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81)
제 281화
281화
하이High 써클 마법.
그것을 일컫는 또 다른 명칭이 있다.
바로 이적異蹟 마법이었다.
이적異蹟.
기이한 행적 또는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그래서 이음동의어(말은 다르나 뜻이 같은 단어)로써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마이얀이 준비한 하이 써클의 마법은 단순한 이적 마법이 아니었다.
파멸의 대지Ruin of Ground.
지정한 지역을 무저갱으로 집어삼키는 대이적大異蹟 마법이었다.
제론의 발밑을 중심으로 거대한 암흑이 드리웠다.
그 범위는 무려 300미터에 달했다.
‘피할 수 없다.’
전력을 다한다면 찰나 동안 수백 미터는 우습게 이동할 수 있는 제론이었지만 대이적 마법 ‘파멸의 대지’가 발동된 순간 만들어진 거대하고 단단한 장막과 강력한 인력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장막은 검강으로 흠집이 나지 않는 수준을 뛰어넘어 반사시켜 제론을 공격해 위협했으며, 인력은 어찌나 강하던지 살갗이 뜯겨져 나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팠다.
순수한 내공만으로 금강불괴에 가까운 단단하고 질긴 피부를 갖게 된 제론으로서는 모골이 송연해질 일이었다.
공간을 가르는 참격 역시 장막을 뚫지 못했다.
파멸의 대지는 지정된 지역을 무저갱으로 집어삼키는 대이적 마법이었다. 무저갱은 제론이 살아가던 세상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다른 차원이었다. 참격이 뚫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마이얀이 불러낸 죽은 자들은 이미 무저갱으로 끌려간 지 오래였다.
제론도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죽은 자들이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버티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칫.”
제론이 입술을 깨문 순간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마이얀은 손끝이 바스러지는 것을 알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파멸의 대지’는 9개의 써클을 엮어야 캐스팅이 가능한 대이적 마법 중에서도 유일무이하게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다루는 준신급 마법이었다. 대마법사 여러 명이 모여 오랜 준비를 해도 발현이 가능할까 말까 한 위대한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범위를 축소시켰다고 하지만 홀로 해냈다. 그 대가가 비록 영혼의 소멸이었지만 말이다.
-잊었나? 계약의 대가는 네 영혼이다.
육신이 소멸되고 영혼마저 가루가 되기 직전 거대한 ‘존재’가 다시금 마이얀의 앞에 나타났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뼈가 그의 영혼을 낚아챘다.
‘끄아아아아악!’
마이얀의 영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제론의 일행들이 도착했다.
“……늦었군요.”
메이엔은 무거워진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 * *
제론은 무저갱을 떠돌아다녔다.
두 발로 걸어서가 아니었다.
무저갱은 바닥이 없는 어둠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어둠의 바다였다.
바다 속에서 부유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둥실둥실 떠다녔다.
‘후우.’
한숨을 흘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만 나오지 않는 게 아니었다. 신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눈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실 눈도 움직이고 있는 건지, 움직인다고 착각하는 건지 헷갈렸다.
어둠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군.’
어림짐작으로는 대략 10분이 지났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신체의 감각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지 알지 못한다. 며칠이 지난 뒤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나저나 여긴 신기한 공간이군.’
제론이 두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다. 무저갱은 어둠의 바다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어둠의 바다라고 표현한 것도 눈에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허무虛無로 이루어진 공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움직여도 느끼지 못하는 건가?’
마이얀이 건 저주 권능은 무저갱에 들어온 순간 사라졌다. 관조한 순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의미로 지독한 저주로 가득 차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대부분의 감각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조차 어려웠다.
실제로는 움직이고 있을지 몰라도 감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단전의 내공 역시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을 불러줄 때만 기다리며 웅크려 있던 야수조차 없다.
‘문제가 많네.’
한숨이 흘러나와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
제론은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무작정 이 허무의 공간을 떠다닐 수는 없다. 밖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마이얀이 이런 마법을 사용하고도 아무런 페널티가 없으리라고 하긴 힘들지만 만약 멀쩡하다면 일행들이 위험하다.
‘방법…… 방법을 찾아야 해.’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조급하지 않았다.
아니.
조급함을 느낄 감각조차 상실되었다. 신체와 관련된 감각만 상실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내면의 감각도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심각하다는 걸 알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며 거칠게 몰아치던 감정의 격랑이 잔잔한 호수의 수면처럼 평온해진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하자.’
이곳은 다른 차원이 아니다. 이 공간이 시간까지 함께 다루는 건지는 몰라도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힘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성을 갖게 된 제론의 상식조차 초월한 마법이라는 것이다.
‘다른 차원이 아니면 무엇일까?’
다른 차원이 아니라고 가정을 해본다.
