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9)
제29화
29화
아카데미 생활 한 달이 되자 많은 것에 익숙해졌다.
똑똑.
“제론 님.”
노크와 함께 들려오는 에르딘의 목소리. 제론이 눈을 떠서 시계를 확인해보니 시침과 분침이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초침을 확인해보니 2초, 3초, 4초……!
“오늘도 정확하군.”
이제는 혀도 내둘러지지 않았다.
녀석은 한 달 동안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이 시간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극구 말렸지만 결국 ‘집사의 본분’이라는 명목하에 고집을 꺾지 못하고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이제 이런 생활이 익숙해졌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편하긴 해.’
제론은 침상을 벗어나며 생각했다. 귀족가에서 왜 집사를 한 명, 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씩 두는지 알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가서 인사하자 녀석이 세안을 위해 수건을 건넨다.
세수를 하는 사이 녀석의 입에서 하루 스케줄이 줄줄 흘러나왔다.
“1교시는 마법 수업입니다. 데르먼 수석 마법 선생님께서 ‘마나의 응용과 그에 따른 이론’을 강의하신다고 하십니다. 필요한 교재는 책상 위에…… 그리고…… 2교시…….”
“어푸. 어푸.”
“…….”
에르딘이 잠시 말을 멈추고 제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제론은 수건으로 물기를 슥슥 닦아내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제론 님께서는 가끔 보면 형들이나 아버지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
“45세가 되십니다.”
에르딘이 지금 9살이니까 그의 아버지께서 36살에 그를 낳은 것이다.
“형들은?”
“31세, 27세입니다.”
엄청난 나이의 차이에 제론이 잠시 침묵했다.
‘14살에 장남을, 18살에 차남을, 36살에 얘를 낳았다고?’
장남과 차남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36살에 셋째이자 막내인 에르딘을 낳았단다. 침묵으로 당황을 드러내던 제론에게 에르딘이 말했다.
“저희 가문이 손이 귀합니다. 그래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입니다.”
“으음. 그렇구나.”
제론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대신 녀석이 한 말의 뜻을 물어봤다.
“내가 형들이나 아버님 같다는 건 무슨 말이야?”
“형들과 아버지께서 세수를 할 때 제론 님처럼 ‘어푸- 어푸-’, ‘아르르르- 퉤!’ 하십니다. 그래서 가끔씩 제론 님을 볼 때면 형들과 아버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거참 좋은 일이네.”
“감사합니다.”
“그…래.”
제론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세수를 마치고 양치까지 했다. 입 안이 상쾌해지니 기분까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현대보다 위생적인 면에서 많이 수준이 떨어지는 무림에서도 항상 이를 닦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무림에도 칫솔은 있었다.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현대의 칫솔처럼 평범하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동물 뼈에 빳빳한 돼지 목털을 박아서 만든 굉장히 어설프고 조잡한 칫솔이었다. 하지만 무림에서는 무척이나 귀한 것이었다.
동물 뼈에 빳빳한 돼지 목털을 박고, 빠지지 않게 고정시키는 기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무림의 고수라면 돼지 목털을 암기처럼 깊숙하게 박는 것은 가능하지만 나머지 기술에 무지했다.
암기술에 일가견이 있던 사천당가나 좀 할 줄 알았지만 그놈들은 자기 가족들한테나 만들어주지 팔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제론-유민현은 직접 기술을 배워서 만들었다.
무림인이라는 족속들의 눈에는 그딴 하찮은 기술을 배워서 뭐 하냐 싶었겠지만 21세기에서 온 유민현에게는 위생이란 찝찝하면 바로 씻고 싶어지는 마술과도 같았다.
“그래도 여기에는 비누랑 치약 비슷한 게 있어서 다행이지.”
길거리에 오줌이나 똥을 버리는 것만 빼면 모든 면에서 무림보다 낫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이 제법 많지만 참을 만은 했다.
‘샴푸만 있으면 딱인데. 린스는 안 쓰니까 상관없고.’
엄마가 린스 대용으로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투명한 기름 같은 것을 향신료와 섞어서 치덕치덕 바르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콩이나 코코넛을 짜서 만든 건 아니었는데 제론이 보기에는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무공을 익히면 피부가 비단결처럼 좋아지니까.
옥녀궁 선술을 익힌 엄마의 미모는 날로 눈이 부셨다.
피부를 더 좋게 만들겠다며 미용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 가끔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언제 여자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있던가!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해. 보통 소설에서 보면 이런 경우에 다 동정이던데.’
지금의 몸은 아직 동정(?)이 맞긴 하다. 하지만 9살한테 동정이 아니길 바라는 게 오버하는 거다. 물론 겉보기에는 13살의 소년이고 남자의 상징은 그 이상이라 음양합일 정도는 가능하지만 꼬맹이들을 보고 그런 마음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아청아청을 넘어서 페도지.”
“그건 무슨 말입니까? 가끔 제론 님은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시곤 합니다. 설명이라도 해주시면 좋겠는데 ‘몰라도 돼.’라고 하면서 어영부영 넘기시니까 궁금증만 더 커집니다.”
“몰라도 돼.”
에르딘이 미간을 가운데로 좁혔다.
녀석은 꽤나 귀엽게 생겼다.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귀염상’이다. 미간을 좁히고 있는데 괜히 볼을 꼬집고 싶어진다.
‘나중에 크면 꽤나 많은 여자를 홀리겠어.’
제론은 노인들처럼 허허 웃으며 교실로 갔다.
“제론이다!”
“안녕?”
“잘 잤어? 오늘도 역시나 크네. 어떻게 하면 너처럼 키가 커지는 거야? 정말로 거인족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니지?”
