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90)
제 290화
290화
“나? 너희가 따라다니던 사람들 중 한 명.”
“…….”
용병들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몇 명은 무기에 손을 올리려다가 움찔하더니 다시 뗀다.
‘확실히 기습하려고 따라오던 건 아니었나 보네.’
에르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무기를 뽑지 않은 것만으로도 목적성은 분명해졌다.
“왜 우리를 따라다녔지?”
“그건…….”
“야!”
한 용병이 대답하려고 하자 다른 용병이 소리쳐 막는다. 두 용병의 시선이 빠르게 교차된다. 눈빛으로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눈 모양이다.
에르딘은 ‘흠.’ 하고 턱을 쓰다듬더니 앞으로 한 발자국 성큼 내디뎠다.
용병들이 흠칫 놀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나쁜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면 협조를 해줄 의향도 있어.”
“우리가 왜 나쁜 의도를……!”
어떤 용병이 억울하다며 말하려고 했지만 동료의 눈초리에 씩씩거리며 답답해서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몰래 미행을 한 점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저희가 절대로 나쁜 의도를 갖고 미행을 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쁜 의도? 미행이 나쁜 게 아니라는 말인가?”
“어…… 그건…….”
에르딘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용병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말았다.
“일단. 몰래 따라다니는 거 무척이나 신경 쓰여. 그것부터가 문제야. 아니면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잘 따라다닐 자신이라도 있어?”
“어, 어어…….”
“그럴 자신 없으면 앞으로 따라다니지 마. 그리고 사실 몰래 따라다니다가 공격을 할지 말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그건 절대 아닙니다!”
처음 에르딘의 질문에 대답할 뻔했던 용병이 강력하게 부정했다. 나름 억울했는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기까지 했다.
‘왜 울고 그러는 거야?’
에르딘도 당황해서 난처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하자 용병들이 서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서 도망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민을 하더라도 그런 기척까지 놓칠 에르딘이 아니었다. 신법으로 스윽 다가가니 용병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용병들의 눈에 에르딘의 신법이 마법처럼 보였던 것이다.
“마, 마법사?”
“오러를 이용한 댄싱 워킹이다.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설명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네.”
싸움을 업으로 삼는 자들-용병이나 기사들을 통틀어 말한다-은 여러 가지 발을 이용한 기술을 익히고 있는데, 춤을 추듯 현란하게 움직이는 걸음을 댄싱 워킹이라고 하며 적을 죽이기 위해 달려가는 짧고 빠른 걸음을 소드 워킹Sword Walking이라고 한다.
운룡대구식은 구름 속에서 용이 노니는 모습 같아 무척이나 신묘하니 댄싱 워킹이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도망치면 죽는다.”
에르딘은 표정을 싹 굳히며 말했다. 살기를 흘려보내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날카로운 기세가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제론과 일행들을 미행하던 용병들의 실력은 적어도 B등급 이상은 될 정도로 뛰어났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좋지 못했다.
용병들은 딸꾹질을 하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리고?”
“순순히 밝힐래? 맞고 밝힐래?”
에르딘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격언을 누구보다도 몸소 체험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 * *
에르딘이 용병들을 만나러 간 뒤 제론은 짐을 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거 귀찮은 일은 왜 하러 나간 건지.”
미행을 하던 용병들은 나쁜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몸에서 흐르는 용병치고 정갈한 기운이 그 증거였다. 물론 기운이 정갈하다고 나쁜 놈이 없는 건 아니지만 10명 중 9명은 멀쩡한 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쓸데없이 예민하긴.”
“…….”
그런 제론의 혼잣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쟌느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에르딘이 왜 저런 꼴이 됐을까 생각해보면 정답이 바로 나온다.
제론 때문이다.
뭐만 하면 때리고 갈구고 윽박을 지르는데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해결을 하는 게 에르딘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그걸 혼잣말로 뭐라고 하고 있으니 진실을 알고 있는 쟌느로서는 정말이지 제론이 참 뻔뻔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뭐…… 그래서 좋은 거지만.’
두 눈에 단단히 콩깍지가 씌어 버린 쟌느였다.
에르딘을 제외하고 짐을 푼 일행들이 식당에 모였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식사를 주문해놓자.”
“늦으면 어떡하려고?”
“그건 지 사정이지. 내가 가라고 했어? 자기가 다녀온다고 했지.”
“하긴. 그건 그래.”
제론의 말에 쟌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일행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나마 로레인은 조금 나았다.
‘혹시 모르니까 조금만 먹어둬야지.’
에르딘이 늦어서 혼자서 식사하게 된다면 같이 먹으려고 적당히 배를 채울 생각을 한 것이다.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제론 님!”
음식이 나오기 직전 에르딘이 돌아왔다. 그가 갖고 온 여러 명의 짐(?)을 본 제론이 작게 혀를 찼다.
‘잘 처리하고 온다더니 아예 데려왔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에르딘이 용병들을 잘 타일러서 듣게 된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용병들의 정체는 놀랍게도 말콤의 부하였다. 그들이 몰래 따라다닌 이유도 있었다. 제론과 일행들이 남대륙에 있는지 확인하고 위치를 파악하라는 임무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였다.
남대륙의 면적은 일개 도시처럼 작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사람들을 무작정 찾아다니는 건 무리였다.