그럼에도 자신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건 마법으로 만들어진 복제품이라는 첫 번째 가정과 지정된 범위의 지역을 무저갱으로 만드는 두 번째 가정이 내려진다.
하지만 대이적은 말 그대로 큰 기적을 의미했다.
기적은 말로 설명할 수 없기에 기적이라고 불린다. 단순히 복제품이라는 말로 끝낼 만큼 어설프지만은 않으리라.
자연스럽게 지정된 범위의 지역을 무저갱으로 만드는 두 번째 가정만 남게 된다.
제론은 마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자연스럽게 그러한 결론으로 도달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진법으로 비교하면 생로生路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빛줄기 하나 드리우지 않는 무저갱 속에서 생로를 찾는 것이란 불가능했다. 생로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생로가 없는 진법을 탈출하려면 진법의 축을 부숴야 한다.’
이 역시 불가능했다.
앞서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마지막 방법은 공간을 깨트리는 것.’
가장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앞의 두 가지 방법보다 가장 실현성이 높은 것이기도 했다.
‘이곳이 다른 차원이 맞다면 끝이 존재한다.’
제론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있는 위치가 무저갱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고수의 영역에 도달해야 생기는 불가해의 감각인 직감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바로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공간을 깨트리려면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이 어디 있을까? 무엇이든 척척 해내던 제론조차 난처한 상황이 닥쳐온 것이다.
‘그래도 해내야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어야 한다.
* * *
“제론 님은 어떻게 되신 거죠?”
에르딘은 거대한 검은 장막 앞에 서서 물었다.
이 안에 제론이 있다.
메이엔의 설명으로는 그랬다.
“저도 몰라요. 마법과 마녀의 비술이 달라서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저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우리가 저걸 부수는 건?”
메이엔의 말에 쟌느가 묻는다.
에르딘이 그 말에 혹했는지 얼른 창을 꺼내든다.
“부술 수 없을 거예요. 설령 부순다고 해도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가만히 놔두는 게 좋기도 하고요.”
“끄으응.”
에르딘은 개처럼 앓는 소리를 내더니 창을 다시 내렸다.
“마나의 유동으로 짐작해보자면…… 하이 써클의 마법이에요. 대이적급의 마법이요.”
“혹시 북대륙에서 겪었던……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진 그거랑 비슷한 건가요?”
“비슷해요. 물론 야만족의 주술은 대이적 마법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지만 이건 진짜 대이적 마법이라는 차이가 있지만요.”
“그런 건 굳이 말해주지 않는 게 좋아요.”
에르딘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일행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저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론 님이니까.’
* * *
에이전은 데먼 마운틴에 도착해 포럼을 만났다. 처음에는 포럼을 적이라고 생각해 공격하려고 했지만 그가 해명을 하자 긴가민가하면서도 우선 공격을 멈추기로 했다.
“……그러니까 일주일 전의 일이라고요?”
제론과 일행들이 산으로 올라간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고 한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포럼이 말했다.
그에 대한 에이전의 감상평은.
“허.”
짧은 한 글자였다.
제론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던 에이전조차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데먼 마운틴 곳곳이 부분 탈모처럼 나무가 텅 비어 있자 믿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콰앙-!
산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오자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 *
“젠장.”
에르딘은 창에 묻은 피와 즙액을 털어냈다.
제론이 저 검은 장막 안에 갇힌 지도 벌써 7일이 지났다.
그 7일 동안 제론의 일행들은 어디에 숨어 있던 것인지 모를 페이크 마스터와 마충인을 상대했다. 놈들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어디엔가 놈들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언제쯤 나오시려나.”
한숨을 푹 내쉬고 천막을 친 장소로 돌아가자 다른 일행들도 방금 막 도착했는지 개인 정비를 하고 있었다.
“제론 님은 어때요?”
“아직.”
쟌느가 대답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충분했다.
지난 7일 동안 수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비가 내리면 검은 장막에 어떤 변화가 있냐고 물어보고, 바람이 불어도 무슨 변화가 없냐고 물어보는 통에 길게 대답해줄 심력이 남아돌지 않았다.
“저는 들어가서 쉬고 있을게요.”
에르딘은 무언無言의 대답을 듣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애용하던 천막과 달랐다. 제론의 아공간 주머니도 함께 저 검은 장막 안에 갇혔기 때문이다.
쟌느의 아공간에도 예비 천막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벌써 일주일째라고요.”
작게 투덜거린 에르딘이 간이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지친 심신을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쿠궁.
산이 작게 흔들렸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눈을 번쩍 뜬 에르딘이 천막을 나갔다.
다른 일행들도 검은 장막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 * *
제론은 조금씩 잊어갔다.
아니.
정정해서 강제로 잊어간다는 말이 맞았다.
허무 속에서 부유하며 모든 것을 하나둘 잊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