그와 싸울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절대로 손을 잡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면 페로쉐 왕국의 백성은 제게도 백성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카헤론 공국은 본래 페로쉐 왕국의 공작령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선조께서 공을 세워 독립적인 자치권을 인정받아 공국이 되며 그 경계가 흐릿해졌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런 제 입장에서 페로쉐 왕국의 백성을 납치해서 끔찍한 실험을 하는 마이얀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제론은 카헤론과 시선을 마주치고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간파하려고 했다.
카헤론의 눈빛에는 어떠한 흔들림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능숙한 정치꾼들치고 눈빛과 표정으로 거짓을 진실처럼 만들지 못하는 녀석들은 없었다. 더군다나 일국의 왕이라면 허수아비가 아닌 이상 그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으리라.
“……제 눈에는 그가 끔찍한 악마로 보입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