말콤은 부하들에게 제론과 일행들에 대한 정보를 간략하게 알려줬다.
그렇게 말콤의 부하들은 남대륙 전역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제론과 일행들로 보이는 파티에 대한 소문이 들려오면 바로 찾아갔지만 번번이 헛발걸음만 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던 찰나에 페로쉐 왕국에서 말콤이 알려준 정보와 유사한 파티가 소문으로 들려왔다.
운이 좋아서 마리온 왕국 수도의 용병 길드에서 마주쳤지만 전쟁으로 인해 많아진 사람들로 시끌벅적해지는 바람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확인 차에 물어보려고 쫓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말콤이 말했던 일행들과는 구성이 달라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미행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너희들이 찾는 사람이 우리가 맞긴 한데…… 말콤의 부하라고?”
용병들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임무를 마치고 서대륙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가 있었다.
“우리를 찾으면 녀석이 어떻게 하라고 했어?”
“잘 모시고 있으…… 응?”
용병들은 말하다 말고 서로를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무래도 서대륙으로 돌아가는 건 한참 뒤의 일 같았다.
* * *
말콤의 부하들은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체념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젠장.”
“나중에 칼로 찔러버릴 거야.”
“너 말로만 그러지 말고 진짜로 해봐.”
에르딘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저 사람들이 아까와는 다르게 보였다.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뭐?”
“저런 사람들이 나쁠 리가 없잖아요.”
“…….”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제론은 답답하다 못해 속이 잔뜩 얹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그거랑 이거는 별개죠. 좋은 사람들이긴 해도 신뢰할 수 있냐 없냐는 다른 문제잖아요?”
“이럴 때는 또 냉정하네.”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한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구분하지 못하고 달려드는 것보다는 몇 배 나았다.
“말콤의 부하라는 것을 증명해봐.”
“용병패입니다.”
“그거 말고. 그런 건 조작이 가능하잖아. 말콤과 나만 알고 있는 비밀 같은 걸 알려줬을 거 아냐? 그런 걸 말해.”
“그럼 저희가 제론 님이 진짜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합니까?”
“확신하기 싫으면 하지 마. 우리가 아쉬울 건 없으니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온 식사를 하며 제론이 말했다. 아쉬울 게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용병들이 믿지 못하겠다며 떠난다고 해도 말콤이 남대륙에 도착한다면 소문을 듣고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사실 괜한 짐을 얹기도 싫은데 쓸모까지 없다면 더더욱 싫어서 이러는 거지만.’
용병들이 진짜 말콤의 부하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품고 있는 오러가 옛날 말콤에게 전수한 그랜드 마스터의 오러 연공법과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똑같은 오러는 아니었다.
제론은 말콤에게 오러 연공법을 알려주며 제자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전수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지킨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용병들이 품고 있는 오러는 뭐냐고?
바로 열화판 오러 연공법이었다.
서대륙에서 얻은 그랜드 마스터의 오러 연공법에는 입문을 위한 기초 오러 연공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초라고 하지만 문제가 있거나 삼류 쓰레기는 아니었다.
웬만한 중급 오러 연공법보다 안정성이 좋고 정순했으며 오러를 모으는 속도도 빨랐다. 그런 오러 연공법을 전수했다는 것은 말콤에게 저 용병들은 신뢰를 할 수 있는 부하라는 뜻이다.
“그럼 잠시 귀를…….”
“그냥 말해.”
“크흠. 그럼 말하겠습니다.”
“잠깐. 서로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묻고 대답하는 식으로 하지. 그게 좀 더 확실하잖아?”
기발한 생각이라는 듯 용병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묻고 대답하길 몇 차례.
용병들은 제론과 일행들이 말콤이 찾던 그들이라고 확신했다.
“앞으로 저희가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말콤의 부하들이 편하게 모시겠다고 한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자질구레한 수발부터 용병 길드로 가 의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까지 전부 그들이 대신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거 편해도 너무 편한데요?”
에르딘은 두툼해진 뱃살을 주물럭거렸다.
말콤의 부하들이 말만 하면 알아서 다 해주니까 움직일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날이 뱃살만 늘어나고 있었다.
“곧 오크들이 들이닥치면 편할 일이 사라질 거야. 미리 뱃살은 좀 빼놔라. 무인이 뱃살이 뭐냐? 뱃살이.”
“끙차. 수련하러 가자. 로레인.”
제론의 윽박지름에 못이긴 에르딘이 두툼해진 뱃살을 출렁이며 밖으로 나갔다. 로레인은 어미 새를 따라다니는 아기 새처럼 에르딘의 뒤를 쪼르르 쫓아갔다.
“그나저나 말콤은 언제쯤 온대?”
“저희가 출발하기 전에 퓨리온 공작의 부름을 받고 남대륙 출전을 제의받았으니…… 아마 얼마 전에 도착했을 겁니다.”
* * *
“허어. 오크들을 베는 것은 오랜만이군.”
퓨리온 공작은 검에 묻은 녹색 핏물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그의 검에 목이 베인 오크가 수십 명이다. 하지만 덤벼드는 놈들만 상대하는 가벼운 몸풀기에 불과했다.
제대로 날뛰는 녀석은 따로 있었다.
“하앗-!”
말콤의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채찍처럼 가늘게 뽑혀 5명의 오크를 단숨에 베어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