제론이 1반에 들어가자 꼬맹이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인사를 건네 왔다. 한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거인족의 피가 몸속에 흐른다는 소문을 믿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다들 안녕. 거인족의 피는 안 흐르고 있으니까 우유를 꾸준하게 잘 마시고 체조 열심히 하면 금방금방 클 거야.”
“그게 비결이었구나!”
이 녀석들은 아침부터 개그하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지우고 카론과 로한에게 다가갔다.
두 명은 티타임을 갖고 있었다.
“교실에서 뭐 하는 거야?”
“식사 후에 차 한 잔의 여유는 귀족의 기본 소양이야.”
“그럼, 그럼.”
로한이 카론의 말에 맞장구쳤다.
제론은 기가 찼지만 두 명의 저런 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혹여나 그랬다가는 귀찮은 일이 100프로 발생할 것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수업 준비는?”
“집사 후보생들이 다 준비해놨다고 하더군.”
제론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귀족들이란.
“교재 말고 숙제 말하는 거야.”
“숙제라면 당연히 해놨지. 귀족의 기본 소양 아니겠어?”
“무슨 말만 하면 다 기본 소양이래.”
“귀족의 기본 소양이란 위치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지키는 것이지.”
“맙소사.”
제론은 두 명과 대화하기를 완전히 포기했다.
고개를 절레 내젓고 담임 선생님 유한이 오기를 기다렸다.
간간이 두 명의 질문에 답을 하거나 대화에 참여하는 사이 그가 교실 문을 쿵! 열고 들어왔다.
“하나, 둘, 셋…… 다 왔군. 아침 조회는 간략하게 하겠다. 어차피 중요한 건 집사 후보생들이 어련히 알아서 전달할 테니까. 그렇지? 아,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니까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뭐냐?”
“선생님께서 수인족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진짜인가요?”
아까 제론에게 거인족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니냐고 묻던 그 녀석이었다.
유한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나가서 벽 보고 손 들고 있어라.”
“히잉.”
녀석이 울상을 짓더니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창문 너머로 2개의 팔이 번쩍 들리는 것이 보였다.
“앞으로도 저런 쓸데없는 질문은 받지 않도록 하겠다.”
유한은 아픈 사람 혹은 다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2주 뒤에 있을 평가 시험에 대해 짧게 이야기한 뒤 아침 조회를 마쳤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감사합니다!”
“그래, 오늘도 모두 조심히 잘 수업 받아라.”
유한이 교실을 나가자 학생들이 일어나 수강 신청한 수업을 받기 위해 움직였다.
제론도 교실 밖에서 기다리는 에르딘과 함께 마법 수업을 받는 강의실로 향했다.
“치사하게 혼자 가지 말고 같이 가자고!”
로한이 후다닥 따라붙었다.
바로 뒤에서 카론이 여유롭게 뒷짐을 쥐고 걸어온다.
그랬다.
이 두 명도 함께 마법 수업을 받고 있던 것이다.
사실 두 명은 마법 수업을 받을 필요가 없다.
한 명은 1왕자이고, 나머지 한 명은 공작 가문의 자제였다.
아카데미에서 마법 수업을 받는 것보다 왕실이나 공작가에 소속된 고위 마법사에게 배우는 것이 더욱 편하고 확실했다. 무엇보다도 1 대 1 개인 교습이라는 점이 좋다.
그런데 왜 이 두 명이 마법 수업을 받느냐?
바로 제론과 같은 수업을 받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친구랑 같이 수업 들으면 재밌잖아?”
이 말을 한 것은 로한이었다.
카론은 저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똑같이 수강 신청했다. 물론 부전공이나 아카데미에서 배워야 하는 부수적인 교육까지 겹친 것은 아니었다.
전공 3개만 똑같이 듣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전부터 궁금한 건데 데르먼 수석 마법 선생님께서는 왜 아카데미에 계신 걸까? 사실 어느 마탑을 가더라도 최상층에는 오르실 텐데.”
마탑에서 마법사의 수준은 층수로 결정이 된다.
층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수준이 높은 마법사라는 뜻이다.
실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아카데미 수석 마법 선생님인 데르먼은 6개의 서클 고리를 갖고 있는 정말 대단한 마법사였다.
6개의 서클 고리를 만든 마법사는 대륙 전체에서 1백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정확한 숫자를 센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이룩하기 힘든 경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륙에 존재하는 어느 마탑을 가더라도 최상층에 오른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소문으로는 어느 마탑의 초빙을 받고 가셨는데, 거기서 관리자가 실적을 쌓아야 한다고 말해서 바로 거절하셨다고 하더군.”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네.”
“마법사치고 괴짜 아닌 사람은 없으니까.”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카론과 로한의 대화를 듣던 제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두 명의 평가와 달리 제론은 데르먼 수석 마법 선생님이 괴짜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 없었다. 마법 수업을 받으며 그와 자주 대화를 해봤는데 무척이나 오성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괴짜라기보다는 선구자에 가깝지.’
이 세상 대부분 사람들이 갖지 못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사상에서 말이다.
그런 부분을 괴짜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맞다.
솔직히 말하자면 위험한 인물이다.
물론 이 세상의 권력자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6개의 서클 고리를 갖고 있는 대단한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이미 동굴 같은 곳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을지도 모른다.
웅성웅성.
마법 수업 강의실에 도착하자 꼬맹이들이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제론을 비롯한 3명이 들어서자 목소리가 뚝 그치며 적막이 맴돌았다.
‘이래서 꼬맹이들은 피곤하다니까.’
13살 같은 9살의 제론.
아이언하트 공작가 차남 로한.
1왕자 카론.
아카데미 입학생 중 가장 유명한 3명이 나타나자 바로 눈치를 슬슬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두 명은 그렇다 쳐도 제론의 눈치는 왜 살피냐고?
“크다……!”
다른 애들보다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