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8)
제28화
28화
꼬르륵.
짐 정리가 끝나자 티이밍에 맞춰 배가 고파왔다. 제론이 마지막으로 방 안을 쑥 훑어보며 덜 끝난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갔다.
에르딘이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제로니아 페리안님. 식당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제론이라고 불러.”
“예, 제론 님.”
“님 자는 빼면 안 되냐?”
“안 됩니다.”
제론이 투덜거렸다.
같은 9살 또래한테 님이라고 꼬박꼬박 불리니까 소름이 돋는다.
둘 다 나이라도 좀 많았으면 모를까.
“오늘 메뉴는 칠면조 다리에 바비큐 소스를 발라서…….”
“그만. 메뉴는 안 말해도 돼. 나에게도 기대 심리라는 게 필요하다고? 식당으로 향하면서 ‘무슨 메뉴가 나올까?’라고 두근두근거리는 기대감을 망치지 마.”
“알겠습니다.”
“대답은 잘 해요.”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모두 이행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제론이 혀를 내두르며 식당으로 갔다. 이제 막 저녁 식사가 시작됐는지 사람이 많았다. 9살짜리 꼬맹이들이 바글바글했다. 듣기로는 입학생 숫자만 3백 명이라고 한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9살짜리들이 나타났는지 몰라도 벌써부터 징그러웠다.
“쟤가 그 제론이라며?”
“몸속에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고 하던데, 진짜일까?”
“우리 형보다 더 커!”
식당에 들어가기 무섭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꼬맹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딴에는 작게 말한다고 저러는데 너무 잘 들려서 큰일이다.
“이봐!”
“제론! 이쪽으로 와라!”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는 사이 제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손을 들고 있는 카론과 로한이 보였다.
두 명이 앉은 식탁은 휑했다.
꼬맹이들이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멀리 앉아서 힐끔힐끔 쳐다보기 바빴다.
제론은 자연스럽게 두 명과 마주 보게 앉았다.
“자리가 넓어서 좋네.”
“기다리고 있었다.”
카론이 말했다.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집사 후보생이 괜히 있는 줄 알아?”
로한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집사 후보생을 가리켰다.
“로한 님의 전담 집사 콘웰이라고 합니다.”
긴 앞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린 집사 후보생 콘웰이 싱긋 웃으며 정중하게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엘리트 집사라는 느낌이 팍 났다.
에르딘의 표정이 경계심으로 물든 것은 착각이리라.
“그럼 우리는 식사가 오기 전까지 잠시 이야기나 하고 있자고?”
“그러지. 마침 할 이야기도 있었는데 잘 됐군.”
“할 이야기?”
“대륙의 정세에 대한 것이다.”
카론과 로한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2명의 집사 후보생들이 음식을 가지러 가려고 했다. 에르딘도 함께 가려고 하자 제론이 말리려고 했지만 그럴 새도 없이 재빠른 걸음으로 저 멀리 사라진다.
“내가 애도 아니고 밥 정도는 알아서 챙겨 먹게 놔두지.”
“9살이면 애지.”
“로한이 간만에 맞는 말을 하는군. 9살이면 애다.”
넉살 좋은 녀석과 의외로 고지식하지 않은 녀석이 말꼬투리를 잡았다.
제론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두 명을 보며 말했다.
“그럼 쟤는 애 아니고?”
“집사 후보생은 겉모습과 나이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 얼마나 주인의 심중을 잘 파악하는가. 얼마나 능력이 뛰어난가. 그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물론 귀족에게는 그에 마땅한 의무가 있는 거고.”
그냥 내 밥은 내가 챙겨 먹으려는 게 전부인데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 나온다. 더 따졌다가는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겠다.
말하는 것을 포기한 제론이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카론과 로한이 마저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그래서 폴른 제국에서는 동대륙 개척을…….”
“앞서 1번의 실패를 겪었는데도 포기…….”
저게 진짜 9살들의 대화가 맞긴 할까?
제론이 머릿속으로 의문을 떠올리며 완전히 귀를 닫았다.
쉽게 말해 귓등으로 흘려듣기 시작한 것이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일만 없다면 오른 왕국을 벗어날 생각이 없어서도 있었다.
“……론!”
“……론?”
한참 귀를 닫고 있었는데 카론과 로한이 자신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입술을 달싹이고 있는 게 보였다.
귀를 열자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왜?”
“우리의 대화가 재미없었나 보군. 미안하다.”
“당연히 재미없지. 나도 사실 재미없………지 않고 엄청 재미있어. 엄청 재밌고말고. 대륙의 정세만큼 재밌는 이야기가 어디 있겠어? 귀부인들의 스캔들만큼이나 재밌지.”
로한이 카론의 가늘게 뜨인 눈과 시선을 마주치자 재빨리 말을 바꿨다.
과연 넉살만큼 처세술도 엄청나다.
9살짜리에게서 나올 만한 말 바꿈이 아니었다.
제론은 내심 크게 감탄하며 엄지를 세워줬다.
로한도 카론의 눈치를 슬쩍 살펴보더니 식탁 아래로 엄지를 세웠다.
‘짜식.’
‘짜식.’
제론과 로한이 동시에 코쓱을 했다.
서로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기분이 몹시 좋지 않군.”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카론이 눈썹을 가운데로 좁혔다.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로한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카론에게 물었다.
“수강 신청할 건 생각해뒀어?”
“흐음. 웬만한 건 다 할 줄 알아서 뭘 해야 할지 고민이다.”
