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83)
제 283화
283화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요?”
에르딘이 투덜거리며 따지듯 물었다.
제론은 녀석을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고선 대답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
“그래도……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요. 다행이에요.”
생채기라도 난 곳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는 시선.
다친 곳이 없다는 에르딘의 말은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 녀석의 희생이 없었다면 무저갱에서 나는 사라졌을 거니까.’
기억을 잊었으나 27살 유민현의 희생으로 다시 되찾았다. 하지만 제론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녀석의 희생을 슬퍼하는 대신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생각했다.
‘풀어야 할 숙제가 생겼군.’
정확하게는 알아내야 할 지상과제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누어졌던 혼의 일부와 하나가 되며 과거의 기억 중 일부가 떠올랐다.
바로 우화등선을 실패했다고 알고 있던 기억이었다.
혼이 나누어지며 기억의 일부가 소실되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대충이나마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무림에서 말하는 신선과 이곳에서 말하는 신은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존재였다. 즉, 천상과 아스트랄은 명칭만 다르지 똑같은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알게 된 진실은 우화등선이 실패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신들이 왜 내 영혼을 찢어놓은 거지?’
과거 유민현은 우화등선하여 초월적인 존재가 돼서 아스트랄의 세상으로 진입했으나,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신들에게 공격을 받아 영혼이 여러 개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자세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아서 무슨 이유인지 알지 못하지만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정말로 화가 나는 사실은 그런 짓을 저지른 자들이 뻔뻔하게 인간을 위한다는 신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잠깐.’
제론은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영혼을 여러 개로 찢을 정도로 집요한 공격을 퍼부었던 신들이다. 그런데 왜 자신이 이쪽 세상에서 환생을 하도록 가만히 놔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억을 깨끗하게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됐다면 모를까, 환생을 했다는 사실과 전생의 삶과 지식을 온전히 갖고 태어났다.
‘혹시…….’
제론의 생각이 누군가의 음모로 방향이 기운 순간이었다.
“제론 님?”
조심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딘의 목소리였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제론이 주변을 둘러봤다. 걱정과 염려가 섞인 시선으로 쳐다보는 일행들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깊게 생각에 빠져 있었던지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작게 쓴웃음을 짓고선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담아둔 생각을 한쪽으로 잠시 치워두기로 했다.
“미안. 잠시 생각할 중요한 게 있었어. ……그런데 며칠 지났어?”
“일주일이요. 정확하게 딱 일주일.”
에르딘이 부루퉁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 제론은 에르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어.’
바깥의 세상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을 거라고 예상했다.
무저갱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엄청 짧은 시간이 지났거나.’
가장 좋은 결과가 그것이었지만 이미 지나간 7일의 시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마이얀의 공간-실험실이었던 건물을 바라봤다. 자신과 함께 무저갱의 공간으로 함께 빨려 들어갔는데 파손된 곳 없이 멀쩡했다.
“마이얀은?”
“사라졌어요.”
메이엔이 마이얀의 마도서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엄청난 마력을 갖고 있던 마도서는 평범한 책보다도 못한 물건으로 변했다.
모든 힘을 다 쏟아내서 저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마도서가 품고 있던 힘의 근원이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죽었군.’
과도한 힘의 소모일 수도 있고,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힘을 갖게 된 대가가 뒤늦게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둘 중 어느 것이든 상관없었다. 마이얀이 더 이상 부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이 검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하는데.’
하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다.
이 검을 소유하고 있던 왕가도 수백 년 전 야만의 땅과 북대륙을 가르는 설산에서 나타난 마물의 뼈로 만들었다는 것과 검을 한 번이라도 만진다면 모두 단명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다른 것을 알진 못했다.
‘확실한 건 신살의 기운을 갖고 있다는 거야.’
아스트랄의 존재와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이후로 제론은 일행들과 7일 동안 있었던 일을 짧게 대화했다.
7일 동안 쭉 이곳에서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말에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말로써 돌려줬다.
“정말로 고마워. 그리고 고생 많았어. 다들.”
“에이. 제론 님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면 똑같이 행동했을걸요?”
“나였으면 그냥 부수고 꺼냈겠지.”
“앗, 아아……!”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에르딘이었다.
* * *
“저 안을 확인해봐야겠어.”
제론은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말했다. 하지만 대규모의 병력이 산을 올라오는 것을 알게 되자 잠시 뒤로 미뤄야 했다.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온 사람은 놀랍게도(?) 에이전이었다.
“아, 맞다.”
제론은 에이전의 존재를 깜빡 잊고 있었다. 그가 병사들을 이끌고 오더라도 마이얀과의 싸움이 끝나고도 한참 뒤에서야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싸움이 끝난 뒤에 도착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왕실의 권한으로 임무에 제한하여 백작 이하의 귀족들에게서 최대 1000명의 사병을 강제로 차출할 수 있다지만 꽤나 큰 반발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하지만 귀족들의 사병은 귀족들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으로 키워진 일종의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실패하고 돌아올 줄 알았던 그가 가히 금의환향을 했으니, 살짝 당혹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제론은 에이전이 병사들에게 진지를 구축하라고 지시를 내리자, 그에게 다가가 그것에 관하여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 별 거 아니었습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병사를 내어달라며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득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내주더군요.”
