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86)
제 286화
286화
에르딘은 쟌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단한 대화를 나눈 건 아니야.”
8년 동안 령인 채로 마을에서 산 로레인은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있었다. 대화를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언제든 환영할 일이었다.
비록 처음 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건 아니었다.
무서운 인상을 가졌거나 이상하게 꺼려지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논외의 대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쟌느는 인상이 센 편이었다.
험상궂게 생긴 게 아니라 ‘쎈 언니’처럼 보인다고 하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하지만 남자보다는 같은 여자가 제일 반가운 법이었다. 왠지 꺼림칙한 메이엔보다는 ‘쎈 언니’인 쟌느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몸은 좀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지.”
로레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 위한 대화를 나눴다. 작고 사소한 것부터 차근차근 나아갔다. 처음에는 말을 아꼈던 로레인이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폭포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큰 외로움과 연약함이 있더라.”
8년의 시간이 로레인을 그것으로부터 견뎌낼 수 있게 만들어줬다.
처음부터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해진 것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고도 물어봤어.”
“……!”
에르딘이 순간 숨을 참았다.
쟌느는 에르딘의 반응을 알아차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에르딘에게는 조금, 아니 많이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말이다.
“없다고 하더라.”
“하고 싶은 게 없다고요?”
“응.”
로레인이 한 대답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뜻이었다.
쟌느는 로레인의 표정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욕심이나 바람이 없다는 게 아니야. 나는 그 아이를 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어.”
가족들이 전부 죽었다. 살아가던 마을의 이웃도 없다. 령으로 살아간 8년이 없었다면 정신이 나가서 미쳐버렸을지도 몰랐다.
“아마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좋지 못한 최후를 맞이했을 거야.”
식음을 전폐한 채 아사餓死한다든가 광인狂人이 되어 날뛴다든가 하는 등 말이다.
쟌느의 말이 여기까지 이어지자 에르딘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허락할게요.”
“응?”
“제론 님과의 교제! 제가 허락합니다!”
쟌느가 잠시 멍하니 에르딘을 쳐다보다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아, 진짜 이게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잠시 후 무자비한 폭력이 에르딘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 * *
마이얀의 실험실 정리가 끝난 것은 도합 8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에이전과 포럼에게 나머지를 맡긴 제론과 일행들은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산을 내려갔다.
일행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시끌벅적 떠들기도 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겠지만, 새롭게 합류한 로레인은 에르딘과 쟌느를 제외하곤 어색하게 대했다.
“…….”
“내 뒤에 타.”
에르딘이 말-정확하게는 말처럼 생긴 사역마-을 타본 적 없는 로레인을 자신의 뒤에 앉혔다.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손길에 에르딘은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이내 ‘케헥!’ 하고 가녀린 비명을 흘렸다.
“너, 너무 세게 잡았……어!”
“앗, 앗앗!”
저도 모르게 긴장한 로레인이 에르딘의 허리를 부러트릴 것처럼 팔 힘을 세게 조인 것이다. 에르딘이 가녀린 비명을 지르자 깜짝 놀라 힘을 풀었지만 이미 안색이 귀신처럼 창백하게 물든 뒤였다.
“자, 잠깐만요. 잠깐만 쉬고 가요.”
에르딘이 말하곤 사역마에서 내려 허리를 부여잡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부러지는 줄 알았다.
뒤따라 내린 로레인이 안절부절못했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괜찮아?”
“괜……찮을 거야.”
제론은 힘겨워하는 에르딘을 보며 혀를 차곤 말했다.
“남자는 허리 힘 모르냐?”
“그……건 알지만……!”
“어라? 진짜로 아픈가 보네.”
에르딘의 창백한 안색과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뒤늦게 발견한 제론이 머쓱해하며 사역마에서 내려왔다.
“엎드려봐.”
“어흑!”
추궁과혈로 허리를 풀어준 뒤에서야 에르딘의 안색이 나아졌다.
심호흡을 해서 긴장을 푼 로레인이 다시 에르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다른 의미로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움찔움찔 떤 에르딘이 허리에 힘을 바짝 줬다.
로레인이 작게 속삭였다.
“이번에는 실수 안 해.”
“으응.”
하지만 에르딘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로 허리가 부러질 것처럼 아팠기 때문이다.
“아, 맞다. 야, 에르딘. 그거 알아?”
“뭐, 뭔데요?”
“허리 부러져도 안 죽더라.”
“……!”
에르딘의 낯빛이 새하얗게 물들자 제론이 낄낄 웃었다.
바싹 얼어붙은 채 에르딘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로레인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번엔 진짜 실수 안 한다고.”
“고, 고마워!”
다른 일행들은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듯 미소를 띤 채 지켜봤다.
그런 에르딘을 슬프게 만든 쟌느의 말이 들려왔다.
“쟤는 어디를 가도 차이기만 하네.”
“…….”
저 말을 반박하지 못한 로레인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빨리 안 가?”
“가, 가겠습니다!”
에르딘은 더듬거리며 외치곤 고삐를 잡아당겼다.
* * *
남대륙 3대 마탑에서는 긴급 소집 회의가 있었다.
“탑주께서 사라지셨습니다.”
“연구실은 가봤나?”
“예. 하지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셨는지 먼지가 쌓여 있더군요. 다른 연구실도 확인해봤지만 역시 출입하신 기록이 없었습니다.”