“누가 1왕자 아니랄까 봐 재수 없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처럼 불온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 공작가가 왕족 모욕죄로 멸문당하길 바라는 건가?”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둘이 친하다는 증거겠지.’
제론은 혀를 내둘렀다.
곧 두 사람의 시선이 제론에게 향했다.
“제론 너는 뭐 들으려고?”
제론은 잠깐 고민하고 대답했다.
“마법과 역사, 정령술을 신청하려고.”
“3개씩이나 듣게?”
로한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어본다.
보통은 1개의 전공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부전공 혹은 클럽 활동처럼 곁들인다.
그러나 지금 제론이 말한 바는 전공을 3개 선택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응. 뭐, 그것들 말고 나머지에는 관심이 없기도 하고.”
제론이 어깨 위의 네로를 힐끔 쳐다봤다.
정령술 수업을 받으려는 것은 이 녀석 때문이었다.
아카데미로 온 이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그 이전부터 조용히 그루밍과 잠만 자는 것을 반복했다.
기운이 불안정한 것도 아니고 녀석에게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아서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과 계약을 한 이상 정령술에 대해 진지하게 배워볼 생각이었다.
그런 제론을 바라보며 카론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흐음.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모르겠군.”
“어떤 건데?”
“혼자 정령을 소환해서 계약까지 맺은 4살의 천재 정령사!”
“아……?”
제론의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래.
그런 소문이 한때 떠돌긴 했다. 하지만 페리안 남작령이 변방에 위치해 있어서 인접한 주변 영지에서만 잠깐 퍼지고 말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1왕자나 되는 녀석이 그 소문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심지어 그때는 5년 전이었다.
이 녀석들이 4살 때의 일이란 말이다!
“아!”
바로 그때 로한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치며 아는 척했다.
“그 소문이라면 나도 들어본 적 있어. 아마 5년 전이었……지?”
로한은 카론의 시선이 제론에게 못 박힌 것처럼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곧 그 소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닫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눈빛으로 ‘정말로 4살의 천재 정령사가 너야?’라고 묻는 것 같았다.
“후우. 그래, 그게 바로 나야 나.”
“13살 같은 9살!”
“몸속에 거인족의 피가 흐르는 자!”
“사실 그의 진짜 정체는 천재 정령사!”
마지막 말은 두 사람이 합죽이가 되어 외친 것이다.
제론이 광대를 씰룩거렸다.
이 녀석들 상당히 짓궂다. 만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십수 년을 알고 지낸 친구처럼 짜증이 팍 솟구친다.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어른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단순히 어린아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표정에서 내심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들뜬 기색이 느껴졌다.
1왕자와 공작가의 자제라면 순수하게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지니고 접근하는 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9살의 어린아이들이라면 다를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
아카데미로 입학하는 애들은 부모 혹은 어른들에게 교육을 받는다.
누구와 친해져야 하며 그로 인해 가문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또한 절대로 고위귀족의 심기를 거슬려서는 안 된다고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는다.
그래서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제론처럼 하지 못한다.
왕실과 공작가에게 밉보이면 가문에 화가 미칠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이 먼저였다.
제론처럼 감히 1왕자 앞에서 같은 아카데미 학생이라며 당당하게 외치지 못한다.
“하하. 장난은 이쯤하고. 역사와 마법은 왜 신청한 거냐?”
“다른 건 몰라도 마법이 제일 궁금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어. 오른 왕국의 역사, 더 나아가 대륙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페리안 남작가에서 태어난 귀족이니까.”
진실은 수십 년을 넘게 살아갈 이 세상에 대해 자세하게 알기 위해서였다.
“뭐, 마법 같은 경우에는 우리 영지에 쓸 만한 마법을 배워서 아티팩트로 한 번 만들어 볼까 생각한 적이 있거든. 내가 마법에 재능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아카데미에 있을 때 배우면 좋잖아?”
“너 이 자식!”
“오른 왕국의 미래는 참으로 밝구나.”
제론의 대답을 들은 두 명의 표정에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제론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식판을 들고 돌아오는 집사 후보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식판을 들고 오는 집사 후보생들의 모습이 참으로 밝긴 하다. 막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아. 밥부터 먹자.”
* * *
제론은 식사가 끝나고 곧장 방으로 돌아갔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기진맥진하다.
‘9살짜리 꼬맹이들한테 기가 쭉 빨린 기분이네.’
침대에 몸을 던져 벌러덩 드러누우며 생각했다. 그사이에 에르딘이 세안을 준비했다. 하지 말라고 했지만 녀석은 집사인 자신의 의무라고 말하며 꿋꿋하게 제론이 세안을 끝내기까지 옆에서 기다렸다.
귀찮은 짐 덩어리가 찰싹 달라붙어 버린 것 같았다.
“이제 돌아가.”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할 게 있으니까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그래. 돌아가서 너 할 거 해.”
제론은 에르딘 같은 녀석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유가 합당하면 된다.
생각해보고 충분히 납득이 된다면 순순히 물러간다.
“알겠습니다.”
지금처럼 말이다.
제론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래, 푹 쉬고. 내일 7시 반까지 천천히 와.”
“바로 세안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렴.”
에르딘이 오른손 손바닥을 가슴 위로 올리며 작게 목례하고 나갔다.
자유의 몸이 된 제론은 침대 위에서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엉기적 일어나 엄마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 제론이에요.
아카데미 입학식이 끝나고 반을 배정…….
제론은 편지에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꼼꼼히 썼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