“그러시군요.”
제론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에이전이 귀족들에게 반역죄에 가담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사실에 새끼발가락의 발톱 떼를 걸 자신이 있었다.
병사들이 진영을 구축하기 위한 물자가 실린 마차를 끌고 왔다. 슬쩍 마차를 살펴보니 보급품부터 무기와 갑옷까지 양이 넉넉했다. 이대로 전쟁을 벌여도 충분한 것 같아 보였다.
‘군자금까지 뜯어온 건가?’
제론이 작게 혀를 찼다. 협박의 귀재가 따로 없었다.
그 후로 에이전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병사들은 천막의 설치가 끝난 뒤 각자 귀족 가문의 깃발을 진영의 중앙에 세웠다.
보통 귀족 가문의 깃발은 상징성에 의의를 두지만 여기에서는 ‘내가 도왔으니까 반역 아님!’이라고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간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겠네요.”
“응?”
“제론 님 기다린다고 어디 가지도 못하고 사냥을 해 와서 끼니를 때웠어요. 입 안에 고기 누린내가 진동을 해요.”
에르딘이 친절하게 입김을 불어줬다.
엄청난 고기 누린내와 기름 냄새에 제론은 목을 뒤로 빼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향신료가 그의 아공간 주머니에 있었기 때문이다.
잡내도 제거하지 못하고 고기를 구워 먹었으리라.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에이전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제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지 잠깐 고민을 하고 에이전과 헤어진 뒤부터 무저갱에서 빠져나온 이후까지 설명했다.
그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들은 제외했다.
예를 들자면 27살 유민현에 대한 것이라거나 마이얀이 어떠한 존재와 계약을 맺어 엄청난 힘을 갖게 되었다는 등 말이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만 뺀 것이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에이전이 난처한 기색으로 묻는다.
“그럼 카헤론 대공에 대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페로쉐 왕국과 카헤론 공국이 별개의 독립적인 국가이고 마이얀에 의해 강제로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카헤론 대공의 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페로쉐 왕국민을 납치해서 마이얀의 실험체로 바쳤고, 용병단이나 상단을 습격했다는 점에서는 국가적인 문제로 격상한다.
“마이얀이 죽었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예?”
“왕실과 대공이 멍청하지 않다면 모종의 합의를 보겠죠. 그리고, 오크가 일으킨 전쟁이 언제 북부까지 화를 미쳐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갈등을 심화시켰다가는 더욱 큰 피해로 돌아오고요.”
“으음.”
에이전은 신음을 흘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억울하겠지만 곧 닥쳐올 거대한 전쟁을 위해서라도 페로쉐 왕실과 카헤론 대공은 이 문제를 묻고 갈 것이다.
‘하지만 상처를 이대로 놔뒀다가는 곪게 되겠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앞으로 지켜보면 알게 될 일이었다.
적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제론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진지구축이 끝나고 제론은 마이얀의 실험실을 확인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제론의 일행들, 그리고 에이전과 포럼이 함께 갔다.
두 사람은 마이얀의 악행을 보고 증언할 증인들이었다.
엄청났던 싸움의 여파가 전혀 미치지 못한 것처럼 건물 내부는 깔끔했다.
마나를 공급하던 마이얀이 죽어서 함정이나 트랩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법으로 작동하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힘으로 열거나 부숴서 들어가야 했다.
“맙소사!”
“신이시여……!”
에이전과 포럼은 건물 안 실험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론이 봤던 실험체들은 약간의 혐오감만 불러올 정도로 약과였다.
실험실에는 토막 난 시체가 즐비했고, 인간의 내장과 몬스터의 내장이 봉합되어 널어놓은 끔찍한 광경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신체 부위를 하나의 몸에 붙여놓은 둥 엄청난 참상이 연이어 발견되었다.
에이전과 포럼은 나름 수많은 끔찍한 광경을 봐왔다고 자신했지만, 그것들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들에 비하면 손톱의 떼만도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욱!”
“……!”
두 사람은 결국 올라오는 토악질을 참지 못하고 게워냈다. 동시에 분노하고 실망했다. 이런 잔혹한 만행을 저지른 마이얀에 대한 분노였고, 마이얀에게 강제였다고 하지만 협조를 한 페로쉐 왕실과 카헤론 대공에 대한 실망이었다.
제론이 그런 두 사람을 힐끔 쳐다본 뒤 에르딘에게 말했다.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해.”
“…….”
에르딘은 무거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잡혀 온 사람들 중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기척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건물은 엄청나게 거대하고 넓었으며, 기감이 닿지 못한 범위가 있었다.
그곳에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로레인의 시체라도 찾아서 묻어주고 싶어.’
유령마을에서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살고 있는 그녀를 위해 에르딘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령慰靈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