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93)
제 293화
293화
“늙은 오크라고?”
“네. 오크는 20살이 된 순간부터 급격한 노화가 찾아와요.”
오크의 평균 수명은 20년이다.
실제 최대 수명은 50년이지만 육체가 노화하기 전에 전사로서 마지막 싸움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혹 마지막 싸움에서 이기도 돌아와 20년을 넘게 살아가는 오크들도 있지만 아무리 길어도 30살을 넘지 못했다.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경우가 대다수라 천천히 긴 시간에 거쳐 천천히 죽음에 이른다.
100명 중 1명 혹은 2명에 불과할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만약에 오래전부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들이 마지막 싸움을 하러 떠나지 못하도록 막았다면 이해가 돼요.”
“오크 종족을 위해 희생하라는 건가.”
“오크의 특성을 생각하면 절대로 말이 안 되죠.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상식을 잣대로 보는 건 위험해요.”
“오크는 늙어도 오크지.”
야수가 늙어 날카로운 이빨이 빠졌다고 한들 먹잇감이었던 초식동물한테는 사냥당하지 않는다. 오크도 마찬가지다. 전사로 태어난 오크가 늙는다고 하여 전사가 아니게 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인간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러했다.
“그럼 저 녀석들이 진짜 노리는 건 따로 있다는 거네.”
“그럴 확률이 높아요.”
제론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오크들이 노리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것의 정체를 떠올리기까지는 의외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차 지원군.”
“네?”
“오크들이 2차 지원군을 노리고 있는 거라고.”
“……!”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일행들이 곰곰이 되짚어보자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마물의 숲에서 싸웠던 하이 오크는 상위 오러 마스터와 비등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몇 명만 이곳에 있었다면 제론과 일행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함락되었을 것이다.
“알리러 가야겠어요.”
“이미 늦었어.”
에르딘이 냉정한 제론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분명 늦었다.
이제 와서 그 사실을 알린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설령 아직 2차 지원군이 공격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에 와서 뒤따라간다고 해도 오크들보다 먼저 도착하리라는 법이 없다. 심지어 2차 지원군은 각 왕국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마리안 왕국으로 오고 있었다. 그들의 이동 경로를 전부 알고 있어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신 차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어. 그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냐에 따라 피해가 줄어들지 말지가 결정되는 거야.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면 정신 똑바로 차려.”
“맞아요. 그랬죠. 잠시 잊고 있었어요.”
에르딘이 자리에 앉으며 2차 지원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를 바랐다. 생존자가 1명도 없을지언정 적어도 이곳에 있는 병사들의 사기가 꺾여서는 안 된다.
“지금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고.”
제론은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남대륙 지도를 그렸다.
페룬 왕국이랑 가헨트 왕국의 위치를 ‘X’자로 표시했다. 이미 함락되었다는 뜻이다. 그 주변 왕국에는 마리안 왕국으로 2차 지원군이 오고 있다는 화살표를 그었다.
화살표의 숫자는 8개. 오크가 2차 지원군을 노리고 있다면 8개의 그룹으로 숫자를 나눠서 움직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탑들과 교총지부.”
마이얀이 3개의 마탑을 지배했다면 그곳들도 경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이얀과 협력했던 교총지부도 역시 적일 확률이 높다.
“문제는 여기야.”
해양 몬스터와 싸우느라 다른 여력이 없는 남부지역의 왕국들을 별 모양으로 체크했다.
“마리안 왕국이 함락당하면 중부지역과 북부지역은 사실상 오크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고 보면 돼. 오크들을 막을 만한 요새가 없으니까. 그래서 다른 왕국들이 어떻게든 마리안 왕국을 사수하려고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거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 번쯤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2차 지원군이 오크들에게 각개격파 당해서 도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포기하겠지.”
쟌느가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2차 지원군이 전멸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지휘부에서는 그 사실을 절대로 알리지 않을 거야. 지금이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버리면 안 되는 상황이니까.”
“만약…… 저희가 필사적으로 싸운다면 바뀔까요?”
로레인이 눈썹을 찌푸린 채 묻는다.
제론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전투는 이길지언정 전쟁에서 승리하지는 못할 거야. 우리의 적은 오크들뿐만이 아니니까.”
“설마……?”
“그 설마가 맞아.”
마탑과 교총지부를 말하는 것이다. 두 세력이 오크와 협력하고 있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사실 절망적인 상황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 진실을 모른 채 싸우고 있는 병사들이 안타깝게 보일 정도다.
“하지만 여기서 오크들을 막아낸다면 상황이 반전돼.”
“아까 전투를 이겨도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전쟁에서 승리하지는 못해.”
에르딘은 잠시 침묵했다. 제론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말콤의 부하들이 제론을 찾아왔다. 그들을 본 에르딘이 깨닫고 말았다.
“……그렇군요. 그걸 잊고 있었네요.”