탑주-마이얀은 대부분의 마법사가 그러하듯 연구실에 먼지가 쌓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2시간에 한 번씩 내부를 청결하게 만드는 아티팩트를 설치했다.
주기적으로 마나를 충전하면 아티팩트는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
먼지가 쌓였다는 건 최소한 며칠은 자리를 비웠다는 뜻이다.
“탑주께 언질을 들은 분이 계신지요?”
“없소.”
“황탑 역시 없소.”
백탑의 부탑주가 묻자 다른 마탑의 부탑주들이 고개를 저었다.
잠깐 생각을 한 백탑의 부탑주가 말했다.
“앞으로 사흘.”
“……?”
“사흘을 더 기다려보고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으신다면 새로운 탑주를 뽑겠소.”
* * *
페룬 왕국과 가헨트 왕국이 오크의 손에 불타올랐다는 비보가 남대륙 전역으로 퍼졌다.
제론과 일행들도 도시에 들렀다가 그 비보를 전해 들었다.
“다른 왕국들은 왜 가만히 있는 거냐고! 이대로 오크들이 북상한다면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위험해지는데!”
“듣기로는 왕족들이 전부 죽었다고 하더군.”
“오크들이 지나쳐간 도시들은 생존자가 한 명도 없다고 하던데?”
“교총지부는 이럴 때 뭐 하는 건지…….”
식당에서는 오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지금 마탑이랑 교총지부가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네.”
가헨트 왕국과 페룬 왕국을 불태운 오크들의 다음 목표는 보나 마나 뻔했다.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여력이 없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과 동쪽, 그리고 서쪽의 국가를 침략할 것이다. 페로쉐 왕국은 남대륙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고 하지만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안전할지도 몰라도 머지않아 오크들의 흉수가 뻗쳐올 것이다.
‘생각보다 빨라.’
제론은 가헨트 왕국과 페룬 왕국이 적어도 한 달은 더 버틸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헨트 왕국은 오크와 손을 잡으며 내부까지 이미 점령을 당했었다고 생각하더라도 페룬 왕국이 너무 빨리 함락당했다.
“오크들이 제법 머리를 쓴 것 같아.”
“인간 협력자가 있다는 건 아닐까요?”
“그 말도 맞겠지. 하지만 나는 오크들이 무리를 나눠서 가헨트 왕국과 페룬 왕국을 동시에 공격했다고 생각해.”
오크들의 인구수는 추측이 불가능하다. 번식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런 번식력을 갖고 있는데 마이얀의 도움까지 있었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기계적으로 생산했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오크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전사지.”
“……끔찍하네요.”
“로레인은 어때? 괜찮겠어?”
로레인이 흠칫 몸을 떤다.
제론이 한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다.
최근 그녀는 에르딘에게 무공을 배우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오러 마스터도 충분히 상대할 만큼 신체 능력도 뛰어난데 오러 연공법으로 개조한 내공심법으로 오러 홀까지 가득 채웠다.
단순히 전투력으로만 따진 솔직한 평가는 제론을 제외한 일행과 비교해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싸움 경험만 충분했다면 오히려 더 나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살인이었다.
로레인은 한 번도 살인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크와 싸운다는 건 큰 각오가 필요했다.
“싸울 수 있어요.”
“싸우는 거 말고.”
“전 계속 살아가고 싶어요.”
제론은 만족하지 못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이 오크 정도가 아니라면 로레인에게 상처도 제대로 입히지 못한다. 앞으로 차차 나아지면 된다.
‘지금 당장 오크와 싸우는 것도 아니니까.’
로레인은 몬스터와 싸울 때는 손을 쓰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까 부모님이 사냥꾼이었다고 했다. 몬스터는 짐승보다 조금 더 강한 사냥감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살생에 대한 반감反感이 없으면 됐어.’
제론은 로레인에 대한 생각을 그렇게 마무리 짓고서 지도를 펼쳤다.
페로쉐 왕국 아래로 3개의 왕국이 있었고, 바로 아래에 가헨트 왕국과 페룬 왕국이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오크가 침략을 속행한다고 하더라도 3개의 왕국을 먼저 공격해야 한다.
페로쉐 왕국의 왕실이 대처를 늦게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여기로 간다.”
제론이 손가락으로 지도의 어느 부분을 짚었다. 조금 전에 언급한 페로쉐 왕국 아래 3개의 왕국 중 가운데 위치한 마리온 왕국이었다.
마리온 왕국은 산악지대에 세워진 천연의 요새였다.
오크가 진격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방어를 하는 게 최선이다.
‘우리가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얼추 비슷하게 도착하겠어.’
도시의 여관에서 하루를 머무른 제론과 일행은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바로 출발했다.
* * *
“그 녀석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군.”
“누구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생각하는 그 녀석을 말하는 것이라네.”
퓨리온 공작이 킬킬 웃으며 말하자 말콤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할 말은 많았지만 퓨리온 공작의 앞이라서 최대한 조용히 있는 중이었다.
“남대륙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곧 만날 수 있겠지.”
“그런데 어떻게 텔레포트 게이트 작동을 승인받은 것입니까?”
“승인 안 하면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다네. 때로는…… 아니 대부분의 경우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것일세. 그래서 뒤지고 싶지 않았던지 순순히 허락을 해주더군.”
퓨리온 공작은 새까맣게 물든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남대륙으로 넘어가기 전 중앙대륙의 마지막 텔레포트 게이트에 몸을 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