“그렇지?”
다른 일행들도 동시에 깨달은 모양이었다.
말콤의 부하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말이다.
“네? 무슨 일 있습니까?”
* * *
메이엔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현재 국경 전선을 공격하는 오크들의 대부분이 20살이 넘어 강철 같던 육체가 급격한 노화를 맞이하는 늙은 오크들이었다. 하지만 전투에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오크들은 없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전사였고, 늙어서는 숙련된 솜씨를 갖고 있는 경험 많은 전사였다.
두 다리가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노쇠한 게 아니라면 언제나 누구보다 앞장서서 적들과 싸우러 달려가는 것이 바로 오크라는 종족이다.
“크릉! 전사로서 최후를 맞이하기 좋은 곳이로군.”
하이 오크 투캉쿠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날카롭고 긴 송곳니 사이로 뜨거운 입김이 흘러나왔다. 빠른 속도로 나약해져 가는 육체가 느껴진다.
하이 오크인 투캉쿠의 노화는 다른 평범한 오크들에 비해 그나마 느린 편이다.
전투가 끝나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오크들도 있었다.
그런 오크들의 소원은 아직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을 때, 싸울 수 있는 지금 전사로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투캉쿠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로브를 뒤집어쓴 나약한 인간에게 물었다.
“크릉.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인간.”
“기다리면 됩니다.”
“크릉?”
왜 기다리면 된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투캉쿠가 설명을 요구한다는 표정으로 나약한 인간을 쳐다봤다.
“2차 지원군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연합군의 사기가 밑바닥까지 떨어질 겁니다. 바로 그때 총공격을 한다면 국경 전선을 쉽게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어째서 사기가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거지? 전사라면 그럴 수 없다.”
“전사로서 태어난 오크와 다르게 인간이라는 종족은 연약하지요.”
“크릉. 오랜 시간 인간들을 지켜봤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군.”
“인간이라는 종족을 이해하려고 하시는 것보다 그냥 인간들이 원래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크릉!”
“다음 공격은 돌아오는 새벽입니다. 그때까지 투캉쿠께서도 편히 휴식을 취하십시오.”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나?”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에는 좀이 쑤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크르릉!”
투캉쿠는 나약한 인간의 말이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다.
* * *
새벽이 찾아오기 몇 시간 전 제론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새벽에 오크들이 기습할 거야.”
뜬금없는 말은 아니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았을 뿐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2차 지원군은 며칠 뒤에 도착해야겠지만 오크들이 그들을 노리고 중간에 급습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단순한 예상에 불과했지만 높은 확률로 맞아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지휘부도 그 사실을 예상하고 있던 거야.’
8개의 경로로 나눠서 오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문제는 오크의 옆에 인간 조력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2차 지원군이 오는 경로를 파악한다면 오러 마스터 급 하이 오크들을 이용해 2차 지원군을 몰살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제론은 2차 지원군이 오지 못할 거라고 예상한 것이다.
‘2차 지원군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를 꺾는 게 가능해.’
그전까지 천천히 병사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고 마지막에 이르러 희망을 깨트리기까지 완벽하다.
제론은 어떤 녀석이 오크들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건지 몰라도 면상을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오크들이 새벽 기습을 감행했다.
“오크들이 쳐들어왔다!”
“빨리빨리 움직여!”
병사들과 용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오크들의 공격은 사납고 흉포했지만 2차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기면서 필사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었다.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은 놀랍게도 마법사 부대가 아닌 오러 익스퍼트 기사들로만 구성된 기사단이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오크들이 뭉쳐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사로 태어난 그들에게 집단행동이란 불편한 행위에 불과했다. 마법사의 마법 공격을 적중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기사단은 달랐다. 그들은 단단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앞세운 채 돌진했다. 수백 명의 오크들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오크들의 공격은 강력했지만 풀 플레이트 아머를 박살 내기도 전에 오러 소드에 전신을 난도질당했다. 평지였다면 사정이 달랐겠지만 기사단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돌진한 것이 아니었다.
쿵- 쿵-!
오크 진영에서 거대한 북소리가 나며 퇴각 명령이 내려졌다. 오크들이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승리를 이룬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얼마든지 또 와라! 다음번에는 모조리 죽여주마!”
“오크 고기는 무슨 맛일지 기대가 되는구먼! 크하하하!”
그러나 지휘부의 분위기는 바깥 상황과 달랐다.
2차 지원군의 전령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모양이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퇴각 준비를 해야겠어.”
“상부에는 어떻게 보고하시겠습니까?”
“보고가 필요하나? 전령을 보내봐야 도착하지 못할 텐데. 그냥 모르는 척 잡아떼면 그만이지.”
“분명히 문책을 당할 겁니다.”
“국경 전선을 빼앗기면 이러나저러나 똑같아.”
“그럼 바로 명령을 하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지휘부의 명령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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